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권 7화
107. 만나지 말았어야 할 운명.
(2)
천재는 천재밖에 이해할 수 없 다.
즉 천재의 제자는 천재라는 것.
요한의 말이 상처가 되기는 했지 만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헤르듀크는 헤이로나를 신기하다 는 듯 바라보았다.
“혹시 익스퍼트?”
“아뇨. 아직 유저에 불과한데요.
에헤헤〜”
여전히 해맑은 소녀다.
이 모습을 보니 요한의 말이 믿 기지가 않았다.
하지만 헤이로나가 얻어낸 성과 를 보면 확실히 틀린 말 같지는 않 았다.
이 해맑은 소녀는.
요한의 지도를 받고,또 헤르듀 크 파벌의 검사들과 매일 대무를 하고.
또 매일 늦게까지 훈련을 하는 프란츠를 이겼었다.
“아이참. 그렇게 보시니 부끄럽 네요.”
“어쩐지…… 일 학년이 하성제에 서 우승을 할 줄은 몰랐는데.”
“일 학년 중에 준우승을 한 프란 츠도 대단한 건데요? 그리고 저는 대단한 것도 아니에요.”
“아니. 대단하지. 백왕께서 인정 한 거라면.”
“사람의 재능은 꽃피는 시기가 다르다고 하더라구요. 전 헤르듀크 왕자님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데. 에헤헤〜”
자신의 실력이나 재능을 뽐내는 대신 헤이로나는 쾌활함이 가득 담 긴 어조로 말했다.
누가 봐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 습이 다.
하지만 헤르듀크는 살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요한이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그는 슬쩍 요한의 눈치를 살폈 다.
요한은 프란츠가 하성제에서 우 승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 우승을 헤이로나가 가 져갔다.
혹시 그것 때문에 헤이로나를 적 대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럼 난 누굴 응원해야 하 나……최연소 마스터인 요한?
백왕 플로란스의 제자인 헤이로 나?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 이다.
헤르듀크가 갈등을 하는 사이 헤 이로나는 요한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재능을 따진다면 요한공자님이 더 대단하시죠.”
“하긴.”
사상 최연소 마스터다.
그런 사람 앞에서 재능을 따져봤 자 무슨 의미가 있겠나.
둘의 시선을 받으며 요한은 무덤 덤한 어조로 말했다.
“내 재능이야 별거 없지.”
“그런가요?”
“그래.”
둘이 대화를 이어나가자 헤르듀 크는 의아해했다.
‘설마 웃는 낯으로 공격하지는 않겠지?’
만약 요한이 헤이로나를 죽이기 로 한다면 그녀는 얼마 버티지 못 할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요한이 헤이로나를 죽이면 플로 란스가 가만히 있겠는가?
곧장 로드만 왕국으로 와서 요한 을 죽이려 할 거다.
‘그리되면 왕궁에서 어떻게든 요 한을 보호하고…… 로만 후작에게 천왕을 보내달라고 해야 하나?’
요한을 싫어하는 로만 후작이 과 연 보내줄 것인가.
헤르듀크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의 고민을 알아첸 요한은 피식 웃었다.
“싸울 생각 없습니다.”
“그,그래? 그럼 다행이고.”
“어쨌든 왕자님. 마고 후작님도 계시는데 이곳에서 서서 계속 이야 기하실 겁니까?”
“아. 그래서는 안 되지. 마고 후 작님. 안으로 드시지요.”
“하하하. 예.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헤르듀크 왕자가 마고 후작을 데 리고 먼저 가버리자 헤이로나는 밝 은 미소를 지었다.
“저기 요한 공자님.”
“뭡니까.”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제가 더 어린걸요.”
바그너 가도,엘도만 가도 백작 가다.
직위상 차이가 없으니 서로 존대 를 하는 것이 예법상 맞았다.
하지만 헤이로나는 프란츠와 동무그러니 프란츠의 형인 요한은 헤 이로나보다 윗줄이라고 볼 수 있었 다.
“그러지. 왜.”
“프란츠는 요새 뭘 하나요?”
“훈련. 추기제에서 널 이겨보겠 다고 발버둥 치고 있지.”
“오오〜! 그거 기대되는걸요?”
순수한 천재.
요한이 보기에 헤이로나의 모습 은 딱 그 모습이 었다.
플로란스는 자신의 재능을 어떻게든 감추려 했었다.
그럼으로써 자신과 엮인 사람들 이 절망하지 않게 노력했다.
하지만 헤이로나는 달랐다.
플로란스와는 반대로 자신의 재 능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헤이로나와 엮 인 이들은 그녀의 재능에도 질투나 좌절을 하지 않았다.
“에헤헤〜 기대된다. 프란츠 빨리 보고 싶네요.”
천성일까?
아니면 계산한 것일까.
헤이로나가 가진 특유의 쾌활함 이 사람들의 질투를 상쇄시키고 있 었다.
‘제대로만 큰다면 엄청난 인재가 되겠군. 다음 대 천하십강도 노릴 수 있겠는데?’
요한은 헤이로나를 빤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지금 아카데미는 방학 아닌가?”
“그렇죠.”
“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지? 도브다만 왕국 사람 아닌가? 혹시 망명이라도?”
요한이 걷기 시작하자 헤이로나 는 그의 뒤를 따랐다.
“그건 아니에요. 저희 가문은 상 가거든요.”
"그래?”
“예. 이번에 로드만 왕국에도 지 점을 내려는데 아버지도 오신다고 하셨고......”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닌 것 같 다만.”
예리한 질문이다.
헤이로나는 요한에게 살짝 웃어 보이며 박수를 쳤다.
“와…… 들었던 대로네요. 프란 츠가 그랬는데. 요한 공자님은 얼 굴만 봐도 사람의 생각을 읽으신다 고 했어요. 정말인가요?”
“말 돌리지 마라.”
요한이 딱 잘라 말하자 헤이로나 는 난감해했다.
머뭇거리던 그녀는 살짝 씁쓸함 이 담긴 어조로 말했다.
“그냥. 돌아가면 스승님과 만나 야 하거든요.”
“백왕을 만나는 것이 두렵나?”
“그건 아니구요……풀죽은 어조로 중얼거린 헤이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풀이 죽었는데도 헤이로나의 얼 굴에는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항상 웃는 것 자체가 그녀의 천 성으로 보였다.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것 때문에 스승님과 싸웠거든요.”
민감한 이야기였지만 헤이로나는 순순히 입을 열었다.
헤이로나는 아카데미에 가고 싶 어 했다.
하지만 플로란스는 그것을 말렸 다.
플로란스와 비견될 재능을 가진 헤이 로나다.
그녀의 재능이 다른 이들의 절망 을 부를 수 있다.
그 질투에 상처받을 수 있다.
그렇기에 플로란스는 헤이로나의 아카데미 입학을 반대했었다.
하지만 헤이로나는 결국 아카데 미에 입학하고 말았다.
사정을 설명한 헤이로나는 어깨 를 축 늘어트렸다.
“스승님께서도 화 많이 내실 거에요.”
“글쎄. 내가 보기에 백왕이 그 럴 것 같지는 않아.”
의욕을 상실한 플로란스에게 여 덟번째 코어를 만들기 위한 재료 의 정보와 그것을 얻기 위한 열쇠 를 받았었다.
덕분에 요한은 재료를 얻을 수 있었고 안정적으로 코어를 만들 수 있었다.
이후 보답을 위해 찾았지만.
플로란스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검은 숲에서 제자를 그리워하며 미동도 하지 않았었다.
그정도로 백왕은 헤이로나를 아 끼고 그리워했다.
고작 아카데미에 간 것 정도로 는 크게 화를 내지는 않을 것이 다.
“그,그럴까요?”
“그러겠지.”
“혹시 스승님을 만나보셨나요?”
요한이 플로란스에 대해 아는 듯하자 헤이로나는 깜짝 놀랐다.
“글쎄. 그럴 수도 있고,아닐 수 도 있겠지.”
“이상한 대답이네요.”
“그런가? 아무튼 그건 중요한 것이 아냐.”
중요한 것은 여덟 번째 코어를 만들기 위해서는 백왕이 가진 열 쇠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방법은 두가지인데. 얘가 죽는 것을 내버려두고 플로란스를 찾느 냐.’
아니면 살리고 그 보답을 대가 로 열쇠를 받느냐.
요한은 해맑게 웃고 있는 헤이 로나를 보았다.
‘플로란스에게 몇가지 시킬 일 도 있으니 살리는 방향으로 계획을 잡는게 낫겠군.’
지금이라면 아무도 모를 백색병 의 치료법.
회귀를 한 요한만이 그 치료법 을 알고 있다.
헤이로나를 빤히 바라보던 요한 은 빙긋 웃었다.
"왜 그렇게 보세요? 제 얼굴에 뭐가 물었나요?”
헤이로나는 황급히 손거울을 꺼 내 얼굴을 살폈다.
거울을 보며 한번 방긋 웃은 그 녀는 활기차게 외쳤다.
“아무것도 안 물었네요!”
“그래.”
요한이 시큰둥히 대꾸하고 걷자 헤이로나는 그의 뒤를 쪼르르 쫓 았다.
“저기. 요한 공자님. 한 가지 부 탁이 있는데요〜”
“나도 부탁이 있어. 일단 먼저 말해보지 그래?”
“바그너 영지에 놀러 가도 되나 요? 프란츠 보고 싶은데.”
요한의 속도 모르고.
자신의 미래도 모르고.
헤이로나는 여전히 해맑았다.
“너 프란츠 좋아하냐?”
대놓고 묻자 그녀는 얼굴을 붉 혔다.
그리고 크게 손사래를 치며 애 써 장난스레 말했다.
“아이 참〜 부끄러움이 뭔지 아 는 레이디가 어떻게 그걸 말하나 요?”
“그 반응을 보면 이미 말한 거 나 다름없다만……. 프란츠는 바 쁠 거다. 괜히 방해하지는 마라.”
"훈련하느라 바쁜 겁니까?”
“그래.”
요한이 긍정하자 헤이로나의 얼 굴이 붉어졌다.
항상 진지한 프란츠를 떠올리며 헤이로나는 살짝 주먹을 쥐었다.
“프란츠가 그러던데요. 추기제 때 반드시 저를 이기겠다고.”
“그래야 할 거야. 못 이기면 나 한테 능지처참 당할 테니까.”
“아하하하〜 재밌다〜”
요한은 진심이었지만 헤이로나 는 그저 농담이라고 생각한 모양 이었다.
그녀의 웃음을 들으며 걷던 요 한은 발걸음을 멈췄다.
"아까 말했지? 나도 너한테 부 탁할 것이 있다고.”
“뭔가요? 제가 들어드릴 수 있 는 거라면 뭐든 들어드릴게요.”
"네 스승과 만나보고 싶다.”
“……어. 그건 좀. 저도 거의 도 망 나온 거나 마찬가지라서.”
헤이로나는 양 손을 모아 손가 락을 꼼지락거리며 웃었다.
“그거 말고는 없으신가요.”
“없어.”
“단호하시네…… 끄으음……고민하던 헤이로나는 결국 입을 열지 않았다.
요한도 더 이상 떠들 생각이 없 었기에 그냥 걷기만 할 뿐이었다.
왕궁의 안쪽에 들어가고 나서야 헤이로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한번…… 해볼게요.”
“그렇게 좋나?”
“예?”
“프란츠가.”
“아. 아아〜 예. 좋죠. 헤헤. 귀 엽잖아요.”
“어느 부분이?”
이것만큼은 요한도 알 수 없었 다.
궁금해하는 요한을 향해 헤이로 나는 더 궁금해했다.
“귀엽지 않나요?”
“내가 보기엔 죽어라 패주고 싶 기는 한데.”
실력도 없는 놈이 쓸데없이 겉 멋만 들었다.
고독한 늑대니 뭐니 떠드는 꼴 을 보면 어느 부분에서 귀여워해 야 할지 모르겠다.
요한이 인상을 쓰며 말하자 헤 이로나는 활짝 웃었다.
"단순하고,우직하고,한가지 목 표가 있으면 그것밖에 보지 않고. 그리고……손가락을 꼽으며 말하던 헤이로 나는 방실 웃었다.
“한 가지는 비밀.”
“뭐. 그래. 잘 해봐라.”
“공자님께서는 막지 않으시는 건가요?”
"막을 이유가 없지. 개인사를 내가 뭐라고 하겠나.”
딱히 바그너 가문이 혼인을 통 해 뭔가 할 일은 없었다.
혼인을 통해 세를 넓히는 것은 욕심이 있는 귀족들이나 하는 일.
윌카스트 백작도 그렇지만 요한 역시 권력이나 영지에 대한 욕심 은 크게 없었다.
“그리고 바그너 가문의 차기 가 주는 그 녀석이야. 내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필요는 없다.”
‘그냥 나중에 내가 시키는 일이 나 잘하면 될 뿐이지.’
프란츠가 누구와 결혼을 하든 말든 요한은 거기까지는 관심이없었다.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 까?
헤이로나의 예쁜 얼굴에 웃음꽃 이 활짝 피었다.
“감사합니다! 그,저도 오라버 니라고 불러도 되나요? 지금부터 라도 친 오라버니처럼 모시고 싶 습니다!”
눈에 띄게 기뻐하는 그녀를 향 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백왕 이나 소개해줄 궁리를 해라.”
요한은 무척이나 차갑게 말했 다.
기뻐하던 헤이로나는 찬물이라 도 뒤집어쓴 것처럼 축 늘어졌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