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권 2화
177. 보고 싶었어요 선배 (2).
레이몬의 반응에 요한이 의아해 했을 때.
요한을 보고 반가워하던 빌헬미 나는 고개를 갸웃거린 후 탄성을 터트렸다.
“어머? 레이몬 아니니?”
그녀는 레이몬을 향해 상냥한 미 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멍하니 마주하던 레이 몬은 다급히 물었다.
“그,비,빌헬미나 선배. 분명 타 이론 영지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들 었습니다.”
“소식이 참 늦으시네.”
요한은 볼을 긁적거리며 레이몬 에게 설명해주었다.
“할머니를 제가 모셨습니다.”
“"•…왜 r“아니 왜라고 물으시면……“빌헬미나 선배를 이용하려는 것 은 아니겠지?”
“이용은 무슨. 밥 좀 해달라고 부탁드린 겁니다. 그렇지요? 할머니.”
“후후. 물론이다. 레이몬.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요한 덕분 에 그래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으 니까.”
“그렇,습니까?”
레이몬은 입을 다물었다.
그가 골똘히 생각하는 사이 요한 은 빌헬미나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할머니. 왜 여기 계신 겁니까?”
“요한. 네가 왕궁에 갇혔다는 이 야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 다.”
윌카스트 백작은 혹시나 싶어 빌 헬미나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다.
전에도 감옥에 갇혔다는 이야기 에 꽤나 걱정했던 그녀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아예 윌카스 트 백작과 함께 올라와 버렸다.
"내가 오죽했으면 이렇게 왔겠 니.”
살짝 나무라는 어조로 말하며 빌 헬미나는 눈가를 닦았다.
수도까지 오면서 무척이나 걱정 했었다.
하지만 요한은 다행히 멀쩡했다.
안심한 덕분에 긴장이 풀려 참고 있던 눈물이 새어나왔다.
“어찜 좋아. 더 마른 것 같네.”
“딱히 요한이 마른 것 같지는 않 은데……레이몬이 떨떠름히 말하자 빌헬 미나는 도끼눈을 떴다.
"모르는 소리 말렴! 이 마른 팔 을! 얼굴도 수척하고. 어휴…… 너 자꾸 이렇게 걱정시킬래?”
“죄송해요. 할머니.”
빌헬미나는 손을 들었다.
고목처럼 까끌까끌한 손이다.
그 손은 애정을 듬뿍 담아 요한 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 이 할미를 걱정시키지 말 렴.”
“하하.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 다.”
대답은 잘한다.
그녀는 요한을 향해 늘 짓는 편 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가 좋아하는 쿠키란다. 그리 고 클로버 티고. 휴경지에 클로버 를 기른 덕분에 차를 많이 만들 수 있게 되었어.”
잘 말린 클로버는 훌륭한 차가 된다.
요한은 떠나기 전 휴경지에 순무 와 클로버를 심으라 명령했다.
덕분에 바그너 영지에서는 때아 닌 클로버 티가 유행하고 있었다.
“소화에 좋은 차니까 많이 마시 렴. 아. 레이몬. 너도 많이 마시고.”
“아. 예……“그럼 요한. 뭐 먹고 싶은 것 없 니? 오늘 저녁에는 내가 해주마.”
“저야 할머니가 해주시는 거라면 뭐든 좋죠.”
수도에 머무르는 동안 아쉬운 것 이 하나 있었다.
바로 빌헬미나의 요리를 먹지 못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빌헬미나가 직접 찾아와 줬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나.
‘회귀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지.’
빌헬미나는 자신의 과자집에서 나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자의로 요한을 걱 정해서 나와줬다.
‘잘하면 할머니에게 수명연장의 비법을 쓸 수 있을지도 몰라.’
빌헬미나가 자신을 좋아해 주는 만큼이면 된다
그녀가 삶에 미련을 조금이라도 더 가지게 한다면?
그럼 그녀가 더 살아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요한은 빌헬미나를 향해 생긋 웃 었다.
“그럼 이야기들 나누렴. 레이몬. 만나서 반가웠다.”
“아…… 예…… 서,선배.”
“왜 그러니?”
“……행복하십니까?”
레이몬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 다.
아까 칼라츠를 말만으로 두려움 에 떨게 했던 사람답지 않은 목소 리였다.
"지금은…… 후후. 그래. 나쁘지 않구나.”
가족이 모두 살아 있을 때와 같 은 행복은 아니다.
그래도 요한이 있어 줘서.
그리고 바그너 영지의 사람들이 있어서.
빌헬미나는 전보다는 좀 더 행복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레이몬. 너도 오늘 저 녁 같이 먹는 게 어떻겠니?”
“꼭 먹고 가고 싶습니다.”
"후후. 그래. 그럼 내가 마고 후 작에게 말해놓을게.”
남들에게는 천하십강이고,상아 탑의 로드이다.
하지만 빌헬미나에게 레이몬은 그저 귀여운 후배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가 웃으며 나가자 레이몬은 요한을 꽉 잡았다.
“어떻게 한 거냐! 왜 빌헬미나 선배가 너를 돌보는 거지?”
“아까 말씀드렸잖습니까. 저 밥 먹이고,저를 손자처럼 취급하시겠 다고 하셔서.”
레이몬은 요한을 잡은 손에 힘을 넣었다.
그를 빤히 보던 요한은 손가락을 튕겼다.
“아! 레이몬. 혹시 그 첫사랑 이……“아,아니다.”
“아닙니까? 그럼 말고.”
둘 사이가 어땠는지는 큰 관심이 없었다.
요한은 고개를 끄덕인 후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아까 하던 얘기를 마저 하면……그가 말을 꺼내려고 할 때.
레이몬은 번쩍 손을 들어 막았 다.
그리고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사실 맞다.”
“예?”
“내 첫사랑…… 빌헬미나 선배가맞다.”
“아…… 그러시군요. 아무튼 그 개를 어떻게 없앴냐면……“처음 선배를 만났을 때가 떠오 르는구나.”
“레이몬? 저 지금 말하고 있는데 요?”
상아탑 마법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레이몬이 직접 말했던 것처럼 바 로 마법의 극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러니 요한이 톨라이도의 개를 되돌려보낸 것은 아주 중요했다.
어쩌면 마법의 극에 도달하는 길 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레이몬은 그것보다 다른 것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때 당시 빌헬미나 선배는…… 모두의 우상이었지. 선배가 마법사 도 아닌 자와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수많은 마법사들이 아쉬워했다.
"예…… 저기. 회상은 좀 나중에 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저도 좀 바 쁜데.”
"나 또한 빌헬미나 선배가 결혼 하게 된 것을 무척이나 아쉬워했었 지.”
“그러시군요. 참. 굉장히 안타까 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제 얘기. 안 들으실 겁니까?”
무미건조한 어조로 요한이 말하 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내 말부터 들어다오.”
“……예. 뭐. 하십쇼.”
저렇게 애절하게 말하는데 뭐라 고 하겠나.
요한은 손사래를 치며 아예 차를 홀짝이며 청자의 자세를 취했다.
“그래…… 참으로 안타까웠지. 하지만 그때 그녀의 미소는 무척이나 아름다웠어……과거를 추억하는 레이몬은 상아 탑의 로드도.
천하십강이라 불리는 강자도 아 니었다.
그저 옛 추억을 떠올리는 노인에 불과했다.
그리고,아직도 안타까운 짝사랑 을 하는 이에 불과했다.
"나는,그리고 우리는. 그녀가 행 복하기를 빌었다.”
“아…… 예.”
레이몬은 빌헬미나가 타준 차를 들었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차다.
그것을 만지며 레이몬은 힘없이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행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우리가 그녀 를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었지.”
빌헬미나의 남편이 병으로 죽고.
대기근 때 그녀의 자식과 손주들 이 죽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한 마법연구를 하던 빌헬미나는 절망하며 상아탑 을 떠났다.
그 과정에서 빌헬미나를 동경했 던 다른 마법사들이 할 수 있는 것 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쩌면.
어떤 마법사 중에서는 빌헬미나 가 가족을 잃기를 바랐던 자도 있 을 것이다.
빌헬미나가 상처 입으면,그녀를 돌봐 그녀를 얻고자.
일부러 숨긴 자들도 있었을지 몰 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가 떠나는 것. 괴로워 하는 것. 그것만을 지켜볼 뿐이었다.”
“아아…… 예. 정말 고생 많으셨 겠습니다.”
“그녀의 옆에 있어 주려고도 해 봤지만……결국 자신은 거부당했다.
아니,그뿐만 아니라 빌헬미나를 좋아하고 선망하던 많은 이들이 거 부당했었다.
“그런데 너를 돌보고 있다니……“어떻게 했는지 궁금하십니까?”
“그래.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이냐.”
많은 상아탑의 마법사들도 할 수 없는 위대한 마법이다.
빌헬미나가 다시 저렇게 웃을 수 있게 만든 것.
그 어떤 마법보다 위대하고,강 한 마법이었다.
"무슨 마법이냐고 하셔도 뭐 별 것 없습니다만. 그냥 제가 마른 것 을 보고 두고 보실 수 없으셨나 보 지요.”
요한의 대답에 그는 무겁게 고개 를 끄덕였다.
“나는 할 수 없었던 것을 해버렸 군.”
레이몬의 목소리에 회한이 담겼 다.
그를 바라보던 요한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저. 말씀 끝나셨으면 아까 하던 얘기 마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거 궁금하셨던 것 아닙니까?”
“그래. 뭐였냐.”
“케리만을 잡고 불의 흡혈귀의 석상을 얻었습니다. 그걸 이용해서 톨라이도의 개를 되돌린 것이지요.”
“그렇군.”
“……그게 답니까?”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다.
크게 놀라며 그 비법을 원하려 할 줄 알았다.
그것을 이용해서 레이몬에게 몇 가지 일을 시키려 했던 요한은 쓰 게 웃었다.
“레이몬. 제가 한 말에 관심은 가지고 있습니까?”
“그래. 관심은 있다. 불의 흡혈귀 라. 분명 위대한 오래된 자로 불리 던 자였지.”
“그것을 이용한 비법인데……“그 비법이 천 마리 검은 양을쌓는 방법에 나와 있나?”
“그건 아니고. 제가 디아볼로스 를 지옥으로 돌려보냈을 때 얻은 비법이죠.”
요한의 설명을 들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래서 말인데. 레이몬. 이 비법 가르쳐드릴 테니까…… 제 부탁을 들어줄 수 있습니까?”
본격적으로 요한이 거래를 제시 하려 하자 레이몬은 고개를 끄덕였 다.
“나도 너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뭡니까? 거래하기에는 딱 좋겠 군요.”
‘상아탑에도 오래된 자의 석상이 있지. 그걸 뜯어내야겠다.’
비법 몇 가지 정도?
알려줘도 문제는 없다.
오래된 자의 석상을 구해서 봉인 할 수 있다면 나쁜 거래는 아니다.
요한이 웃으며 말하자 레이몬은 그의 손을 잡았다.
"빌헬미나와 자리를 마련해다오.”
“……예?”
“난 그녀와 해야 할 일이 있다.”
레이몬의 진지한 표정에 요한은 어이없어했다.
“비법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그저 연정에만 매달리는 겁니까?”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 네가 불 쌍하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 마 법의 극의를 위해서라도 난 빌헬미 나와 만나야 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저 연정 때문이 아니라는 건 가?
요한은 레이몬을 빤히 바라보았 다.
“레이몬. 빌헬미나가 예전에는 상아탑의 로드였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요한의 할머니이고,밥해 주시는 분이다.
그런 사람이 상처 입게 둘 수는 없었다.
“상아탑이 빌헬미나의 행복을 앗 아간 것. 저 압니다.”
상아탑은 대기근을 막는 데 집중 하느라 그녀의 가족이 죽는 것을 방치했다.
비록 그것이 실수라고 하더라도, 그녀의 가족이 죽은 것은 사실이었 다.
그리고 그것은 레이몬도 익히 아 는 사실이었다.
“그녀에게 상처를 줄 생각은 없 어.”
"그렇다면 한번 할머니에게 여쭤 보겠습니다.”
“후…… 고맙다.”
“별말씀을. 물론 공짜는 아닙니 다.”
상아탑의 신뢰를 얻는 과정을 최 대한 생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레이몬과 손을 잡는 것이 나았다.
“그나저나 비법은……?”
"그것도 받아놔야겠지. 이거 너 에게 지불할 대가가 보통이 아니겠 군.”
요한이 자리를 마련해준다는 것 을 허락했기 때문일까?
레이몬의 표정은 아까보다 훨씬 좋아져 있었다.
“요한!”
"이야기 들었다! 암왕께서 오셨 다고!?”
문이 열리고 마고 후작과 윌카스트 백작이 들어왔다.
그들을 본 레이몬은 부드럽게 웃 었다.
“마고 후작과 월카스트 백작을 뵙겠소. 암왕 레이몬이 인사드리겠 소.”
그의 정중한 인사에 마고 후작과 윌카스트 백작은 고개를 갸웃거렸 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