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권 12화
137. 오래된 자 (1).
“암흑시대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 지?”
“예.”
요한의 설명을 들은 헤이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암흑시대에 유행했던 신앙이 바로 오래된 자의 신앙이 지.”
그정도는 교양으로 알고 있는 이 들이 꽤 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요한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오래된 자 는 원래 둘로 나뉘어져. 오래된 자, 그리고 위대한 오래된 자. 줄여서 위대한 자라고 하는데. 뭐 이건 그 리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런가요?”
“그래. 그리고 케리만은 위대한 오래된 자의 숙주였어.”
요한의 설명은 간단했지만 쉽게 이해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복잡해하는 그녀를 향해 요한은 차분히 말했다.
“아카데미 커리큘럼에서 고대학 을 이수하면 개요 정도는 배울 수 있을거야. 자세한게 궁금하면 거기 서 배워.”
그의 설명이 끝나자 헤이로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왜 오래된 자의 문양이 스승님의 집에 있는 걸까요?”
“혹시 석상이 있거나 한 건 아니 지?”
“예. 그냥 문양의 도안만 봤을 뿐이에요.”
‘그럼 플로란스가 위대한 자의 석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겠군.
그래도 확인은 필요해.’
백색병에 의해서 헤이로나가 죽 고 플로란스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 다.
동료를 필요로 했던 요한에게 있 어 그런 이들은 의미가 없었다.
힘이 있지만 의지가 없는 자에게 손을 뻗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 조금 도움을 주고받는 것 외에는 인연을 맺을 수 없었다.
궁금해하는 헤이로나를 보던 요 한은 볼을 긁적거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요한도 대충 답해 줄 수밖에 없었다.
“시간과 차원에 관한 연구를 하 는 것도 아니고 오래된 자에 관한 연구는 금기가 아니야.”
“그거야 그렇지만.”
“오래된 자를 연구하는 이들은 은근히 많아. 내가 아는 사람만 해 도 몇 명 더 있어.”
그들 뿐인가.
당장 상아탑만 해도 오래된 자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무려 학파까지 있을 정도로 말이 다.
그리고 요한 역시 오래된 자의 비법을 알고 있었다.
그런만큼 플로란스가 오래된 자 를 연구하고 있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럴까요?”
“그래. 정 뭐하면……요한은 히죽 웃었다.
“플로란스를 만나게 해줘. 내가 자세하게 물어봐 주지.”
“윽. 됐습니다.”
요한이 플로란스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지간해서는 검 은 숲에서 나가지 않는다.
괜히 스승의 평안을 깨고 싶지는 않았다.
“에이〜 그렇게 싫다고만 하지 말고. 프란츠랑 놀게 해줄게.”
“그건…… 매우 구미가 당기는 제안입니다만.”
"한번 잘 생각해보라고.”
헤이로나의 어깨를 툭 토닥인 요 한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다.
느긋하게 걸어 왕성의 입구를 빠 져나온 그는 발걸음을 멈췄다.
‘플로란스가 오래된 자에 관해서연구를 한다라……오래된 자에 관한 연구를 하는 이들은 두 부류다.
첫 번째는 학자.
오래된 자를 연구하여 암흑시대 를 파악함과 동시에 그들의 비법을 사용하려는 이들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오래된 자를 숭배하려는 자들.
이들은 좀 위험하다.
자칫 잘못하면 오래된 자의 숙주 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생기니 말이 다.
케리만이 일반 오우거와 다르게 강해질 수 있었던 것도 그것 때문 이다.
아무리 지성을 얻었다지만 그래 봤자 오우거다.
그런데도 천 년이 넘게 그를 잡 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
케리만이 위대한 오래된 자 중 하나인 불의 흡혈귀에게 계속 피를 제물로 바쳤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신공양이 과하게 진행 되면 숙주가 되어버린다.
그리 되면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 갈 수 없게 된다.
오로지 제물을 바치기 위한 노예 가 되든,아니면 그들이 차원에 강 림하게 만드는 작업만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는 회귀 전에도 꽤 많았었다.
대표적인 예가 요한이 잡았었던 백의 팔을 가진 헤카톤케일 이었다.
과도한 인신공양을 통해 숙주에 서 벗어나 오래된 자의 화신이 되 었었다.
그때 헤카톤케일이 일으킨 피해 는 꽤나 심했고,결국 요한에게 토 벌이 되었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고개를 가 로저었다.
‘뭐. 의미 없나.’
중요한 것은 마왕 처단에 방해가 되느냐다.
하지만 오래된 자와 관련된 자들 은 마왕 처치에 큰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만약 방해가 된다 하더라 도 치우면 그만 아닌가.
시간과 차원에 관한 연구를 하는 것만 아니라면 요한도 딱히 손 댈 생각은 없었다.
뒤통수를 긁적거린 요한은 맥빠 진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그거 신경 쓸 때가 아니 지.”
차분히 걷던 요한은 발걸음을 멈 췄다.
꽤나 많은 기사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요한 공자님 되십니까.”
“그래. 복장을 보아하니 귀족원 쪽 기사들 같은데. 나 데리러 왔 나?”
“예.”
‘내 이럴 줄 알았다.’
아무리 타로트의 허락이 있는 결 투였다지만.
요한은 귀족을 죽였다.
그것을 가지고 로만 후작이 귀족 원에 제소한 것이다.
‘유노 때와는 상황이 다르니까.’
유노는 실력을 숨긴데다가 금지 된 물품도 지니고 있었다.
그런 만큼 귀족원의 압박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펠론 백작은 달랐다.
그가 지은 죄는 요한의 심경을 거슬리게 한 죄 정도 뿐.
그러니 로만 후작이 이 일을 그 냥 넘어갈 리 없었다.
당연히 그는 귀족원에 이 일을 제소했고,요한 역시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요한은 별다른 불만 없 이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 가자.”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데가. 사람들을 물려라.”
다른 기사들이 나서서 길가에 있 는 사람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검을 뽑아 든 기사들과 병사들 앞에서 호기롭게 남을 시민은 없다.
혼비백산한 이들이 도망치자 요 한은 느긋하게 걸었다.
"귀족원으로 가야 하나?”
“그렇습니다. 저…… 원하신다면 마차를.”
"뭐 얼마나 된다고. 그냥 걸어가 자고.”
귀족원의 기사들과 함께 요한은 귀족원의 건물에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 재판장으로 향하 는 커다란 문을 열었다.
이미 재판장에는 꽤나 많은 원로 들이 앉아 있었다.
"요한!! 괜찮을 거다!”
“그래. 걱정 말거라.”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는 결의를 다진 듯한 마고 후작과 윌카스트 백작도 있었다.
그들을 힐끔 본 요한이 자리에 앉았다.
시끄럽던 재판장이 점차 조용해 지자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노인 이 입을 열었다.
“요한 바그너. 자네가 왜 여기 있는 줄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예만 귀족원장님.”
귀족원의 재판장에 와서 저렇게 당당한 사람은 드물다.
예만은 요한의 태도에 주름진 눈 을 가늘게 떴다.
“로만 후작이 자네를 고발했다 네.”
“치졸하긴.”
요한은 콧방귀를 뀌며 의자에 앉 았다.
그의 태도에 귀족원의 원로들 몇 몇이 이를 갈았다.
“아니 저놈이!?”
“감히 귀족원의 재판장에서?”
“나 때는 귀족원에 들어오면 고 개부터 조아리기 바빴는데!”
“요새 어린놈들은……귀족원의 분위기가 빠르게 요한 을 규탄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었 다.
그들의 적의를 받으며 요한은 피 식 웃었다.
“그럼 저도 좀 여품겠습니다.”
“하게나.”
“로만 후작이 고발을 했다? 뭐 그건 그렇다고 치지요. 그런데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자네는 펠론 백작을 살해했다 네.”
“로만 후작이 이것은 말 안 해줬 나 보군요.”
요한은 어깨를 으쏙이며 여유 가 득한 어조로 말했다.
“펠론 백작님과 저는 정당한 결 투를 통해 승부를 가렸을 뿐입니 다.”
“그 결투가 목숨을 빼앗아도 된 다는 결투는 아니었을 텐데?”
“예. 그렇긴 합니다. 하지만 결투 하다 보면 실수도 하고 그런 거죠.”
“증언에 따르면 자네는 천하십강 인 인왕 율경을 쓰러트리고 에슐론 을 생포했다고 하더군.”
이것은 귀족원의 다른 원로들도 몰랐던 것이다.
그들이 술렁거리자 요한은 고개 를 끄덕였다.
“예.”
“천하십강도 이길수 있으면서 펠론 백작과의 싸움에서 실수를 해!? 네놈이 일부러 죽이려 한 것 아니냐!!”
한쪽에 있던 노인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천천히 그에게 시선을 돌린 요한 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위돌 바이스 원로님이시군요.”
“그렇다!”
“제가 알기로 바이스 영지는 로 만 후작의 영지 근처에 있는 것으 로 아는데……“그,그게 뭐 어쨌다는 것이냐!”
위돌 원로는 뜨끔하며 눈을 돌렸 다.
회귀 전에도 위돌은 로만 후작을 두둔했었다.
그리고 그가 귀족군 사령관이 되 는데 힘을 실어주었었다.
‘분명…… 저 인간. 로만 후작에 게 이것저것 많이 받았었지?’
위돌과 그의 가문인 바이스 백작 가가 로만 후작에게 상당한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니 요한은 위돌의 외침을 크 게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금도 받고 있겠지.’
왜 위돌이 저리 난리를 치는지 뻔히 보인다.
요한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시선은 위돌에게 꽂혀있었다,“아무것도 아닙니다.”
히죽거리는 요한의 얼굴을 위돌 은 차마 계속 마주할 수 없었다.
“크,크흠. 옛날 내가 라즌 공국 과 싸웠을 때였다면 내 앞에서 고 개도 들지 못했을 놈이……"위돌 원로님.”
요한은 상냥한 어조로 말했다.
“그때였다면 원로님께서 마스터 인 저에게 말이나 건네실 수 있으 셨겠습니까?”
“……네놈이!!”
요한의 발언에 위돌은 버럭 화를 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오려 하 자 요한은 씩 웃었다.
“듣기로 위돌 원로님께서도 익스 퍼트 정도는 되신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을 본 위돌은 움찔했다.
언제든지 오러 블레이드를 뽑을 수 있는 손을 보는 그의 눈에는 공 포가 실려 있었다.
"모욕을 받은 것에 대한 결투라 도 신청해보시겠습니까?”
멀쩡한 익스퍼트도 요한을 이길 수 없다.
그런데 다 늙고 검을 놓은 지 십 년도 넘은 위돌이 상대가 되겠나.
요한의 행동은 누가 봐도 도발이 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기에는 위돌 의 인내심은 무척이나 가늘었다.
“익……!! 검!! 검을 가져와라! 저 어린놈에게 본때를 보여줄 테니 까!”
“여기 있소.”
마고 후작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검을 내밀었다.
위돌은 순간 당황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시선이 꽂히자 그는 머뭇거렸다.
“무슨 할 말이라도?”
마고 후작이 시큰둥하게 묻자 그 는 씩씩거렸다.
내밀어 진 검을 잡을까 말까 망 설이는 그를 향해 옆에서 보던 원 로들이 움직였다.
“위돌 위원. 그만하시구려.”
“여기선 어른이 참는 거요.”
옆에 있던 다른 귀족원의 원로들 이 말렸다.
그들이 말리자 위돌은 기다렸다 는 듯 앉았다.
“에잉!! 옛날이었으면……자리에 앉으면서도 그는 옛날의 무용담을 떠들어댔다.
그 사이 마고 후작은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를 보며 말했다.
“지금 뭐하자는 것들인지 모르겠 군. 요한의 말대로 결투에서 실수 할 수도 있는 것 아니오?”
“물론 그렇긴 하지. 하지만 마고 후작. 그것이 정말 실수였는지가 의문이라오.”
예만은 요한을 똑바로 바라보았 다.
“천하십강 율경을 쓰러트리고, 에슐론을 생포했다. 거기에 자네는 유노까지도 제거했지.”
“예.”
“그렇다면 자네의 실력은 어느 마스터보다 월등하다고 볼 수 있 어.”
“흐음……“어쩌면 천하십강에 도전할 수 있을 정도 아닌가?”
“그 정도는 아닙니다. 아…… 그러니까 지금 제가 에슐론은 살려뒀 는데 펠론 백작은 죽였다는 것 때 문에 이러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그렇다면 오해를 풀어드려야겠 군요.”
요한은 아주 평안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답은 간단합니다. 에술론은 제 가 어리고,말랐다는 것 때문에 방 심했습니다.”
“뭐?”
“그렇기에 그 틈을 노릴 수 있었 지요.”
당연하겠지만 요한의 말은 거짓 말이었다.
하지만 요한은 기번의 환생을 거 치며 거짓말에 도가 렀다.
그렇기에 그는 노회한 원로들을 가볍게 속여넘길 수 있는 연기를 할 수 있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