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권 16화
141. 계시가 있었다 (1).
요한은 그 이야기는 하지 않은 채 커다란 떡과 간을 입에 넣었다.
“넌 안 먹냐?”
“먹어야죠.”
작은 접시에 요리를 덜어 요한과 헤이로나는 말없이 먹기만 했다.
그렇게 식사가 계속 되고.
헤이로나가 먼저 배가 불러 멈췄 지만 요한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테이블을 가득 채운 요리가 거의 바닥을 드러내자 헤이로나는 감탄했다.
“와! 진짜 잘 드시네요.”
“생각보다 맛있네.”
커틀릿의 소스는 달콤하고.
붉은 소스에 감싸진 떡은 깝짤하 며 매콤하다.
그리고 담백한 내장 요리까지.
먹다보니 계속 들어갔다.
요한이 생각 이상으로 잘 먹은 것에 헤이로나는 무척이나 뿌듯해 했다.
“저랑 같이 온 귀족 중에는 이런 걸 어떻게 먹냐는 사람도 있었는 데.”
“입맛이야 개인 취향이지.”
요한이야 맛만 있으면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다.
그는 남은 음식들까지 모두 자기 접시로 옮겼다.
남은 소스를 커틀릿으로 쓱쓱 긁 어 한입에 넣은 요한은 포크를 내 려놓았다.
“잘 먹었다.”
“잘 드시니 사드린 보람이 있네요. 맛있죠?”
“그래. 거…… 할머니. 말씀 좀 여쯤겠습니다.”
“허이구. 보아하니 귀족 나으리 같은데. 말씀 편히 하십시오.”
노파가 공손히 대답하자 요한은 고개를 저었다.
"저거 어떻게 만든 겁니까? 떡이 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저 소스 만 드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그게……“에헤〜 저희 상단에서 파는 소 스랍니다.”
“그래?”
“저희 엘도만 상단은 요리재료뿐 만 아니라 레시피. 그리고 훈련을 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위한 식자재. 또…… 훈련을 하는 사람들의 훈련 용품과……“너 지금 나한테 영업하는 거 니?”
영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의 흥미를 끌어내는 것이다.
헤이로나는 학기 중에 프란츠와 꽤나 자주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때 요한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요한이 좋아하는 것은 먹는 것과 훈련하는 것이라는 것을.
바그너 영지의 후계자는 프란츠 다.
하지만 프란츠는 요한에게 꽉 잡 혀 살고 있었다.
월카스트 백작도 요한이 원하는 것은 어지간해선 다 들어준다.
그러니 바그너 영지에 엘도만 상 단의 지점을 차리려면 요한을 공략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속내를 들킨 헤이로나는 흠칫 놀 탔지만 곧 뻔뻔하게 답했다.
“윽. 드,들켰나? 그래도 좋은 거 많이 판다구요. 아. 카탈로그 드릴 까요?”
혀를 날름거리며 헤이로나는 귀 엽게 웃고 아공간 주머니에서 고급 스러운 책자를 꺼냈다.
요한은 그녀를 향해 코웃음 쳤지 만 카탈로그를 뿌리치지는 않았다.
작은 책자를 빠르게 훑어 본 요 한은 가게를 나가며 말했다.
“재밌는 물건들이 많네. 가면서 얘기해보자고.”
헤이로나와 함께 걸으며 요한은 엘도만 상단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 다.
타고다 상회와 다르게 엘도만 상 단은 일반 잡화에 특화되어 있었다.
파는 물건이 크게 겹치지 않으니 두 상회의 지점을 영지에 세워도 문제는 없을 듯싶었다.
“바그너 영지에 타고다 상회가 있는 건 알지?”
“참고로 말씀드리면 엘도만 영지 에도 타고다 상회는 있어요.”
“독점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라 는 건가?”
“두 상회에서 취급하는 물건들이 다르니 상관없겠죠.”
단순히 프란츠 때문만은 아니었 는지 헤이로나는 꽤나 진지해 보였 다.
그녀의 반응에 요한은 고개를 끄 덕였다.
상회가 들어선다면 요한에게도 편한 일이었다.
매번 물건 구하러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혹시 이런 훈련 장비들도 파 나?”
“어떤 건데요?”
“성철쇄 기사단에서 사용하는 장비들인데.”
요한이 설명을 시작하자 헤이로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들었다.
연금술사의 기술과 상아탑의 마 법도 들어가야 하는 장비들이다.
쉽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은 요한 의 설명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이런 장비는 또 어디서 보셨어 요?”
“성철쇄 기사단의 훈련장.”
“진짜 쓸데없는데 별 노력을 다 했네……연금술의 재료,그리고 그 노력.
다른 사람이라면 다른 곳에 힘을 썼을 것이다.
헤이로나는 신음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일단 저희 가문에서 고용하고 있는 연금술사들이 있으 니까. 그들에게도 한번 물어볼게 요.”
“그래. 그거 취급할거면 나도 긍 정적으로 생각해볼게.”
“감사합니다!”
어느새 둘은 목적지로 했던 상아 탑 지부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헤이로나 영애.”
다른 지점들과 연락을 하기 위해 서일까?
꽤나 자주 찾아왔었는지 상아탑 지부의 마법사는 웃으며 그녀를 반 겼다.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요한 바그너.”
“요한…… 요한!? 요한 공자님이 십니까!?”
“날 아나?”
“당연히 알 수밖에요.”
마법사는 눈을 반짝거렸다.
“요한 공자님 덕분에…… 천 마 리 검은 염소를 쌓는 방법의 내용 을 알 수도 있게 된 것이잖아요?”
"아. 그거.”
‘하긴 그때 대화할 때 다른 마법 사들도 있었지.’
요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마법사 는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 니다. 그런데 두 분께서는 무슨 일 로 오셨습니까?”
“마법 통신을 하려구요.”
“기밀이십니까?”
“예.”
“그럼 방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 다.”
상아탑 지부 내부에 있는 방으로 둘을 데리고 간 마법사는 헤이로나 에게 코드를 받았다.
수정구를 통해 연결하기 시작하 자 헤이로나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주먹을 쥐었다.
‘스승님이 받아주셔야 할 텐 데……연결이 계속되고 있지만 상대의 응답은 없었다.
요한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무슨 일이냐. 헤이로나.]
“그럼 저는 나가보겠습니다.”
수정구 너머로 눈처럼 새하얀 로 브를 뒤집어 쓴 자가 나타났다.
허스키한 목소리를 받으며 헤이 로나는 다급히 외쳤다.
“스승님! 스승님! 혹시 로드만 왕국에 도둑을 보내셨어요?”
[그렇다면?]
"앗…… 아아……설마 했는데 진짜 보냈을 줄이 야.
헤이로나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뒤로 물러 나자 요한은 수정구 앞에 섰다.
[너는 누구지?]
“요한 바그너다. 백왕 플로란스.”
[요한 바그너……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지. 스스로 절맥에서 벗어 난 자라면서?]
“그래.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 고. 톨기스 영지에 도둑을 보냈다 는 것이 사실인가?”
[그렇다.]
“아주 당당하네. 이번 일은 로드만 왕국에서 정식으로 항의할 수도 있다.”
요한의 싸늘한 반응에도 플로란 스는 긴장하지 않았다.
수정구 너머에 있는 플로란스의 입가에 오히려 미소가 걸렸다.
[항의를 하지 않고 이리 연락을 한 건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 군. 원하는 것이 뭐지?]
“하던 연구 멈추고 우리 만나서 얘기 좀 했으면 하는데.”
[미안하지만 연구는 멈출 수 없 다.]
플로란스는 딱 잘라 거절했다.
그 반응에 요한은 콧방귀를 뀌었 다.
"오래된 자의 연구를 해서 뭘 얻 으려는 거냐?”
[요한 바그너…… 듣기로는 꽤나 능력이 있는 자라 들었다.]
“그래서?”
[대답해준다면 이번 일을 무마시 켜줄 수 있나?]
대놓고 거래를 제시한다.
수정구 너머의 플로란스를 바라 보던 요한은 피식 웃었다.
“내가 왜?”
요한의 당당함을 본 플로란스는 천천히 말했다.
[네가 믿을지 믿지 않을지 모르 겠지만. 내 말을 듣는다면 너도 가 만히 있지 않을테니까.]“들어보지.”
[헤이로나를 내보내라.]“너 잠깐 나가 있어.”
헤이로나가 나가자마자 플로란스 는 설명을 시작했다.
[대기근 정도는 알고 있겠지?]“그래.”
[그 대기근이 일어나기 전부터,나는 대기근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하면 뭐라 반응할 거 냐?]
“뭐.회귀라도 했나?”
플로란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순히 고개를 젓는 것뿐인데도 플로란스에게서는 깊은 회한이 느 껴지고 있었다.
[내가 받은 것은 계시였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비가 내리지 않게 되 고,수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았 다.]
플로란스가 심각한 어조로 말하 자 요한은 어깨를 으쏙였다.
천하를 돌다보면 자기가 신에게 계시를 받았다는 사람들은 수도 없 이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거짓말이다.
애초에 계시라는 것이 그렇게 쉽 게 내려오는 것이겠는가.
회귀 전에도 계시를 받았다는 자 들은 단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요한은 냉담히 부정적 인 의견을 표출했다.
“지난 다음에 말하면 누가 믿겠 냐?”
이미 앞으로의 미래 정도는 알고 있는 요한이다.
하지만 플로란스는 화를 내는 대 신 계속 말할 뿐이었다.
[대기근 후에도 나는 계시를 받 았다.]
“뭔 계시? 혹시 로만 후작이 바 그너 영지를 칠거라는 거? 그런 건 계시고 뭐고……”
[대기근 이후 한 번 더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무슨 위기?”
요한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플로란 스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사람이 하얀 가루로 변해 죽는 병이 퍼질 것이다.]
플로란스가 말한 것은 요한도 알 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왕 등장의 두 번째 전 조인 백색병이었다.
“자세히 얘기해봐.”
[자세히고 뭐고 없다. 그저 그것 을 보았을 뿐이니까.]
“계시가 그런 거였나?”
[그렇다. 처음에는 나도 믿지 못 했지.]
누가 믿겠나.
그냥 개꿈이라고 치부하고 말겠 지.
그렇기에 플로란스는 첫 번째 계 시를 그냥 넘겨버렸다.
그리고 그 대가는 처참한 결과를 불러왔다.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얼마 나 절망했는지 모른다.]“그래서. 두 번째 계시는 언제 본 거지?”
[대기근이 끝난 다음 해. 꿈을 꿨 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얀 가루로변해 흐트러지는 것을 보았다.]
수정구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 리에는 강렬한 결의가 있었다.
대기근을 알았으면서도 막지 못 했다는 자책감.
그것이 플로란스에게 막대한 부 담감과 사명감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실패했지.’
마왕 등장의 두 번째 전조인 백 색병은 발현되었다.
그 백색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 었다.
‘그래서 플로란스가 모든 의욕을잃고 절망했던 거였군.’
회귀 전의 일을 떠올리던 요한은 문득 떠오른 생각을 그에게 물었다.
“너 혹시 바론교의 신자냐?”
[무신론자다.]
"아…… 그럼 일단 바론 교단에 전해보는 건 어때? 백왕 플로란스 의 말이라면 믿어줄 텐데?”
요한의 제안에 플로란스는 고개 를 저었다.
[이미 몇몇 사제들에게 말해보았 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보았던 자들 중에는 바론 교 의 사제도 있었다.]
“바론 교단이 막지 못할 것이라 는 건가?”
[그렇다.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 이 그리 되어버리는 것이다. 어떤 마법으로도,어떤 저주로도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아.]
플로란스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 다.
“그래서 오래된 자에 관해서 연 구하는 건가?”
현대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면.
오래된 자에게 제물을 바쳐서라 도 막을 방법을 찾아내려는 것이 다.
“아무튼 이 문제는 좀 제대로 이 야기를 해봤으면 싶어. 우리 만나 서 얘기하자고.”
[시간이 없다. 언제 그 일이 시작 될지 몰라.]
“그래도 혼자 하는 것보다는 낫 지 않을까?”
[나보다 오래된 자에 대해 많이 아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건 네 생각이지.”
수정구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 지 않고 있었다.
[뭘 가지고 있지?]
“만나면 가르쳐주지.”
요한은 딱 잘라 말하고 통신 마 법을 종료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