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권 17화
92. 처음이나 그렇지 (1).
게일로즈의 모험가들은 머뭇거렸 다.
유적 바깥이라면 모르겠지만 유 적 안에서는 모험가들끼리의 전투 가 허용된다.
그런데 상대가 마스터다?
싸우면 무조건 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 그의 뒤에 약하긴 하지만 다른 모험가들까지 있다면 더욱 그 렇다.
게일로즈의 모험가 중 하나는 잽 싸게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손바닥 을 비볐다.
“저…… 나으리. 너무 흥분하신 것 같은데. 일단 침착하게 대화 로……“내가 귀족인 걸 알면서도 까불 정도라면 믿는 구석이 있다는 얘기 겠지?”
“그,그게……“얘들이 믿는 구석이 뭔지 아는 사람.”
요한이 묻자 모험가들 중 하나가 번쩍 손을 들었다.
“저들은 도브다만 왕국의 오라카 탈 리만 백작의 후원을 받는 모험 가들입니다!”
“난 또 무슨 공작이나 왕족의 후 원을 받는 줄 알았네.”
당황한 게일로즈의 모험가들이 머뭇거렸지만 요한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아까 너희들이 말했지? 꼬우면 흑석 되라고. 그럼 나도 이렇게 말 해줄게.”
한 걸음 걸어나간 요한이 이를 드러냈다.
그것을 본 게일로즈의 모험가들 은 침을 꿀꺽 삼켰다.
“꼬우면 덤벼.”
“비,빌어먹을!!”
그들은 요한이 절대 그냥 넘어가 지 않으려는 것임을 깨달았다.
가만히 있어 봤자 모든 것을 잃 는다.
그럼 티끌같은 행운을 기대하고 싸우는 것이 낫다.
건장한 모험가들이 덤벼들자 요 한은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흑석급 모험가들이라면 한 사람 당 오크 한둘은 가볍게 상대할 수 있다.
당연히 고블린보다 강하고 개중 에는 익스퍼트에 오른 이들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끄어 억!!”
요한의 일격을 버티지 못하는 것 은 고블린이나 흑석급 모험가나 마 찬가지 였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이들 을 내려다보던 요한은 뒤에 서 있 던 모험가들에게 말했다.
“뒤져.”
“예…… 예에!?”
요한이 게일로즈를 쓰러트리자 통쾌해 하던 모험가들은 그의 말에 의아해했다.
하지만 곧 그것이 게일로즈를 뒤 지라는 이야기라는 것을 그들은 겨 우 깨달았다.
“아,알겠습니다.”
분위기는 이미 차갑게 굳어 있었 다.
그 분위기를 요한은 능숙하게 주 도하고 있었다.
모험가들은 홀린 듯 요한의 명령 에 따라 게일로즈의 장비와 소지품 을 챙겼다.
“저기…… 이걸.”
무기와 방어구,그리고 돈과 마 석,그 외에 몬스터들을 잡고 얻을 수 있는 부속품들까지.
그 양은 꽤나 많았다.
묵직한 주머니를 받은 요한은 모 험가들에게 다시 내밀었다.
"너희들이 가져라.”
“……예? 예!? 저,저희에게 주 셔도 됩니까?”
“나에게는 짐만 될 뿐이니까.”
주머니에 있는 것을 팔아봤자 요 한에게는 푼돈에 불과했다.
하지만 석급 모험가들에게는 상 당한 가치가 있었다.
특히나 좋은 검이나 마법 투구 같은 장비는 하급 모험가들에게는 보물과 같다.
침을 꿀꺽 삼킨 모험가들은 허둥 거리며 장비들을 챙겼다.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그리고……요한은 힐끔 쓰러져 신음하는 모험가들을 내려다보았다.
“재들이 유적에서 나가면 그걸 빼앗으려 할지도 몰라.”
“그,그럴까요?”
“그러니 뒷일은 너희들이 알아서 하도록.”
한마디만 남긴 요한은 빙글 몸을 돌렸다.
그가 지하로 내려가자 헤로도톤 과 야민,미나는 허둥거리며 그를 쫓았다.
한순간에 넓은 방의 분위기가 무 거워 졌다.
요한이 내뿜던 위압감이 사라졌 지만 심각한 분위기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어,어쩌지…….?”
힘겹게 말하는 게일로즈를 내려 다보던 모험가들은 자신의 손에 들 린 것들을 보았다.
새롭고 좋은 장비.
그리고 쉽게 구하기 힘든 재료 들.
거기에 돈.
만약 저들을 살려준다면 이것들 은 어떻게 될까?
아니,저들이 자신들을 다시 공 격하지 않을까?
“……게일로즈는 이런 식으로 초 심의 유적이나 다른 곳에서 돈을 모으는 놈들이야.”
“그렇지……고민은 길지 않았다.
게일로즈가 평소에 초심자들을 돕던 이들이었다면 이것들을 돌려 주고 그들을 살렸을 것이다.
하지만 게일로즈는 악명높은 모 험가들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을 굳이 도울 필요는 없었다.
아니.
“……여기서 끝장내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르지.”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생길지 모 른다.
모험가 중 하나는 새로 얻은 검 을 꽉 잡았다.
누군가는 짧은 단검을 쥐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방패를.
그리고 그들의 뒤를 이어.
장비를 받지 못한 이들마저도 자 신들의 무기를 꽉 쥐었다.
* * *지하 이 층에 내려가자 미나는 살며시 요한의 옆으로 다가가 말했 다.
“공자님.”
"음?”
“저기…… 도와주셔서 감사합니 다.”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아까 게일로즈의 모험가들이 자 신과 야민에게 흑심을 드러냈었다.
그런데 요한이 나서서 그들을 쓰 러트렸으니 당연히 감사할 수밖에.
하지만 아직도 의문은 남아 있었 다.
“공자님께서는 왜 초심의 유적에 오신 건가요? 그리고 저희같이…… 그,허접한 파티와 함께?”
유적의 다른 모험가들도 어찌하 지 못한 게일로즈를 요한은 혼자서 간단히 쓰러트렸다.
그런 요한이라면 혼자서도 충분 히 이 유적을 탐험할 수 있었을 것 이다.
그럼 그는 왜 자신들과 함께 유 적탐사를 온 것일까?
헤로도톤과 야민도 같은 의문을 가진 듯하자 요한은 순순히 답해주 었다.
“지하 삼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서. 거긴 나 혼자 문을 못 열어. 솔 직히 필요한 건……요한은 미나를 가리켰다.
“신성력을 쓸 수 있는 너 뿐이 야.”
“저만요?”
“그래. 재네 둘은 너의 덤이다.”
“그렇습니까……?”
헤로도톤과 야민은 살짝 풀이 죽 었다.
너무 솔직해서 우울할 정도다.
그런 둘을 달랜 미나는 이 층에 서도 길 한번 잃지 않는 요한에게 다급히 물었다.
"제가 뭘 해야 하나요!? 호,혹 시 제물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 겠죠?"
“그런 거였으면 파티를 찾았겠어? 그냥 너 같은 수행 사제 아무 나 잡아서 끌고 가면 되는데?”
요한의 대꾸에 셋은 겨우 안도했 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조금 전 요한이 했던 말 중에 이 상한 말이 있었다.
야민은 황급히 초심의 유적 지도 를 살폈다.
"삼 층이라니요? 초심의 유적은 이 층까지밖에 없습니다만……길드에서 준 지도도 이 층뿐이 다.
야민은 다시 한 번 지도를 봤지 만 삼 층은커녕 이 층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문조차도 없었다.
“아직 발견을 못 했을 뿐이야. 자. 전투 준비해.”
복도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질척이는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 리다.
그것을 눈치첸 야민은 황급히 앞 으로 나왔다.
“슬라임 입니다!”
"약점은 알고 있지?”
“예. 화염 마법이 잘 통한다
고……슬라임은 부정형 몸체를 가지고 있으며 적을 통째로 삼켜 부식시켜 먹어버리는 몬스터다.
일반적으로는 약한 몬스터로 취 급받지만 실제로 전투에서 만나면 꽤나 골치 아픈 적이었다.
무기나 방어구를 부식시키기도 한다.
거기에 상대법도 난감했다.
화염 공격을 하거나 핵을 정확히 꿰뚫어야만 쓰러트릴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어지간한 공격에 는 데미지도 제대로 입지 않는다.
“슬라임은 랭크가 낮은 몬스터지 만 골치 아픈 몬스터이니 얕보지 마라.”
“예!”
긴장하던 야민은 질척거리는 소 리가 더 강해지자 주문을 외웠다.
그녀의 주문이 완성되기 직전 요 한은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챙!!
어둠 속에서 날아든 것은 날카로 운 독화살이었다.
그것을 쳐낸 요한은 허공에 떠오 른 화살을 잡고 그대로 던졌다.
-케에에엑!!
슬라임을 꿰뚫은 독화살이 어둠 속에 꽂혔다.
그 어둠 속에서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이 들리자 헤로도톤은 깜짝 놀 탔다.
“고블린!? 슬라임과 고블린이 어 떻게 같이 있을 수 있는 거지!?”
슬라임은 피아 구분이 없다.
같은 동족인 슬라임끼리도 서로 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그런데 고블린이 슬라임과 함께 움직이다니.
헤로도톤이 놀라자 요한은 고개 를 갸웃거렸다.
“고블린 로드의 지배력이지. 뭐 야. 초심의 유적 지하 이 층 보스 에 대해서 몰라?”
“예…… 그. 일 층도 저번에 간 신히 왕복한 거라서……“길드에서 자료를 주지 않았나?”
“저,저희 실력으로는 일 층이 한계라 확인을 아직……쑥스러워하며 헤로도톤이 말한 순간 야민의 마법이 준비되었다.
“파이어 볼!!”
시동어를 외치자 지팡이에 맺혀 있던 불길이 구체가 되어 빠르게 슬라임을 향해 날아들었다.
강력한 불길은 단번에 통로를 메 우고 있던 슬라임을 불태워버렸다.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슬라임이 버둥거리다 고블린들을 덮쳤다.
그 불길에서 고블린들은 필사적 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화염 공격 탓일까?
지배력이 풀린 슬라임은 불타오 르면서도 본능적으로 고블린들을공격하고 있었다.
결국 슬라임과 고블린들이 완전 히 타버려 죽자 요한은 검을 넣으 며 설명했다.
“고블린 로드가 존재하면 고블린 보다 수준이 낮은 존재들은 고블린 의 명령을 따르게 돼.”
“아……“그 과정에서 제일 많이 쓰이는 것이 바로 슬라임이야. 기억해둬.”
고블린 로드는 초심의 유적 외에 도 많이 존재하는 몬스터다.
나중에 흑석급 모험가가 되면 고 블린 로드의 처치 의뢰도 꽤 들어 온다.
그때 어떻게 상대하고,뭘 주의 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아까 살려주신 것. 정말 감사드 립니다.”
헤로도톤과 야민은 요한에게 고 개를 숙였다.
요한은 분명히 말했다.
미나 외에는 그냥 덤이라고.
그런데도 덤에게도 지식을 내어 주고 위기에서 구해주기까지 했다.
물론 요한에게는 별것 아닌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중요 한 일이었다.
둘이 자신에게 공손히 인사하자 요한은 바로 몸을 돌렸다.
“계속 진행한다.”
“예!!”
“빨리 가자!!”
이런 일이 계속되니 이제는 저 무뚝뚝한 모습조차도 멋있어 보였 다.
정신을 차린 둘이 요한을 쫓으려 는 사이 미나는 요한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왜 그래?”
“아니…… 요한 공자님.”
“응?”
“정말 아무것도 관심이 없으신 것 같아서……미나의 말에 헤로도톤과 야민은 의아해했다.
아무것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이 렇게 친절하게 가르쳐주겠는가.
궁금해하는 그들을 향해 미나는 머뭇거렸다.
“아까 야민 너를 구해주고,또헤로도톤에게 설명을 해주셨을때……미나는 아까 느꼈던 위화감을 떠 올렸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 때 보답을 기대한다.
자신의 호의가 돌아오기를 기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한에게는 그런 것이 없 었다.
“바론 교단에서도 봉사활동이나 대민지원을 할 때는 다들 기대를 해.”
“그래?”
“응. 바론님의 은총을 받아 바론 님을 따르길 바라는…… 그런 기대 라도 하는데,요한 공자님은 달라.”
“그런 게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다?”
“ ■o石 ".”
미나가 주춤거리며 답하자 헤로 도톤과 야민은 곰곰이 생각했다.
“그거야 당연하지. 요한 공자님 은 마스터라고. 마스터.”
“맞아 아직 유저도 되지 못한 헤 로도톤이나,이 클래스인 나에게 무슨 기대를 하시겠어?”
"그럴까……?”
“그런 거겠지. 그러니까 너무 심 각하게 생각하지 마.”
미나는 그래도 불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저런 사람은 대부분 큰 충격과 고통을 겪은 사람뿐인데…… 저 정 도로 강하신 요한 공자님께선 어떤 일을 겪으신 것일까?’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