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권 11화
111. 만나지 말았어야 할 운명.
(6)
양유위가 자신을 선택한 이유를 말하자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볼 일도 다 봤고 저택으로 돌아가 떠날 준비를 해야 했다.
“그리고 현명한 판단은 칭찬하는 데. 괜히 까불지 않았으면 좋겠네.”
“하하…… 예. 염두에 두고 있습 니다.”
경고는 예전에 받았다.
양유위는 요한의 나이프가 뚫고 지나갔던 자리를 매만졌다.
이미 새겨진 공포를 벗겨내는 것 은 쉽지 않았다.
"그럼 난 간다.”
양유위의 제안에 요한은 대답하 지 않았다.
하지만 양유위는 별다른 불만을 보이지 않았다.
도둑 길드가 요한의 밑에 있는 이상.
길드의 확장은 요한에게 반드시 도움이 된다.
현명한 그가 그것을 거절할 리 없다고 양유위는 판단했다.
“살펴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북 방에 가신다고 하셨지요?.”
나가려던 요한이 멈췄다.
그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슬쩍 고 개를 돌리자 양유위는 차분히 말했 다.
“그곳에 저희 쪽의 사람이 몇 있 습니다.”
“그래서?”
“공자님의 심부름을 할 수 있도 록 명령을 내려놓겠습니다.”
“그거 좋네.”
그 한마디만 하고 요한이 나가버 리자 벽에 기대어 서 있던 레드바 는 살짝 눈썹을 꿈틀거렸다.
“마스터. 제가 마스터의 곁에서 떨어진다면……“윌카스트 백작이 해를 입는 것 이 훨씬 더 위험한 일이 될 거야.”
“그렇습니까?”
“어차피 요한 공자님이 북방에서 돌아올 시간을 계산하면……길어야 한 달 반 정도에 불과했 다.
헤르듀크를 위해 아카데미의 개 학 시기도 맞춰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라면 그냥 당분간 얌전히 몸을 숨기고 살면 된다.
양유위의 설명에 레드바는 무겁 게 고개를 끄덕였다.
“북방으로 가는 사절단은 내일 출발하지요?”
“그래.”
“그럼 오늘 밤에 윌카스트 백작 님을 만나봐야겠군요. 알겠습니다.”
무겁게 고개를 숙인 레드바까지 밖으로 나가버렸다.
방에 홀로 남게 된 양유위는 의 자에 등을 편히 기대며 빙긋 웃었 다.
“요한 공자님께서 어디까지 올라 가실 수 있을까?”
그리고.
그의 수족으로서 얼마나 많은 것 을 얻을 수 있을까.
양유위는 분홍빛 미래를 생각하 며 천천히 안경을 쓰고 서류를 잡 았다.
길드 밖으로 나와 다시 게헤른의 잔에 들어간 요한은 예모를 위아래 로 훑어보았다.
“어…… 왜 그리 보십니까?”
“갑옷이 그것밖에 없나?”
그녀가 입고 있는 것은 낡은 경 갑옷이었다.
방어력도 그리 좋지 않고 귀족을 따르기에는 나쁘다.
하지만 단독으로 움직이는 용병 이 제대로 된 장비를 챙길 수 있겠 나.
예모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푹 숙였고 요한은 인상을 찌푸렸다.
“따라와.”
커다란 가방을 든 예모와 함께 할렘가에서 나온 요한은 바로 무기 점으로 향했다.
꽤 비싼 장비들이 있는 곳이다.
용병의 월급으로는 쉽게 들어가 기도 힘든 무기점이기에 예모는 놀 라며 머뭇거렸다.
“여긴 왜 오셨습니까?”
요한은 마스터다.
그가 무기나 갑옷에 대해서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자기 무기나 갑옷 골라달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예모는 슬그머니 드는 기대감을 애써 숨긴 채 모르는 척 그를 보았 다.
“갑옷 골라. 이상한 거 말고 칙 칙한 색으로.”
“알겠습니다!”
귀족들이 용병을 고용할 때 자신 의 품위유지를 위해 장비를 맞춰주 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아직까지 그런 고용계약은 맺어 본 적이 없었던 예모다.
그런데 저 괴물같은 요한이 이런 계약을 해줄 줄이야.
거기에 지은 죄도 있는데.
예모는 기뻐하며 항상 보며 손가 락만 빨았던 갑옷을 골랐다.
두꺼운 가죽과 체인으로 만들어 진 탄탄한 경갑을 그녀가 고르자 요한은 값을 지불했다.
“감사합니다!”
“그래. 감사해야겠지.”
양손 가득 든 갑옷을 보며 기뻐 하는 예모를 향해 요한은 냉정히 말했다.
"네가 해야 할 일이 쉽지 않을테 니가 장비 맞춰주는거다.”
기뻐하던 예모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는 살짝 두려워하며 물었다.
“설마 위험한 겁니까?”
“그럼 쉬운 일 시키려는데 장비까지 맞춰줬겠어?”
걱정하는 예모를 데리고 요한은마고 후작의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요한은 메 이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공자님.”
"후작님의 호위대에 얘를 편성했으면 하는데.”
“예? 하지만 용병이잖습니까.”
제대로 된 기사도 아닌 용병을.
그것도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모르는 용병이다.
“혹시 이름이?”
“예,예모 발렌타인입니다.”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용병대에 소속되어 있나?”
“전에 베이트 용병대에 속해 있 었습니다만.”
“전이라는 것은 나왔다는 이야기 겠지? 왜 나왔나?”
예모는 슬쩍 요한을 보았다.
그녀가 용병대를 나온 이유는 요한 때문이었다.
요한에게 찍혔을지도 모르는 용 병을 데리고 있어 봐야 좋은 것이 없다는 용병대는 판단했다.
그 탓에 나온 것이기에 차마 말 할 수는 없었다.
“잠시 기다리도록.”
메이는 곧장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그의 손에는 한 장의 종이가 들려 있었다.
“딱히 문제는 없군. 실력도 괜찮 고. 유저 급이라……“문제 있나?”
요한이 묻자 메이는 고개를 저었 다.
“베이트 용병대에서 나온 이유도 공자님 때문이니. 공자님이 직접 데려오셨다면 문제는 없겠지요.”
“그래? 그럼 됐네. 후작님 호위 에 포함해.”
“후작님 호위는 좀 그렇고. 공자 님 호위는 어떻습니까?”
아무리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용병이 다.
그런 용병을 후작의 호위에 어떻 게 넣겠나.
하지만 요한이라면 다르다.
메이가 웃으며 권하자 요한은 고 개를 저었다.
“내 호위?”
“생각해보니 공자님께는 호위가 필요 없겠군요.”
마스터에게 호위가 왜 필요하겠 는가.
메이는 떨떠름해 하다가 쓴웃음 을 지었다.
요한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계 속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단 호위대에 편성은 하겠습니다만 명령체계는 저를 따르게 하겠 습니다.”
“그래.”
거기까지는 손댈 생각이 없었다.
마고 후작과 헤르듀크의 호위는 요한이 다.
하지만 전체적인 호위대를 이끄 는 것은 메이였다.
그런 만큼 인원을 어찌 편성할 지,그리고 어떻게 움직일지는 메 이의 권한이었다.
그가 허락하자 메이는 안도했다.
그 사이 요한은 예모의 등을 툭쳤다.
“북방에 가는 동안은 메이의 명 령을 따르도록.”
“예…… 그런데 이것 때문에 저 를 고용하신 겁니까?”
“그럴 리가.”
이건 표면적인 임무에 불과했다.
요한은 메이를 내보냈다.
자신만 남긴 것을 보니 기밀을 요구하는 일 같았다.
이런 일은 대부분 위험하기 마 련.
예모는 자신의 새 갑옷을 만지작 거리며 잔뜩 긴장했다.
“필로틴 제국 쪽에 가서 사람 좀 만나줘야겠다.”
“필로틴 제국이요?”
“그래. 네 억양. 그리고 귓불에 있는 귀걸이를 보니"•… 필로틴 제 국 쪽 사람 아닌가?”
예모는 흠칫 놀라며 자신의 귀를 만졌다.
그녀의 귀에는 파도 모양의 귀걸 이가 걸려 있었다.
“이걸…… 아십니까?”
“필로틴 제국의 남동부에 있는마이트 산맥 쪽에 고대신을 모시는 사당이 있지.”
바론 교단이 대륙에 강세이기는 하지만 대륙에는 다른 종교들도 있 었다.
당장 엘프들은 바론보다는 세계 수 이그드라실을 더 따른다.
드워프들은 대부분 불과 모루를 신성화한다.
하플링 역시 그림자의 신이라는 독특한 신앙체계를 가지고 있다.
수인족들도 그렇고 몬스터들 중 에서도 자기들만의 신을 따르는 종 족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들 역시 같았 다.
필로틴 제국 남동쪽에서 동쪽으 로 계속 가면 잊혀진 바다가 나온 다.
그 바닷 속에는 위대한 고대신이 잠들어 있다는 전설이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그 고대신이 깨어 나 세상을 다시 다스릴 것이다.
그러한 신앙을 가진 종교가 있었 다.
예모가 끼고 있는 귀걸이는 그 종교를 믿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일 종의 디바인 마크였다.
“저…… 저……예모는 창백히 물든 얼굴로 입술 만 달싹거렸다.
그녀를 향해 요한은 귀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로드만 왕국은 필로틴 제국과 적대국이 아니야. 그리고 바론 교 단은 다른 종교를 핍박하지 않고.”
“……예.”
예모가 뭘 걱정하는지 요한은 단 번에 눈치챘다.
그녀를 안심시켜 준 요한은 팔짱 을 꼈다.
“할 거지?”
“하,하는 거야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누굴 만나야 합니까?”
그녀의 질문에 요한은 기다렸다 는 듯 대꾸했다.
“필로틴 제국 황위 계승권 14위 인 율호 필로틴. 그를 만나고 와 라.”
그 이름을 들은 예모는 기절할 것만 같았다.
지금 한참 계승권 문제로 말이 많은 필로틴 제국에서 계승권자를 만나라니.
요한이 내어 준 임무는 그녀가 생각했던 임무보다 훨씬 어려운 임 무였다.
다음날이 되자 출발하기 위한 인 원들은 왕궁으로 모였다.
정복을 차려입은 요한의 옆에 서 있던 마고 후작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윌카스트 백작에게 인사라도 하 는 게 낫지 않겠니?”
“알아서 잘 사시겠죠.”
“음…… 뭐. 그러겠지. 어젯밤에찾아온 그 용병은…… 아무리 봐도 마스터로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윌카스트 백작의 임시 호위가 된 레드바를 떠올리며 마고 후작은 감 탄했다.
“어떻게 만난 것이냐? 혹시 마스 터들끼리의 커뮤니티라도 있는 거 냐?”
마스터들끼리 기사들이 만드는 것과 같은 사교 모임이 따로 있나 싶었다.
그것이 아니고서야 요한이 마스 터를 그렇게 끌어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궁금해하는 마고 후작을 향해 요 한은 빙긋 웃기만 했다.
“거 참.”
“당분간 도움을 받는 정도입니 다. 너무 탐내지 마십시오.”
“탐이라니.”
“마스터 정도 되는 이들을 쉽게 끌어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마시고.”
“크흠! 소개만이라도 해주지 그 러나?”
“소개해 드려도 개 후작님 밑에 안들어갑니다. 모시고 있는 사람이있거든요.”
그의 설명에 마고 후작은 무척이 나 아쉬워 했다.
그 사이 낮게 경장 차림을 한 헤 르듀크가 나왔다.
그가 단상 위에 서며 연설을 하 는 사이 요한은 힐끔 다른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로만 후작 쪽에서 보낸 이들의 대표는 펠론 마이노 백작이었다.
그의 뒤에 있는 기사들과 병사 들.
그리고 선물과 지원을 위한 물자 들을 본 요한은 자신들 쪽을 보았 다.
마고 후작과 타이론 기사단의 메 이.
그리고 요한과 야스진.
그 뒤에는 펠론 백작 쪽과 마찬 가지로 기사들과 병사들이 있었다.
“많이도 가는군요.”
“연례행사니까. 그리고 저 물자 들을 그냥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 잖아?”
북방에 보내는 물자는 어지간한 영지의 일 년 유지비보다 훨씬 많 다.
그것을 노리는 도적들은 당연히 있었다.
매년 포기 못 하고 그것을 노리 는 도적들이 덤벼드는 것을 떠올린 마고 후작은 진지하게 말했다.
“이번 여정이 쉽지만은 않을 거 다. 원래는 천왕 카이로가 함께 해 야 하지만……천하십강이 있고 없고 차이는 상 당할 것이다.
이번 북방행의 인원에 대해서는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졌다.
그러니 도적들도 기를 쓰고 덤빌 것이다.
마고 후작이 진지하게 말하자 요 한은 키득거렸다.
“부디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군 요.”
하지만 그의 표정을 읽은 마고 후작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요한의 미소는 무언가 일이 터지 기를 기대하는 자의 미소였기 때문 이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