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권 22화
172. 내기할까? (1).
“자네가 왜 여기 나와 있나?”
기사 정복뿐만 아니라 갑옷까지 차려입고 있었다.
한껏 예를 갖추고 있는 그녀를 보던 나마스는 손가락을 튕겼다.
‘아. 혹시?’
자신을 구해 준 남자가 궁성에 갇혔다.
그를 위로하고,또 구하기 위해 온 것이라고 봐야 할까?
로디악 기사단이 시위대에 참가 한 것도 에밀리의 명령이라 들었다.
‘허. 어찌 보면 어울리고,또 어 찌 보면 안 어울리네.’
나마스는 어색하게 웃으며 에밀 리에게 다가가 작은 어조로 말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하긴 뭐하지만 남자를 꼬시려면 검보다는 꽃이 더 좋아.”
“예? 그게 무슨……“난 딱히 막을 생각이 없어.”
에밀리의 결혼 문제에 대해서는 귀족들뿐만 아니라 왕가에서도 꽤 나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요한은 어떤가.
‘나쁘지는 않지.’
지방 귀족이라는 것이 조금 거슬 리기는 했다.
하지만 요한은 바그너 백작가의 후계자가 아니다.
그러니 자신의 영지가 없었다.
후계권을 가지지 못한 귀족들이 중앙 귀족이 되는 경우는 드물긴 하지만 볼 수 있었다.
‘거기에 요한은……현재 왕가와 사이가 좋지 않은 로만 후작과 적대하는 중이다.
현재 게이돈 영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곳의 영지민들은 왕가에 대한 불신이 상당하다고 했다.
몇몇 과격한 곳에서는 로만 후작 을 왕으로 추대하는 것이 낫지 않 냐는 이야기도 있었다.
너무 강력한 귀족이다보니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그것들을 생각하면 로만 후작이 한차례 기가 꺾여야 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요한은 로만 후작을 치기에 훌륭한 칼이었다.
‘에밀리와 사이가 좋다면 나뿔 것이 없지.’
흐뭇하게 둘을 바라보던 나마스 는 자신을 빤히 응시하는 에밀리에 게 웃으며 말했다.
“휴가 중인데 미안하군. 요한을 감옥에 돌려 보내주겠나? 나는 좀 할 일이 있어서 말이지.”
여유롭게 말한 그는 에밀리의 대 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그가 멀어지자 요한은 의아해했 다.
“뭐야?”
“하아…… 별거 아닌 오해다. 자. 가지.”
딱히 탈옥할 생각은 없다.
그러니 에밀리가 굳이 데려다주 지 않아도 된다.
요한이 감옥을 향해 걷자 에밀리 는 그의 뒤를 따랐다.
“할 말 있으면 지금 해. 나 훈련 해야 하니까.”
기사단에 돌아오자마자 온갖 자 료를 찾아보고.
또 조언도 받았다.
그 결과 자신이 본 것이 롤라이 도의 개가 맞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궁금했다.
“그 개가 톨라이도의 개…… 맞 나?”
“맞아.”
딱히 숨길 생각도 없는 요한은 순순히 긍정했다.
그가 걷는 것을 따르던 에밀리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그럼 어떻게 한 거지?”
“뭘 어떻게 해?”
"어떻게 그 개를 없앤 거냐.”
“없앤 거 아니야. 돌려보냈을 뿐 이지.”
“그거나 그거나.”
퉁명스레 대꾸했지만 에밀리의 손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개의 앞에서도 여 유로웠던 요한이다.
그런 요한인데 만약 그가 미쳐서 날뛰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톨라이도의 개보다 더 큰 재앙을 맞이할지도 몰랐다.
왕궁을 수호하는 로디악 기사단 으로서.
그것은 결코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너 지금 나를 경계하고 있는 거 냐?”
발걸음을 멈춘 요한은 슬쩍 고개 를 돌렸다.
날카로운 눈을 마주하던 에밀리 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네가 왕국을 공격하려는 위험한 존재라면……목숨을 걸고서라도 막겠다.
그렇기에 에밀리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온 것이었다.
“그러니 말해다오. 너는 로드만 왕국의 적인가?”
“아닌데.”
딱히 로드만 왕국을 적대할 생각 은 없었다.
요한이 치고자 하는 것은 마왕.
그리고 자신에게 거슬리는 자들로드만 왕국이 발목을 잡는 것도 아닌데 뭐하러 치겠나.
요한의 심드렁하기 그지없는 대 답에 에밀리는 그나마 안도했다.
“그리고 내가 적대한다고 해서막을 수나 있겠어?”
이어진 말은 에밀리의 심장을 두 근거리게 만들었다.
차라리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자신이 반한 것이라면 좋을 것을.
이 두근거림의 정체는 바로 공포 였다.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
사람의 껍데기를 쓰고 있는 괴물 에 대한 두려움.
그것이 에밀리를 두려워하게 만 들고 있었다.
"날 방해하지 않는다면 로드만 왕국을 건드릴 생각은 없어.”
감옥의 앞에 선 요한은 문을 열 고 내려가려다가 발을 멈췄다.
"아. 그리고 시위대에 로디악 기 사단을 보낸 건 너지?”
끄덕.
에밀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요한 은 씩 웃었다.
“이왕 고생한 거 하나만 좀 더 해줘. 지금 성철쇄 기사단이 사베 트의 자료들을 가지고 있을 거다.”
가장 중요한 연구일지는 요한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자료들은 성철쇄 기 사단에서 보유하고 있다.
그것을 들었던 에밀리는 걱정하 며 물었다.
“거기에 위험한 물건이 있나?”
“가장 위험한 건 깨졌고,가장 거슬리는 건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괜찮아.”
"그럼?”
"거기에 상아탑 놈들이 절대 손 못 대도록 해.”
지금 그 자료를 노리는 이들은 많았다.
치안통제국뿐만이 아니다.
상아탑,연금술사 길드.
그리고 모험가 길드까지.
그 외에 시간과 차원에 관해 관 심이 있는 귀족들도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그것을 막으려면 모든 자료를 로 디악 기사단으로 옮겨야 했다.
“쉽지 않아. 성철쇄 기사단이 쥔 것들 그냥 내어주겠나?”
“그래도 내가 네 목숨 살려줬으 니까 어떻게 좀 해봐.”
말을 마친 요한은 그대로 감옥으 로 내려갔다.
복도에 우두커니 선 채 에밀리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괴물의 부탁이라면…… 해야지.”
그 괴물이 미쳐 날될 수도 있으 니 말이다.
* ♦ ♦이미 판결이 정해진 것이나 다름 없는 재판일이 찾아왔다.
요한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자신 을 데리러 온 에밀리에게 물었다.
“어떻게 됐나?”
“일단 로디악 기사단으로 옮겨놓 긴 했어.”
“어떻게?”
"그,그건.”
에밀리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대답을 회피하는 그녀를 보던 요 한은 어깨를 으쏙였다.
“뭐 어떻게 했는지는 중요한 게아니지.”
중요한 것은 이것으로 상아탑을 한 번 더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 다.
앞서는 에밀리의 뒤로 기다리고 있던 셀렌과 파이고가 붙었다.
그들은 훈훈한 시선으로 요한을 바라보았다.
“……뭐야? 그 시선은?”
이들에게 훈훈한 시선을 받을 이 유는 없었다.
의아해하는 요한에게 파이고는 웃으며 설명해주었다.
“에밀리 부단장이 필사적으로 사 베트의 자료를 달라고 하셨지요.”
"오. 그렇군. 그런데?”
“나마스 왕자님께서 그건 함부로 내어줄 수 없다고 했는데,그때 에 밀리 부단장이 이렇게 말했다더군 요.”
요한은 에밀리를 빤히 바라보았 다.
그녀의 뒷목은 붉게 물들어 있었 다.
“에밀리 부단장이 자기는 요한 공자님과 특별한 사이라고. 그 자 료를 보관할 권리는 로디악 기사단에 있다고.”
“잠깐. 뭐?”
“어떻게든 하라면서. 그리고 를 린 말도 아니잖아.”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요한이 한 그 무시무시한 일면을 보고,그가 괴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따지면 특별한 사이이기 는 했다.
‘남들이 생각하는 그런 특별한 사이가 많아서 그렇지.’
요한은 에밀리를 보다가 뒤통수 를 긁적거렸다.
어떻게든 하라고 한 것은 자신이 었다.
그것으로 괜한 오해가 생긴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오해는 풀면 되는 것 아 닌가.
"나랑 에밀리의 사이는 너희가 생각하는 핑크빛 사이 아니다.”
“에밀리 부단장이 좀 딱딱하긴 하지만 그래도 은근히 귀엽습니다.”
“재산도 많아서 지참금도 많을 겁니다. 이야. 로드만 왕국에 마스 터 부부가 생긴다면……그들이 한마디씩 하자 요한은 인 상을 찌푸렸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오해다. 멀쩡한 처녀 혼삿길 막는 짓은 하 지 마라.”
요한은 딱 잘라 부정했다.
요한도,그리고 에밀리도.
서로에 대해 연애감정은 조금도 없었다.
“너도 말해봐.”
“요한 공자의 말대로다. 그에게 연심 따위는 없어.”
연심은커녕 공포심밖에 없다.
에밀리도 딱딱한 어조로 말하자 셀렌과 파이고는 의아해했다.
“그럼 무슨 특별한 사이입니까?”
“그건……설명을 하려는 때 복도 끝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요원 정복을 입은 자들이다.
그들을 본 요한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치안통제국 놈들입니다.”
치안통제국 국장과 다른 부국장.
그리고 일급 요원들 열 명이었 다.
그들은 요한을 발견하고 곧 사나 운 표정을 지었다.
그중 선두에 있던 잘생긴 중년인 은 요한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신수가 훤하군.”
“누구시 더 라?”
“치안통제국 국장 파보 델리안 백작이다.”
"아. 그래?”
“내 얼굴도 모르다니.”
“그거 알아야 하나?”
요한이 웃으며 빈정거리자 파보 국장은 살짝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네놈이 언제까지 그리 오만하게 굴 수 있는지 기대가 되는구나.”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기대 까지 하나?”
씩 웃은 요한은 문을 열었다.
이미 안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요한이 자리에 착석하자 그의 뒤 로 예만 원장,하이마스 주교.
그리고 마고 후작과 윌카스트 백 작이 앉았다.
“넌 이 녀석아! 또 사고를 쳤냐!?”
“에이. 이 정도는 사고도 아니 죠.”
요한의 뒤로 온 윌카스트 백작 은 힘없이 타박했다.
연락을 받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다.
그런데 그 걱정이 무색하게 요 한이 너무 평안해 보이니 맥이 풀 렸다.
“이야기는 들었다. 판결은 거의 결정 난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예. 나마스 왕자님이 말씀해주 셨습니다.”
마고 후작은 조금 불편해 보였 다.
만약 헤르듀크가 있었다면 이번 일은 그가 맡았을 것이다.
하필이면 아카데미의 집중훈련 에 가 있는 사이에 이런 일이 벌 어지다니.
“나마스 왕자님과 뭔가 깊은 사 이가 된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아. 이제 시작하려 나보는군요.”
문이 열리며 국왕이 들어왔다.
빌헬름의 호위를 받으며 들어온 그가 자리에 앉자 예만 원장은 자 리에서 일어났다.
“지금부터 요한 바그너에 대한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중앙 귀족들.
그리고 지방 귀족들.
서로 반대되는 입장의 귀족들이 착석했다.
그리고 바로 재판이 시작되었 다.
예정된 대로 귀족원에서는 요한 을 지지.
그리고 로디악 기사단 역시 요 한이 잘못되지 않았다 주장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앙 귀족 과 치안통제국은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럼 요한은 무죄로……그때 였다.
재판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파 보 국장이 손을 들었다.
"요한의 정당방위는 인정하나. 그가 치안통제국에 큰 피해를 입 힌 것은 사실입니다.”
그의 말은 사전에 없던 말이다.
예만 원장과 나마스의 표정이 일그러졌을 때.
파보 국장은 국왕을 향해 천천 히 말했다.
“치안통제국은 그의 무죄에 동 의할 수 없습니다.”
파보의 말에 요한은 피식 웃었 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네놈 때문에 치안통제국의 업 무가 상당 부분 마비되었다. 그러 니.”
그는 요한을 빤히 응시하며 말 했다.
“아리오스 부국장이 맡았던 일 중 하나. 위조 금화 사건을 네가 처리해라.”
재판장이 술렁였다.
위조 금화 사건 역시 아직도 해 결되지 못한 큰 사건이다.
지금까지 손도 못 대던 실종사 건을 해결한 요한이다.
그 실적은 그라면 가능하지 않 을까 라는 기대감을 만들었다.
재판장에 모인 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요한은 어깨를 으쏙였다.
“좋아.”
하지만 그냥은 받지 않는다.
그는 파보 국장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그런데 내가 그거 해결하면 치 안통제국. 해체해라.”
그의 말에 재판장의 술렁임이 더욱 커졌다.
당황한 파보 국장을 보며 요한 은 씩 웃었다.
‘내 손으로 해체해주지. 위조 금 화 사건. 회귀 전에 로만 후작이 해결한 사건이니까.’
당연히.
로만 후작을 잡고 그가 가지고 있던 자료를 전부 확인했었던 요 한은.
이 일의 범인도,그리고 어디에 서 이뤄지는지도 전부 알고 있었 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