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권 22화
97. 미쳤습니까? 휴먼 (1).
테이블 위에 가득 올려져 있던 요리들이 거의 바닥이 나고 나서야 요한의 식사가 끝났다.
배부르게 먹은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리고 조만간 선물 하나 보내드릴게요.”
“무슨 선물? 그런 건 필요 없단 다. 네가 준 브로치도 아주 좋은 선물인데.”
부드럽게 웃으며 빌헬미나가 말 하자 요한은 그녀에게 마주 웃었다.
“받으면 좋아하실걸요? 드레이크 의 이빨과 비늘로 만든 식칼 세트 니까.”
“어머!? 그런 것이라면 고맙게 받으마.”
드레이크의 비늘과 이빨로 만든 검은 잘 들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대부분 드레이크의 비늘 과 이빨을 구하면 그것으로 기사들 의 검을 만들곤 한다.
누가 그 귀한 드레이크의 비늘과 이빨로 식칼을 만들겠나.
그렇기에 드레이크의 비늘과 이 빨로 만든 식칼은 귀한 것으로 소 문나 있었다.
그것을 준다니 빌헬미나로서도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대해주세요.”
“그래. 그래. 후후. 좋은 식칼이 있다면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있겠 지.”
“그럼 가볼게요.”
“쿠키를 싸놨으니 가서 너도 먹 고 윌카스트 백작님께도 드리렴.”
“예.”
이미 준비해 놓은 커다란 바구니 를 받았다.
안을 확인한 요한이 나가려고 할 때 빌헬미나는 걱정스레 말했다.
“요새 아주 바쁘다면서? 아단도 집에 잘 못 오더구나.”
“오늘부터 저도 일할 거라서 아 단도 복귀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이만.”
인사를 하고 나온 요한은 대장간 으로 향했다.
작업이라도 하고 있는지 하나뿐 인 용광로에서는 불길이 치솟고 있 었다.
“나 왔다.”
“앗! 공자님. 어서 오십시오.”
제일 처음 반긴 것은 유아랑이었 다.
그가 웃으며 인사를 하자 대충 인사를 받아 준 요한은 창고에서 나온 헤갈의 인사도 받았다.
“오셨습니까. 아. 그리고 야스진 치유사가 보내준 것은 받았습니다.”
헤갈은 구석에 놓여 있는 드레이 크 부속들을 가리키고 씩 웃었다.
"좋은 방어구와 무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군요.”
요 근래 장인으로서의 감각이 치 솟는 헤갈이었다.
시작은 요한과 함께 미스릴 검을 만든 이후부터였다.
그때부터 실력이 늘어나고 있었 다.
만들고 싶은 것도 많고,또 요청 도 많다.
요새는 모험가 생활을 했던 때보 다 더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드레이크 부속까 지 들어왔다.
장인으로서의 열의에 기름을 뿌 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건 좋은데. 이빨과 비늘 몇개 는 남겨둬.”
“뭐 만드실 것이 있으십니까?”
“할머니 줄 식칼 만들게. 덤으로 내 검도 새로 만들고.”
헤갈도 과자집에서 꽤나 신세를 졌다.
그러니 그녀를 위한 칼을 만드는 것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이왕 만드는 거 드레이크 합금 으로 하는게 어떻습니까?”
“만들 줄 알아?”
“예. 마침 필요한 재료들도 넉넉 합니다.”
“그거 좋네. 준비만 해놔.”
“어? 공자님께서 만드실 겁니 까?”
“그래. 나도 이래저래 할 일이 있어서 그거 끝나는 대로 만들 거 니까. 그때 같이하자고.”
“알겠습니다.”
드레이크 부위에 광석을 추가하 여 합금을 만들려면 준비가 필요했 다.
그 준비 과정 정도는 헤갈이 혼 자 해도 된다.
헤갈이 챙겨 둔 광석들을 꺼내는 사이 요한은 유아랑에게 손짓했다.
“넌 할 일 없냐?”
“지금은 없습니다. 파종 준비가 되면 그때부터 움직여야지요.”
바그너 백작령에서 농업 담당의 자리를 받은 유아랑은 빙긋 웃었다.
파종이 시작되는 것은 다음 주 '쓰斤. 그 이후부터는 다른 누구보다 유 아랑이 바쁠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서 쉬고 있는 유아 랑은 요한의 질문에 의아해했다.
“혹시 뭐 시키실 것이라도 있으 십니까?”
“시킬 것이라기보다는. 같이 좀 했으면 싶은 게 있어서.”
“하하하. 그게 시키시는 것이지 요. 뭡니까?”
요한은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 내 내밀었다.
“어디 보자…… 씨앗이군요…… 씨앗…… 헉!! 이건!!”
주머니를 받아 열어 본 유아랑은 싱글거리던 미소를 지웠다.
그 안에 담긴 씨앗이 뭔지 알기 때문이었다.
“이건 드라이어드의 씨앗!?”
"용케 알아보네?”
“그야 알지요! 그,그걸 왜 갖고 계십니까!?”
드라이어드는 위험한 몬스터다.
아름다운 용모를 무기로 모든 존 재를 유혹하여 자신의 양분으로 삼 는다.
거기에 마력을 얻거나.
혹은 오래 살아 지성까지 생기면 유혹이 강해져 대규모 군이 가도 상대하기 힘들 정도다.
그러니 발견 즉시 태워버리는 것 이 상식이었다.
“식물인데 왜 그렇게 싫어해?”
“아니 드라이어드는 저도 좀 ,,엘프들은 식물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런 엘프들이라고 해도 모든 식물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드라이어드 같은 경우는 더욱 그랬다.
“이거 키워볼까 하는데.”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요?”
유아랑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물 었다.
요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아랑 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저. 공자님. 이런 말 아십니까? 엘프들에게 전해지는 말인데……"드라이어드를 키우는 바보만큼 미친놈은 없다?”
“그건 어떻게 아십니까?”
"예전에 들었어. 자기 죽을지도 모르고 위험한 짓을 하는 것을 나 타내는 관용어였지?”
“그렇습니다. 어? 잠깐만.”
유아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까지 요한은 뭔지도 모르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해왔다.
그걸 어디서 알게 되었는지는 모 르겠지만 말이다.
유아랑은 기대감을 품으며 물었 다.
“혹시 드라이어드를 안전하게 키 울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있어.”
“진짜요!? 어떻게!?”
그건 엘프들도 모르는 것이었다.
유아랑이 신기해하며 묻자 요한 은 씨앗을 툭 쳤다.
“드라이어드가 매혹까지 써가며 양분을 모으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 해?”
“그야 양분이 필요하니까?”
“그렇지. 드라이어드는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양분이 무척이나 많이 들어가.”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식물 이면서도 동물처럼 움직이기 때문 이죠.”
“그렇다면 그 양분을 안정적으로 충족시켜준다면 어떻게 될까?”
“드라이어드가 하루에 빨아들이 는 양분을 생각하면 그건 쉽지 않 을 겁니다.”
성체가 된 드라이어드는 한번 양 분을 빨아들이기 시작하면 끝이 없 이 빨아들인다.
그것을 떠올리며 유아랑이 대꾸 하자 요한은 고개를 저었다.
“드라이어드가 그렇게 양분을 원 하는 이유는 유체일 때 양분을 제 대로 얻지 못하기 때문이야.”
“그렇습니까? 신기하군요.”
“이건 사람도 그래. 어렸을 때 잘 못 먹으면 식탐이 많아지지.”
유아랑은 요한을 물끄러미 응시 했다.
그 시선을 받은 요한은 이를 드 러 냈다.
"뭐냐? 그 시선은?”
“아뇨. 아무것도. 그럼 유체일 때 양분을 제대로 공급하면 된다는 겁 니까?”
“그렇지.”
“그거면 됩니까? 그런 것이 면……그리 어려운 방법도 아니다.
계속 양분만 넣어주면 되니 말이 다.
“그리고 한가지 더. 양분 따위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걸 가 르치는 거지.”
회귀 전 요한도 이 이야기를 들 었을 때 반신반의했었다.
하지만 그에게 이것을 가르쳐주 었던 이는 실제로 매혹을 쓰지 않 는 드라이어드를 보여주었었다.
그러니 믿을 수 밖에 없다.
“그걸 알게 되면 성체일 때 필요 이상의 양분을 얻으려 하지 않아. 알아서 조절하게 되는거야.”
“그런…… 하지만 왜 지금까지그걸 아무도 몰랐을까요?”
“이유는 두 가지.”
요한은 두 개의 손가락 중 하나 를 접었다.
“연구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 문에. 드라이어드는 위험하니까.”
“아하.”
“그리고 두 번째. 유체 때 필요 한 양분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그렇군요.”
“답도 두 가지야. 많은 양분을 주는 것. 그리고 드라이어드가 높 은 지성을 가지게 해서 가르치는것.”
“지성과 양분이라…… 뭐,지성 은 일단 제쳐두지요.”
유아랑은 씨앗을 만지작거렸다.
요한은 쉽게 말했지만 드라이어 드가 자랄 정도의 양분을 모으는 것은 쉽지 않다.
오죽하면 드라이어드가 자라기 시작하면 그 숲은 백년간 메마른다 는 말까지 있겠는가.
“지금 사용되는 비료로 충분합니 까?”
“그럴 리가.”
현시대의 비료는 대부분 인분이 나 동물의 분뇨다.
제대로 숙성도 안 된 것들 정도 로 얼마나 양분을 보급할 수 있겠 나.
그 정도만으로는 필요한 양분을 보급할 수 없었다.
‘질소를 이용한 비료를 생산하기 는 힘드니…… 있는 것 가져다 써 야지.’
“방법이 뭡니까?
“부엽토랑 구아노가 꽤 많이 필 요해.”
“그 방법은 저도 들었습니다. 황 금시대 때 엘프들이 그것들을 비료 로 써서 약초를 재배했다던데.”
“지금은 안 하나?”
“예. 그 방식은 잘 안 쓰죠. 너무 힘들어서. 그렇게 키울 만한 약초 도 없고.”
양분을 많이 먹는 약초래봐야 기 껏해야 청삼 정도가 다다.
황금시대가 끝나갈 때 엘프들의 약초 재배법도 꽤나 소실되었다.
그러다 보니 부엽토와 구아노를 비료로 쓰는 방법은 큰 의미가 없 어 졌다.
그냥 엘프의 방식으로만 돌봐도 잘 자라니 말이다.
"아무튼 그것들 어디 있는지 파 악해놨으니까 가지러 가자.”
낙엽이 쌓여 부패하여 풀을 키울 때 비료로 쓰이는 부엽토.
그리고 박쥐나 동물들이 동굴에 서 싼 똥이 굳어 만들어진 구아노.
둘 다 식물을 키우기 위해 쓰일 수 있는 좋은 비료다.
요한의 설명을 들은 유아랑은 웃 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있겠군요. 이건 엘프들도 성 공하지 못한 것인데.”
드라이어드를 안전하게 키워내는 일이라니.
어쩌면 엘프사에 한 획을 긋는 위대한 도전일지도 몰랐다.
“공자님 덕분에 저도 재미 좀 보 겠습니다?”
“그럼 군소리 말고 도와.”
“알겠습니다.”
담담히 대답한 유아랑은 고개를 갸웃거 렸다.
가장 중요한 것을 듣지 못했다.
"그런데 공자님. 드라이어드 키 워서 어디에다가 쓰시려는 겁니 까?”
안전한 드라이어드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몬스터다.
요한이 굳이 몬스터를 키울 이유 가 없지 않은가.
엘프들이라면 드라이어드를 키워 낸다는 것 자체를 중요시 여길 것 이다.
하지만 요한은 그것도 아니다.
궁금해하는 유아랑에게 요한은 씩 웃었다.
“그걸 키워놔야 나중에 얘기할 때 편해지거든.”
“누구와 얘기할 때 편해집니까?”
“있어. 화초 키우는 거 좋아하는 어르신이. 그 어르신도 화초 키우 는 데는 일가견이 있지.”
“누굽니까? 꼭 만나보고 싶군 요.”
기대감을 품은 유아랑을 요한은 빤히 응시했다.
그 시선에 의아해하면서도 유아 랑의 기대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원한다면 나중에 만나러 갈 때 데리고 가줄게.”
“어!? 정말이십니까!? 하하! 이 거 기대가 됩니다!”
“그래. 그때 가서 딴소리하지 마 라.”
“자고로 화초를 키우는 재미를 아는 사람은 군자라 하였습니다.”
“……딱히 군자 같지는 않았는 데.”
회귀 전에 만났던 그를 떠올린 요한은 떨떠름해 했다.
화초 잘 키운다고 군자라니.
그가 군자면 세상 사람들은 전부 성인(聖人)일 것이다.
“에이,그건 공자님께서 잘 모르시는 겁니다. 풀 좋아하는 사람 중 에 나쁜 사람은 없지요.”
‘그게 누군지 알고도 저럴 수 있 을까……요한은 회귀 전에 만났던 그를 떠올렸다.
방구석에 처박혀 홀로 풀 키우며 사는 자.
가끔가다 나와도 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사람을 무척이나 거슬리게 하는 어르신.
그는 과거 수많은 드래곤과 사 람,몬스터를 학살한 광기의 블랙 드래곤 교율이었다.
“나중 가서 딴소리하지 마라. 아 무튼 결정됐으니 바로 가자고. 짐 챙겨.”
“예!!”
유아랑은 암울한 자신의 미래도 알지 못한 채 기뻐하며 짐을 챙겨 나왔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