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권 15화
140. 오래된 자 (4).
“실제로 그쪽에서도 왕가에 대한 불만이 꽤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
"예. 별로 해주는 것도 없이 세 금만 받아간다고……“틀린 말이 아니긴 하니까.”
바그너 영지에서는 왕가를 위한 세금을 영지의 자금으로 지출한다.
그러니 영지민들도 딱히 로드만 왕가에 대한 불만을 가지지 않는 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지는 그 세금 을 영지민들에게 부과한다.
그렇기에 왕가에 대한 불만을 가 지는 것이다.
실제 자신들을 지켜주는 것은 영 주다.
그런데 왕가에서는 세금만 따박 따박 받아가니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 없었다.
그 탓인지 유언비어가 퍼지는 속 도는 빨랐다.
보고서를 가볍게 읽어 본 요한은 책상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훌륭하군.”
“감사합니다.”
보고서를 되돌려 주자 양유위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얼마 전 톨기스 영지에 도둑이 들었다던데. 그건 아냐?”
“예.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도 브다만 왕국의 도둑 길드에서 연락 이 왔습니다.”
“그래? 뭐라디.”
양유위는 머뭇거렸다.
망설이던 그는 요한의 시선에 한 숨을 내쉬었다.
“자기네 길드원을 구출할 수 있 게 도와달라더군요.”
“잊고 있는 모양인데 톨기스 가 문은 귀족원장의 가문이다.”
“예. 압니다. 하지만 그들 사정도 좀……. 자기들도 하고 싶었던 것 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럴 것이다.
아무리 도둑들이 목숨 걸고 일한 다고 하더라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로드만 왕국 의 귀족원장이 있는 가문을 털었 다?
최악의 경우 도브다만 왕국의 길 드 자체가 박살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도둑길드가 예만의 연 구자료를 훔친 이유는 단 하나였 다.
“의뢰자가 백왕 플로란스였기 때 문이겠지.”
"알고 계셨습니까?”
양유위는 화들짝 놀랐다.
그를 마주하며 요한은 차분히 말 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예만 원장이 플로란스를 좀 만나달라더라 고.”
“저. 공자님.”
양유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어쩌면 이것이 기회일지도 몰랐 다.
여기서 도보다만 왕국의 도둑 길 드에 빚을 지워줄 수 있다면 이득 이다.
“그를 구하고 싶습니다.”
“그래?”
요한은 힐끔 레드바를 가리켰다.
"재가 나 없는 사이에 고생도 했고,너도 고생 많았으니까. 이번 일 은 내가 처리해주지.”
예만은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얼마 든지 말하라고 했다.
그럼 예만에게 잡은 도둑을 풀어 달라고만 하면 된다.
아무리 예만이 가주가 아니라지 만 톨기스 가문에서는 가장 큰 어 른이다.
그가 직접 말한다면 그곳에서도 바로 풀어 줄 수밖에 없다.
“감사합니다!!”
혹시나 해서 요청했는데 설마 들 어 줄 줄이야.
요한을 모신 이후로 처음으로 득 을 봤다.
양유위는 놀라면서도 예의를 갖 추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는 말이다. 지킬 것만 잘 지 키면 풀어주는 사람이란 것만 기억 해둬라.”
“항상 최선을 다해 공자님의 명 을 수행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그쪽에 연락해서 플로란스가 왜 그런 의뢰를 맡겼는 지 좀 알아봐봐.”
“예. 알겠습니다.”
이정도면 도둑 길드에서 할 일은 다 끝났다.
길드에서 나온 요한은 거리로 나 와 왕궁으로 향했다.
느긋하게 거리의 모습을 확인하 며 걷던 그의 등에 누군가 손을 가 져갔다.
그 손이 닿기 전 요한은 슬쩍 고 개를 돌리며 말했다.
“뭐하는 짓이냐. 헤이로나.”
요한의 반응에 헤이로나는 깜짝 놀랐다.
“우와. 어떻게 아셨어요?”
“미세한 오러를 늘 주변에 퍼트 리고 있는 거지. 그럼으로써 상대 방의 접근을 잡아내는 거다.”
“정말요?”
"아니. 거짓말.”
사실은 무기상의 번쩍거리는 방 패에 비친 헤이로나를 발견했을 뿐 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요한이 말하자 헤이로나는 맥빠진 미소를 지었다.
“에이. 뭐에요.”
"왜? 뭐 할 말 있나?”
“그냥 만난 게 반가워서 인사를한 겁니다. 저희 가문의 은인이기 도 하시니까.”
“신경 쓰지 마. 딱히 은혜 입히 려고 케리만 잡은 게 아니었으니 까.”
“그래도 받은 것은 받은 것이 죠.”
헤이로나는 밝게 웃었다.
그녀의 쾌활함을 마주하던 요한 은 몸을 돌렸다.
“할 말 다했으면 각자 갈 길 가 자고.”
“시간 괜찮으시면 식사. 지금 하 시는 건 어때요? 마침 점심땐데.”
“흐......w1=1 ..
“괜찮은 곳으로 모실게요. 아카 데미가 방학이라서 그 가게에 손님 이 별로 없을 거예요.”
헤이로나의 말대로 점심 식사를 할 때이기는 했다.
‘안 그래도 나도 할 말이 있었는 데 지금 하는 게 낫겠네.’
요한은 그녀를 빤히 보다가 고개 를 끄덕였다.
“맛없으면 알지? 나 입맛에 예민 한 사람이다.”
"프란츠가 그러던데 요한 공자님은 미식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 무거나 잘 드신다던데요?”
헤이로나가 의아해하자 요한은 인상을 찌푸렸다.
“못 먹는 것보다 맛없는 것 먹는 게 나을 뿐이지.”
“아하.”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요한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내 얘기를 아무 데서나 미주알 고주알 떠들어댔군. 돌아가면 보 자.’
요한이 인상을 쓰자 헤이로나는 움찔했다.
“프란츠도 맛있다고 한 곳이니까 걱정 마세요. 진짜 제가 자부할게 요.”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는 헤이로 나와 함께 요한은 식당으로 향했 다.
수도의 성벽을 나가 아카데미가 있는 거리로 들어섰다.
아카데미 거리는 수도의 다른 거 리와는 다른 느낌이 드는 곳이었 다.
“공자님. 알고 계세요? 이 거리 느......w"왕국법이 통하지 않는 곳이라고? 알아.”
“어? 아세요?”
“많은 나라의 왕족과 귀족이 모 였으니 로드만 왕국 영역에 속했지 만 왕국법이 아닌 아카데미법을 따 르지.”
그가 잘 알고 있자 헤이로나는 깜짝 놀랐다.
요한은 그녀의 놀란 눈을 무덤덤 하게 마주했다.
“그래도 동생이 입학한 곳인데 기본적인 조사는 해뒀지. 그래. 어 딘데?"
“저기로 조금만 가시면 돼요.”
헤이로나의 말대로 조금 걷자 작 은 가게가 모습을 보였다.
귀족들보다는 돈 없는 학생들이 올 만한 허름한 가게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두 분이신가요?”
백발의 노파는 웃으며 둘을 반겼 다.
빈자리에 앉자 헤이로나는 요한 에게 메뉴판을 넘겼다.
“뭐 드실래요? 그래 봤자 메뉴는 네 개뿐이지만.”
헤이로나가 메뉴판을 내밀자 요 한은 담담히 답했다.
“나 배고프니까 다 시켜줬으면 하는데.”
“여기 양 많은데요?”
“프란츠에게 내가 얼마나 먹는지 에 대해서는 못 들었나 보지?”
“듣기야 했지만…… 알겠습니다.
할머니. 여기 다 주세요.”
“어이구. 알겠습니다〜”
싱글벙글 웃으며 그녀가 들어갔 다.
요한은 팔짱을 낀 채 헤이로나를 응시하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물은?”
“물은 셀프랍니다.”
“식당 내부를 보아하니 좋은 가 게는 아닌 듯싶은데?”
“여긴 돈 없는 학생들이 오는 곳 이니까요.”
아카데미에는 재능만 있다면 평 민도 입학이 가능하다.
하지만 재능이 있다 하여 모두 부자인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돈 없는 학생들을 위한 식당도 당연히 존재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선가……‘이런 가게는 또 오래간만에 오 는군.’
회귀 전에는 이런 가게에 올 여 유가 없었다.
힘이 없을 때는 쓰레기통을 뒤졌 다.
힘이 생긴 이후에는 쓰레기같은 몸을 단련하기 위해 효율적인 식사 만 했었다.
그러다 보니 요한은 이런 가게와 는 연이 없었다.
차분히 가게를 둘러보던 요한은 자신도 모르게 환생 전의 일들을 떠올렸다.
‘오히려 다른 차원에서 살았을 때 이런 가게를 더 가본 것 같 네.’
자리에서 일어난 요한은 직접 물 통을 가져왔다.
컵에 그가 물을 따르는 것을 본 헤이로나는 싱글거렸다.
“전 이런 게 좋더라구요.”
“엘도만 백작가가 가난한 것 같 지는 않은데.”
“스승님께 배울 때는 이런 식으 로 살았거든요.”
요한이 물을 따르는 사이 그녀는 느긋하게 웃으며 스푼과 포크까지 깔았다.
식사를 위한 준비가 끝나자 요한 은 본론을 꺼냈다.
“플로란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 자고.”
“예.”
“연락 가능하지? 내가 전에 말했 던 거. 말해봤냐?”
“스승님께선 싫다고 하셨답니다.”
“진짜?”
“예. 지금은 하고 있는 연구에집중하고 싶으시다고……“그럼 밥 먹고 한 번 더 연락해 보자.”
“스승님도 고집이 대단하시라 의 지를 꺾으실 것 같지는 않아요.”
헤이로나가 달래듯 말했지만 요 한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고집 문제가 아니거든?”
예만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해주 었다.
자신의 스승이 도둑과 관련되었 다는 이야기를 듣자 그녀는 당황했 다.
“스승님께서 그러셨다구요?”
“그래. 뭔 연구를 어떻게 하려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도가 지나쳤 어.”
“ —o ■으斤 .......”
“예만 원장은 이 문제를 정식으 로 항의한다더라. 그걸 말리는 게 쉬운 줄 알았나?”
요한이 무뚝뚝하게 말하자 헤이 로나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쉽구만.’
헤이로나의 표정에는 불안감이 생겼다.
아무리 천하십강이라고 하더라도 한 나라의 귀족원 원장을 건드린 것이다.
비록 싸우기는 했지만 그녀는 플 로란스를 존경했다.
그렇기에 헤이로나는 무척이나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이번 일을 해결할 수 있 는 것은 나뿐이니까. 밥 먹고 바로 연락해보자.”
“만약…… 스승님께서 대응하지 않으신다고 하시면요?”
“그럼 일이 커지겠지. 로드만 왕 국에서는 플로란스의 소환 요청을 할 것이고.”
도브다만 왕국에서는 로드만 왕 국과의 관계 때문이라도 플로란스 를 보내려 할 것이다.
“하지만 백왕이 쉽게 움직일까?”
“그렇지는 않겠죠……“그럼 도브다만 왕국과 로드만 왕국의 사이는 나빠지겠지? 자. 내 가 할 말은 여기까지.”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두 왕국의 사이가 나빠질 것이 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플로란스를 체포하기 위해 군대가 보내질 수도 있다.
그리되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헤이로나의 안색이 점점 흐려지 자 요한은 탁자를 툭 쳤다.
“그러니까 이 일을 내가 맡았을 때 끝내는 게 제일 좋아.”
조기에 해결할 수 있으면 그게 낫다는 것 쯤은 헤이로나도 알고 있었다.
요한의 손에서 벗어나면 왕국과 왕국의 일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것이 전쟁으로 번질 수 도 있었다.
걱정하는 그녀에게 쐐기를 박듯 요한은 물을 한모금 마시고 단호히 말했다.
“내 선에서 안 끝나면 나도 어떻 게 될지 몰라.”
“예에……헤이로나가 고민하고 있을 때 안 쪽에서 노파가 나왔다.
“어이구. 아가씨,공자님. 넉넉하 게 담았으니 많이들 드십시요〜”
커다란 접시에 담겨 있는 것은 거대한 커틀릿이었다.
그것과 수북이 쌓인 야채 튀김.
하나는 뱀처럼 긴 음식이 송송 썰려 있었다.
옆에는 소와 돼지의 내장까지 담 겨 있는 요리.
마지막으로 긴 떡이 잔뜩 들어가 있는 붉은 소스의 수프였다.
"일단 드시죠. 아. 이건 처음 보 시는 거죠? 이건……“내장 요리네.”
“아세요? 귀족들은 내장 요리는 잘 안 먹는다고 들었는데.”
"그렇긴 한데. 난 좋아해.”
내장 요리는 하층민들이 즐겨 먹 는 요리다.
고기는 상인이나 귀족들에게 넘 기고,남는 부속을 먹는 것이다.
하지만 요한은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았던 자다.
그런 만큼 내장이 얼마나 맛있는 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몸에도 좋지.’
요한은 먹음직스러운 간을 쿡 찍 었다.
“아. 그거……그리고 떡이 담겨 있는 붉은 수 프에 푹 찍어 입에 넣었다.
“이 가게 오신 적이 있으세요? 어떻게 먹는지 아시나 보네요.”
“비슷한 요리는 먹어 본 적이 있 어.”
물론 다른 차원에서의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