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권 5화
130. 한 놈 잡았고 (2).
길로틴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요 한은 검을 잡은 손을 풀지 않았다.
끔찍하게 고통을 호소하던 그가 천천히 허물어졌다.
그가 완전히 죽은 것을 확인한 요한은 야진을 가리켰다.
병사들이 야진을 끌고 오자 요한 은 그의 복부에도 검을 꽂았다.
깔끔히 두 명의 처분을 끝낸 요 한은 빙글 몸을 돌렸다.
레인저들과 병사들은 요한의 처 분을 나무라지 않았다.
“저희가 해도 되는 일이었는 데……“괜히 공자님의 손만 더럽힌 것 같습니다.”
이곳은 언제든지 전투가 벌어질 수 있는 곳이다.
그런 만큼 동료들과의 신뢰 문제 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다행히 요한이 둘을 처벌하자 병 사들은 안도했다.
하지만 그 처벌까지 요한이 해버 린 것이 괜히 미안했다.
떨떠름해하는 그들에게 요한은 무덤덤히 말했다.
“뒤는 맡기도록 하지. 검은 요새 의 방식대로 처리하고 확인까지 부 탁한다.”
“예!”
병사들이 나서서 길로틴과 야진 의 목을 베었다.
그들 수급을 따로 챙긴 병사들은 몸을 챙겨들었다.
배신의 죄를 물어 처벌된 자는 매장조차 될 수 없다.
목이 베이고 남은 시체는 밖에 내놓아 몬스터들의 먹이로 삼는 것 이 검은 요새의 규칙이었다.
병사들이 시체를 처리하러 간 사 이 다키스트가 요한에게 다가갔다.
“요한 공자님.”
“왜.”
“몬스터 토벌 임무를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모시고 싶습니다.”
‘얘는 왜 이렇게 부담스러운 눈 으로 보지?’
다키스트의 진지한 시선을 마주 하던 요한은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다.”
“하지만……“넌 레인저들과 같이 에슐론이나 지키도록.”
에슐론은 마스터다.
지금이야 잠자코 있지만 체력을 회복하거나 틈을 보이면 탈출을 시 도할 가능성은 당연히 있었다.
그것을 막으려면 익스퍼트 급의 레인저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어야 했다.
“지금도 지하감옥에는 레인저들 이 있습니다만.”
"더 들어가. 더. 나 수행한다고 전력 빼지 말고.”
“헨드릭 산맥은 위험합니다.”
"길잡이와 획인 역을 맡을 레인 저 하나만 있으면 된다.”
“그럼 그 역할을 제가 맡아도 되 겠습니까?’
다키스트의 진지한 어조에 요한 은 걷던 발걸음을 멈췄다.
"네가? 뭐하러?”
그 일은 굳이 레인저 캡틴인 다 키스트가 할 일은 아니었다.
그것 말고도 다키스트가 할 일은 많았다.
“요새 일하기 싫어?”
요한이 떨떠름히 묻자 다키스트 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만.”
“검은 요새에서 나가고 싶어?”
“그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굳이 네가 나서는 건 데?”
“그건……잠시 머뭇거리던 다키스트는 요 한을 똑바로 응시했다.
“저는 공자님께서 로드만 왕국의 희망이 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앤 또 뭔 헛소리야.’
어딘가에서 이상한 오해를 한 모 양이다.
요한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을 아 십니까?”
“사회 지도층이나 상류층이 사회 적 위치에 걸맞은 모범을 보이라는 얘기 아냐.”
하지만 말이야 좋지 누가 그렇게 하겠나.
실제로는 검소하고 모범적이고, 용맹한 척하지만.
많은 귀족들이 자기 이득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실이다.
요한이 시큰둥해 하자 다키스트 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제가 보기에 공자님은 다른 귀 족들과는 다르십니다.”
“너 뭔가 굉장한 착각을 하는 모 양인데. 난 그 정도로 모범적인 사 람 아니다.”
“공자님께선 검은 요새와 백성들 을 위해서 케리만을 직접 잡으셨습 니다.”
“그건……타로트에게 보증 부탁하려고 한 일이다.
“그리고 저희들을 탈출시키기 위 해서 천하십강과 맞서 싸우셨지요.”
“그거야……율경과 편하게 싸우기 위해서.
그리고 그에게서 얻을 것이 있었 고 덤벼든 그가 거슬렸기 때문이 다.
모두 요한 자신을 위해서 한 일 일 뿐이다.
하지만 다키스트에게는 충분히 다른 의미가 될 수 있었다.
“요한 공자님이야말로 진정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해다. 나 그런 사람 아니라니 까.”
요한은 딱 잘라 그의 생각을 부 정했다.
하지만 다키스트의 뜻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 말씀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그런 분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하,‘참나. 회귀 전에는 그렇게 포섭 했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더니.’
다키스트가 무슨 생각으로 이러 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쁠 것은 없었다.
어쨌든 다키스트는 꽤나 쓸만한 레인저였으니 말이다.
"그래. 뭐 네가 하겠다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냐. 그런데 그렇게 해도 되냐?”
레인저의 캡틴이 그렇게 자리를 비워도 되나 싶었다.
요한이 묻자 다키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령관께는 허락을 받겠습니다.”
“그래…… 무리는 하지 말렴. 안 된다고 하는데 억지로 나서지 말고. 나만 피곤해지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공자님께서는 허락하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아까에 비해 한결 편해진 얼굴로 다키스트는 뒤로 살짝 물러났다.
그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것을 보며 요한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음…… 이것도 좋은 영향이라고 봐야 하나?’
나비효과로 길로틴을 쉽게 잡은 것처럼.
어쩌면 나비효과 덕분에 다키스 트의 호감을 산 것일지도 몰랐다.
“에이. 모르겠다.”
요한은 연병장에서 벗어났다.
그가 멀어지자 고개를 든 다키스 트는 주먹을 꽉 쥐었다.
* * *다음 날이 되자 요한은 검 한 자 루만 챙기고 숙소를 나섰다.
“공자님! 여기 식사 가져가셔야 지요!”
케리만을 잡은 것 때문일까?
검은 요새의 사람들은 요한에게 꽤나 호의적이었다.
덕분에 부드러운 빵과 매콤한 육 포를 잔뜩 받은 야스진은 요한에게 쉽게 식량을 전할 수 있었다.
“이정도면 한 끼는 되지 않겠습 니까?”
“그러겠지.”
“모자라면 사냥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공자님. 요리는 하실 줄 아십니까?”
“야전 요리는 내 특기 중의 특기 지.”
"하핫. 공자님께서 못하시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요한이 자신만만해 하자 야스진 은 흐뭇해하며 작은 주머니를 내밀 었다.
“이건 뭐냐?”
요한은 주머니를 살짝 열어보았 다.
곱고 하얀 가루와 거친 검은빛의 가루가 있었다.
“축복받은 소금과 후추입니다.”
“뭐!? 후추!? 이 귀한 걸?”
후추는 녹색 산맥에서만 자라는 향신료다.
비쌀 때는 같은 양의 금과 거래 될 정도였다.
후추 하나만 있으면 누린내가 심 한 고기도 쉽게 먹을 수 있었다.
회귀를 하게 되면 가급적 미식을 즐기기로 한 요한이다.
그런 그에게 이런 향신료는 정말 소중한 물건이었다.
“이번에 온 보급품에 후추가 있 었답니다.”
"와…… 그래? 그런데 이걸 나눠 준다고? 누가 준 건데?”
“조리장이 줬습니다.”
생각보다 더 예상하지 못한 사람 이 줬다.
요한이 의아해하자 야스진은 코 를 쓱 닦았다.
“조리장의 아들이 케리만에게 죽 었답니다.”
“아……“그 감사를 표시하는 거라고 하 더군요.”
“그래? 일단 고맙다고 전해둬 라.”
소금과 후추만 있어도 고기의 맛 이 확 살아난다.
이정도 양이면 이 주 동안 사냥 과 채집으로도 먹고 살 수 있겠다 싶었다.
"암염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되겠군.”
“그리고…… 이것도. 혹시 모르 니 가져가십시오.”
“상급 힐링 포션? 이건 또 누가 주는 건데?”
“제가 드리는 겁니다.”
야스진이 내민 힐링 포션을 이리 저리 살피던 요한은 빙긋 웃었다.
“영지에서 가져온 거냐?”
“아뇨. 수도에 들렀을 때 구입한 겁니다. 공자님께 뭔가 일이 생길 것 같았습니다.”
히죽거리는 야스진을 향해 요한은 마주 웃었다.
이제는 요한의 최측근이나 다름 없는 야스진이다.
그러다보니 언제 무슨 일이 생겨 도 대응하도록 이런 준비는 해둔 것이었다.
“부디 무사히 돌아오시길 빌겠습 니다. 뭐……힐끔 헨드릭 산맥 쪽을 본 야스 진은 어깨를 으쏙였다.
“고작 헨드릭 산맥의 몬스터 따 위가 공자님을 건드릴 수나 있을지 의문입니다만.”
“그래. 그래. 걱정 말고 넌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
“다녀오십시오.”
그의 배웅을 받은 요한은 터벅터 벅 걸었다.
이른 새벽인데도 그를 배웅하기 위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공자님! 북쪽 다곤일 지역에는 랏고데사가 있답니다. 그쪽에는 가 지 마십시오.”
“메탈 슬라임의 정보가 있습니다 만……“삼중로에서 우측으로 빠지면 절 벽지대가 많습니다. 거기는 조심하 시기 바랍니다.”
병사들과 레인저들의 조언이 이 어 졌다.
그들의 정보를 받으며 성문에 도 착한 요한은 그곳에 서 있는 다키 스트와 예모를 발견했다.
“사령관께서 허락하셨냐?”
“예.”
"그래? 별일이네.”
말은 이리하면서도 요한은 타로 트의 속셈을 눈치챘다.
‘다키스트를 이용해서 내 환심을 사려는 것이군.’
“그럼 따라오고…… 예모. 짐 다
쌌냐?”
“예.”
어제 요한에게 명령을 듣고 짐을 챙겨 나온 예모였다.
오늘 나가는 김에 요한과 함께 나가기로 했다.
"필로틴 제국과 로드만 왕국 사 이에 전쟁이 날지도 모르는데…… 괜찮을까 싶습니다.”
“괜찮아. 전쟁 안나. 그리고 나면 또 어때?”
전시가 되면 더 움직이기 편해진 다.
잘만하면 바로 로만 후작의 뒤통 수를 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요한은 품에 넣어 둔 봉투를 꺼 냈다.
“이 안에 특별 통행증과 편지가 있다. 이걸 전해줘. 그리고 이건 네 거다.”
일반 통행증과 봉투를 내밀자 예 모는 그것을 받아들었다.
잠시 생각하던 예모는 어색하게 웃었다.
“제가 이걸 가지고 도망치면 어 떻게 하실 겁니까?”
요한이 준 임무는 필로틴 제국의 황자를 만나는 일이다.
지금 필로틴 제국 상황에서 계승 권을 가진 황자를 만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지금 제국은 견제와 견제가 이어 지고 있었다.
만나는 사람들도 가리고 조심해 야 하는 만큼 최악의 경우 의심을 사고 죽을 수도 있었다.
그 위험을 피하기 위해 도망치는 일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예모가 조심스레 묻자 요한은 바 로 되물었다.
"도망치게?”
“그건 아니지만요.”
“내가 널 어디서 만났는지 잊어 버렸나 본데……예모와 요한이 만난 곳은 도둑 길드다.
즉 정보를 다루는 곳.
아무리 예모가 숨어버린다고 하 더라도 요한이 찾고자 한다면 못 찾을 리 없었다.
결국 도망쳐봤자 잡히는 것은 시 간문제라는 이야기다.
‘목에 목줄이 걸린 것 같네.’
예모는 시무룩히 고개를 숙였다.
그녀를 힐끔 본 다키스트는 요한 이 들고 있는 가방을 받았다.
“설마 이거 전부 식량입니까?”
가방을 열어 본 다키스트는 당황 했다.
안에 있는 것은 빵과 육포 뿐이 었다.
자세히보니 요한은 경갑에 검 한 자루만 들고 갈 뿐 이었다.
다른 장비 따위는 아무것도 없 다.
“먹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일이지.”
“아. 예. 주,중요하지요.”
"그럼 가자고.”
닫혀 있던 성문이 열렸다.
두 번째 성문까지 빠져나간 요한 은 예모의 등을 툭 쳤다.
"잘 갔다 와라.”
"예에……예모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요한은 다키스트와 함께 숲길로 빠 졌다.
그가 멀어지는 것을 응시하던 예 모는 맥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에휴…… 이래 죽나 저래 죽 나……도망쳐도 산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나마 살 확률이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
예모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