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권 12화
112. 북방행 (1).
선두는 펠론 백작이 이끄는 부 대.
후방은 마고 후작이 이끄는 부대 가 맡았다.
헤르듀크 왕자는 자연스레 마고 후작이 이끄는 부대에 합류했다.
그 상태로 캐슬 오브 로디악에서 출발한 지 십 일이 되었다.
하지만 선두와 후방의 부대가 교 류하는 일은 없었다.
요한과 펠론 백작 때문이었다.
“북방에는 자주 가봤지만 이렇게 가보긴 처음이군.”
“작년까지만 해도 로만 후작과 딱히 나쁜 사이는 아니셨잖습니까.”
둘의 사이가 나빠진 것은 저번 하이데의 생일파티 때다.
마고 후작은 대놓고 로만 후작을 귀족원에 제소했었다.
그것 때문에 로만 후작은 꽤나 바빠졌고.
결국 도르마나 영지를 다른 이가 얻어버렸다.
그 이후 둘의 사이는 꽤나 나빠 져 있었다.
당연히 로만 후작을 따르는 펠론 백작은 마고 후작을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왕성에서 있었던 일까지 생각해야 했다.
그것 때문에 로디악 기사단은 펠 론 백작에게 수배령까지 내렸다.
물론 수배령이 하루 만에 풀리기 는 했지만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 다.
그 때문인지 펠론 백작은 요한이 있는 후방 부대에는 얼굴도 비치지 않았었다.
"불쾌하군요.”
메이가 건네준 찻잔을 받은 헤르 듀크는 모닥불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봉건제라고는 하지만 왕 위계승권을 가진 왕자가 있는 곳이 다.
전투가 끝나면 한번 정도는 안부 라도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취급을 받은 적은 처음입 니다.”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시지요.”
차를 홀짝이던 요한은 씩 웃었 다.
“원래 펠론 백작은 저랬다고 하 지 않습니까. 쓸데없이 자존심 강 하고, 다혈질에.”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건 좀 ,,“맞네. 요한. 아무리 그래도 그렇 지. 오늘 습격까지 있었는데……오늘 오후에 도적들의 습격이 있 었다.
아무리 천왕 카일로가 없다고 하 더라도 지금 일행은 마스터가 둘이 다.
그런 이들을 습격하는 만큼 도적 들도 꽤나 준비를 했었다.
덕분에 전투는 꽤나 치열했었다.
물론 물리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전투 중에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도 펠론 백작은 후방 부대 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물론 펠론 백작 대신 헤본이 찾 아오기는 했다.
하지만 그게 다다.
“치유도 그쪽에서만 알아서 하 고.”
“저희도 치유사는 있잖습니까.”
요한 덕분에 끌려 온 야스진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바빴다.
헤르듀크나 마고 후작이 데려오 겠다는 치유사를 요한이 말렸기 때 문이었다.
덕분에 후방에 있는 부대의 유일 한 치유사가 된 야스진은 녹초가 되어버렸다.
“야스진. 오늘 고생했네.”
신성력을 한계까지 써버린 것 때 문에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진하게 남았다.
꽤나 피로해 하는 야스진에게 마 고 후작은 웃으며 차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무려 후작이 직접 내어주는 차 다.
아무리 고생을 했다지만 이정도 면 평민에게 엄청난 영광이었다.
“그 찻잔은 자네가 가지고 있다 가 나중에 돌려주도록 하게.”
“정말이십니까!?”
마고 후작의 인장이 찍혀 있는 귀한 찻잔이었다.
찻잔 자체의 가격도 상당하다.
하지만 이 찻잔이 가지는 의미는 그 정도가 아니었다.
만약 귀족의 힘을 빌려야 할 일 이 생겼을 때.
이 찻잔을 돌려주며 부탁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는 것이다.
야스진은 눈시울을 붉히며 마고 후작을 응시했다.
그를 향해 선선히 웃은 마고 후 작은 힐끔 요한을 보았다.
‘저 녀석. 그래도 자기 사람은 잘 챙기는군.’
요한이 왜 다른 치유사를 거절하 고 야스진만 데리고 왔는지 마고 후작은 대중 눈치챘다.
평민에서 사제가 된 이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후원해 줄 귀족을 찾는 것이다.
그래야 교단 내에서 자신의 위치 를 명확히 할 수 있었다.
어떤 귀족의 후원을 받느냐에 따 라 사제들의 위치가 결정되니 말이 다.
그때 야스진이 마고 후작의 잔을 보인다면?
그는 같은 등급의 사제들보다 훨 씬 앞서 나갈 수 있었다.
어쨌든 마고 후작은 로드만 왕국 에서 단둘밖에 없는 후작이니 말이 다.
당연히 야스진도 그것을 알고 있 었다.
“공자님…… 저,정말 감사합니 다……혼자서 모두를 치료하는 일은 고 되다.
하지만 그 열매는 달콤할 것이 다.
그렇기에 야스진은 눈물까지 그 렁그렁 맺은 채 요한을 잡았다.
“뭐가.”
모닥불을 뒤적거리던 요한은 힐 끔 그에게 시선을 보냈다.
싸늘하고 무감정한 시선에 야스 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날 위해서 이렇게 한 게 아니셨 나?’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어떨 때는 악마보다 더 악마 같 다.
하지만 어떨 때는 진정으로 모실 만한 상관이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야스진은 요한의 반응에 떨떠를 해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넌 북방 가도 할 일 많으니까 체력 배분 잘해라. 뭔 치유사가 고 작 서른명 치유했다고 녹초가 되 냐?”
심드렁히 말하는 그를 향해 야스 진은 맥빠진 한숨을 쉬었다.
“노,노력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대충 답해 준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가 훈련을 하 자 헤르듀크는 감탄했다.
“와…… 오늘도 훈련을 하는 건 가? 안 힘든가?”
“도적 몇 놈 벤 것이 뭐 힘들겠 습니까.”
여행을 하는 도중에도 요한은 수 련을 멈추지 않았다.
조금은 늘어질 만도 한데도 그는 항상 시간을 짜내 훈련을 하고 있 었다.
“저희 애들도 저렇게만 훈련하면 제가 정말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마고 후작의 옆에 앉아 있던 메 이는 슬쩍 기사들을 보았다.
요한이 훈련을 할 때마다 메이가 매번 하는 말이다.
그의 눈치에 타이론 기사단의 기 사들은 머뭇거리며 일어났다.
"저희도 진형 훈련을……“아냐. 피곤할 텐데 쉬지 그러 냐? 갑옷도 벗은 것 같은데.”
“더,더워서 풀은 것뿐입니다. 아 하하하……메이에게 웃으며 대답한 기사들 이 엉거주춤 훈련을 시작했다.
그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며 마고 후작은 뿌듯해했다.
“요한이 너무 과하게 훈련을 하 는 것 같은데. 야스진. 치유사로서 어찌 생각하나?”
자기가 하겠다는데 어떻게 말리 겠나.
야스진이 대답을 회피하자 마고 후작은 헤르듀크를 보았다.
“아카데미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 고 계신 왕자님께서 보시기에는 어 떻습니까?”
“과하게 훈련을 하고 있기는 합 니다만…… 저는 그것보다는 다른것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뭡니까?”
“요한은 어딘지 모르게 쫓기는 것 같지 않습니까?”
“예?”
마고 후작뿐만 아니라 야스진, 메이까지 그의 말에 의문을 품었다.
요한은 언제 어디서나 마이페이 스였다.
그런 그가 쫓긴다?
모두의 의문이 섞인 시선을 받으 며 헤르듀크는 머쏙한 미소를 지었 다.
“잘못 말했군요. 쫓긴다기보다 는…… 한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서 그것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 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메이가 궁금해하자 헤르듀크는 차분히 설명했다.
“아카데미에는 꽤나 많은 유형의 사람들이 오지.”
“예. 그건 저도 압니다.”
“그래. 그들 중에는 오늘 할 일 을 내일로 미루는 사람도 있고,내 일 할 일을 오늘 하는 사람도 있 어.”
잠시 말을 멈춘 헤르듀크는 차를 홀짝거리며 목을 축였다.
“그리고 저렇게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은…… 대부분 뭔가 중요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
“그렇다면 요한 공자님의 목적이 뭐라고들 생각하십니까?”
만약 그 목적을 알아낼 수 있다 면.
요한의 신뢰를 살 수도 있을 것 이다.
그리 된다면 헤르듀크가 로드만 왕국의 왕이 되는 것도 쉬워질 것 이다.
기대감을 품으며 마고 후작이 물 었지만 헤르듀크는 천천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 장 아는 것은 한가지뿐입니다.”
“한가지요?"
“프란츠가 추기제에서 우승하는 것이지요.”
그는 하성제에서는 준우승밖에 하지 못했다.
그것 때문에 요한은 절치부심하 고 있었다.
프란츠도 이번 방학 때 놀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거 추기제가 정말 기대되는군 요. 저도 참가해볼까 생각 중입니 다.”
헤르듀크가 작게 중얼거렸을 때.
검을 휘두르던 요한은 북쪽의 벌 판을 향해 휙 고개를 돌렸다.
“습격이다!!”
“어!?”
요한의 외침을 들은 모든 이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그의 말과 다르게 아무것 도 보이지 않았다.
“뭡니까.”
“아무것도 없잖습니까……이정도로 넓은 평원이면 매복할 곳도 없다.
그런데 습격이라니.
다들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찰나 펠론 백작의 표정이 딱딱히 굳었다.
“땅 밑이다!!”
그의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 청난 진동이 주변에 퍼지기 시작했 다.
“원!?”
땅굴을 파고 돌아다니며 땅 위의 먹잇감을 무차별적으로 습격하는 몬스터다.
모험가 길드에서도 꽤 위험한 축 에 속하는 대형 몬스터가 등장하자 모두 당황했다.
하지만 요한과 펠론만은 그 자리 에 굳건히 서 있을 뿐이었다.
“움직이지 마!!”
“웜은 대지의 진동으로 먹이를 찾는다!! 그대로 멈춰 있어!!”
펠론과 요한의 외침에 모두가 딱 딱히 굳었다.
그 사이 펠론은 창을 들어 오러 를 힘껏 밀어 넣고 던졌다.
“으랴!!”
허공으로 치솟은 창이 아무것도 없는 평야에 꽂혔다.
-쿠우응!!
오러가 담겨 있었기 때문일까?
창이 꽂히자 주변이 파일 정도의 충격이 평원에 자리 잡았다.
그 충격음과 진동이 끝났을 때 땅이 갈라졌다.
-콰과과광!!
톱니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거대한 벌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창과 더불어 주변을 통째 로 삼켜버렸다.
-카아아아아!!!
자신이 먹은 것이 흙과 돌,창뿐 이라는 것을 깨달은 웜은 커다란 몸을 비틀었다.
그 몸이 다시 바닥으로 들어가려 는 것을 요한은 놓치지 않았다.
“흡!!”
빠르게 오러가 담긴 검을 던짐과 동시에 그는 오러 블레이드를 길게 뽑아냈다.
그리고 웜이 땅 밑으로 들어가기 전 강하게 휘둘렀다.
-서걱!!!
길게 늘어난 오러 블레이드가 웜 의 몸을 절단내버렸다.
일격에 웜을 죽여버린 요한은 그 의 몸에 박혀 있는 검을 회수했다.
그 단순한 동작에 구경하던 이들 은 감탄성을 토해냈다.
“와아아!!”
“여,역시 마스터!!”
설마 일격에 끝낼 줄이야.
요한의 검격을 본 이들은 다들주먹을 꽉 쥐며 환호했다.
‘저깟 거 못하는 놈들도 있나?’
마스터 정도라면 웜 따위는 쉽게 잡을 수 있다.
속으로 투덜거린 펠론 백작은 창 을 회수하기 위해 웜의 시체 쪽으 로 향했다.
그 순간 그의 바로 코앞에서 원 의 몸체가 치솟았다.
-카아아아아!!
웜은 한 마리 더 있었다.
아까 요한이 움직였을 때는 반응 도 하지 않던 웜이 펠론의 발소리 를 듣고 공격을 한 것이다.
하마터면 웜에게 삼켜질 뻔한 펠 론은 요한을 노려보았다.
‘저 자식……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말을 안 했군.’
자신을 노려보는 펠론에게 요한 은 히죽 웃어 보였다.
그 사이 펠론은 오러 스피어를 뽑아내 웜에게 힘껏 내질렀다.
하지만 기습을 피하다가 공격한 탓일까?
요한과 다르게 일격에 끝낼 수는 없었다.
-케에에엑!!
펠론의 창에 큰 상처를 입은 원 은 땅으로 도망치 려 애를 썼다.
하지만 이어지는 기사들과 병사 들의 공격에 점차 넝마가 되어버렸 다.
-카아아아!!!
그리고,괴성을 내뿜으며 죽어가 는 웜을 향해 요한은 빠르게 뛰었 다.
“흡!”
낮은 기합성과 함께 이어지는 횡 베기.
길어진 오러 블레이드가 웜의 몸 체를 찢어버렸고 그 상처에서 녹색 의 끈적한 체액이 터져 나왔다.
“으억!?”
그 체액은 정확히 웜을 잡고 있 던 펠론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체액으로 흠뻑 젖은 펠론 백작이 죽일 듯 노려보자 요한은 가볍게 손을 들었다.
“아. 미안. 난 피할 수 있을 줄 알았지.”
하지만 그의 어조에는 조금의 미 안함도 담겨 있지 않았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