- 8권 3화
178. 빨리 만들게 (1).
예상 밖으로 정중한 태도다.
그의 반응에 놀란 마고 후작은 낮게 헛기침을 토했다.
"크흠. 반갑소. 암왕. 그……뭐라고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마고 후작은 난감해하다 요한을 보았다.
뒤에 있던 요한이 뭔가를 먹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식사라도 함께하시겠소?”
“영광이오.”
그가 웃으며 받아들이자 마고 후 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저녁 식사 시간은 꽤나 화기애애 했다.
레이몬이 요한을 꽤 좋게 보고 있다는 것에 윌카스트 백작은 만족 했다.
“암왕께서 제 아들을 지지해주시 겠다니. 저희 입장에서야 감사드릴 뿐입니다.”
“지지는 아니오. 그저 이번 일에 는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뿐이지.”
“그것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별말을. 그럼 식사는 끝난 듯하 니. 나는 가보도록 하겠소.”
“그러지 마시고 오늘은 제 저택 에서 머물고 가시는 게 어떻겠소?”
마고 후작이 웃으며 말하자 레이 몬은 뒤를 보았다.
상아탑이 치안통제국을 지원하길 원하는 칼라츠의 얼굴은 흙빛이 되 어 있었다.
원래는 오늘 저녁 식사도 파보 국장과 먹었어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될 줄이야.
“칼라츠. 너는 어쩔 생각이냐.”
“그……“원한다면 너는 치안통제국으로 가도 좋다.”
“……후우. 저는 상아탑으로 돌 아가겠습니다.”
애초에 좋은 사이도 아닌데 남아 있을 필요가 뭐 있겠나.
파보에게 들러 지원을 하지 못하 겠다 말해주는 것이 우선이다.
그가 씁쓸히 말하자 레이몬은 씩 웃었다.
“그럼 돌아가 있도록. 그리고 운 영과에도 말해둬라.”
“……예.”
칼라츠가 나가자 윌카스트 백작 은 안도했다.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암왕 이 저리 호의적으로 나온다면…… 치안통제국은 절대 상아탑의 지원 을 받을 수 없다.’
아무리 상아탑이 여러 과로 나뉘 어 있다고 하더라도 암왕이 이러는 데 상아탑이 뭘 어쩌겠나?
윌카스트 백작은 한결 편해진 마 음으로 식사를 이어나갔다.
얼추 식사가 끝나자 레이몬은 메 이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돌아갔다.
그가 나가자마자 마고 후작과 윌 카스트 백작은 설명을 요구했다.
순순히 요한이 설명해 주자 윌카 스트 백작은 피식 웃었다.
“암왕께서 빌헬미나를 그리 좋아한다라…… 잘만 하면 암왕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겠구나.”
요한을 손자처럼 생각하는 빌헬 미나다.
만약 둘이 잘 된다면.
그럼 당연히 레이몬도 요한을 도 와줄 것이다.
크게 기뻐하는 윌카스트 백작을 향해 요한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만.”
“응? 그게 무슨 소리냐?”
"아니. 만약 할머니가 레이몬과잘 될 사이였다면 이미 잘되지 않 았을까요?”
지금이야 빌헬미나가 요한을 돌 보는 것을 낙으로 실며 행복해 보 이지만.
그 전에는 그저 굶주린 사람을 돌보는 것으로 공허함을 채우던 빌 헬 미나였다.
둘이 잘 될 거였으면 이미 그때 잘 됐을 것이다.
—o으1그 ......• w“만약 빌헬미나가 타인에게 의지 하고 싶었던 것이라면. 그때 의지 했겠죠.”
“그걸 어떻게 좀. 안 되겠니?”
레이몬을 포섭할 수 있다면 그를 따르는 많은 마법사들을 바그너 영 지의 힘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럼 로만 후작과 싸울 때도 큰 도움이 될 거다.
월카스트 백작의 요청에도 요한 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거야 빌헬미나 할머니가 결정 할 일이죠. 아무튼 말씀은 드려볼 게요.”
“그래. 시도라도 해보렴.”
최소한 상아탑이 적대하는 것은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윌카스트 백작은 꽤나 뿌듯해하 며 마고 후작과 함께 식당을 나갔 다.
홀로 식당에 남은 요한은 뒤통수 를 긁적거렸다.
‘이걸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그때 였다.
문이 열리며 시종들과 함께 빌헬 미나가 들어왔다.
"어머? 벌써 식사가 끝났니?”
"예. 저야 많이 먹지만 다른 분 들은 잘 드시지 않으시니까.”
“아쉽구나.”
빌헬미나가 밀고 있는 트레이에 는 말린 과일과 빵. 그리고 차가 담겨 있었다.
시종들이 테이블을 치우는 것을 기다린 빌헬미나는 요한의 옆에 앉 았다.
“너는 더 먹을 수 있지?”
“물론이죠. 할머니의 디저트를 먹지 않는 건 손해니까.”
“후후후. 훌륭하구나.”
먹음직스러운 쿠키를 씹고,차를 마시던 요한은 고민하다가 입을 열 었다.
“할머니. 암왕과 무슨 사이십니 까?”
“무슨 사이냐고 해도……빌헬미나에게 있어서 레이몬은 그저 상아탑에 있을 때 친하게 지 내던 후배에 불과했다.
“그에게 뭔가 다른 감정이 있거 나. 그런 건 아니구요?”
“어머머. 다른 감정은 무슨. 내 나이에 그런 남사스러운 일은 없단 다. 너는 그런 생각 말고 많이 먹 고 건강해질 생각만 해.”
이미 충분히 건강한 요한이지만 여전히 말랐다고 할 수 있었다.
그를 향해 상냥히 웃은 빌헬미나 는 찻잔을 잡고 씁쓸히 말했다.
“나에게는 그런 것은 사치지……“그래요?”
“그래.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는 거니?”
"레이몬이 할머니와 독대하고 싶 다고 하더군요.”
“그거야 어렵지 않은데…… 레이 몬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걸까?”
“할머니가 원하신다면 제가 옆에있을게요.”
‘이왕이면 들어보고 싶네.’
단순히 연정을 전하려는 것이 아 닌.
마법의 극의에 도달하기 위해 빌 헬미나를 만나려 하는 것이라면.
옆에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빌헬미나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 고 답했다.
"나야 괜찮지만……"그럼 함께 가시죠. 음……말하려던 요한은 빌헬미나를 위 아래로 훑어보았다.
과자집에서처럼 빌헬미나는 언제 나 입고 다니는 펑퍼짐한 옷을 입 고 있었다.
누가 봐도 그냥 일하는 할머니라 고 보일 정도다.
결정을 내린 요한은 바로 자리에 서 일어나 외쳤다.
"밖에 누구 있냐!?”
“예!”
저택의 시종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가 고개를 조아리자 요한은 품 에서 꺼낸 전표를 내밀었다.
“할머니 모시고 가서 좋은 드레 스 하나 사드려. 그리고 화장도 좀 해드리고.”
“예? 빌헬미나 님을요?”
“요, 요한? 왜 그러니?”
“이왕 만나는 거 좀 잘 차려입으 시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할머 니.”
당황한 빌헬미나를 꽉 잡은 요한 은 그셔를 향해 씩 웃었다.
“가끔은 치장도 좀 하세요."
“아니 그래도 난•…"
“할머니 모시고 가라.”
“예. 빌헬미나 님. 모시겠습니다.”
난감해하는 그녀를 향해 요한은 손을 흔들어주었다.
결국 빌헬미나가 나가자 요한은 바로 레이몬을 찾았다.
방에서 서성거리며 기다리던 레 이몬은 요한이 오자 애써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냐.”
“할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음…… 그,그래?”
“예. 그리고 그 자리에 제가 좀있었으면 합니다만.”
“네가? 왜?”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보였다.
하지만 요한도 양보할 수는 없었 다.
"빌헬미나 할머니는 저에게 가족 같은 분. 레이몬. 당신이 이상한 소 리 할 거면 막을 겁니다.”
싸늘히 말한 요한은 아공간 주머 니에서 사베트의 연구일지를 꺼냈 다.
그것을 본 레이몬은 인상을 찡그 렸다.
“그리고 이거 태워버릴 거고."
“흐음……“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 문제 될 것은 없겠지. 하 지만 너 외에 다른 사람은 안된다.”
“그 정도는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럼 준비가 되면 모시러 오겠습니 다.”
말을 마친 요한은 나가려다가 발 걸음을 멈췄다.
중요한 것을 묻지 않았다.
“그런데 엘릭서. 언제쯤이면 완 성될 것 같습니까?”
“일년 정도는 더 걸릴 것 같군.”
“그렇습니까?”
좀 더 빨리 되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로만 후작과 결판을 내 기 전에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그의 속내를 눈치챔 것일까?
흑왕은 천천히 말했다.
“하지만…… 오늘 일에 따라 그 날짜가 변할지도 모르겠다.”
“왜 그런 겁니까?”
레이몬은 대답하지 않고 입을 다 물었다.
그를 보던 요한은 한숨을 내쉬었 다.
"아무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래.”
* * *두어 시간 정도 혼자 훈련을 하 던 요한은 빌헬미나의 준비가 됐다 는 말에 그녀를 찾았다.
늘 펑퍼짐한 작업복만 입던 빌헬 미나였다.
하지만 제대로 꾸미니 확실히 달 라보였다.
“어휴. 이런 건 불편하구나.”
드레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빌헬미나는 엘븐 실크로 만들어진 치맛자락을 살짝 쥐었다.
하지만 구겨질까 두려웠는지 차 마 꽉 쥐지는 못하고 있었다.
습진으로 까끌까끌한 손에는 화 장품이 발려 그래도 매끄러워 보인 다.
주름진 얼굴은 팩이라도 한 것인 지 좀 더 촉촉해 보였다.
세월의 흔적인 백발은 완전히 지 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하얀 드레스와 잘 어울리 는 백발은 곱게 틀어 올려져 정돈 되었다.
단순한 할머니에서.
현명함을 가진 정숙한 귀부인이 되었다.
자신의 변화에 어쩔 줄 몰라 하 는 빌헬미나의 모습에 요한은 만족 했다.
“잘 어울리시네요.”
“어휴. 내가 왜 이런 것을 입어 야 하는지……“가끔이라도 그렇게 입어주세요.”
“이럴 돈이 있으면 차라리 네 신 붓감이나 찾아서 꾸며주렴.”
“하하하. 그건 제가 나중에 알아 서 할게요. 그런데……하얀 드레스에 어울리지 않는 것 이 있었다.
빌헬미나의 가슴 쪽에 붙어 있는 브로치 였다.
예전에 요한이 사다 줬던 브로 치.
그것이 빌헬미나의 조화를 무너 트리고 있었다.
“그 브로치는 빼시는 것이……“이,이건 늘 차고 다니는 거라.”
요한에게 있어서는 그리 좋은 브 로치가 아니었다.
하지만 빌헬미나에게는 꽤나 소 중했나 보다.
그녀는 살짝 브로치를 손으로 잡 았다.
거부하는 그녀에게 요한은 고개 를 끄덕였다.
“뭐 그러시다면야. 이봐.”
“예.”
“암왕께 전해. 준비됐으니까 뒤뜰에 있는 댄스홀로 와달라고.”
저택에 걸려 있는 마법 방해진이있으니.
만약 레이몬이 허튼짓을 한다면 바로 공격할 수 있다.
요한의 말에 그는 바로 객실로향했다.
“그럼 할머니. 저희도 가죠.” 요한은 능숙하게 손을 내밀었다. 귀족 부인들을 에스코트할 때처 럼 그가 정중히 나오자 빌헬미나는 낮게 웃었다.
“호호호. 이런 대접을 받으니 마 치 내가 귀족이라도 된 것 같구나.”
빌헬미나는 상아탑의 로드였지만 평민이 었다.
젊었을 때는 마법에만 집중했다.
결혼을 한 이후에는 가족들을 돌 보며 마법을 연구했고.
대기근이 발생할 때쯤에는 마법 연구에만 집중했다.
그렇기에 이런 드레스를 입을 일 도,에스코트를 받을 일도 없었던 것이다.
어색해하는 빌헬미나를 데리고 요한은 곧장 댄스홀로 향했다.
"어머나……댄스홀에는 작은 테이블과 함께 찻잔,그리고 다과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것을 본 빌헬미나는 아쉬워했 다.
“내가 해줄 수 있었는데.”
“오늘은 제가 에스코트하는 날이 니까요. 자. 앉으시죠.”
그녀를 앉힌 요한이 차를 준비하 는 사이.
문이 열리며 레이몬이 들어왔다.
그는 예쁘게 차려입은 빌헬미나 를 보고 움찔했다.
“……선배. 그렇게 입으시니까 굉장히 아름다우시군요.”
"요한이 이렇게 차려줬단다. 우 후후. 나이 먹고 주책없지?”
“아니요. 선배는 항상 아름다웠 습니다.”
“어머…… 고마워라.”
레이몬은 힐끔 요한을 본 후 자 리에 앉았다.
그와 빌헬미나의 앞에 요한은 능숙하게 차를 내려주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백작가의 공자가 급사라도 된 것 같다.
그가 뒤로 한걸음 물러나자 레이 몬은 빌헬미나를 똑바로 바라보았 다.
“왜 그렇게 보니?”
레이몬에게서 풍기는 진지한 분 위기를 읽은 빌헬미나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 그녀를 마주하며.
레이몬은 천천히 말했다.
“선배. 전에도 말씀드렸었죠.”
“……너.”
“제가 선배를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상남자다운 돌직구.
그의 강렬한 고백에 빌헬미나는 순간 굳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에 불과했다.
그녀는 온화하게 웃었다.
“고맙구나.”
“그럼……“하지만 난 지금도 행복하단다.
네가 고생할 필요는 없어.”
그 답을 받은 레이몬은 살짝 눈 을 감았다.
예상했었기에 더욱 아픈 답변이 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