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권 16화
116. 저 비싼 몸입니다 (2).
“공자님……야스진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검은 요새는 왕궁과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죄를 지으면 귀족이고 뭐고……왕궁에서는 검을 뽑든,금지 구 역에 들어가든.
큰 일만 아니면 큰 죄를 묻지 않 는다.
하지만 검은 요새는 달랐다.
군사시설이기에 통제가 철저했 다.
그 통제를 따르지 않은 타국의 왕족 하나가 처벌을 받았다는 이야 기도 있을 정도다.
그렇기에 야스진은 걱정스러웠 다.
“그런데 거긴 왜 가시는 겁니 까?”
자신들에게 살짝 묵례한 레인저 의 눈치를 살핀 야스진이 물었다.
하지만 요한의 대답은 없었다.
결국 야스진은 요한을 꽉 잡았 다.
“공자니 임!”
“거 소리 좀 치지 마라. 자식아. 아예 타로트 사령관한테 가서 말하 지그래? 우리 심처 갈거라고.”
“으 ”
“필요한 게 있으니까 가는 거 지.”
“그게 뭔데요?”
“순수한 마력 결정.”
“예? 그게 뭡니까?”
요한이 입을 다물고 히죽 웃자 야스진은 고개를 푹 숙였다.
“하아……대부분의 마물은 지성이 아닌 본 능에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몇몇 특별한 마물은 지성 을 가지는데 그런 경우는 두 가지 로 나뉜다.
첫 번째는 아주 오래 살아남아 이성이 본능을 억누르는 경우다.
물론 이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애초에 지성을 얻을 정도로 오래 산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경험을 쌓는다는 이야기다.
본능에 우선해서 살아가는 몬스 터들이 지성을 얻을 정도로 살아가 는 것 자체가 희박한 확률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
그런 경우가 발생하긴 한다.
그 경우 그 몬스터는 몬스터 로 드라 불리며 엄청난 재앙이 되고는 했다.
그런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두 번째에 속했다.
마물이 지성을 얻는 두 번째 경 우바로 막대한 마력을 받아들이는 경우다.
헤그의 던전에서 요한이 만났던 드라이어드가 좋은 예였다.
그 드라이어드는 정제되지 않은 미스릴이 뿜어대는 마력을 오랫동 안 받아들였다.
그러다 보니 던전을 지키는 가디 언도 잡아먹을 정도의 힘과 지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요한은 유아랑과 드라이어드를 기르고 있었다.
유체일 때 충분한 영양을 주고.
지성을 가지게 하여 교육을 시켜 야 한다.
즉 두 번째 경우처럼 지성을 가 지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재료 중 하 나가 순수한 마력 결정이었다.
‘기르기는 했지만 지성을 얻게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니까……이것을 구하기 위해서 여기까지 온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출입금지구역이라 해서 들어가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겁먹은 야스진과 당당한 요한.
그들은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느긋하게 본성의 입구를 지나쳤다.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검은 요새의 본성에서 나온 요한 은 훈련장 쪽으로 향했다.
지하로 가려면 본성으로 내려가 야 한다.
그런데도 요한이 다른 곳으로 가 자 야스진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본성의 지하 일 층도 레인저들 이 지키고 있어.”
“그렇죠.”
“그런데 거기로 들어가겠냐?”
“아니었습니까?”
언제 어디에서든 항상 당당한 요한이다.
그렇기에 정면돌파를 할 것이라 생각한 야스진은 의아해했다.
그를 향해 요한은 콧방귀를 뀌었 다.
“나 혼자 가는 거면 상관없지만. 너 데리고 가려면 거기 통과하는 건 무리지.”
야스진은 격하게 동의했다.
아무리 요한이라고 하더라도 검 은 요새 안의 레인저들을 전부 상 대하기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자신이라는 혹을 달고 어 떻게 하겠나.
그가 안도하는 사이 요한은 훈련 장을 지나 외성 근처에 도착했다.
성벽과 이어지는 하수구를 확인 한 요한은 발걸음을 멈췄다.
"설마 여기로 들어가시려는 것은 아니시 겠지요?”
고약한 냄새가 나는 하수구를 가 리키며 야스진은 손가락을 튕겼다.
요한이 자신을 데리고 온 이유를 깨달은 것이다.
“정화를 해야 하는 것이라면 바 로 하겠습니다.”
레인저들을 피해 들어가는 것이 라면 야스진도 말릴 생각이 없었다.
그가 의욕적으로 나서자 요한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요한은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렸 다.
훈련을 위해 검은 요새에 들어가 레인저 생활을 했었다.
그러며 검은 요새의 많은 비밀을 알아냈는데 이 또한 비밀 중 하나 였다.
검은 요새의 심처에 들어가는 방 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본성의 지하실을 통하 는 것.
두 번째는 외성의 비밀통로를 이 용하는 것.
물론 입장의 난이도를 따지면 비 밀통로 쪽이 훨씬 어렵다.
“망이나 보고 있어.”
사람이 오지 않는 곳이다.
주변에 벽밖에 없는데 뭔 망을 보라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야스진은 순순히 그의 말 을 따랐다.
그 사이 하수구에서 정확히 오십 발자국을 걸어간 요한은 외벽을 툭 툭 쳤다.
찾던 것을 발견하자 그는 오러 블레이드를 뽑았다.
불길한 붉은색 오러가 나타나자 그는 망설임 없이 벽돌 하나를 향 해 쑥 밀어 넣었다.
“벽은 왜……?”
망을 보던 야스진은 요한의 알 수 없는 행동에 의아해했다.
하지만 잠시 후.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났다.
“세상에.”
외벽의 벽이 열린 것이다.
야스진은 입을 쩍 벌렸다.
외벽에 이런 통로가 있는 줄 누 가 알았겠는가.
당황한 야스진을 데리고 와 안으 로 밀어 넣은 요한은 통로 안으로 들어간 후 벽을 닫았다.
-쿠구궁…….
바깥쪽에 있을 때는 들리지 않았 던 소리가 들리며 통로가 잠겼다.
검은 요새의 비밀을 알게 된 야 스진은 입을 쩍 벌렸다.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던 야스진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건…… 발광석이잖습니까.”
“어? 어떻게 알아?”
오래된 던전이나 마법사의 연구 실에서 볼 수 있는 발광석을 야스 진이 알자 요한은 놀랐다.
그의 시선을 받으며 야스진은 어 색하게 웃었다.
“저도 나름대로 경험이 많습니 다.”
"무슨 경험?”
“술집에서 모험가들이 떠드는 이 야기를 들었었죠. 맞습니까?”
“음. 발광석 맞아.”
“그런데 이 통로는 뭡니까? 설마 여기 던전입니까?”
발광석이 내뿜는 빛에 의지하며 요한은 통로를 걸었다.
그를 따르던 야스진이 묻자 요한 은 손을 들어 발걸음을 멈췄다.
“검은 요새를 만든 헨드릭 로드 만은 평생 애인을 만들지 않았지.”
“그거야 유명한 이야기잖습니까. 헨드릭은 동정을 유지했기에 대마 법사가 된 것이라고……“그걸 믿냐? 너 생각보다 순진하구나?”
요한은 야스진을 향해 한심함이 가득 담긴 시선을 보냈다.
그 시선에 부끄러워하던 야스진 은 작게 헛기침을 토해냈다.
“크흠! 그럼 뭘니까?”
“헨드릭이 활동하던 당시 로드만 왕국과 필로틴 제국은 서로 적대 관계였지.”
“그건 압니다. 그래서 검은 요새 가 만들어진 것 아닙니까?”
“문제는 헨드릭이 필로틴 제국의 황녀와 사랑에 빠졌다는 거야.”
“오…… 정말입니까?”
“그래.”
벽을 만지며 함정을 찾은 요한은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발광석의 사각에 있던 어둠 속에 있던 날카로운 철창이 요한의 공격 에 박살이 나버렸다.
간단히 함정을 해제한 요한은 발 걸음을 옮겼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지. 헨드릭은 로드만 왕국의 왕족이며 대 필로틴 제국 방면 대응 사령관.”
“흐음……“그리고 그 황녀. 예나 바인 필 로틴은 로드만 왕국 방면 대응 사 령관.”
"그랬습니까?”
“그래.”
“그런 건 또 어디서 아신겁니 까?”
가끔씩 요한은 듣도 보도 못한 지식을 알려주곤 했었다.
그것이 신기한 야스진이 묻자 또 하나의 함정을 무력화시킨 요한은 피식 웃었다.
“책 봐라. 책. 책에 나온다.”
“그런 책도 있습니까?”
비록 야사에 불과하지만 바그너 저택의 장서 중에 그 이야기가 있 었다.
로드만 왕국과 필로틴 제국이 둘 다 부정해서 정사로 알려지지 않았 을 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야사로 전해지 는 이야기가 진실이었다.
“검은 요새의 심처는 원래 헨드 릭의 연구실이야. 헨드릭은 자기 연구실에서 예나 바인 필로틴과 밀 회를 가졌지.”
"역시 사랑의 힘은 위대하군요.”
“무모하다고 보는 게 낫지 않겠 냐?”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 요한 공 자님이 불쌍하군요.”
요새 한창 연애 중인 야스진이 으스대자 요한은 콧방귀를 뀌었다.
“인생은 원래 혼자야.”
“에이〜 그래도 공자님은 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하실 수 있잖습니 까.”
바그너 영지로 오는 연서만 해도 수십 통이 넘는다.
요한은 일일이 읽어 보고 답장을 하지만 대부분은 온화한 거절이었 다.
그때마다 야스진은 궁금했었다.
“그 어디지? 헬렌 백작 부인의 따님이 요한 공자님께 열렬히 연애 편지를 쓰시던데.”
“지금은 바빠.”
“진짜 연애 안 하십니까? 윌카스 트 백작님도 궁금해하시던데.”
“너나 많이 해라.”
‘마왕 잡기 전까지는 최대한 달 려야 하는데 연애질은 무슨.’
야스진과 쓸데없는 얘기로 시시 덕거리던 요한이 발걸음을 멈췄다.
통로의 끝에 있는 벽 때문이었 다.
“여기가 끝입니까?”
“아니. 이제 네가 나갈 차례다.
오늘이 며칠이더라?”
“에…… 대륙력……"날짜만 말해. 날짜만.”
“7월 19일입니다만.”
"그래?”
무언가를 생각하듯 요한은 벽의 벽돌의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계산을 마친 요한은 벽돌 하나를 툭 쳤다.
다른 벽돌들과 비교해서 별반 다 를 것이 없는 벽돌이었다.
“여기에 신성의 빛을 써.”
요한이 명령하자 야스진은 바로 신성의 빛을 사용했다.
그의 손에서 뿜어진 신성한 빛이 벽에 찍어졌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얼마나 이러고 있어야 합니까?”
“오 분.”
특별한 변화도 없는데 계속 신성 의 빛을 써야 한다니.
야스진은 뻘쯤해 하면서도 신성 의 빛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되자 요한은 다른 벽돌을 가리켰다.
“저기도 해.”
“예.”
그렇게 세 개의 벽돌에 신성의 빛을 쓰고 났을 때.
소리도 없이 벽이 움직였다.
“우와…… 이건 뭡니까?”
"날짜와 헨드릭,예나의 생일. 그리고 몇 가지 규칙을 섞어 만든 일 종의 비밀번호다.”
“아. 역시 공자님. 대단하십니다. 책에도 이런 것이 나오나 보죠?”
당연히 이건 안 나온다.
회귀 전 요한이 검은 요새를 조 사하다가 알게 된 정보에 불과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검은 요새를 조사할 때만 생각하 면 아직도 이가 갈릴 정도였다.
‘내가 이 비밀 알아내겠다고 사 서랑 자료를 얼마나 뒤졌는데.’
그것도 모자라 강령술까지 썼었 다.
그때의 고생을 생각하니 요한은 절로 이가 갈렸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야 스진은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저도 돌아가면 책 좀 많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너 사제 될 거면 진짜 책 좀 봐야 될 거다. 연애질만 하지 말고 책 좀 봐라.”
요한이 퉁명스레 말하고 걸어가 자 야스진은 그의 뒤를 황급히 쫓 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요한이 발걸음을 멈추자 야스진 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깁니까?”
“아니. 이제 저기 밑으로 내려가 면 끝인데……요한은 야스진의 어깨를 잡았다.
“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같이 들어가도 되는 것 아닙니 까?”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서 멈 춰야 하다니.
가능하다면 같이 들어가고 싶었 다.
야스진이 요청하자 요한은 대수 롭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상관은 없는데 가봤자 좋은 꼴 은 못 볼걸?”
“왜 그렇습니까?”
“들어가자마자 함정 발동되거든. 막을 수야 있지만…… 하나라도 놓 치면 너 죽어.”
“그럼 저는 여기서 얌전히 기다 리겠습니다.”
그는 예전에 요한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
굳이 죽을 생각이 없었던 야스진 은 바로 자리에 앉아 기도를 시작 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