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권 12화
162. 대타 (3).
그가 한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음 실종자를 예측한다는 것.
요한이 이미 실종의 원인에 대해 서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는 이 야기 였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묻기 전에 자기소개부터 하는 게 어때? 그리고 손님 대접도 제대 로 하고.”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라운 이야 기를 꺼내서 잊고 있었다.
로디악 기사단원들은 다급히 움 직였다.
"헬만! 가서 차 끓여와!! 오스칼! 디저트 사와! 다과! 요한 공자님. 혹시 치즈 케이크 좋아하십니까?”
“좋지.”
“치즈 케이크랑 타르트 사와! 잔 뜩 사와!”
요한이 잘 먹는다는 이야기는 로 디악 기사단원들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요한에게 말을 걸었던 중년 기사는 금화 주머니까지 던져 주었다.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고 잠시 후.
요한은 만족스러운 접대를 받을 수 있었다.
“음. 차가 좋네.”
“감사합니다.”
“타르트도 맛있고.”
“요새 수도에서 제일 인기인 타 르트입니다.”
제대로 된 파티시에가 만든 덕분 인지 체리 타르트는 무척이나 새콤 달콤했다.
요한이 치즈케이크도 한입 베어 물자 중년 기사는 머뭇거렸다.
“똥 마려운 강아지도 아니고 뭘 끙끙거려. 그런데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파이고 마스입니다. 로디악 기 사단 삼번대 대장입니다.”
“그래. 파이고. 본론만 말할게. 실종사건…… 아니지. 정확히 말하 면 납치사건. 다음 피해자는 아마 예만 원장이 될 거야.”
“납치라 하셨습니까.”
“그럼 뭐겠어? 갑자기 집 나간것이라고 생각한 거야?”
다들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 다.
하지만 증거가 없었다.
납치가 되었다면 반항한 흔적이 라도 있어야 할 것이다.
“에밀리 부단장이 실종되기 직전 까지 저희가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
요한이 무덤덤하게 대답하자 파 이고는 한 여기사를 불렀다.
이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금발의 여기사는 요한에게 살짝 고개를 숙 였다.
“로디악 기사단 이번대 대장 셀 렌 마크스 준남작입니다.”
“그래. 에밀리와 함께 있었다 고?”
“그렇습니다. 파이고 대장,그리 고 에밀리 부단장. 저. 이렇게 셋이 실종사건과 더불어 위조 금화 사건 을 수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라졌다?”
“예.”
그렇기에 이들도 납치라고 생각 할 수 없었다.
“수도 북서쪽 창고 구역을 순찰 하고 있었습니다. 그쪽에서 위조 금화에 대한 흔적을 발견했거든요.”
“그래서?”
“저와 파이고 대장이 잠시 한눈 을 판 사이 에밀리 부단장이 한 창 고로 들어갔습니다.”
눈을 땐 것은 십 초도 되지 않는 다.
뒤따른 셸렌과 파이고가 창고로 들어갔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
“창고는 텅 빈 창고였습니다. 물 론 창문도 하나 있기는 했지만 사 람이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 었고.”
말 그대로 하늘로 꺼져버린 것이 다.
그녀의 증언에 뒤이어 파이고도 설명했다.
“다른 실종자들도 똑같았습니다. 잠시 눈을 돌린 사이에 순식간에 사라졌다고 합니다.”
“장소도 다양합니다. 스물세 번 째 실종자인 솔가스 조거라는 빵집 주인은 빵을 굽다가 사라졌다고 합 니다.”
“소미타 가소라는 여인은 화장실 에 갔다가 사라졌다고 하고……범인은커녕 증거조차도 남지 않 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남은 것이 없나? 뭔가 있었을 텐데.”
요한이 묻자 셸렌과 파이고는 서 로를 보았다.
그리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자님 말씀대로……“이런 것이 남았습니다.”
파이고가 고개를 끄덕이자 로디 악 기사단원 하나가 작은 상자를 가지고 왔다.
그 상자 안에는 하얀 가루가 있 었다.
“처음에는 마약인 줄 알았습니 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니더군요. 상아탑에 의뢰해보니 특별한 방식 으로 만들어진 석필이라고 했습니 다.”
석필은 마법진을 그리는 데 쓰이 는 도구다.
마법의 종류에 따라 다른 석필을 쓰는데.
중요한 것은 이런 종류의 석필은 상아탑에서도 쓰지 않는다는 것이 었다.
“다른 실종자들이 있던 자리에도 가루가 남았습니다. 아주 적은 양 이기는 하지만……상자 안에 있는 고운 가루를 만 져본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에 이것을 실종사건으로 규정했습니다. 마법이라고 보기에 는…… 상아탑에서조차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누가 남의 집 화장실에 마법을 걸겠나.
그리고 마법 중에는 이런 식으로 갑자기 사라지게 하는 마법도 없다.
“그런데 납치라니…… 확실한 겁 니까?”
“일단은.”
“증거가 있습니까?”
파이고는 간절해 보였다.
그의 떨리는 표정을 마주하던 요 한은 어깨를 으쏙였다.
“증거는 없어. 그냥 이런 비슷한 일을 책으로 봤을 뿐이니까.”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던 겁니 까?”
“음. 황금시대에 몇 번 있었다고 하더라고. 아무튼 예만 원장께는 내가 직접 말씀드렸으니까 항시 붙 어 있도록 해.”
현재 로디악 기사단에서 가용한 병력은 팔십 명 정도다.
그들 전부를 예만 원장에게 붙여 두는 것은 인력 낭비다.
“그래도 저희가 공자님의 힘이 될 수도 있습니다.”
“됐어.”
말을 마친 요한은 차를 마시며 케이크를 꾸역꾸역 먹었다.
테이블에 가득 채워져 있던 타르 트와 케이크를 전부 다 먹고.
차도 몇 잔이나 마신 요한은 자 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명령대로 하도록.”
로디악 기사단이 할 일은 이것이 면 된다.
말을 마친 요한이 그대로 나가버 리자 셀렌과 파이고는 서로를 보았 다.
“잠깐!”
“요한 공자! 기다려주십시오!”
허겁지겁 요한을 따라 나간 둘은 간신히 그를 잡았다.
의아해하는 요한에게 파이고는 다급히 물었다.
“그럼 한가지만이라도 가르쳐주 십 시오.”
“뭘?”
“범인은 사람들을 어떻게 납치한 겁니까?”
범행동기는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방법은 도무지 알 수 없 었다.
궁금해하는 둘을 향해 요한은 피 식 웃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가버릴 뿐이었다.
* * *로디악 기사단에서 나온 요한은 곧장 에밀리가 사라졌다는 창고로 향했다.
만약을 위해서인지 경비병들이 그 창고를 지키고 있었다.
"확인 좀 해보려고 하는데. 괜찮 으려나?”
요한이 수호기사의 검을 들어 올 리며 묻자 경비병들은 길을 열어주 었다.
넓은 창고 안으로 들어간 요한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파이고와 셀렌의 말처럼 창고는 텅 비어 있었다.
숨을 곳도 없고,숨길 곳도 없다.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것도 아니 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정말 말 그대로 땅으로 꺼지고,하늘로 솟 았다고 생각할 정도다.
하지만 요한은 알 수 있었다.
‘확실하네.’
아까 로디악 기사단에서 봤던 가 루.
회귀 전에 요한도 봤던 가루였 다.
물론 이 창고라든가,실종자들이 있던 곳은 아니었다.
요한이 그 가루를 발견했던 곳은 바로 게로드 영지.
로만 후작의 영역 내였다.
그곳에 있던 자료들과 마도구들, 연구일지.
그리고 이 가루들.
마지막으로 이 창고에 남아 있는 흔적들.
이것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차원 마법이 실패했나.”
‘어쩐지. 그때 보고자료에도 범인 이나 범행 방법에 대해 적혀 있지 않더니.’
회귀 전에 이 일을 해결했던 것 은 펠론 백작이다.
원래라면 이런 일이 발생하고 나 면 제대로 된 보고를 해야 했다.
하지만 펠론 백작은 범인만 잡아 냈을 뿐 그 과정이나 결과에 대해 서는 밝히지 않았다.
이 일을 벌인 범인은 차원에 관 한 연구를 한 마법사다.
그를 잡고,그의 연구결과를 펠 론 백작은 모두 로만 후작에게 보 냈던 것이다.
그러니 상세한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것도 당연했다.
“일단 확인부터 해볼까.”
아공간 주머니에서 요한은 상자 를 꺼냈다.
불의 흡혈귀의 석상을 내려놓은 요한은 손가락을 살짝 깨물었다.
그의 피가 한 방울 불의 흡혈귀 의 석상에 떨어졌다.
그 순간 불꽃을 닮은 석상에서 불빛이 퍼져나갔다.
그 빛이 만들어낸 것은 과거의 모습이 었다.
창고에 들어왔던 에밀리.
그리고 그 에밀리가 발을 내디딘 순간 복잡한 문양의 마법진이 발동 되었다.
‘이건……회귀 전 로만 후작이 가지고 있 던 자료 중에 저런 마법진이 있었 다.
그리고,그 마법진을 연구한 상 아탑은 마법진이 차원에 관한 마법 이라고 했었다.
불완전하지만 차원의 틈에 접근 할 수 있는 마법.
금기와 관련된 것이었다.
“아. 진짜. 하지 말라면 하지 말 것이지. 마법사라는 족속들은 진 짜……마법진에서 치솟은 빛의 촉수가 에밀리의 몸을 감쌌고.
그 순간 에밀리의 몸이 사라졌 다.
그것을 끝으로 환영이 천천히 모 습을 감췄다.
피 한 방울의 대가로는 이것밖에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더 많은 것을 원한다면 피를 바 치라는 불의 흡혈귀를 향해 요한은 씩 웃었다.
“이 정도면 됐어.”
요한은 불의 흡혈귀의 석상을 다 시 봉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문이 열렸다.
“여기서 뭘 하는 거지!?”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정복을 입은 남자였다.
꽤나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는 자다.
“뉘신지?”
“로드만 왕국 치안통제국 부국장 아리오스 펠도로 백작이다.”
“아. 그렇구만.”
요한은 살짝 묵례하고 수호기사 의 검을 들었다.
“폐하께 이번 실종사건을 위임받 은 요한 바그너다.”
요한의 얼굴도,그리고 이름도 알고 있는 아리오스는 인상을 찌푸 렸다.
“지방 귀족이 뭐하러 이런 일에 가담한 것이지?”
“그래도 귀족이 당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나.”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일 일 텐데.”
그의 뒤에는 꽤 많은 요원들이 있었다.
적대적인 분위기의 그들을 마주 하던 요한은 피식 웃었다.
“뭐야. 너희 유세하냐? 뭘 그리 몰려다녀? 누가 보면 동네 양아친 줄 알겠다.”
요한의 빈정거림에 요원들은 발 끈했다.
그들이 죽일 듯 노려보기 시작하 자 아리오스는 가볍게 말했다.
“지방 귀족은 빠져 있어. 이건 치안통제국의 일이다.”
“별것 아닌 감투 하나 썼다고 잘 난 척은.”
가소롭다는 듯 그를 비웃은 요한 은 어깨를 으쓱이고 걸어갔다.
어차피 이곳에서 볼 것은 다 봤 다.
그가 지나치려고 할 때 아리오스는 요한의 어깨를 잡았다.
“사건 현장에 마음대로 들어와 놓고. 그냥 나간다고?”
“뭘 마음대로 들어와. 이번 일 내가 맡기로 했다니까.”
“수도에서 벌어진 문제는 우리 치안통제국의 일이다."
“그건 폐하께 가서 따지든가. 그 리고 이 손 안 놔?”
요한은 수호기사의 검을 반쯤 뽑 았다.
여차하면 베어버릴 기세를 그가 보이자 움찔한 아리오스는 얼른 손 을 떼었다.
“함부로 까불지 마라. 네놈을 노 리는 자들은 많으니까.”
“너나 까불지 마라. 그 목 언제 따일지 모르니까.”
빈정거린 요한은 이를 가는 요원 들을 비웃으며 성큼성큼 걸어가 버 렸다.
멀어지는 그를 보며 아리오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건방진 애송이 같으니라고.”
* * *바깥으로 나온 요한은 모험자 길 드 쪽을 향해 걸었다.
솔라와 마세츠가 일을 잘했나 확 인하기 위해 그쪽으로 가려고 할 때.
요한을 향해 건장한 남자가 다가 왔다.
“아이고!! 공자님!”
“어? 여기서 또 만나네.”
요미 안이었다.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요한의 앞 에서 손바닥을 비볐다.
“들었습니다. 요정의 숲에 다녀 오셨다고. 하하. 축하드립니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뭐 그렇지. 그런데 너는? 의뢰 수행한다더니 잘했냐?”
“암요. 잘했지요. 다 공자님 덕분 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 이거지? 잘됐 네. 너 내 일 좀 도와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싱글벙글 웃으며 요미안은 요한 의 뒤를 따르며 말했다.
“안 그래도 공자님을 찾고 있었 는데 말입니다.”
“날 왜 찾아? 요정의 가루 필요 하냐?”
심드렁해 하는 요한을 향해 요미 안은 조심스레 말했다.
“이번에 요정의 가루 납품 의뢰 를 했는데 말입니다. 조금 이상한 일이 있어서. 공자님께 상의 드리 고 싶었습니다.”
“이상한 일?”
“예. 저기……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진 지하게 말했다.
“저에게 의뢰를 한 건 마법사인 데. 수도 근처에 던전을 만들어 놓 고 있는 마법사 같습니다.”
요미안의 말에 요한은.
“……자세하게 말해봐.”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