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권 6화
106. 만나지 말았어야 할 운명 .
(1)
떠나기 위한 준비를 했을 뿐인데 도 반나절이 지나갔다.
그만큼 요한이 바그너 영지에서 해온 일이 많다는 증거였다.
다른 이들과 만나 처리할 일을 맡겨 둔 요한은 마지막으로 광약을 찾았다.
그리고 혹시 몰라 한마디 해뒀 다.
“대련할 때 손대중 좀 해둬. 가 능하겠나?”
야스진도 요한과 함께 가는 만큼 최대한 부상을 줄여야 했다.
프란츠가 심한 부상을 입으면 그 것만으로도 문제가 생긴다.
그를 누가 공격했는지 찾으려 할 것이고 그럼 광약이 있다는 게 들 통날 수도 있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안단테 수련이 쉽지 않지?”
제대로 봤다.
요한에게 수련서를 받았지만 빠르고 화려한 검술을 쓰던 광약이다.
갑자기 만검을 훈련해봤자 그게 익숙할리 없었다.
“프란츠를 통해서 조절하는 법을 익히면 안단테를 익히기 쉬울거야.”
“그게 정말입니까?”
놀라는 광약에게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드 댄싱의 알토는 화려함과 속 도를 중시 여긴다.
하지만 그것은 엘프에게 맞춰져 있는 것.
인간인 광약이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종족차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보니 검속의 통제가 쉽지 않았다.
그 통제를 할 수 있어야 안단테 를 제대로 익힐 수 있었다.
요한의 설명을 들은 광약의 표정 이 굳었다.
“그 말씀은 알토가 부적절한 검 술이라는 겁니까?”
“딱히 그런 건 아니지. 각각 효용이 다를 뿐이야.”
뭐든 장단점이 있는 것이다.
빙긋 웃는 요한을 물끄러미 보던 광약은 복잡한 얼굴이 된 채 고개 를 떨꿨다.
그가 깊게 생각에 빠진 것을 확 인한 요한은 몸을 돌려 던전을 나 섰다.
광약과의 만남까지 마치고 나서 야 요한은 저택으로 복귀했다.
예정대로 저택의 마당에는 마차 가 세워져 있었다.
“아. 공자님.”
“준비는 다 됐나?”
“예. 이래저래 챙겨갈 것이 많군 요.”
요한의 짐과 자신의 짐을 함께 챙기던 야스진은 주위를 두리번거 렸다.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야 야스진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공자님. 이번에는 위험 한 일 없겠죠?”
“당연히 위험하지. 그럼 북방의 검은 요새에 가는데 안 위험할 줄 알았어?”
별 걸 다 묻는다.
요한이 뚱하니 대꾸하자 야스진 은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앗•••••• 아아……“그래도 이상한 짓만 안 하면 죽 을 일은 없어. 넌 내 명령만 따라.”
“하하. 제가 공자님 명령 외에 다른 사람의 명령을 따르겠습니 까?”
“농담 아니야.”
북방군에서는 야스진보다 신분이 높은 자들이 많다.
거기에 야스진을 이용해서 요한 을 해하려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야스진은 최 대한 주의하는 것이 나았다.
"명심해. 너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라는 걸.”
"알겠습니다.”
요한이 진지하게 설명을 하자 야 스진은 심각해졌다.
그때 저택에서 짐을 든 하녀가 다가왔다.
야스진의 연인인 헤나였다.
그녀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본 야 스진은 살짝 요한에게 묵례하고 그 녀에게 향했다.
그가 홀로 남자 안뜰에서 훈련을 하던 파룬이 요한에게 다가갔다.
“저기…… 요,요한.”
“아. 나 갔다 오는 동안 훈련은 알아서 해라. 커리큘럼 바뀌는 것 없어. 그리고 하인스가 너 봐줄 거 다.”
“으응…… 그,그것 때문…… 아 닌데.”
“그럼?”
“이거.”
파룬은 주머니에서 타고다 가문 의 패를 내밀었다.
저번에 받았던 패보다 더 고급스 러워 보이는 패였다.
“이건 뭔데?”
“북방군에…… 타,타고다 가문 의 상회가 있으니까…… 이걸 보여 주면…… 네 요청을 뭐든 들어줄 거야……“오호.”
만약의 상황이 되어 공격당하게 되면 타고다 상회로 피하라는 이야 기나 마찬가지였다.
“이거 좋은 걸 받았군.”
“뭘……파룬은 통통한 볼을 긁적거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너에게 받은 게 더 많은데 ,,“그럼 사양하지 않고 잘 써주 지.”
요한의 대답에 파룬은 어색하게 웃은 후 돌아갔다.
다시 파룬이 훈련에 집중하기 시 작할 때 쯤.
월카스트 백작과 메이가 나왔다.
“준비는 다 됐니?”
“저는 검만 챙기면 됩니다.”
“그럼 됐다. 자. 바로 출발하지.”
윌카스트 백작이 마차에 오르자요한은 슬쩍 저택을 둘러보았다.
‘로만 후작이 헤고만 공국의 공 격을 빠르게 막아낸다고 하더라 도…… 그 뒷감당을 생각하면 쉽게 움직이지 못하겠지.’
거기에 윌카스트 백작은 수도에 있고 요한도 북방에 가 있게 된다.
로만 후작이 바그너 영지를 공격 한다고 하더라도.
그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다른 영 지들의 적대심뿐이다.
‘그리고 광약이 있으니 걱정은 없다.’
만약 바그너 영지를 빼앗긴다고 하더라도 대응책 따위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요한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혀를 찬 후 마차에 올라탔다.
* * *타이론 영지에 들러 마고 후작과 합류한 후 요한 일행은 곧장 수도 로 향했다.
수도에 도착하자 마고 후작은 윌 카스트 백작과 요한에게 말했다.
“그럼 바로 왕성으로 들어가도록 할까. 윌카스트 백작. 자네는 일단 귀족원으로 가도록 하게나.”
“알겠습니다. 요한. 후작님을 잘 모셔라.”
저택에 짐을 풀고 마고 후작과 윌카스트 백작, 요한은 쉴 틈도 없 이 바로 출발했다.
목적지는 왕궁.
캐슬 오브 로디악의 중앙에 있는 왕궁의 성벽을 보며 윌카스트 백작 은 쓰게 웃었다.
“그나저나 괜찮겠습니까?”
“음?”
“후작님께서 부재중인 동안 로만 후작이 수작질을 부릴지도 모르는 데……“그러니 자네가 힘써줘야지. 귀 족원의 협조를 받아 잘 견제해보 게.”
마고 후작이 농담처럼 말하자 윌 카스트 백작은 어깨를 으쏙였다.
“노력해보지요. 그럼 무운을 빌 겠습니다.”
간단히 인사한 그가 귀족원으로 들어가자 마고 후작은 요한을 힐끔 보았다.
“너무 걱정 말거라.”
“걱정안 합니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기 위해 윌카스트 백작이 수도에 머무는 동 안 그의 호위는 도둑 길드에게 맡 기면 된다.
창틀에 몸을 기대고 콧노래까지 흥얼거린다.
그 모습을 본 마고 후작은 떨떠 름히 말했다.
“거 참. 아버지가 위험할지도 모 르는데 걱정 하나 안 하는구만.”
“저야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으니까요.”
“쯧…… 네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군. 그런 데 요한.”
"예?”
“하이데의 저주를 해주하는 건에 대해서는 잊지 않고 있겠지?”
"아. 물론이죠.
요한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자 마고 후작은 인상을 찌푸렸다.
“다 잘 되어가고 있으니 걱정 마 십 시오.”
“그래야겠지.”
“하하. 그나저나 왕궁이라니. 기 대되는군요. 무슨 일이 생기려나.”
능청스럽게 말한 요한은 잽싸게 창밖으로 시선을 보냈다.
콧노래가 더욱 강해졌다.
마고 후작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응시했다.
그들이 작은 신경전을 벌이는 동 안에도 마차는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마차가 멈추자 요한은 잽 싸게 내렸다.
“어휴. 마차 안에만 있었더니 찌 뿌둥…… 음?”
“이렇게 와줘서 고맙군.”
마차 앞에는 한 쌍의 남녀가 서 있었다.
그중 남자는 아는 얼굴이었다.
그가 웃으며 말을 걸자 요한은 살짝 허리를 숙였다.
“별말씀을…… 오래간만에 뵙습 니다. 헤르듀크 왕자님.”
그에게 인사한 요한은 헤르듀크 의 옆에 서 있는 소녀를 가리켰다.
“그런데 누굽니까?”
그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헤르듀 크가 아니었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매력적인 소녀 자신이었다.
"반갑습니다. 요한 공자님. 말씀 은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잠시 침묵한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검은 숲의 현자. 백왕 플로란스 님의 하나뿐인 제자. 헤이로나 엘 도만이라고 합니다.”
그녀의 인사를 받은 요한은 살짝 굳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요한의 입가에는 금세 미소가 걸 렸다.
‘프란츠가 질 만했네. 여기서 플 로란스의 제자가 나올 줄 이야.’
앞으로 사 년 후.
대기근과 마찬가지로 있을 수 없 는 일이 벌어진다.
지금까지 한번도 등장한 적이 없 었던 전염병이 대륙에 발병하게 된 다.
원인 불명의 이유로 몸이 하얗게 굳고 일주일 안에 소금이 되어 죽 는다.
그 병을 백색병이라고 한다.
백색병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 이 죽었다.
그리고 병의 진행이 멈추고 나서 야 요한은 알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마왕등장의 두 번째 전조라는 것을.
‘설마 백색병에 죽은 여자가 여 기 있었을 줄이야.’
백색병의 발병 당시만 해도 대륙 은 엄청난 패닉에 빠졌었다.
전염 경로도 다르고,발병 속도 도 사람마다 달랐다.
암흑시대와 황금시대를 통틀어 이런 병 따위는 존재한 적이 없었 다.
결국 그 원인과 치료법이 발견되 기는 했지만.
그때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죽 은 후였다.
요한은 빤히 헤이로나를 바라보 았다.
회귀 전 요한은 동료를 모으기 위해 천하 십강들을 찾았었다.
당연히 그 중에는 백왕 플로란스 도 있었다.
하지만 플로란스가 동료가 되는 일은 없었다.
그녀가 무척이나 아꼈던 제자가 백색병에 의해서 죽은 이후 완전히 의욕을 상실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완전히 폐인이었지.’
회귀 전의 플로란스를 떠올린 요 한은 헤이로나에게 눈을 돌렸다.
‘마왕 등장의 첫 번째 전조인 대 기근은 이미 시작됐어.’
그렇다면 두 번째 전조인 백색병 도 반드시 시작될 것이다.
요한이 따로 손을 쓰지 않는다 면.
그가 만들어낼 나비효과에 엮이 지 않는다면.
이 소녀는 아무것도 모른 채 백 색병에 걸려 죽을 것이 분명했다.
“어……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 나요?”
“자네 백왕 플로란스의 제자였 나!?”
요한은 무덤덤한 데 반해 헤르듀 크는 기겁했다.
백왕 플로란스는 제자를 받지 않 기로 유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플로란스는 타고 난 천재였다.
하나를 배우면 수십 가지를 깨우 치는 자다.
가진 재능이 다양한데다가 뛰어 난 플로란스는 자신과 사람들의 차 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과 어울리게 된다면.
모두가 재능의 차이에 절망한다 는 것도 알았다.
그렇기에 플로란스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천하십강에 오른 이후 백왕은 언 제나 혼자 있었다.
“예.”
경악한 헤르듀크가 묻자 헤이로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백왕은……타인을 거부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제자를 거뒀다는 것 을 헤르듀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스승님께서 좀 낯을 많이 가리 기는 하시죠.”
“아니. 그분은 낯을 가리는 수준 이 아니었는데.”
“어라? 왕자님. 스승님을 만나신 적이 있으십니까?”
“어렸을 때 한 번 된 적이 있었 지.”
헤르듀크는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도 전의 일을 추억했다.
“도브다만 왕국에 전쟁이 났을 때 로드만 왕국에서 지원을 간 적 이 있잖은가.”
“아! 그때!”
그때라면 헤이로나도 들어 알고 있었다.
대기근의 여파 때문에 일어난 전 쟁이었다.
대기근은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수많은 나라를 휘청거리게 했다.
당장 한 줌의 식량 때문에 사람 을 죽이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 만큼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빈번히 전쟁이 일어났었다.
그리고 그 전쟁은 대기근이 끝난 후에도 이어졌었다.
“그때 뵈었었다. 굉장한 분이셨 지.”
그때 백왕이 격파했던 이들을 하 나둘씩 말하며 헤르듀크는 감상에 젖었다.
“아하…… 스승님께서 좀 멋있긴 하시죠.”
“그런데 백왕께서 제자를 거뒀다 니…… 신기한 일이네. 사실 나도 제자가 되고 싶었거든.”
"신기할 것도 없습니다.”
요한은 특유의 무심한 어조로 헤 이로나를 가리켰다.
“백왕이 제자를 받지 않는 이유 는 하나.”
“어?”
“일반인들은 뛰어난 재능을 마주 하면 절망하고 자신을 저주하기 때 문이니까.”
요한이 무슨 말을 하는지 헤르듀 크는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헤이로나가 플로란스도 인정할 정도의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는 이 야기 였다.
헤르듀크는 슬쩍 그녀를 보았다.
밝게 웃는 순박한 모습이 마치 태양같다.
하지만 플로란스같은 특별함은 없어보였다.
그녀를 물끄러미 보던 헤르듀크 는 떨떠름해했다.
“얘가?”
“적어도 왕자님보다는 뛰어나겠죠.”
요한의 말은 헤르듀크의 명치를 가볍게 파고들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