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권 3화
153. 이번에 못 하면 (2).
결국 엘도만 상회의 지점은 바그 너 영지에 차려지기로 했다.
영지민들을 위한 생활용품이 주 상품인 만큼 타고다 상회와 겹칠 것도 없었다.
거기에 요한과 기사단,그리고 경비병들을 위한 훈련 장비도 지급 되기로 계약되었다.
덕분에 요한은 기뻐했고 기사단 과 경비병들은 절망했다.
그렇게 바그너 영지에 엘도만 상 회가 설립되기로 하고 이 주일이 지났다.
요한은 마차 앞에 서 있는 헤이 로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에헤헤헤〜”
“결국 가는 길 같이 가는구나.”
엘도만 상회와는 그녀가 온 다음 날 계약되었다.
하지만 헤이로나는 여러 가지 핑 계를 대며 바그너 영지에 남았다.
물론 프란츠의 훈련이나 연습을 방해한 것은 아니었다.
그걸 방해했다간 요한에게 쫓겨 났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헤어지게 됐는데 언제 또 만나게 될까요?”
헤이로나가 예의상 말하자 요한 은 뚱한 표정으로 답했다.
“조만간 다시 만날 거다. 네 스 승과 보반 숲에서 만나기로 했거 드 ”
수도 근처에 있는 숲을 요한이 언급하자 헤이로나의 표정이 굳었 다.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머쏙해 하 며 말했다.
“그, 스승님을 만나시면.”
“네 소식을 꼭 전해주도록 하 마.”
“으엑……질린 표정으로 그녀는 작게 신음 했다.
시무룩해진 그녀가 마차에 타자 요한은 쭈뻣거리는 프란츠에게 눈 을 돌렸다.
“프란츠.”
“예.”
꽤나 많은 짐이 마차에 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짐 중에는 요한이 이 주 동안 꾸준히 적어 놓은 악보 뭉 치도 섞여 있었다.
“돌아가면 틈나는 대로 그 연주 들을 전부 익혀.”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악보를 류트 형태로 바꿔서 류트도 익혀두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요한이 준 악보를 공부하느라 검 은 잡지도 못했다.
과연 자신이 강해져 있을까?
프란츠는 그것이 걱정이었다.
그의 속내를 눈치랜 요한은 검을 잡았다.
“뽑아.”
“예.”
요한을 마주하며 프란츠는 검을 뽑았다.
그리고 잠시 후.
요한과 프란츠가 검을 부딪쳤다.
-채애애영!!!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높은음 이 퍼져나간다.
그리고 그 소리는 순식간에 높아 져 가기 시작했다.
-챙! 챙! 챙!
검과 검을 부딪칠수록 프란츠의 눈은 커져만 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움직임 이.
항상 막히던 검로가.
자연스레 이어져가고 있었다.
“흡!”
요한의 일격을 홀려낸 프란츠는 빙글 몸을 돌렸다.
원래라면 이 상태에서 강한 돌려 베기를 하지만.
그의 몸에 담겨 있는 리듬감은 돌려 베기가 아닌 내려 베기를 주 장하고 있었다.
그 요청대로 프란츠는 강하게 검 을 내려 베었다.
그 순간 그의 검에 아주 미약하 지만 은은한 백색의 오러가 실렸다.
단 한 순간이다.
하지만 그 쾌감.
오러를 유형화시켰다는 즐거움은 프란츠의 움직임을 더욱 격하게 만 들어가고 있었다.
‘좀 더……!’
기분이 좋다.
막혔던 부분이 뚫린 상쾌함이 좋 다.
하지만 그의 검로는 더 이상 이 어지지 않았다.
요한이 뒤로 물러나 검을 회수했 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면 됐겠지? 지금 네가 하는 방향은 옳아. 그대로만 계속 해.”
“아……“그럼 머지않아 익스퍼트에 오를 수 있을 거다.”
유저인 이들에게 있어서는 꿈의 경지.
그것도 이렇게 젊은 나이에 익스 퍼트가 될 수 있다는 말에 프란츠 는 감격했다.
말을 마친 요한은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그가 멀어지자 프란츠는 꾸벅 허 리를 숙였다.
잠시 후 그들을 태운 마차들이 떠나갔다.
그들이 가는 것을 배웅조차 하지 않은 요한은 휴경지로 향했다.
휴경지에는.
프란츠에게 있어서는 꿈의 경지 에 오른 이들이 있었다.
“여보~시요~ 여보~시요~ 이 내 말을~ 들어~ 보소~”
“어여~여어~ 여어루~ 상사디 여~”
노래까지 훙얼거려가며 그들은 열심히 밭을 갈았다.
뙤약볕이 내리쬐는데도 멈추지 않는 그들을 보며 요한은 황당해했 다.
“……재들 뭐하냐?”
“앗. 오셨습니까.”
그늘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이스 겔은 웃으며 공손히 요한을 반겼다.
그의 인사를 받은 요한은 다시 그들을 가리켰다.
이번에는 노래가 바뀌어 있었다.
“난나〜 나나나나〜 나나나〜”
“행복해요〜 행복해〜 추수해서 행복해요〜”
“재들 뭐하는 거냐니까?”
프란츠를 봐주고,개인 훈련을 하고.
거기에 치안관리 업무를 하느라 휴경지 쪽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뭔 꼴이란 말인가.
아예 농부로 전직을 한 듯 둘은 호흡을 딱딱 맞춰가며 밭을 갈고 있었다.
“농부가입니다.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 부르는 노래죠.”
“그래?”
‘천직인가?’
요한이 고개를 갸웃거렸을 때 근 처에서 농부들이 바구니를 들고 달 려왔다.
"아이고! 나리님들!! 새참 드시고 하십시오!”
“어! 그래!”
“잘 먹을게!”
얼굴에 흙까지 묻힌 둘은 새참이 라는 말에 후다닥 나갔다.
농부들이 가져온 술과 간단한 먹 을거리를 후다닥 먹은 그들은 바로 밭으로 들어가려 했다.
“좀 쉬었다가 하시지요!”
“아무리 오러를 쓰신다고 하시더 라도 피곤하시잖습니까.”
“에헤이시 무슨 소리야!?”
“빨리 끝내야지. 이제 여기만 하 면 끝인데.”
요정의 숲에 가고자 하는 열망은 두 익스퍼트에게 강한 동기를 부여 했다.
그렇기에 쉬는 시간도 버려두고 그들은 밭을 가는 것이었다.
‘이래놓고 안 데리고 간다고 말 하면 반응이 웃기겠군.’
어떻게 나올지 기대가 될 정도 다.
그들을 보며 요한이 피식 웃었을 때 이스겔이 입을 열었다.
“확실히 오러를 다룰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긴 하군요.”
“오러 유저 정도만 돼도 힘이 넘 쳐나니까.”
오러를 쓸 수 있으면 일반인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진다.
그러니 농사뿐만 아니라 다른 곳 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오러 유저씩이나 되는 사 람이 이런 일을 하겠나.
이스겔은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내년 농사 때는 기사단의 기사 님들께 요청을 해도 되겠습니까?”
“그런 소리 하다가 욕이나 먹지 마라. 각자에게는 각자에 맞는 임무가 있는 법.”
지금이야 상황이 됐으니 저들을 쓴 것뿐이다.
요한의 말에 이스겔은 아쉬워하 면서도 수긍했다.
그 사이 둘은 계속해서 구성지게 노동요를 불렀다.
그들을 지켜보던 요한은 흙을 만 져보았다.
제대로 간 덕분에 딱딱해야 할 흙이 부드럽게 갈라지고 있었다.
“오늘이면 다 끝나겠군.”
“예. 그럴 겁니다.”
“끝나면 저택으로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프란츠도 떠났으니 이제 유아랑 도 시간이 남는다.
그를 중심으로 휴경지에 클로버 와 순무를 심게 해야 한다.
느긋하게 걸어 약초밭에 도착한 요한은 드라이어드를 지켜보는 유 아랑에게 말했다.
“그렇게 봐도 바로 일어나지는 않을 거다.”
“예…… 그래도 좀 아쉽습니다.”
“뭐가?”
유아랑은 옆에 쌓아 둔 포대를 툭 쳤다.
포대 안에는 부엽토와 구아노로 만든 비료들이 있었다.
“그동안 잘 먹다가 요새는 안 먹 는 것 같아서……“받을 만큼 받았다는 거지.”
드라이어드의 각성을 위한 영양 분의 섭취는 끝났다.
이제부터는 그냥 꾸준히 적당량 을 보급해주면 된다.
요한은 드라이어드의 묘목을 바 라보다가 유아랑에게 물었다.
“비료 만드는 법은 알지?”
“간단한 정도라면 압니다.”
“퇴비도?”
“어느 정도는 압니다.”
그가 퇴비 만드는 법을 설명해주 자 요한은 몇 가지 부분을 지적했 다.
회귀 전에도 요한은 생산량 증대 를 위해서 퇴비를 몇 번이나 개량 했었다.
그러다 보니 유아랑보다 요한이 더 많은 부분을 알고 있었다.
“굉장한 방식이군요. 흠……"발효를 좀 제대로 하면 쓸만할 거야.”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건왜……?”
“난 좀 다녀올 곳이 있어. 그때 까지 휴경지에 순무와 클로버 좀 심어놔.”
“알겠습니다. 얼마나 걸리실 것 같으십니까?”
“글쎄……플로란스를 만나고 요정의 숲에 도 다녀와야 한다.
거기에 시간이 남으면 수도에 가 서 양유위를 만나 현재 정세도 알 아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요한의 기억에 의하면 이 시기에 수도에서 일이 하나 터질 예정이다.
그것의 수습도 요한이 해야 했 다.
그 기간을 생각하면 요정의 숲에 갔다가 바로 복귀하기는 힘들 것이 다.
“늦어도 추수 전에는 복귀할 거 야. 추기제 보고 을 수도 있으니 까.”
“그 전에 로만 후작이 공격하지않을까요?”
“내 생각에 로만 후작은 바로 움 직이지 못할 거야.”
요한의 계획대로만 진행된다면 공국과의 전쟁이 끝나도.
로만 후작은 로드만 왕가와 신경 전을 벌여야 한다.
바로 바그너 영지를 공격했다간 빈집털이를 당할 수 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로만 후작도 준비할 것이 많을 것이다.
“천왕이 대놓고 나서지만 않으면 된다.”
“대놓고 나서면 어떻게 됩니까?”
로만 후작은 영지에서 대기하고 천왕이 바그너 영지를 공격하면?
바그너 영지에서 준비하고 있는 대부분의 일이 틀어질지도 모른다.
유아랑이 걱정하자 요한은 고개 를 저었다.
“그럼 로만 후작도 죽는 거지.”
‘나도 광약을 움직일 거니까.’
짧게 말한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 났다.
“뒷일은 좀 부탁한다.”
“하하. 예. 맡겨주십시오.”
유아랑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 주고 요한은 바로 저택으로 복귀했 다.
저택 앞에 도착한 그는 헤나와 손을 꼭 잡고 있는 야스진을 발견 했다.
“어쭈. 직장에서 또 연애질이 냐?”
“어,어맛!”
무감정한 어조로 요한이 놀리자 헤나는 화들짝 놀랐다.
얼굴을 붉힌 그녀는 요한에게 인 사하고 황급히 도망갔다.
후다닥 도망가버리는 그녀를 향 해 야스진은 싱글거렸다.
"다녀오셨습니까.”
“그래. 다녀왔다. 요새 할 일 없 나 보다? 팔자 좋게 연애질이나 하 고.”
“저도 이럴 때가 있어야 하지 않 겠습니까. 하하.”
야스진은 씩 웃었다.
“아까 헤나의 손가락 못 보셨습 니까?”
“내가 개 손가락을 봐서 뭐하게? 줬냐?”
“예! 내년에 정식으로 프러포즈 할 생각입니다!”
야스진은 꽤나 기뻐하고 있었다.
그를 빤히 바라보던 요한은 뒤통 수를 긁적거렸다.
“내년이라……“왜 그러십니까?”
“아니. 내년쯤이면 로만 후작과 본격적으로 붙을 시기다만.”
아무리 시간을 끈다고 하더라도 기껏해야 일 년 정도가 다다.
내년 봄이나 초여름쯤이면 로만 후작도 왕가의 견제를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공국과 싸우며 생긴 여파 도 정리할 것이고.
그럼 그때부터 로만 후작과 싸워 야 했다.
“헉. 저,정말이십니까?”
“그래. 뭐 결혼하고 싶으면 그냥 영지전 끝나고 결혼해.”
요한의 말을 들은 야스진은 심각 하게 고민했다.
그를 향해 요한은 씩 웃었다.
“왜. 다 때려치우고 헤나랑 도망 치게? 그것도 나쁘지 않지.”
“설마요.”
이미 여기까지 와버린 이상 더는 물러날 수도 없었다.
만약 바그너 백작가가 패배하게 되면 지금까지의 고생은 물거품이 된다.
아니.
이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공자님께서 어디까지 가실 수 있을지 볼 수 있을 때까지 보고 싶 습니다.”
야스진은 처음과는 꽤나 달라졌 다.
그저 사제가 되는 것이 목표였었 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지금까지는 고생하기 싫다더니.”
“그래도 재미는 있잖습니까. 제 가 공자님 모실 때 아니면 언제 이 런 경험 해보겠습니까?”
사제가 되면 교단에서 조용한 삶 을 살든.
아니면 교구를 하나 받아 그곳의 사제가 되어야 하든 할 것이다.
그리되면 지금처럼 바쁘고 힘든 삶과는 멀어진다.
야스진이 웃으며 말하자 요한은 피식 마주 웃었다.
“굳이 사서 고생을 하겠다는데 내가 말릴 이유가 있나.”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