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권 10화
85. 도움의 대가 (2).
“그렇습니까?”
“응. 귀여워서 항상 데리고 다니 고 있지. 볼래? 볼래?”
"예. 저도 고양이 좋아하니까 꼭 보고 싶군요.”
그녀가 웃으며 손을 들자 잠시 후 시녀가 고양이를 안고 다가왔다.
밤하늘처럼 예쁜 검은 털에 네 발은 눈처럼 새하얗다.
꽤나 미묘인 아기 고양이는 귀찮 다는 듯 늘어지게 하품을 한 후 폴 짝 뛰었다.
가볍게 레일라의 품 안에 들어간 고양이가 그르렁거리며 꼬리를 살 랑거린다.
애묘인이라면 누구나 사랑스럽다 생각할 모습에 레일라는 기뻐하며 자랑했다.
“어때!? 귀엽지?”
“예. 귀엽네요. 이런 걸 보고 턱 시도 고양이라고 하던가요?”
“후후. 그래. 이름은 나비야. 만 져봐도 괜찮아.”
“정말 괜찮습니까?”
“응. 얘는 엄청 얌전하거든. 그리 고 말도 잘 듣고.”
레일라의 말대로 고양이는 요한 의 손에 들어와서도 얌전했다.
그저 뒷발을 움직여 예쁜 얼굴을 쓱쓱 쓸어만질 뿐 이었다.
그르릉거리는 울음소리를 내며 몸을 비트는 고양이를 잡은 채 요 한은 차분히 물었다.
“말을 잘 듣는다구요?”
“응. 가끔 생각하는데 사람 말을 알아듣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라 고.”
늘어지게 하품을 한 고양이는 레 일라의 말에 대답하듯 꼬리를 살랑 살랑 흔들었다.
그 꼬리의 끝은 하얀 털로 뭉쳐 져 있었다.
요한은 레일라의 품에 안겨 있는 고양이를 지그시 응시했다.
‘이거 혹시?’
테인의 정보와 헬리안의 정보까 지 조합하면 레일라의 고양이가 칼 리안일 가능성이 컸다.
마녀와 계약한 패밀리어 같은 경 우가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 다.
또 강한 마녀의 패밀리어는 직접 사람의 말을 하기도 했다.
변신마법을 써서 고양이가 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장소다.
이곳은 마고 후작이 별장으로 쓰 는 저택이다.
때로는 수많은 귀빈이 오기도 한 다.
암살을 대비해 당연히 마법에 대 한 방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 마법으로 위장하거나 마 법적인 존재는 절대 이곳으로 들어 올 수 없다.
‘헬리안은 분명 변신마법이 아니 라고 했었지.’
요한은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나비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 때문일까?
나비는 부르르 몸을 떨고 털을 세우며 몸을 비틀었다.
- 야옹! 야옹!
“앗! 나비야?”
하지만 고양이의 몸짓 따위로 요 한의 손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한참 껑껑거리던 나비가 애처롭 게 바라보자 레일라는 손을 내밀었 다.
“돌려줘. 널 무서워하는 것 같 아.”
“잠시 나비를 빌릴수 있을까 요?”
“무슨 소리야?”
"제가 찾던 고양이 같아서 말입 니다. 확인만 하고 돌려드리지요.”
“혹시 네가 주인이야?”
“아닙니다. 그냥 확인만 해보면 됩니다.”
“싫어. 주인이 아니라면 나비를돌려줘.”
나비가 필사적으로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 때문일까?
레일라는 무척이나 간절해 보였 다.
두 손을 모으고 살짝 떨고 있는 모습이 꽤나 애처로웠다.
"무슨 일이지?”
요한과 레일라의 분위기가 이상 해지자 구경하던 헤르듀크가 다가 왔다.
“아. 헤르듀크.”
“하하. 요한. 내 후배가 아름답다
고 하더라도 그렇게 강제로 권하는 것은 곤란하지.”
“후배? 레일라 왕녀님. 아카데미 에 다니고 계십니까?”
요한이 의아해하자 헤르듀크는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그래.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무 슨 일인데?”
“이 고양이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양이? 아. 나비를 말하는 건 가?”
“예. 확인할 것이 있는데 왕녀님 께서는 싫다고 하시는군요.”
“흐음…… 레일라. 내가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요한이 저 고양이 로 허튼짓은 하지 않을 거야.”
‘저 인간은 뭘 믿고 저런 소리를 하는 거지?’
헤르듀크가 안심시켜주었지만 레 일라는 그래도 불안해했다.
하지만 내밀던 손은 천천히 내려 가고 있었다.
“그럼 십 분 만이야. 알았지?”
"알겠습니다.”
-야옹〜! 야옹〜!
간절히 발버둥 쳤지만 요한은 냉 정했다.
애처롭게 우는 나비를 들고 방으 로 간 요한은 휙 침대에 던졌다.
빙글 허공을 돌아 착지한 나비는 등을 세우며 으르렁거렸다.
- 야옹!!
“칼리안.”
- 야옹〜!
“대답하지 않으면 죽는다.”
남자든,여자든.
하물며 사랑스러운 새끼 고양이 든.
거슬리면 치는 요한이다.
바로 미스릴 검을 꺼낸 요한은 나비에게 검을 겨눴다.
살기를 느낀 순간 나비는 더더욱 위협하듯 털을 곤두세웠다.
“아,그래. 죽고 싶다고?”
검에 오러가 담겼다.
그대로 있다면 진짜 죽을지도 모 른다.
그 때문인지 나비는 작게 신음한 후 몸을 웅크렸다.
“그래. 진작 이렇게 나올 것이 지.”
작은 고양이의 모습이 순식간에 열 살 남짓해 보이는 소년으로 변 해 버렸다.
목까지 살짝 내려오는 밤하늘 같 은 머리.
하얀 목에는 물고기 문신이 있 다.
비단처럼 고운 머리칼과 또렷한 이목구비.
맑은 눈동자와 눈 밑에 새겨진 눈물점은 소년의 기묘한 색기를 드 러내고 있었다.
누구든 본다면 사랑스럽다고 생 각할 소년이다.
그는 검은 머리 위의 귀를 까딱 거리고 경계하며 물었다.
“당신 뭐야?”
“네 누나가 헬리안이지? 그녀가 널 찾고 있다.”
“……난 누나를 만나지 않을 거 야.”
어린아이 특유의 오기가 섞인 어 조다.
평범한 이들이라면 칼리안의 귀 여움과 색기에 녹아내리며 넘어갔 을 것이다.
하지만 요한은 그런 것에 넘어갈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말조심해라. 왕녀님과 함께 있 다고 네가 왕족이라고 생각하는 거 냐?”
검에 담긴 붉은색 오러가 넘실거 렸다.
당장에라도 자신의 목을 벨 것 같은 그 오러를 본 칼리안은 움찔 했다.
하지만 덜덜 떨면서도 칼리안은 물러서지 않았다.
“나, 날 죽일 수는 없을 걸?”
“왜?”
“그야…… 난 레일라 왕녀님의 고양이니까……“레일라 왕녀님의 고양이는 고양 이지 묘인족이 아니란다.”
“그,그래도 상관없어…… 내 주 인님은 레일라 왕녀님이야!”
칼리안은 천천히 발톱을 세우고 전투 모드가 되었다.
하지만 요한과 싸우는 것이 아닌 그저 도망가려고만 할 뿐이었다.
잽싸게 몸을 날려 도망치려는 칼 리안을 요한은 가볍게 잡아챘다.
“앗!?”
“아직 내 말 안 끝났다.”
칼리안의 다리를 아무렇지 않게 잡아낸 요한은 그를 가볍게 벽을 향해 던졌다.
“웃!”
허공에서 빙글 몸을 돌린 그는 벽을 밟고 침대로 떨어졌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온 칼리안 이 화를 내려 하자 요한은 무덤덤 하게 말했다.
“너 테인의 밑에 있었지?”
“그,그걸 어떻게!?”
놀란 칼리안이 입을 쩍 벌리자 요한은 귀찮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 다.
“오늘 내가 테인 쪽 세력 다 깨 부수고 왔으니까 겁먹지 말고 말 해.”
“그…… 그럼 날 그냥 보내줄 거 야?”
“몇 가지 더 묻고.”
‘단서만이라도 알려달라고 했으 니까. 나머지는 알아서 하겠지.’
다른 나라의 왕녀가 애완용으로 데리고 있는 고양이를 가져갈 생각 은 없었다.
물론 가져가고자 한다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작 돈 몇 푼 얻자고 그 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정말…… 이야?”
사랑스럽게 생긴 귀여운 소년이 오들오들 떨며 물었다.
또다시 묘한 색기가 피어올랐지 만 요한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 다.
오히려 살기를 담으며 싸늘히 말 할 뿐이었다.
“마지막 경고다. 어디 건방지게. 반말하지 마라.”
소름 끼칠 정도로 차가운 어조에 칼리안은 기겁하며 딸꾹질을 시작 했다.
"희……. 히끅!”
“묻는 말에나 대답해. 어쩌다가 테인의 밑에 들어간거지? 그리고 그가 내린 명령은 뭐냐.”
“그게…… 테인은 저를 사 와 서…… 제가 고양이로 변할 수 있 다는 것을 알고 이,이년 전부터 마고 후작님을 감시하게 시켰어요.”
겁먹은 칼리안은 결국 공손한 태 도로 설명을 시작했다.
테인의 명령에 따라 타이론 영지 를 조사했다.
거기에 타이론 영지로 바그너 백 작가가 갈 때마다 연락을 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작년 겨울 레일라와 하 이데를 만났다.
그녀에게 잡힌 이후 애완고양이 가 되어 마드모스 왕국으로 갔다.
그의 설명을 전부 들은 요한은 싸늘히 웃었다.
‘초대장도 받지 않은 로만 후작 이 어떻게 알고 하이데의 생일파티 에 왔나 했더니. 이놈이 보낸 정보 를 통한 거였나?’
“너. 마법도 쓸 줄 아나?”
끄덕.
그가 긍정하자 요한은 칼리안의 눈물점을 보았다.
칼리안은 요한이 자신을 바라보 자 애처롭게 눈을 빛냈다.
‘매료가 가능하고,마법도 쓰는데 다가 고양이 변신까지 할 수 있다 라……솔직히 탐난다.
정보요원으로 잘만 굴린다면 쓸 만한 곳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레일라와 적대 관계가 되어야 한다.
과연 칼리안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요한은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 가치는 없다. 굳이 정보 원 키울 필요도 없고.’
“그럼 마고 후작을 감시하라고 명한 자는? 뭐 볼 것도 없지. 로만 후작인가?”
“그건 저도 잘 모르는데요…… 전 그냥 정보원이라……“그래? 뭐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지금까지 무슨 정보를 보 냈지?”
“타이론 영지에서도 머무르며 영 지에 들어가는 이들을 확인하 고……. 또 뭔가 문제가 생기면 보 냈고……"그렇군. 됐어. 묻고 싶은 것은 끝났으니 네 주인님에게 가자.”
요한이 시큰둥히 말하자 칼리안 은 의아해했다.
그가 순순히 풀어준다는 것이 믿 기지 않았다.
“저를…… 끌고 가지 않을 건가 요?”
“누구에게?”
“헬 리안에게……?"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칼리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라도 안아주고 싶을 모습인 그를 향해 요한은 콧방귀를 뀌었다.
“널 찾는 건 개들의 일이지 내 일은 아냐. 어쨌든 행방은 알았으 니 됐어.”
칼리안은 테인의 밑에 있었다.
당연히 그도 타고다 상회에서 자 신을 찾는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칼리안은 타고다 상회 로 가지 않았다.
그 이유가 뭐겠는가.
그가 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헬리안과 칼리안 사이에 무슨 일 이 있었는지 요한은 모른다.
관심도 없으니 굳이 끼어들 생각 은 없었다.
“남의 가정사에 신경 쓸 정도로 한가한 사람 아니야."
“그럼……?”
“그래도 네 행방 정도는 말해 줄 거니까 그렇게 알아두도록.”
“감사합니다!”
레일라와 떨어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한이 순순히 놔준다고 하자 칼리안은 크게 기뻐했다.
“정말 감사하면 아카데미에서 내 가 원하는 정보 좀 구해와.”
“예?,,“통신마법 쓸 수 있다면서?”
요한의 말에 칼리안은 고민했다.
결국 남의 뒤를 캐라는 이야기 다.
괜히 위험한 일을 하는 것이 아 닐까 싶어 칼리안은 고민했다.
그를 보던 요한은 어깨를 으쓱였 다.
“싫으면 관두고.”
칼리안이 힘들다면 도둑길드를 활용하면 된다.
하지만 그의 말이 협박으로 들린 것이었을까?
칼리안은 잔뜩 겁먹은 어조로 다 급히 말했다.
“하,할게요.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누군가요? 저기……. 마 스터나 로드,교관들은 힘들 것 같 은데……“이번에 입학할 내 동생 프란 兵 ”
"동생…… 이요?”
“그래. 개가 탈선하거나 헛짓거 리하거나. 혹은 공부는 잘 하는지. 그정도 확인만 해서 보내.”
“요한 공자님께서는 동생을 꽤나 생각해주시네요……우울해 하는 그를 향해 요한은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원래 형제란 이런 것이지. 형은 동생을 보살펴야 하는 존재다.”
‘그리고 동생은 형에게 잡혀 살 아야 하는 존재고.’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