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권 9화
84. 도움의 대가 (1).
‘두고 보자. 요 녀석.’
"요한. 그 녀석은 나이는 어리지 만 마스터입니다.”
"그렇지요,”
“왕자님께서도 아시겠지만 마스 터라는 위치는 말입니다. 훈련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는 자리입니다.”
“알고 있지요. 저도 마스터를 노 리고 있는걸요.”
“선왕이 되시기를 바라셔야지요.”
헤르듀크가 익스퍼트인 것은 다 들 아는 사실이었다.
검술도 뛰어나고 인망도 있다.
거기에 사람을 대하는 것도 훌륭 하다.
그가 훌륭한 국왕이 될 것이라고 마고 후작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늦지 말라고는 했으니 금방 내려올 것입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행여나 그를 만나지 못할까 걱정했습니다. 하하 하!”
“하하하!”
이후는 간단했다.
적당히 근황 이야기를 하며 마고 후작은 시간을 끌었다.
그 사이 옷을 갈아입은 요한이 내려왔다.
“죄송합니다. 후작님. 수련 도중 에 무아지경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마스터라면 응당 그래야지.”
말은 좋게 했지만 마고 후작의 등에는 식은땀이 살짝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를 향해 씩 웃은 요한은 헤르듀크에게 허리를 숙였다.
“요한 바그너입니다. 잘 부탁드 립니다.”
요한이 늦었음에도 헤르듀크는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그저 선선히 웃으며 손을 내밀 뿐이었다.
"로드만 왕국 제 일왕자 헤르듀 크 로드만이다.”
그 손을 맞잡은 요한이 마주 웃 어 보인다.
그제서야 마고 후작은 남은 불안 감을 모두 가라앉혔다.
“그럼 왕자님. 다른 사람들도 있 으니……“알겠습니다. 그럼 파티장에서 뵙지요.”
마고 후작과 인사를 마친 헤르듀 크가 가버리자 마고 후작은 으르렁 거렸다.
“넌 뭐하다가 이제 오는 거냐?”
“파티 시작 시각보다는 일찍 왔 습니다만……?"
요한은 시계를 가리켰다.
파티의 시작 시각은 저녁 8시.
시젯바늘은 아직 8시임을 알리지 않고 있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한 시간 정도 일찍 와서 도우면 좀 덧나 냐?”
그때 허둥거리며 예복을 입은 야 스진이 내려왔다.
그가 요한의 옆에 서자 마고 후 작은 사정을 물었다.
"자네는 같이 갔으면서도 좀 말 해주지.”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공자님의 훈련을 말립 니까.”
마고 후작의 타박에 야스진은 억 울해했다.
점식식사를 한 후에 요한이 잠깐 훈련 좀 하고 가자고 하길래 그러 자고 했는데.
그게 실수였다.
“세상에 요한 공자님도 참 대단 하시지. 지나가던 사람들은 행위예 술 하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검을 뽑아서 머리 위로 쳐들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도록 검을 아주 조금밖에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검이 겨우 머리 근처에 왔 을 때가 되었을 때는 해가 저물고 있었다.
야스진이 사정을 설명하자 마고 후작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거 만검의 훈련법 아니냐?”
“아십니까?”
“정중동(靜中動)의 무리를 이해 하기 위한 훈련법이라는 정도는 알 지.”
“오. 이거 아는 사람 별로 없는 데.”
"전대 녹색 산맥의 챔피언과 잠 깐 일했었지. 그때 그가 가르쳐줬 던 건데…… 그게 효과가 있긴 한 거냐?”
“세상에 효과 없는 훈련이 어디 있겠습니까. 무슨 훈련이든 도움은 됩니다.”
"그렇구만…… 아무튼. 이제 가 자.”
“예. 그러지요. 그런데 프란츠는 어디 있습니까?”
“프란츠 공자는 벌써 파티장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요?”
“예. 어지간히 공부하기 싫으셨 던 모양이더군요.”
파티장이 열리자마자 프란츠는바로 파티장으로 탈출했다.
마고 후작 옆에 있던 헤임달이 설명하자 요한은 만족스러워했다.
“녀석. 그렇게 춤이 추고 싶었 나? 잘 됐다.”
‘즐기는 단계라면 오늘 바짝 돌 려야겠군.’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 다고 하지 않았던가.
음악감상과 댄스는 소드 댄싱에 도움이 된다.
그럼 최대한 많이 춤을 추게 해 야 한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 만 그런 표정은 관둬라.”
“제 표정이 어때서요?”
“뭔가 흉계라도 꾸미고 있는 것 같다. 자. 가자.”
파티장인 뒤뜰에는 벌써 악사들 과 함께 음식들이 꽤 마련되어 있 었다.
바그너 영지나 타이론 영지에서 했던 파티와는 수준이 달랐다.
악단.
음식.
시종들.
장식과 테이블.
모든 것이 몇 배는 더 뛰어나 보 였다.
그리고 참석한 사람들 역시 기본 이 자작급 이상으로 보였다.
“네가 만나봐야 할 사람들은…… 일단 파논 백작이다. 이야기는 들 었지?”
“아뇨.”
“도르마나 영지를 차지하고 백작 위에 오른 사람이다. 윌카스트 백 작과 친한 사이지.”
“아. 그렇습니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년 인은 마고 후작을 보자마자 부리나 케 달려왔다.
“마고 후작님. 여전히 건강해 보 이셔서 마음이 얼마나 놓이는지 모 릅니다.”
“별말을 다 하는구만. 늙으면 그 저 빨리 죽어야 하는데.”
“그런 소리 마십시오. 마침 제게 좋은 삼이 있으니 차후 보내드리도 록 하겠습니다.”
정중히 그에게 인사한 파논 백작 은 요한에게 웃어 보였다.
"자네가 요한이지? 만나서 반갑네. 파논 피에르이네.”
“반갑습니다. 요한 바그너입니 다.”
“하하…… 편하게 말하게. 숙부 님도 괜찮고. 월카스트 백작님과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이니 말야.”
“그렇습니까? 하하. 숙부님. 앞으 로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잘 부탁해야지. 자네 덕분 에 백작위와 넓은 영지를 얻게 되 었는데 말야.”
요한이 유노와 칼튼을 죽였기에 도르마나 영지를 얻을 수 있었다.
파논 백작은 요한의 등을 툭툭치며 친밀감을 표시했다.
“파논 백작님께 그만한 가능성이 있으니 백작위에 오르신 것 아니겠 습니까?”
“그리 말해주니 고맙군. 아. 이쪽 은 내 친우들이고,또 마고 후작님 을 모시는 이들이라네.”
다가온 다른 이들까지 소개해준 다.
그들에게 요한이 일일이 인사하 자 파논 백작은 슬쩍 요한에게 속 삭였다.
“그리고 자네 아버님과도 뜻을 같이하고 있어.”
로만 후작과 적대한다는 것이다.
그 말에 요한은 빙긋 웃었다.
“함께 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지 요.”
“그렇지. 아무튼 필요한 것이 있 다면 언제든지 연락 주게.”
“알겠습니다.”
“우리 피에르 백작가는 바그너 백작가를 가족처럼 생각하니까. 아. 그리고 이 친구는..”
다른 이들도 차례차례 요한과 이 야기를 나눴다.
나이가 몇 배나 많은 어른들을 상대하면서도 요한은 한 번의 물러 남이 없었다.
그것이 귀족들에게는 좋은 모습 으로 비춰졌다.
가끔씩 공자들이 작위를 가진 귀 족들 앞에서 필요 이상으로 숙이곤 했다.
하지만 요한은 숙이기보다는 자 신감을 우선했다.
그것이 마음에 든 것이다.
로만 후작이라는 강대한 적과 싸 우기 위한 패기는 충분하다 생각되 었다.
귀족들은 요한을 후원하는 마고 후작을 칭송한 후 다른 곳으로 이 동했다.
“이런 식으로만 가자꾸나.”
요한이 생각보다 잘해주자 마고 후작은 뿌듯해했다.
보람을 느끼는 그를 향해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요.”
그 이후에도 꽤 많은 귀족들이 다가왔다.
파티장에 온 귀족들과 전부 인사 를 나누고 났을 때 쯤.
마고 후작은 헤르듀크의 부름을 받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요한이 생각보다 더 잘 대응하자 믿고 맡긴 것이다.
‘그럼 좀 쉴까……?’
구석으로 간 요한은 자리에 앉아 차분히 파티장을 둘러보았다.
‘헤르듀크를 후원하는 파벌의 모 임이라고 보는 게 맞겠네.’
그들의 면면을 살피고 머릿속에 새겨 둔 요한은 고개를 숙였다.
‘일단 여기서 만나야 할 사람 이……그때 였다.
요한은 자신의 앞에 그림자가 생 기자 슬쩍 고개를 들었다.
"뭐하나? 소개시켜드리고 싶은 분이 있으니 정신 차려.”
마고 후작이었다.
그의 옆에는 청색 화려한 드레스 를 입은 프란츠 또래의 금색 단발 의 미소녀가 있었다.
살짝 치켜세워진 눈매 덕분인지 성격이 드세 보였다.
그녀도 그것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일까?
생글거리는 웃음으로 날카로운 눈매를 감추고 있었다.
“요한 인사드려라. 레일라 마드 모스 왕녀님이시다.”
마드모스 왕국의 왕녀까지 올 줄 이야.
요한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자리 에서 일어나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바그너 백작가의 요한 바그너입 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네. 잘 부탁할게. 신성.”
마드모스 왕국은 로드만 왕국의 동쪽에 있는 산악국가다.
검은 산맥과 연결되어 있고 왕국 내에 검은 무쇠산이 있다.
덕분에 질 좋은 금속과 장비,무 기를 생산 가능한 강국 중 하나였 다.
‘그리고 마왕 등장 후 가장 처음 공격하는 나라이기도 하지.’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린 요한은 그녀에게 웃었다.
“왕녀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 다.”
“영광이랄 것까지는 없는데. 아 무튼 반가워.”
“하하하. 젊은 사람끼리 이야기 를 나누시는데 제가 방해를 하는 것 같군요.”
"방해랄게 있나요? 누구도 후작 님을 방해라 생각하지 않을 겁니 다.”
“배려 감사합니다. 그런데 왕녀 님. 저번의 그 고양이는 아직 잘 키우고 계십니까?”
“나비? 물론이에요. 아주 잘 있 죠. 하이데가 보고 싶다고 안하던 가요?”
“하하하. 안 그래도 나비의 안부 를 물어봐 달라고 청했습니다.”
‘나비가 뭐야?’
요한이 의아해하는 사이 둘은 몇 마디 이야기를 더 나눴다.
간단한 근황을 나눈 마고 후작은 슬쩍 다른 쪽을 보았다.
다른 몇몇 귀족들이 그를 기다리 고 있었다.
“그럼 저는 잠깐 다른 곳에 가볼 테니…… 요한. 왕녀님의 에스코트 를 부탁한다.”
마고 후작이 가버리자 그녀는 숨 을 깊게 마신 후 요한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요한이 마스터라고 하더 라도 타국의 마스터이고 타국의 귀 족이다.
왕족인 그녀가 백작의 아들인 요 한에게 고개를 숙일 이유는 없었다.
뜬금없는 인사에 요한이 의아해 하자 레일라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 다.
“고마워.”
“갑자기 무슨……?”
“하이데의 저주를 네가 풀어주기 로 했다면서?”
“예. 그렇긴 합니다만.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래 봬도 나 상아탑에 소속된 해주술사거든.”
“아하,“그리고 하이데의 친구이기도 하 지.”
“그랬습니까?”
‘어? 그럼 하이데는 왜 노예로 팔려간거지?’
레일라가 이렇게 나올 정도면 하 이데와 꽤나 각별한 사이처럼 보인 다.
하지만 회귀 전에 만났던 하이데 는 그런 말은 한마디도 안했었다.
‘혹시 뭔 일이 있었던 건가?’
요한은 자신이 모르는 사정이 있 나 싶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를 향해 레 일라는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매년 한 번씩 하이데에게 새로 운 방식으로 해주를 시도하지만 매 번 실패했지.”
전문적으로 저주를 푸는 마법을 익힌 이들을 해주술사라고 한다.
해주 같은 경우는 재능이 필요한 마법이라 그 수가 극히 드물었다.
그런데 레일라가 해주술사일 줄 이야.
‘해주술사라면 다 아는데. 내가 한 번도 못 들어본 것을 보니 얼마 못 가 죽든. 아니면 몸을 숨기든 하겠군.’
그렇다면 하이데가 말을 하지 않 은 것도 이해가 된다.
저주 때문에 사람을 볼 수 없는 그녀다.
그런만큼 그녀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몇 안되는 친구가 죽거나 안 좋 아졌다면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않 는 것도 이해가 갔다.
‘혹시 모르니 안면 정도는 익혀 놔야겠다.’
빠르게 생각을 마친 요한은 부드 립게 웃었다.
그 미소를 마주하던 레일라는 작 게 어깨를 늘어트렸다.
“이렇게 감사 인사하는 것도 나 중에 못한다는 소리 하지 말아 달 라고 하는 거야. 정말 진심으로 잘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반드시 해주를 하 도록 하지요.”
“후후. 고마워. 음……그냥 감사 인사가 목적이었던 것 일까?
레일라는 할 말이 없는지 머뭇거 렸다.
그런 그녀를 돕기 위해 요한은 먼저 화제를 꺼냈다.
“그런데 고양이라니요?”
“어? 아아. 작년 겨울에 타이론 영지에 갔는데. 그때 하이데와 함 께 정원을 산책하다 발견한 고양이 야.”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