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권 11화
136. 전 아니라서 (3).
그들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본 요 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할 말은 그게 다인 것 같으니까 나는 저기 훈련장비 좀 쓴다.”
요한은 느긋하게 밖으로 나갔다.
겉옷을 벗어 옆에 놓고 배틀 로 프를 잡고 빠르게 밧줄을 휘둘렀다.
“오오. 무거워. 무거워.”
요한의 힘에도 잘 버틸 수 있게제대로 고정되어 있었다.
거기에 숙련자들을 위해 특수 제 작한 것인지 일반 밧줄보다 훨씬 무거웠다.
‘이건 좀 사 가고 싶네.’
바그너 영지에도 있지만 밧줄들 이 너무 가벼워서 크게 도움이 되 지 않는다.
물론 병사들이나 기사들은 한번 할 때마다 녹초가 되곤 했다.
하지만 요한에게는 꽤나 가벼운 정도였다.
그런데 여기서 요한에게 딱 맞는 배틀로프를 발견한 것이다.
‘이따가 한번 물어봐야겠군.’
“흑흑!”
밧줄이 크게 요동칠 때마다 벽에 고정된 철봉이 흔들렸다.
‘살살해야 하나?’
하지만 요한의 걱정은 기우에 불 과했다.
순간적으로 철봉에서 빛이 나며 흔들림이 멈춰졌기 때문이다.
“와. 마법까지 걸어놨어?”
훈련을 위해 이런 준비까지 해놨 을 줄은 몰랐다.
요한은 감탄하며 배틀로프 훈련 을 끝냈다.
“나도 복귀하면 투자 좀 해야겠 다.”
요한도 나름대로 훈련을 위한 장 비들은 꽤 준비했었다.
하지만 이정도로 체계적이고 세 밀한 시설을 갖추지는 않았다.
바그너 영지로 복귀하면 돈을 좀 더 쓰더라도 제대로 된 훈련 장비 를 갖춰야겠다.
그리 생각한 요한은 다른 기구들 을 만지작거렸다.
‘보기만 해도 탐난다. 이거 어디 서 산거지?’
체계적으로 근육을 단련할 수 있 는 기구들이었다.
환생 전 다른 차원에 있던 고급 헬스장에 온 기분이 들 정도다.
그가 다른 기구들을 만지며 훈련 을 하고 있을 때.
기사단의 문이 열리며 나마스가 나왔다.
“크흠. 아까는 실례를 했군.”
“뭐 실례랄 것까지 있겠습니까. 그나저나. 이거 다 어디서 팝니까? 나도 좀 갖고 싶네.”
“뭐. 개량형 배틀로프?”
“전체적으로다가. 드워프들에게 요청하셨습니까? 아니면 상아탑?”
요한이 툭툭 치며 묻자 나마스는 씩 웃었다.
“원한다면 그냥 줄 수도 있다 만.”
“고작 이거 받고 밑에 들어갈 생 각 없습니다. 그냥 파는 곳이나 말 씀해주시죠.”
“내가 만든 거다.”
“농담하지 마시고.”
어떤 왕자가 할 일 없이 이런 것 이나 만들었겠나.
요한이 신뢰할 수 없다는 듯 의 심을 섞어 말하자 나마스는 다시 답했다.
“진짜다. 연금술을 공부해서 일 반 로프보다 더 무겁게 만든 것이 지.”
“그럼 저 철봉은?”
“나와 친한 마법사가 만들어준 것이다. 마력을 방출함에 따라 로 프의 무게를 늘려가는 것이지.”
“그럼 이 기구는?”
“사슬을 이용한거지. 그리고 이 덤벨은 중량추가 마법이 걸려져 있 어서……요한은 훈련장비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물었다.
그때마다 나마스는 아무렇지 않 게 답했다.
그놈의 차남 콤플렉스만 빼면 헤 르듀크와 동급이라는 것이 믿기는 답이었다.
“꽤 하시는군요.”
사용자의 힘에 따라 무게를 조절 하게 하는 시약 제조 정도는 연금 술의 기본이다.
하지만 그것을 도구들에 부여하 는 일은 상당한 실력이 필요한 일 이다.
단순한 기사라고 생각했는데 연 금술에도 재능이 있을 줄이야.
요한이 감탄하자 나마스는 아무 렇지 않게 주변의 기사들을 둘러 본 후 답했다.
“훗. 나를 따라주는 이들을 위한 훈련용품이다. 나도 최선을 다해야 하지.”
“와,왕자님……로도와 다른 기사들은 나마스를 향해 눈을 반짝였다.
“평생 따르겠습니다.”
“왕자님께서 왕위에 오르지 못하신다 하더라도……“난 반드시 왕위에 오를 것이 다.”
결연한 의지를 보이며 그가 말하 자 요한은 피식 웃었다.
“차……“그만!! 말하지 마라!”
“왕위를 노리시기 전에 그 콤플 렉스부터 어떻게 하셔야 할 것 같 습니다만.”
차남이라는 말 한마디에 저렇게 좌절하는데 어떻게 왕위에 오르겠 나.
당장 헤르듀크를 그냥 상대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 그의 뒤에는 마고 후작까 지 있다.
후원자도 별로 없는 나마스가 어 떻게 이기겠나.
요한이 웃으며 묻자 그는 살짝 주먹을 쥐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아. 이게 본론이었습니까?”
“으음. 네가 쉽게 남의 밑으로 들어올 사람이 아니란 것은 알고 있었지.”
나마스는 주위를 두리번거린 후 입을 열었다.
"소문을 들었다. 너. 최면술인지 뭔지를 써서 식욕을 억제할 수 있 게 해준다면서??”
"오호. 나마스 왕자님도 아십니 까?”
“파르고닌 타고다의 살이 빠졌다 는 이야기는 꽤 유명하지. 그 뒤에 네가 있었다는 것도 들었고……요한은 이제야 나마스가 자신을 찾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파룬의 홍보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암시를 걸어 달라. 뭐 그런 얘기를 하러 오셨습니까?”
"그래. 가능한가?”
“예.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만.”
나마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것을 바라보던 요한은 씩 웃었 다.
“그 전에. 전 성철쇄 기사단의 부단장인 유노를 죽였습니다.”
“그건 알고 있다.”
나마스는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 어나갔다.
"하나 확인 결과 유노는 왕궁에출입이 가능한 기사로서 자신의 실 력을 숨겼고,또한 아공간 주머니 의 신고도 하지 않았다.”
“그렇죠.”
“거기에 마창과 폭발 마법석이라 는 금지 품목도 가지고 있었다.”
“예.”
“만약 그가 그것으로 애먼 짓을 했다면 어쩔 뻔했는가.”
나마스는 요한이 부단장을 죽였 다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위험을 사전에 막았다는 것 을 더욱 중요시했다.
“성철쇄 기사단에서 유노를 따르 던 이들은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의 잘못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지.”
“그럼 나마스 왕자님은 저를 원 망하지 않는다는 겁니까?”
“원망할 이유가 없잖은가.”
나마스의 시원스러운 태도에 요 한은 가볍게 박수를 쳤다.
“놀랍군요. 제가 알기로 나마스 왕자님을 후원하는 세력은 적다고 들었는데.”
요한이 감탄하며 말하자 나마스 는 움찔했다.
그것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두 명 있는 왕국의 후작 중 하나 가 헤르듀크를 지원한다.
거기에 마고 후작을 따르는 귀족 들도 절반 이상이 헤르듀크를 지지 한다.
하지만 나마스를 따르는 귀족들 은 그에 비하면 정말 얼마 안 되었 다.
그런 상황에서 유노의 지지는 그 에게 상당한 힘이 되었었다.
“그 몇 안 되는 세력을 제가 부 숴 버렸는데도……"으음…… 그렇다 한들 잘못된 것을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이지.”
요한이 유노를 죽임으로써 나마 스에게 치명타를 날린 것은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마스는 그 것을 원망하지 않았다.
놀라는 요한을 향해 그는 기대감 을 품었다.
“그래서. 해줄 수 있다는 거냐. 없다는 거냐.”
“해드릴 수는 있습니다만. 이 암 시는 한번 건다고 계속 걸리는 게 아닙니다.”
“듣기로는 두 달에서 석 달 정도 지속된다고 하더군. 맞나?”
“맞긴 합니다만. 사람에 따라 금 방 풀릴 수도 있습니다.”
요한의 설명을 들은 나마스는 입 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고민하는 그를 향해 요한은 웃으 며 말했다.
“제가 보기에 왕자님은 암시를 걸어도 한 달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을 것 같군요.”
“그게 정말인가?”
“예.”
요한의 대답에 나마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쩔 수 없나.”
“세뇌라면 좀 더 오래가게 할 수 는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그건 좀 그렇지요?”
약물과 정신마법,고통을 통해서 세뇌는 가능했다.
하지만 그 후유증이 대단하니 함 부로 쓸 수는 없다.
“그런가.”
암시가 고작 한 달 밖에 가지 않 는다면 굳이 받을 이유는 없었다.
만약 요한이 자신의 밑에서 매달 걸어준다면 상관없겠지만.
요한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 쯤은 나마스도 알고 있었다.
“그럼 하실 말씀은 그게 끝입니 까?”
"그래……풀죽은 어조로 대답한 나마스가 터벅터벅 돌아가 버린다.
로도와 기사들은 황급히 그의 뒤 를 따랐다.
멀어지는 그를 보며 요한은 쓴웃 음을 지었다.
“반골 기질이 마음에 들기는 하 지만 지금은 내 코가 석 자라……열 칸짜리 아공간 주머니를 얻어 시간을 벌었다고 해서 놀 여유는 없다.
시간을 벌었다면 다른 훈련을 해 야 할 것 아닌가.
“끄웅……!!”
홀로 남게 되자 요한은 다시 기 구를 이용한 훈련에 매진했다.
한참 훈련을 하고 그가 잠시 쉬 기 위해 자리에 앉았을 때 궁내부 원이 달려왔다.
“요한 공자님. 여기 계셨군요.”
“음?”
“토도 백작님께서 돌아오셨습니 다. 지금 가시겠습니까?”
“그래?”
‘이왕이면 몇 세트 더 하고 싶은 데……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자리에서 일어난 요한을 향해 궁 내부원은 수건을 내밀었다.
"이것으로 땀이라도 닦으십시오.”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요한은 안뜰에서 빠져나왔다.
토도 백작의 방으로 향하던 요한 을 향해 궁내부원은 웃으며 말했다.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 모 양이군요. 축하드립니다.”
“좋은 일? 아. 좋은 일이지.”
시간을 벌어 훈련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
어찌 좋지 않겠는가.
요한이 웃으며 대답하자 궁내부 원은 살짝 고개를 조아렸다.
“그럼 요한 공자님께 항상 좋은 일만 있기를 빌겠습니다.”
그의 인사를 받고 요한은 고풍스 러운 문을 열었다.
“어서 오게.”
자리에 앉아 있던 토도 백작은 차분히 환영했다.
그의 옆에 있던 헤이로나는 여전 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자네 덕분에 내 아내의 원수를 갚게 되었어. 자네는 엘도만 가문 의 은인이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타로트 사령관께 들었습니 다만.”
“아. 그래……토도 백작은 허공에 손을 넣었 다.
그의 손에서 이끌려 나온 것은 고급스러운 상자였다.
“우리 가문에서 소중히 간직하던 물건이지. 받아주게나.”
“감사합니다.”
상자를 바로 연 요한은 안에 담 긴 앰플을 그대로 입에 넣었다.
‘좋아. 열 칸이다.’
허공에 손을 넣어보니 여섯 칸밖 에 되지 않던 아공간 주머니가 네 칸이나 늘어나 있었다.
열칸으로 변환된 아공간을 확인 한 요한이 만족하자 토도 백작은 쓰게 웃었다.
“오늘은 안 좋은 일만 있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기쁜 일이 있 구나.”
“축하드립니다.”
애초에 아공간 주머니 외에는 토 도 백작과는 딱히 할 말이 있는 것 도 아니었다.
그는 감사한 마음에 좀 더 이야 기를 나누고 싶어했지만.
요한은 쓸데없는 일이 괜히 시간 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그래. 다시 한 번 감사인사 를 해야겠군. 고맙네.”
토도 백작이 고개를 숙이자 요한 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야 할 일을 하고 받을 것을 받았을 뿐입니다.”
말을 마친 그가 나가자 뒤따라 나온 헤이로나가 요한을 잡았다.
“공자님.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뭔데?”
“케리만의 가죽에 새겨진 그 문신이 뭔지 아시나요?”
“당연히 알지.”
회귀 전에 얻었던 정보들을 떠올 리며 요한은 손사래를 쳤다.
“그건 오래된 자의 문양인데. 딱 히 신경 쓸 만한 거 아니니까 관심 두지 마라. 엮여봐야 피곤한 거야.”
요한의 대답에도 헤이로나는 머 뭇거 렸다.
"사실 스승님의 방에서도 그 문 신과 비슷한 문양을 본 적이 있어 요.”
“•…"뭐?”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