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권 6화
131. 싫으면 관두고 (1).
몬스터 토벌을 한 지 십 일째 되 는 날.
요한은 네 번째 토벌을 가기 위 해 아침 일찍 일어났다.
“으…… 안 피곤하십니까……?”
지난 십 일간 그가 토벌한 몬스 터의 수는 대단했다.
거대 거미인 랏고데사가 다섯.
트롤이 열일곱.
오우거가 셋.
그 외 다른 몬스터들도 셀 수 없 을 정도로 많았다.
그 정도의 업적을 세웠으면서 요 한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워할 뿐이었다.
“피곤은. 아주 신나는데.”
타로트가 말했고,또 요한도 알 고 있는 것처럼 헨드릭 산맥은 훈 련에 딱 맞는 곳이었다.
자는 순간조차도 훈련이 될 수 있는 곳이다.
밥을 먹다가도 싸워야 하는 곳이 다.
성장이 급한 요한에게 이런 곳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디가 마음에 들겠나.
“진짜 대단하십니다……잠에 취한 채 일어나려던 야스진 이 이불에 걸려 넘어졌다.
아파하는 그를 한심하다는 듯 내 려다보던 요한은 몸을 돌렸다.
“넌 그냥 잠이나 자라.”
방에서 나온 요한은 곧장 타로트 의 방으로 향했다.
이미 그의 방에는 선객이 있었 다.
“어서 오게나.”
“거 참 대단하군. 피곤하지도 않 나?”
“젊으니까요.”
마고 후작과 헤르듀크 왕자.
그들이 차려입고 타로트와 만나 고 있었다.
웃으며 인사를 건넨 요한은 자리 에 앉으려다 손가락을 튕겼다.
“아. 오늘 떠나신다고 하셨지요?”
"그래. 그래도 얼굴은 보고 가게 되어서 다행이군.”
헤르듀크는 쓰게 웃으며 자리에 서 일어났다.
그 역시 요한의 전과에 대해서는 들었다.
그정도 몬스터 토벌을 했지만 요 한은 피로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 다.
아무리 그가 마스터라지만 이건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는 다.
‘진짜 탐나는 인재다……겉보기에는 비쩍 말라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요한이다.
그런 요한이 이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누가 믿겠나.
헤르듀크가 요한을 탐낸다는 것 을 눈•치 챔 타로트는 차분히 말했 다.
“거기에 신의도 있고. 난 처음에 는 대충 놀다가 올 줄 알았어.”
사실 기껏해야 오크나 고블린 두 어 마리 잡고 끝낼 줄 알았다.
몬스터 토벌을 가도 몬스터를 못 봤다. 라는 말로 끝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키스트의 보고에 의하 면 요한은 달랐다.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미친 듯 이 몬스터들과 싸우고,또 도망치 는 놈들까지 잡아 죽였다.
그 위험한 헨드릭 산맥을 마치 제 집 앞마당처럼 취급하고 있다.
그런 인재다보니 놓치는 것이 아 까웠다.
“다시 한 번 제안하지. 여기 남 을 생각은……“없습니다.”
“그래? 아쉽군.”
타로트도 요한을 탐낸다는 것을 알게 된 헤르듀크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다들 헛물만 들이마시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피식 웃은 요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다키스트는 어디 갔습니 까? 여기서 만나서 같이 가기로 했 는데.”
“그게……그때 였다.
벌컥 문이 열리며 다키스트가 떨 떠름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어. 왔냐? 준비는 다 했지?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러냐?”
요한의 질문에 다키스트는 차분 히 답했다.
“필로틴 제국의 사자가 찾아왔습 니다.”
“그래? 생각보다 늦었네. 누가 왔지?”
요한이 묻자 다키스트는 망설였 다.
타로트가 대답을 재촉하듯 말없 이 바라보자 다키스트는 힘없이 답 했다.
“율경이 직접 찾아왔습니다.”
그의 대답에 이 방에 있는 모두 의 표정이 굳었다.
"이거 가려고 했는데 그냥 갈 수 는 없겠군.”
천하십강이며 황족인 그다.
그와 대화를 하려면 그에 걸맞은 작위가 있어야 했다.
아직 떠나지 않은 지금이라면 그 가 나서는 게 맞았다.
“내가 나서도 괜찮은데. 아니면 헤르듀크가……“이런 일로 왕족이 직접 나설 필 요는 없지요.”
요한의 말에 마고 후작은 동의했 다.
“율경은 천하십강 중 하나입니 다. 그리고 블링크 부츠를 가지기 도 했지요.”
타로트나 헤르듀크가 나섰다가 율경이 공격 후 블링크로 도망친다 면?
그 피해는 막심할 것이다.
“그래도 여기 와서 제대로 된 일 한번 하겠군요.”
“그래. 녀석아.”
요한이 북방에 따라온 이유는 마 고 후작과 헤르듀크의 보호 때문이 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것보다는 자 기 일에 집중했었다.
떠날 때가 되어서야 본래 임무를 하게 된 요한에게 마고 후작은 투 덜 거렸다.
“그나저나 다키스트. 율경 전하 께선 어디 계신가?”
“성벽 앞에 있습니다.”
“그래? 혼자 오셨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기사 열 명, 그리고 마법사 한 명이 함께 왔습 니다.”
“고작 그거?”
“하지만 후방에는 천 명쯤 되는 부대가 있습니다.”
다키스트가 긴장하며 말하자 마 고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요한. 우리는 어떻게 하 지?”
“그냥 저만 가면 됩니다.”
요한의 말에는 일말의 자신감조 차 없었다.
마치 당연한 것을 말하는 것 같 다.
그의 태도에 마고 후작은 안정감 을 느꼈다.
“너만 믿고 있으라는 거니?”
“에이〜 후작님께서 저 말고 믿 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크흐. 그렇긴 하지.”
사이좋은 조손처럼 마고 후작과 요한은 서로에게 싱글거렸다.
그것을 지켜보던 타로트는 다키 스트에게 명령했다.
“레인저들을 전부 준비해 두도 록. 그리고 에슐론은 언제든지 처 형할 준비도 해놔라.”
“예!”
“그럼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왕 자님.”
"음. 나는 혹시 모르니 기사들을 준비시켜 두지.”
협상이 결렬될 경우를 생각해야 한다.
그때는 율경과 본격적으로 싸워 야 한다.
레인저는 원거리에는 강하지만 근접전은 기사만 못하다.
그때를 대비해 기사들을 준비시 켜놓아야 했다.
헤르듀크도 익스퍼트고,또 뛰어 난 기사다.
그런 만큼 기사들을 통솔하는 정 도는 가능했다.
“말씀드리지 않아도 알아서 해주 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래 봬도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으니까.”
“하하하…… 그럼 부탁드리지요.”
헤르듀크에게 대충 답해주고 요 한은 밖으로 나갔다.
그를 따라 나온 마고 후작과 함 께 성문에 도착했을 때.
요한은 꽤 많은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들 전투를 의식하고 있는지 전 원 무장을 하고 있었다.
"별일 없을 거니까 힘들 빼고 있 어.”
에슐론을 잡고 있는 이상 율경도 함부로 공격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레인저와 병사들은 쉽게 긴장을 풀지 못했다.
"쯧. 문이나 열어.”
잠시 후 성문이 열렸다.
해자 위에 도개교가 놓이자 요한 은 말없이 걸었다.
성벽 위에 도열한 레인저와 병사 들이 화살을 겨누고 있는 것을 본 마고 후작은 쓰게 웃었다.
“이거 화살 한번 잘못 날아가면 전면전이 펼쳐지겠군.”
“그럼 율경 잡고 시작하는 거죠.”
무심히 대답한 요한은 사정거리 밖에 서 있는 율경을 보았다.
요한에게 당한 상처는 이미 회복 된 것처럼 보였다.
“……네놈.”
요한이 다가가자 율경의 짙은 눈 씹이 꿈틀거렸다.
“몸은 좀 괜찮냐?”
그가 빈정거리듯 말하자 율경 뒤 의 기사가 버럭 화를 냈다.
“감히 필로틴 제국의 황족을 앞 에 두고 그리 뻣뻣하다니!”
"난 로드만 왕국 귀족이라서. 굳 이 존대할 필요는 없잖아?”
자신에게 화를 낸 기사에게 요한 은 유들유들한 태도를 보였다.
보는 이로 하여금 성질이 나게 하는 그 태도는 다른 기사들의 분 노를 불렀다.
기사들이 검자루에 손을 가져가 자 요한은 손을 들었다.
“이차전 하자고?”
요한의 손에서 붉은 오러 블레이 드가 피어올랐다.
저 불길하기 그지 없는 붉은 오 러 블레이드에 수많은 동료들이 죽 었다.
필로틴 제국의 기사들은 긴장하 며 반쯤 검을 뽑았다.
언제든지 서로 싸울 준비가 되었 다.
요한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을 때 율경은 입을 열었다.
“메곤. 빠져 있도록.”
메곤이라 불린 기사는 까득 이를 갈았다.
죽일 듯 요한을 노려보던 그가 뒤로 물러나자 마고 후작이 웃으며 말했다.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율경 전 하.”
“오래간만이오. 마고 후작. 한…… 오 년만인가?”
“그쯤 되었습니다.”
"그럼 본론부터 말하지.
간단한 안부 인사가 끝났다.
본격적으로 협상을 시작할 때가 되자 율경은 천천히 말했다.
"에술론을 돌려다오.”
“맨입으로?”
요한이 순순히 에슐론을 돌려줄 것이라고는 율경도 생각하지 않았 다.
그는 짧게 혀를 찬 후 입을 열었 다.
“무엇을 원하나. 돈? 마법 무기? 재료? 아니면 땅을 바라나?”
“원하는 것은 두 개야. 일단 블 링크 부츠.”
히죽 웃은 요한은 율경의 가슴을 가리켰다.
“다음에 싸울 때 또 도망치면 귀 잖잖아.”
“네놈……!! 그때는 그저 방심했 을 뿐이다!”
요한의 조롱에 율경은 이를 갈았 다.
천하십강에 올라간 이후 이런 모 욕은 처음이다.
그가 으르렁거리자 요한은 일부 러 어눌한 어조로 빈정거렸다.
“블〜 링〜 크〜”
“큭!”
“도망치는 꼴이 참 웃기던데.”
“……소드 댄싱을 제대로 익혔더 군. 광약의 제자인가?”
율경이 요한에게 밀린 이유는 간 단했다.
요한이 익힌 검술인 소드 댄싱 때문이다.
투척 공격에 있어서 소드 댄싱은 절대적인 우위를 가진다.
그렇기에 율경을 압도한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다.
소드 댄싱에도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드 댄싱은 다수의 적을 상대 하는 데는 약하지. 만약 여기서 우 리가 널 잡고.”
율경의 뒤에 있던 기사들이 무기 를 잡았다.
마법사도 지팡이를 들어 올리자 요한은 피식 웃었다.
"그 사이 저 뒤의 병사들이 공격 한다면 어떨까?”
“그럼 해보든가.”
참으로 당당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싸울 수 있는 이는 요한뿐이다.
마고 후작이야 전투에 들어서면 일개 병사만 못 하다.
그렇다면 요한 혼자서 싸워야 한 다.
그런데도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 지 않았다.
“자자. 그리 싸우지 마시지요.”
“댁이 프리온인가?”
“하하. 소문의 요한 공자님께서 미천한 마법사 따위를 알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알아야지. 율경의 지낭이라 불리는 사람인데.”
프리온은 그저 빙긋 웃을 뿐이었 다.
그는 지팡이를 툭 내리고 여유롭 게 말했다.
“에슐론을 돌려주십시오. 만약 싸우고자 했다면 이렇게 오지도 않 았을 겁니다.”
"그럼 그에 걸맞은 태도라도 보 여야 하는 것 아닐까? 무릎 꿇고 기다려도 모자랄 판국에 칼부터 갈 고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대신 사죄드리 겠습니 다.”
프리온은 요한을 향해 고개를 숙 였다.
“에술론을 돌려주십시오.”
“다시 말하지만 내가 내걸 조건 은 두 가지다. 블링크 부츠,그리 고.”
요한은 율경의 가슴을 똑바로 가 리 켰다.
“댁이 일황자를 비밀리에 지원하 는 대가로 받은 드래곤 스케일. 그 두 개를 준다면 에슐론을 돌려주지. 그리고 이번 무례에 대한 사죄도 해야겠지?”
요한은 히죽 웃으며 손을 내밀었 다.
“오십만 골드정도면 사과를 받아 주지.”
돈과 블링크 부츠까지야 그렇다 고 치자.
하지만 드래곤 스케일은 달랐다.
‘어디서 이 정보가 빠져나간 거 지?’
율경은 일황자를 지지해주는 대 가로 드래곤 스케일을 얻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걸 필로틴 제국도 아니고 로드만 왕국 쪽에서 알고 있다니•"…살짝 굳은 그의 표정을 보며 요 한은 히죽 웃었다.
“없다고 말할 생각은 아니겠지?”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군 요. 요한 공자님. 율경 전하께서는 그런 것을 받지 않으셨습니다만.”
"그래? 그럼 난 에슐론의 오른팔 자르고 이걸 말해주면 되겠네.”
요한의 대답에 프리온은 간신히 미소지 었다.
하지만 그의 미소에는 미세한 당 혹감이 담겨 있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