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권 19화
144. 너나 신경 쓰시지 (2).
차이로 백작은 슬쩍 토도 백작에 게 시선을 돌렸다.
토도 백작의 아내가 케리만에게 죽었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 는 일이다.
당연히 외무대신인 그도 알고 있 었다.
그렇기에 차마 요한의 말을 부정 할 수 없었다.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그게 아니면. 케리만을 죽인 저 희들이 그 자리에서 칼을 물고 자 결이라도 했어야 했단 말입니까? 필로틴 제국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 서?”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다! 요 한! 선동하지 마라!”
차이로 백작이 격하게 외치자 요 한은 입가에 그리던 웃음기를 지웠 다.
“차이로 백작님. 정말 로드만 왕 국의 외무대신이 맞긴 하십니까? 아니, 그걸 떠나서.”
잠시 침묵한 요한의 입이 열렸 다.
그것을 차이로 백작은 이를 갈며 노려보았다.
"사람이 맞기는 하십니까?”
‘이놈……!’
이 자리의 분위기는 요한이 주도 하고 있었다.
요한의 선동에 사람들이 조금씩 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차이로 백작에게 는 그것을 막을 카드가 없었다.
‘영악한 놈이다. 일부러 감정적으 로 대응하며 사람들을 끌어들이고있어.’
빠르게 머리를 굴린 차이로 백작 이 항변하려는 찰나.
요한은 그의 말을 자르며 고했 다.
“이 자리에 계신 귀족 여러분. 그리고 존경하는 국왕 폐하.”
모두를 둘러본 요한은 평소의 무 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차이로 백작 의 불신임을 건의합니다.”
차이로 백작은 생각하던 것을 멈 추고 그를 비웃었다.
“작위조차 가지지 못한 너에게 그런 자격은 없다.”
“그럼 내가 하지.”
“나 역시 찬성일세.”
“저놈. 옛날부터 필로틴 제국 쪽 만 엄청 신경 쓰던더L 뭐 받고 있 는 거 아냐?”
마고 후작을 필두로 한 지방 귀 족들이 나섰다.
차이로 백작은 황급히 중앙 귀족 을 보았다.
하지만 차이로 백작과 같은 친 필로틴 제국 측의 귀족들만이 걱정 할 뿐.
나머지는 그저 무심한 표정을 짓 고 있을 뿐이었다.
"난 아니야!”
‘이거로 엿은 제대로 먹일 수 있 겠군.’
불신임이 건의된 이상 귀족원에 서 심사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를 보면 그 심사는 바로 처리될 것이 분명했다.
그럼 감사를 받는 동안 차이로가 겪을 역경과 고난.
그리고 외무대신의 자리를 노릴 다른 중앙 귀족들의 견제는 보통이 아닐거다.
요한은 난감해하는 차이로에게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폐하께서 주최하신 파티를 개판 쳤는데 어떤 중앙 귀족이 널 커버 하겠어?”
‘、크 ...... W“어디 한번 잘 버텨보라고. 로만 후작이나 필로틴 제국이 댁을 얼마 나 지켜줄지는 모르겠지만.”
요한의 마지막 도발에 차이로 백 작은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차마 주먹을 날리지는 못했다.
“……이번 일. 잊지 않겠다.”
씩 웃은 요한은 뒤로 물러나며 예를 갖췄다.
“저도 잊지 않겠습니다.”
‘이대로 끝내기에는 아쉽잖아? 나중에 좀 더 괴롭혀줄테니 기대해 라.’
환영파티의 분위기는 급속히 가 라앉았다.
이런 분위기에서 뭘 하겠나.
타이로돈 국왕은 불쾌함이 가득 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귀족들은 패를 갈라 서로를 향해 삿대질까지 하며 싸우고 있었 다.
“기껏 왕가에서 파티를 주최했는 데 이게 뭔 꼴인가!! 이래서 지방 놈들은!!”
“이게 다 중앙 귀족 놈들 때문입 니다!”
“댁들은 뭐 잘한 것이 있나?”
“뭐? 댁들!?”
애들도 아니고 사소한 말꼬투리 를 잡으며 싸운다.
아예 날을 잡은 듯 파티장의 귀 족들은 치열하게 입씨름을 해댔다.
만약 무기만 있었으면 벌써 빼 들었을 분위기다.
그 분위기를 만들어낸 요한은 히 죽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
‘잘됐네.’
멀쩡한 파티장에서 빠지는 것보 다 이런 개판에서 빠지는 게 더 쉽 다.
어차피 파티에는 별 관심이 없던 요한이 다.
그는 불쾌해하는 국왕을 지켜보 았다.
‘생각이 있다면 파티를 여기서 종료하겠지.’
요한의 생각대로 타이로돈 국왕 은 고개를 저었다.
피로함이 가득 담긴 어조로 그는 툭 한마디 내뱉어버렸다.
“그럼 즐길 사람들은 즐기고 가 도록.”
그가 안으로 들어가자 마고 후작 은 요한의 어깨를 툭 쳤다.
“우리도 돌아가도록 하지.”
“더 즐기시죠.”
“즐기기는. 차이로 백작을 공격할 준비를 해야 할 텐데.”
국왕까지 들어가자 귀족들은 서 로를 노려보며 물러났다.
여기서 이렇게 떠드느니 나중에 제대로 붙는 것이 낫다.
귀족원에서 결판을 내자며 떠들 던 그들이 하나둘씩 파티장에서 나 가기 시작했다.
그들을 지켜보던 마고 후작은 난 감해하던 헤르듀크 왕자에게 다가 갔다.
“왕자님.”
“예. 마고 후작님.”
“차라리 잘 되었습니다.”
헤르듀크를 정식 후계자로 만들 고 싶어 하는 마고 후작이다.
이 기회를.
이 분위기를 이용해서 헤르듀크 의 통솔력을 귀족들에게 보여줘야 했다.
“오늘 일에 대한 대책회의를 했 으면 합니다. 저택으로 가시지요.”
“그게 낫겠군요.”
헤르듀크 왕자는 씁쓸한 표정으 로 파티장을 바라보았다.
“차린 음식들이 아깝게 되었군.”
“궁내부원들과 왕궁 시녀들은 신 나 하겠네요.”
오늘은 파티가 열리고 얼마 되지 않아 이 난리가 났다.
꽤 많은 요리들이 손도 대지 않 은 상태였다.
이런 파티에서 남은 음식은 하인 들이 가져가는 것이니.
그들만 신나게 된 파티라고 할 수 있었다.
“넌 괜찮냐?”
윌카스트 백작이 묻자 요한은 고 개를 끄덕였다.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그럼 됐다. 자. 가자꾸나.”
윌카스트 백작이 앞서 나가자 요 한은 그의 뒤를 따랐다.
왕궁 근처에 세워진 마차에 그가 타려고 할 때.
요한의 팔을 잡는 이가 있었다.
“뭐야?”
헤이 로나였다.
그녀는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마고 후작님의 저택에서 파티가 있을 예정인가요?”
“그렇다는데.”
“저도 참가하고 싶습니다만!”
“토도 백작님은 그냥 들어가신 것 아냐?”
다른 지방 귀족의 마차에 토도 백작이 타고 있었다.
그 마차는 마고 후작의 저택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그것을 가리키며 요한이 묻자 헤 이로나는 빙긋 웃었다.
“아버지는 아버지고 저는 저죠.”
“파티를 즐기려는 것 같지는 않 고……아까 헤이로나가 하던 일을 생각 하면 엘도만 상가의 지점 문제 때 문인 듯 싶었다.
마고 후작의 저택에 모이는 이들 은 대부분 지방귀족이다.
각 영지에 지점을 세우고 싶어하 는 헤이로나로서는 반드시 함께 하 고 싶을 것이다.
“나한테 묻지 말고 마고 후작님 께 여줘봐라.”
“그래도 되나요? 후작님인데?”
“뭐 어때. 후작님은 사람은 잘 안 무시더라.”
"후작님이 갠가요……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윌 카스트 백작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요한에게 다가갔다.
"요한. 그 아가씨는 누구니?”
“헤이로나 엘도만. 도브다만 왕 국의 엘도만 가문의 영애입니다.”
“헤이로나? 어디서 들어봤던 이 름인데……잠시 생각하던 윌카스트 백작은 손가락을 튕겼다.
“아! 프란츠를 이겼다던 그?”
“안녕하십니까. 월카스트 백작님.
프란츠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헤이로나는 치마를 살짝 들어 올 리며 예를 갖췄다.
귀족다운 깔끔한 예의에 윌카스 트 백작은 훈훈하게 웃었다.
“엘도만 가문의 영애를 만나게 되어 영광이오. 윌카스트 바그너라 오.”
“호호. 예. 꼭 한번 월카스트 백 작님을 만나 뵙고 싶었답니다.”
“나를? 왜?”
“프란츠가 백작님을 무척이나 존 경하고 따르고 있어서……잠시 말을 멈춘 그녀는 누구라도 보면 흐뭇해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아카데미에서도 윌카스 트 백작님을 존경하는 학생들이 많 답니다.”
“하하하. 내가 뭘 했다고.”
빈말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듣기 좋은 말은 귀를 즐 겁게 하는 법이다.
그것도 헤이로나 같은 미소녀의 좋은 말이라면 더욱 그렇다.
“우리 프란츠와 친하게 지내주셨 으면 좋겠소.”
"저야 영광이죠!”
“그래. 그래. 그런데 요한에게는 무슨 일로?”
“엘도만 상단의 지점 문제 때문 에 귀족 분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 어서 부탁하고 있었습니다.”
헤이로나는 월카스트 백작에게 공손히 말했다.
그녀를 잠시 바라보던 월카스트 백작은 마차를 툭 쳤다.
“마침 마고 후작님의 저택에서 간단한 다과회를 열 생각이라오. 괜찮으시다면 함께 가시겠소?”
“감사합니다!”
헤이로나는 윌카스트 백작의 에 스코트를 받으며 마차에 올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요한은 뒤통 수를 긁적거렸다.
"그럼 전 걸어가겠습니다.”
“왜?”
“두 분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 시며 가시지요.”
요한은 슬쩍 왕궁 쪽을 바라보았 다.
그의 반응에 윌카스트 백작은 조 심스레 물었다.
“설마 차이로 백작을 죽이려는 건 아니지?”
"제가 무슨 피에 미친 살인귀도 아니고. 지금 안 죽입니다.”
‘이렇게 죽이기에는 너무 아까워 서.’
죽일 거면 쓸 만큼 써먹고 죽여 야 하지 않겠나.
걱정하는 윌카스트 백작을 요한 은 웃으며 안심시켜주었다.
“그렇다면야…… 아무튼 조심히 들어오도록 하렴.”
윌카스트 백작이 마차에 올라타 고 마차들이 출발했다.
다른 마차들이 떠나는 것을 지켜 본 요한은 왕궁의 입구 쪽으로 향 했다.
입구의 그림자에 몸을 기대고 서 있던 여인은 천천히 달빛 아래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정체는 바로 로디악 기사 단의 부단장인 에밀리였다.
“대놓고 나한테 살기를 뿜어대는 것이…… 한판 뜨자는 것은 아닐 것이고.”
물론 싸움을 원한다면 요한은 대 환영이다.
마스터와의 싸움은 상당히 좋은 훈련이 되니 말이다.
하지만 에밀리는 요한과 둘이 된 순간 살기를 지웠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전하께서 여신 파티였다.”
“그래서?”
“차이로 백작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 거라고 보나?”
이번 파티는 국왕 주최의 파티 다.
그런 파티를,그것도 중앙 귀족 이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배후에 누가 있는 것 같은데.”
일부러 국왕의 권위를 낮추고.
거기에 요한까지 공격하려는 자 가 있을 것이다.
에밀리는 반쯤 확신을 하고 있었 다.
“지금 왕가와 로만 후작 사이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
요한이 묻자 에밀리의 표정이 굳 었다.
안 그래도 근래 이상한 소문들이 돌고 있었다.
그것을 떠올리며 그녀는 살짝 주 먹을 쥐었다.
"로만 후작이 차이로 백작에게 지시했다는 건가?”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진짜 차 이로 백작이 사람이 아닐 수도 있 고.”
이것만큼은 요한도 알 수 없었 다.
에밀리는 짧게 신음한 후 요한을 똑바로 응시했다.
“요한. 로디악 기사단에 들어와 왕가의 수호기사가 되어라. 그렇다
면 왕가는 널 돕겠다.”
상당히 진지한 목소리였다.
진심이 담긴 에밀리를 힐끔 본 요한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딴 문제 왕가의 도움 없어도 해결할 수 있어.”
로디악 기사단에 들어갈 것이었 다면 그냥 마고 후작의 밑으로 들 어갔다.
에밀리에게 저 말을 시킨 사람은 분명 국왕이다.
이번 일을 빌미로 왕가의 힘을 강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마스터가.
그것도 천하십강을 이기고 케리 만을 죽인 마스터가 수호기사가 된 다면.
당연히 왕가의 힘은 강해질 테니 말이다.
하지만 요한에게는 그럴 생각 따 위는 조금도 없었다.
“간다. 고생해라.”
가볍게 손을 흔들어 준 요한은 성큼성큼 길을 걸었다.
그가 멀어지자 에밀리는 짧게 한 숨을 내쉬었다.
“강하고,사람을 선동할 정도의 언변,그리고 상황을 파악할 만한 지식과 통찰력도 있어. 하. 아직 어 린데도 무섭군.”
멀어지는 요한을 지켜보던 에밀 리는 짧게 혀를 찼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닌 것 같단 말이지……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