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권 9화
109. 만나지 말았어야 할 운명 .
(4)
복도를 가득 메울 것 같은 체구 를 가진 남자다.
그가 다가오는 것을 보며 마고 후작은 차분히 말했다.
“저자가 펠론 마이노 백작이다. 너도 알고 있겠지?”
마스터.
알려진 것으로는 개인적인 무력 은 에밀리보다 조금 강한 정도다.
하지만 그의 진가는 기사들과 병 사들을 지휘할 때 나온다.
다혈질이고 성격이 더럽기는 하 지만.
그래도 지휘력만큼은 진짜다.
‘내가 편해지려면 빠른 시기에 제거해야 하지.’
어차피 로만 후작과는 붙기로 한 이상 위험할 수 있는 자들은 쳐낼 수 있는 한 쳐내야 한다.
요한은 그 시기를 이번 북방행으 로 잡고 있었다.
지만 그냥 치기는 아쉽고지금 당장 죽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냥 죽여봐야 귀족원의 포화만 받고 로만 후작에게 꼬투리 를 잡힐 뿐이다.
그럴 바에야 좀 더 득이 될때 잡 는게 낫지 않겠나.
저 자의 다혈질에 무식한 성격을 이용해서 얻을 것을 더 얻어야 한 다.
“그리고 그 옆도 아나?”
그리고 그의 옆에 있는 삼십 대 후반의 남자는 헤본 노마드 남작이 었다.
로만 후작의 모사 중 하나로 로 만 후작이 귀족원과 상대하거나 정 치적 안건이 있을 때는 항상 동행 한다는 자였다.
요한이 설명하자 마고 후작은 살 짝 놀랐다.
“잘 아니 다행이구나.”
“적을 알아야 어떻게 싸울지를 생각할 수 있지요.”
그리고 저들뿐만 아니라 로만 후 작을 따르는 이들에 대해서는 이미 회귀 전에 전부 파악했었다.
요한이 대꾸에 마고 후작은 만족 했다.
소문에 의하면 요한은 훈련만 한 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도 꾸준히 정보 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 녀석이 어디로 튈지는 모르 겠지만 일하는 것은 믿을 수 있다 니까.’
처음에는 불안해서 잠도 잘 자지 못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요 한에 대한 신뢰가 깊어지고 있었다.
‘우리 하이데의 저주가 풀리는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겠군.’
마고 후작이 요한을 보며 흐뭇해 하는 사이,복도를 걷던 커다란 덩 치의 남자가 어느새 그들의 앞에 도착했다.
“마고 후작 아니십니까. 여전히 정정하시군요.”
“그래. 자네는 여전히 뚱뚱하군. 살 좀 빼게.”
"근육이라고 해주십시오. 근육.”
한 줄의 복도이기에 마고 후작과 요한,펠론 백작과 헤본 남작은 서 로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피해야 하는 상황이 되 었지만 마고 후작도,펠론 백작도. 둘 다 길을 비키지 않았다. 신경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잘 지냈지.”
“영애의 생일을 축하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언제는 축하했던 것처럼 말하는 구만. 지나가야 하니 비키게.”
마고 후작의 말을 들었음에도 불 구하고 펠론 백작은 비키지 않았다.
그저 선 채 요한을 힐끔 응시할 뿐이었다.
“자네가 소문의 그 요한이군. 마 스터의 경지에 올랐다는 바그너 가 문의 공자.”
입꼬리를 끌어올린 그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거만한 어조로 말했다.
“어르신을 봤으면 인사부터 해야 하지 않겠나?”
북방에 마고 후작과 요한이 함께 간다는 것 정도는 들었을 것이다.
펠론이 이렇게 나오는 것은 초반 부터 기선제압을 하겠다는 표시다.
그 의도를 단번에 눈치첸 요한은 대놓고 비웃었다.
“우리가 서로 살갑게 하하호호 인사 나눌 사이는 아니지 않나?”
“건방진 애송이가. 마스터라고 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까부는 구나.”
으르렁거리는 펠론 백작을 올려 다보던 요한은 목을 만지작거렸다.
“올려다보느라 목이 아픈데. 키 좀 맞춰줄까? 그 두 다리 자르면 눈이 맞을 것 같은데.”
백전연마의 장군.
신성이라 불리는 기재.
둘은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서로 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 로의 무기를 뽑았다.
“요한! 그만!!”
"멈추십시오!! 펠론 장군!”
마고 후작과 헤본 남작은 다급히 외쳤다.
하지만 요한도,펠론 백작도 무 기를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오러까지 피워올렸을 뿐.
두 마스터가 만든 일촉즉발의 상 황에서 마고 후작은 입술을 깨물었 다.
‘이 녀석이 왜 이러지?’
마고 후작이 아는 요한은 꽤나 속이 깊은 사람이다.
단순하게 참을성이 깊다는 것이 아니다.
필요하다면 손을 쓰는 사람.
그가 무기를 뽑았다는 것은 이 상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 수 없었다.
왕궁에서 무기를 뽑는 것은 득보 다는 실이 더 많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헤본 남작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만!!”
마고 후작과 헤본 남작이 동시에 외쳤다.
하지만 요한과 펠론은 신경도 쓰 지 않았다.
서로 있는 대로 오러를 끌어올린 후 대뜸 검을 휘둘렀다.
“하아아아!!”
“흡!”
-채애애앵!!
무기와 무기가 부딪치는 날카로 운 소리가 복도에서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왕궁을 수호하는 로디 악 기사단의 기사들이 움직였다.
달려오는 기사들과 병사들을 본 마고 후작은 요한의 팔을 꽉 잡았 다.
“그만해!!”
일격을 부딪쳤을 뿐이다.
누가 유리한지도,불리한지도 모 르는 상황이다.
하지만 요한은 그 정도면 되었다 는 듯 여유롭게 검을 회수했다.
그와 다르게 펠론의 표정은 살짝 일그러져 있었다.
아직 성인도 되지 못한 소년이 다.
마스터라고는 하지만 애송이라고 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자신과 일격을 나누고 전 혀 밀리지 않다니.
“훗.”
요한의 입가에서 미소가 걸리자 검을 반쯤 집어넣었던 펠론 백작은 검을 다시 뽑았다.
“백작님! 그만하십시오!”
"쳇.”
짧게 혀를 찬 펠론 백작은 그대 로 몸을 돌리고 걸었다.
다가온 기사들이 저지하려했지만 펠론 백작은 거칠게 그들을 밀치고 지나가버렸다.
“그,그럼 마고 후작님.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북방에 갈 때 함께 가야 하는 마 고 후작과 요한이다.
아무리 저들과 주군인 로만 후작 이 사이가 좋지 않지만.
당분간은 함께 해야 하는 만큼 괜히 사이가 나빠 봤자 좋을 것은 없다.
헤본 남작은 마고 후작과 요한에 게 고개를 숙여 사죄한 후 펠론 백 작을 따랐다.
그들이 멀어지자 왕실의 기사들 이 마고 후작에게 다가갔다.
“후작님. 도대체 무슨 일이십니 까?”
“어…… 그게.”
요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마고 후작은 노회한 정치 가였다.
계속해서 싸우고 있는 것이라면 모를까 일검을 나누고 펠론 백작이 가버렸다면 대응할 방법 따위는 얼 마든지 있었다.
“펠론 장군이 요한과 검을 섞어 보고 싶어 했다네.”
“여기서요?”
다른 곳도 아니고 왕궁에서 지방 귀족들이 칼싸움을 했다?
기사는 어이없어하며 요한을 보 았다.
“요한이 마스터이지 않은가. 그 러다 보니 같은 마스터로서 실력을 확인해보고 싶었나 보지.”
“하지만 왕궁에서 무기를 뽑은 것은……“그저 무인들의 치기 정도라고만 생각해주게.”
“하지만 규정에 따르면 왕궁에서 허가 없이 무기를 뽑으면 이틀간 왕궁 감옥에서 구류되어야 합니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요한은 마 스터일서L 마스터를 구류할 생각인 가?”
“그건……“내 이번 일은 직접 왕자님께 사 과드리겠네.”
누가 다쳤다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니다.
이정도 문제는 마고 후작 선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하인켈 단장에게 내가 직접 전 해두지. 내 얼굴을 봐서라도 이번 엔 그냥 넘어가주게.”
“아이고.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귀족원의 원 로이며 대귀족인 마고 후작이다.
그가 이렇게 사정을 하니 기사로 서도 더 이상 모른 척 할 수는 없 었다.
그리고 이정도 소동은 귀족들이 일으키는 소동 중에서는 일도 아니 다.
차라리 여기서 마고 후작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낫다.
거기에 그의 말대로다.
마스터인 요한을 어떻게 구류 하 겠는가.
“이번 일은 제 선에서 해결할 수 있으니 너무 걱정……적당히 넘어가려던 왕궁 기사를 향해 요한은 검자루를 내밀었다.
“규칙은 규칙.”
“어?”
요한의 행동에 마고 후작뿐만 아 니라 기사도 놀랐다.
그들이 의아해하자 요한은 차분 히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펠론 백작도 같 은 죄를 저지른 것이니 구류되어야 한다면 같이 구류되도록 하겠다.”
“아,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생각해보니 그렇다.
지금 요한이 여기 남아서 그런 것이지 검을 부딪친 것은 펠론 백 작도 마찬가지다.
요한을 구류하겠다면 펠론 백작 역시 구류해야 하는 것이 맞다.
“왕궁에서 무기를 뽑지 말라는것은 왕가의 명예와 존엄을 위한 것 아닌가?”
요한의 말에 기사는 난감해했다.
‘이를 어쩐다……요한도 요한이지만 펠론 백작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다.
로드만 왕국에 있는 많은 기사들 의 대선배와 같은 사람이다.
어떻게 그를 감옥에 가두겠는가.
‘분명 개지랄을 떨 텐데……다혈질에 성격 더러운 펠론 백작 이다.
거기에 그를 따르는 기사들까지 생각하면 구류는커녕 말도 못 붙일 거다.
머뭇거리는 그를 향해 요한은 담 담히 말했다.
“지금 머뭇거리는 것은 로만 게 이돈 후작이 왕가보다 위라 생각하 는 건가?”
“그럴 리 없잖소! 말 함부로 하 지 마시오! 요한 공자!”
“그럼 뭐하는 거지?”
요한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 끝에는 어느새 나온 에밀리가 서 있었다.
“지금 당장 죄인을 잡아다가 로 드만 왕가의 지엄함을 보이지 않 고?”
«......끄O •w“저는 일단 감옥에 가 있도록 하 겠습니다. 마고 후작님.”
“어? 어어?”
“아버지께는 잘 말씀드려주십시 오.”
원한다면 충분히 빼줄 수 있는데 도 요한은 구류를 선택했다.
마고 후작은 그것이 요한이 원하 는 바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굳이 말릴 필요는 없었 다.
구류라고 해봤자 고작 이틀 정도 에 불과하니 말이다.
“어휴. 그래라. 그래. 네가 언제 내 말 들었냐?”
“그럼 이틀 후에 뵙겠습니다.”
투덜거린 마고 후작이 나가버리 자 요한은 기사에게 양손을 내밀었 다.
“수갑부터 채우도록 하지.”
체포를 강권하는 요한을 향해 기 사는 결국 수갑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
* * *왕궁의 지하감옥은 어지간한 죄 수들은 들어갈 수도 없다.
신분의 문제 때문이었다.
왕궁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이들 은 대부분이 귀족이다.
왕가가 직접 귀족을 치는 경우 는 귀족이 반역 모의를 했을 때 정도 뿐.
나머지는 귀족원의 결정을 따라 야 했다.
특히나 지방 귀족 중에서도 유 력 귀족의 경우는 더욱 그랬다.
바그너 백작가는 나름대로 유력 귀족에 속한다.
그러니 요한이 갇히는 감옥은 다른 죄수들이 갇히는 감옥과는 달랐다.
단지 며칠 구류하고 나는 정도 니 눈치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자. 여기로 들어가시지요.”
수갑을 찬 채 내려온 요한을 간 수는 조심스레 안내했다.
그와 함께 걸으며 요한은 주변 을 둘러보았다.
바닥이 대리석으로 되어 있고.
벽면에 심신을 안정케 하기 위 한 그림과 꽃이 놓여 있고.
물과 음료, 심지어는 와인까지 비치되어 있다.
이것만 보면 감옥이라기보다는 고급 여관과 닮았다.
하지만 잠시 후 이곳이 감옥이 라는 것을 증명하는 장소가 나왔 다.
- 철컹.
요한이 갇혀야 할 철창살이 모 습을 보였다.
“여깁니다. 공자님. 혹시나 불편 하신 것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시 오.”
간수가 아니라 여관 종업원 같 다.
그가 공손히 묻자 요한은 손을 내밀었다.
“수갑을 계속 차고 있어야 하 나?”
“아이고. 그럴 리가요.”
간수는 얼른 요한의 수갑을 풀 어주었다.
그가 안으로 들어가자 간수는 머뭇거렸다.
"저. 공자님?”
“뭔가.”
“여기 문을 잠가야 하는데……. 부,불편하시다면 열어 놓겠습니 다.”
걱정하는 간수는 손가락만 꼼지 락거 렸다.
상대는 유력귀족인 바그너 백작가의 장남.
거기에 마고 후작의 후원을 받 는 마스터다.
그러니 간수도 심하게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어려워하며 말하자 요한은 대수롭지 않아하며 고개를 끄덕였 다.
“어. 잠가. 그게 규정이라면서? 아무리 내가 지방 귀족이라지만 그래도 로드만 왕국의 귀족.”
요한은 의자에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왕가의 존엄은 지켜야지. 누구랑 다르게 말이야.”
그가 말하는 ‘누구’가 누구인지 아는 간수는 어색하게 웃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