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권 6화
156. 원하는 자들 (2).
순식간에 빵 하나를 먹어치운 요 한은 다시 빵을 들었다.
벌꿀과 설탕으로 만들어진 향긋 한 마멀레이드가 하얀 빵에 듬뿍 발렸다.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황금색 마 멀 레이드.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운 빵.
보기만 해도 군침이 삼켜진다.
입을 헤 벌린 채 요한을 보던 요정은 머뭇거리며 말했다.
“하,한 입만 주라.”
“나 먹을 것도 모자라는데.”
“내가 먹어봐야 얼마나 먹는다 고.”
입술을 삐죽거리며 투덜거린 소 녀가 다시 병을 만지작거 렸다.
요한의 눈치를 살피던 요정은 가 법게 날아올랐다.
그의 어깨에 앉은 요정은 생글생 글 웃으며 거래를 제안했다.
“내 날개 가루가 인간들에게는 꽤나 비싸게 팔린다면서?”
“그런 편이지.”
“가루 줄게. 그러니까 저 빵이랑 쟁 나눠줘.”
“ ■•方舌" ...... .w“어때?”
“그 가루를 얻기 위해 내가 널 잡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냐?”
“잡을 거면 이미 잡았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그렇군.”
요한은 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그것을 제단 옆에 내려놓자 요정 은 그 위에서 날개를 흔들었다.
나비의 날개가 팔랑거리며 반짝 이는 가루가 손수건 위에 떨어졌다.
한 줌도 되지 않는 가루를 만들 어낸 요정은 녹색의 예쁜 눈을 반 짝거 렸다.
“빵! 마멀레이드! 나 먹는다!”
약속대로 가루를 받았으니 요한 은 빵을 나눠주기로 했다.
옆에 놓아둔 빵을 자르고,그 위 에 황금색 마멀레이드를 듬뿍 발랐 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빵이 앞에 놓이자 요정은 기뻐했다.
“히히! 빵이다! 빵!”
기묘한 광경이었다.
인간과 요정은 잡고,도망쳐야 할 관계다.
그런데도 둘은 별다른 움직임 없 이 한 자리에서 빵만 먹었다.
그렇게 그들이 빵을 꾸역꾸역 먹 고 있을 때쯤.
마세츠와 솔라가 요한을 찾아왔 다.
“공자님!”
“알아 왔…… 헉.”
요한에게 보고하려던 둘은 기겁 했다.
요한의 옆에서 같이 빵을 먹는 요정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요,요정!?”
“공자님! 뭐 하십니까!? 잡아야 죠!”
“잡아서 뭐하게?”
“그야…… 돈 벌……“나 돈 많아.”
부욱 빵을 뜯어 씹어 먹었다.
달콤한 마멀레이드의 맛을 즐기 던 요한은 물통을 들었다.
“저기. 나도 물 좀 주라.”
“저기 아니다. 요한 바그너다.”
“나는 파헬벨! 요한! 나도 물 좀 주라!”
서로 만나고 빵을 다섯 개씩 먹 는 동안 하지 않았던 통성명을 이 제야 했다.
요한은 말없이 물컵에 물을 따라 주었고 파헬벨은 기뻐하며 꼴깍꼴 깍 마셨다.
그 사이 그녀의 날개에서 황금색 의 가루가 하늘거리며 떨어져 내렸 다.
그 광경을 본 솔라는 침을 꼴깍 삼켰다.
"요…… 요정을 잡으면!”
“잡으면?”
“상아탑과 좋은 관계를……“너희 내가 가지고 있는 마법서 가 뭔지 모르냐?”
천 마리 검은 염소를 쌓는 방법.
모든 마법사가 탐내는 황금시대 의 마법서다.
그것을 가진 요한이 상아탑과 무 슨 좋은 관계를 바라겠나.
“어…… 귀족에게 진상을……?”
요한이 진상을 받을 귀족이다.
그것도 로드만 왕국에 두 명 있 는 후작 중 하나의 후원을 받는 백 작가의 공자.
솔라가 작은 어조로 말했지만 요 한의 비웃음만 살 뿐이었다.
그 외에 몇 가지 이유를 더 댔지 만 요한은 칼같이 되받아쳐 버렸다.
"O OOOO 으"
—거 —*— -- r] •“거봐. 굳이 잡을 이유가 없잖 아?”
“하지만 안 잡을 이유도 없잖습 니까.”
마세츠의 말에 요한은 슬쩍 고개 를 돌렸다.
파헬벨은 그저 행복하게 빵을 먹 으며 물을 마시고 있었다.
“너흰 이렇게 행복에 겨워하는 요정을 잡고 싶냐?”
“어……“고작 돈 몇 푼 때문에 눈이 돌 아가서 타인의 행복을 짓밟고 싶 다?”
“그건 아닌데요……"나도 딱히 좋은 사람은 아니지 만 그렇게까지 해서 돈을 벌고 싶 어? 그러고 싶으면 잡아. 말리지는 않을 테니까.”
원래는 요정을 발견하면 잡기 위 해 달라붙기 마련이다.
그런데 요한에게 이렇게 들으니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을 향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찬 요한은 다음 빵에 마멀레이드를 발랐다.
“보고나 해봐. 보반 숲에 왜 이 렇게 많이들 왔냐?”
그의 질문에 둘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요정을 보고도 잡기는커녕 사이좋게 빵을 뜯어 먹는 것에 너무 놀 라서 잊어먹었다.
“아차. 공자님. 그겁니다. 그거.”
“그게 뭔데.”
“백왕 플로란스가 어제 보반 숲 에 왔답니다.”
“그게 뭐 어쨌다고.”
요정을 옆에 두고도 시큰둥.
백왕 플로란스의 이야기를 들어 도 심드렁.
솔라와 마세츠는 요한의 태도에 황당함을 넘어 경외심까지 느꼈다.
“저는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 요한 공자님은 놀라시기는 하십니 까?”
“나도 사람인데 놀랄 일 생기면 놀라지.”
“그런데 왜 놀라지 않으십니까?”
요정의 발견.
그리고 백왕의 출현.
둘 다 놀랄 일이었다.
그런데도 반응하지 않는 것이 이 상해 솔라가 묻자 요한은 무덤덤하 게 말했다.
“애초에 놀랄 일이 아니니까.”
"왜요?”
“백왕은 내가 불렀거든.”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둘은 의아해했고 요한은 다음 빵 을 잡았다.
어느새 쌓여있던 빵은 반으로 줄 어 있었다.
“타이론 영지에 들렀을 때 상아 탑 지부에 갔었잖아? 그때 불렀어. 뭐 그건 그렇다고 치고.”
파헬벨이 마멀레이드 병을 잡고 끙끙거 렸다.
커다란 병 안쪽에서 마멀레이드 를 퍼 그녀의 빵에 듬뿍 발라 준 요한은 나이프를 겨눴다.
당황한 둘은 혹시 뭔가 잘못한 것이 있나 싶었다.
하지만 이어서 나온 요한의 말에 겨우 그 나이프가 자신들을 겨누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백왕이 온 거랑 재들 온 거랑 무슨 상관인데?”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모험가들 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 질문에 마세츠는 쓴웃음을 지 었다.
“천하십강이잖습니까. 잘 보이면 뭔가 한 수 가르침을 받을 수도 있고……“그리고?”
“백왕이 이곳까지 온 것이 요정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어서 그렇습 니다. 요정의 가루나 요정이 필요 한 게 아닐까……“웃기는 소리네.”
"그렇긴 합니다만. 사람들은 원 래 웃기는 소리에 쉽게 반응하기 마련이죠.”
그들이 설명을 했을 때 다가오던 모험가들의 눈이 커졌다.
요한과 요한의 옆에 있는 요정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요정이다!!”
“뭐!? 요정!?”
탐욕에 눈이 먼 그들이 무기를 뽑고 달려들었다.
요정을 앞에 두고도 얌전히 있는 요한 일행을 비웃은 그들이 달려든 순간.
요한은 오러 블레이드를 뽑았다.
-좌아아아악!!!
달려들던 모험가들의 바로 앞에 선이 만들어졌다.
그 선을 만든 것이 오러 블레이 드라는 것을 알게 된 모험가들은 딱딱히 굳었다.
“마,마스터!?”
“마스터가 왜……?”
“밥 먹는데 방해 말고 꺼져.”
빵을 뜯어 먹으며 요한이 말하자 모험가들은 주춤거렸다.
그때 요정이라는 외침을 들은 모 험가들과 용병들이 하나둘씩 제단 쪽으로 달려들었다.
“요정이다……“마스터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전 부 덤비면……탐욕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용병,모험가.
그들은 돈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자들.
그렇기에 마스터를 앞에 두고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저 탐욕만을 드러낼 뿐.
“어떻게 합니까?”
마세츠와 솔라는 황급히 무기를 들었다.
여차하면 싸워야 하는 상황이었 다.
하지만 요한의 시선은 그들에게 닿아 있지 않았다.
그저 제단까지 이어지는 길의 끝 에 걸려 있었다.
"저기 뭐가 있길……-딸랑…….
외길의 끝에서 하얀 로브를 뒤집 어쓰고 한 자루 지팡이를 든 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지팡이 끝에는 은색의 작은 종이 달려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걸어을 때마다 종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지고 있었 다.
그것을 본 솔라와 마세츠는 침을꿀꺽 삼켰다.
■o려 ......w.
맑은 종소리와 함께 막대한 위압 감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 위압감의 주인인 하얀 로브가 움직일 때마다 모험가들과 용병들 은 두려움에 떨었다.
“서…… 설마.”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압도적인 존재감에 옴짝달싹 못 하고 있었다.
아니,단 한 명.
오직 요한만이 아무렇지 않게 빵 을 뜯어 먹을 뿐이었다.
천천히 걸어와 제단 앞에 선 백 의의 로브는 요한을 향해 차분히 입을 열었다.
“요한 바그너인가.”
“그래.”
그 이름을 들은 모험가들과 용병 들은 기겁했다.
설마 저 소년이 소문의 요한 바 그너일 줄이야.
하지만 요한의 입에서 나온 이름 은 그들을 더욱 놀라게 만들었다.
“오래간만이다. 백왕 플로란스.”
그의 인사에도 천하십강 백왕 플 로란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로브를 푹 눌러 쓴 탓에 보이는 것은 갸름한 턱과 입술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플로 란스를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가 언제 만난 적이 있었 나?”
"살다 보면 언젠가 한 번은 만났 겠지.”
느긋하게 말한 요한은 남은 빵을 모두 삼켰다.
그리고 벌컥벌컥 물을 들이마신 후 여유롭게 말했다.
"만날 예정이기도 할테고.”
침묵이 이어졌다.
바늘 하나가 떨어져도 소리가 들 릴 것 같은 진한 침묵이다.
그 침묵 속에서 플로란스는 가볍 게 지팡이를 내리찍었다.
-딸랑……!
맑은 종소리가 퍼져나간다.
그것을 들은 모험가들과 용병들 은 무기를 잡았다.
“배,백왕!”
“요정을 찾으러 오신 겁니까!?”
“저기 요정이 있습니다! 저,저희 가 잡으실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 다!”
요한이 무섭기는 했다.
하지만 백왕 플로란스는 천하십 강이다.
그가 함께한다면 요한을 잡아두 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플로란스에게 환심을 사려는 것 인지 그들은 무기를 치켜들었다.
그들의 열정적인 반응에 플로란 스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지팡이를 겨누며 말했다.
“이곳에서 멀어져라.”
“백왕!”
“저희는 당신을 도우려는 겁니 다!”
하지만 플로란스의 반응은 삭막 할 뿐이 었다.
플로란스에게서 뿜어지는 위압감 이 점점 강해져 가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전투가 벌어질 지도 모른다.
겁먹은 모험가와 용병들은 서로 를 힐끔거렸다.
저 요정은 갖고 싶다.
하지만 요한과 백왕을 상대로 싸 우고 싶지는 않았다.
“거기!!”
“섬광의 솔라 아니야!?”
“우리를 도와!! 요정이라고! 요 정!”
“마세츠! 너도 모험가라면 도와 라!!”
요한의 옆에 서 있는 솔라와 마 세츠를 발견한 이들이 외쳤다.
자신들을 끌어들이려는 그들을 향해 둘은 고개를 저었다.
“미쳤냐?”
“자살하고 싶으면 그냥 절벽에서 떨어져라.”
만약 여기에 요한과 플로란스가 없었다면 그들도 요정을 잡는 쪽에 가세했을 거다.
하지만 조금 전 요한은 요정을 잡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라고 말했 다.
거기에 모험가들이 요정을 잡는 것을 막기도 했고.
친하지도 않은 이들과 손을 잡기 위해 굳이 목숨을 걸 필요는 없었 다.
“이 배신자!”
“모험가의 수치 같으니라고!”
“수치는 너희들이지.”
“공자님. 저들과 싸우고 싶으시 다면 가세하겠습니다.”
수가 많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괴물 요한과 천하십강 플로란스 가 옆에 있다.
뭐가 두렵겠나.
그들이 의기양양하게 말하자 요 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오러 블레이드를 들어 올 렸다.
“마지막 경고다. 죽기 싫은 놈들은 꺼져.”
치솟은 오러 블레이드에서 불길 한 적빛이 더욱 강해졌다.
모험가들과 용병들의 낯빛은 점 차 푸르게 물들었다.
어찌해야 할까.
모험을 해야 할까?
싸워야 할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제기랄!!”
“마세츠! 솔라! 이 일은 잊지 않 겠다!”
차마 요한과 플로란스를 욕할 수 는 없었다.
그렇기에 모험가들과 용병들은 둘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들을 향해 마세츠와 솔라는 콧 방귀를 뀌었다.
“하이고 무서워라.”
“저렇게 짖는 놈들 중에 강한 놈 은 없지.”
하나둘씩 물러나던 모험가와 용 병들.
하지만 그중에서 단 한 명만이 남았다.
“아이고! 공자님!! 안녕하십니까! 저 기억하시죠!”
그는 다른 모험가들과 다르게 적 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최대한 살가움을 표시하고 있었다.
“어. 알지. 얼마 전에 보낸 자료 는 잘 받았다.”
큰 덩치의 모험가.
요미안은 요한이 자신을 알아주 자 비굴함과 반가움이 가득 담긴 미소를 지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