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권 6화
81. 살려는 줄게 (3).
양유위는 요한을 말없이 응시했 다.
웃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한점의 흔들림이 없었다.
“이곳이 어디인지 모르시는 것은 아니실 테고……“여기까지 와서 모르면 바보지.”
“도둑이 쉽게 말을 따르는 사람 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레드바가 패배했다면 이제는 말로 싸울 차례다.
양유위는 치솟는 불안감과 두려 움을 간신히 끌어내렸다.
상대가 강하다고 하지만 과연 심 계까지 그럴까?
요한은 자신을 응시하는 양유위 에게 코웃음치며 어깨를 으쏙였다.
“아니 었나?”
“거상,그리고 귀족. 그들을 노리 는 것이 바로 도둑 길드의 도둑입 니다.”
“그래서?”
“그곳에 들어갈 때 저희는 모두목숨을 걸고 움직입니다. 그런 저 희가 이런 협박에 넘어갈 것 같습 니까?”
“사실 안 넘어가도 상관없어.”
요한은 천천히 오러 블레이드를 움직였다.
날카로운 오러 블레이드의 날이 레드바의 목에 닿았다.
일렁거리던 오러가 하얀 목을 슬 쩍 그은 순간,그녀의 목에 상처가 생겼다.
적색의 오러 블레이드와 닮은 색 인 검붉은 피가 주르륵 하얀 목을 더럽히기 시작했다.
레드바는 굴욕감과 불안함을 참 기 위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난 제안할 뿐이니까. 복잡할 것 없잖아?”
그녀의 목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더욱 짙어졌다.
“내 밑에 들어와서 한 십 년만 일해. 그럼 풀어줄게.”
“……저 하나라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길드의 도둑들이 불만을 가 질 겁니다.”
“거기까지 내가 신경 써야 하 나?”
“그건…… 그리고 테인 쪽과의 전쟁도 생각한다면.”
"테인은 내가 죽일 거다.”
어차피 테인은 살려 둘 생각이 없었다.
그는 타락한 기사이며 마스터이 기도 했다.
거기에 그의 부하들은 말로 해봤 자 씨알도 먹혀들어가지 않는 놈들 뿐이다.
회귀 전이었다면 어르고 달래야 했겠지만.
지금은 큰 의미가 없는 일이었 다.
요한이 바라는 것은 두가지.
정보의 빠른 획득.
그리고 흑왕을 끌어낼 수 있는 것.
그럼 누굴 밑에 넣든 상관없었 다.
그렇기에 요한은 여유로운 어조 로 말할 수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차선책은 얘랑 네 목 들고 테인에게 가는 거야.”
“저희를 잡는다고 테인이 요한 공자님의 밑으로 들어갈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아니. 그놈 성질 더러워서 자기 위에 누가 있는 꼴을 못 보니까 순 순히 밑으로 들어오지는 않겠지.”
그것 때문에 회귀 전에도 고생이 많았었다.
쓸데없이 요구가 많고,꼬장도 심했던 테인을 떠올린 요한은 인상 을 찌푸렸다.
“테인과 너. 둘 다 죽여버리고 할렘가의 쓰레기들이 알아서 배틀 로얄 하게 만들 거야.”
“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하겠지만대장은 나오겠지?”
“그……“그럼 그때 가서 다시 제안해야 지.”
이인자들이 일인자들과 성향이 같다고는 볼 수 없었다.
양유위를 따르는 이들,테인을 따르는 이들.
그 두 세력의 이인자들이 서로 치고받든,아니면 손을 잡든.
결국 대장은 나올 것이다.
그럼 요한은 그때 찾아와서 다시 제안하면 된다.
‘물론 다시 도둑 길드의 위치를 찾아야 하는 수고가 있긴 하지만. 싫다는 애들 억지로 잡고 시킬 이 유도 없고.’
요한이 지금 양유위와 테인이 있 는 곳을 아는 것은 회귀 전에 알았 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뜻대로 배틀로얄을 진행된다면?
새롭게 길드장이 된 자는 반드시 길드의 위치를 바꿀 것이다.
그건 회귀 전에는 없었던 일이 다.
당연히 요한도 도둑길드 찾는데 시간과 노력이 소비된다.
할 일도 많은데 괜한 수고는 들 이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할래?”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 까?”
“뭘 그리 고민해? 쉬운 문제 잖 아?”
요한은 아까 땅콩을 자를 때 썼 던 나이프를 꺼내 들고 양유위에게 겨눴다.
“죽기 싫으면 굽히고,굽히기 싫 으면 죽으면 되지.”
“ ,,“도둑들은 항상 위험을 감수하며 사는 놈들 아닌가?”
그의 말대로였다.
도둑 길드의 도둑은 위험을 감수 하며 살아간다.
귀족의 집을 턴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한 일.
죽음을 각오하고 대상에게 가는 것이다.
“도둑에 대해서 잘 아시는군요. 그렇다면 이런 방식은 어떻겠습니 까?”
양유위는 필사적으로 우호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가 거래를 제안하려 하자 요한 은 고개를 저었다.
“야. 됐어. 싫으면 관둬.”
더 말하려는 양유위를 향해 요한 은 나이프를 던졌다.
빛처럼 날아간 나이프가 복부를 꿰뚫고 관통해버렸다.
어찌나 강한 힘이 실렸는지 나이 프는 벽을 반쯤 꿰뚫어버렸다.
“커헉……복부에서 울컥,피가 터져 나오 자,양유위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고통스러워하는 그에게 요한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그냥 테인 잡으러 갈랜다. 뭔 말이 많냐?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레드바를 걷어차 쓰러트려 버린 요한은 망설임 없이 오러 블레이드 를 들었다.
"너도 잘 가라.”
요한은 들어 올린 오러 블레이드 를 빠르게 내리쳤다.
“알겠…… 습니다…… 하겠습…… 끄으윽…… 니다……! 뭐든…… 시,시키는 대로……양유위는 고통으로 신음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 순간 요한은 손을 멈췄다.
요한의 오러 블레이드는 레드바 의 코앞에 멈춰서 있었다.
“늦기는 했지만 현명한 선택이 야.”
바로 오러 블레이드를 해체한 그 는 레드바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레드바는 질린 듯 바라 보았다.
상대는 조금 전까지 진짜로 자신 을 죽이려 했었다.
한 점의 망설임도 없고,분노도 없었으며 살의도 없었다.
그런데 거래가 성립되자마자 바 로 손을 내민다.
보통 정신상태로는 이런 짓을 하 기 힘들다.
‘위험한 자다……그녀도 이 자리까지 오며 수많은 전투를 치렀고 많은 적을 만났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런 자는 처음 이었다.
이런 자는 둘 중 하나다.
최고의 영웅이거나.
최악의 악당이거나.
둘 다 범인(凡人)의 도량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존재다.
레드바는 자신에게 내밀어 진 손 을 두렵다는 듯 응시했다.
“뭐하냐? 계속 앉아 있을래?”
“아…… 예.”
자신도 모르게 그 손을 잡은 레 드바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요한의 눈치를 살피다 후 다닥 양유위에게 다가갔다.
“야스진.”
“예…… 예?”
“재 치료해줘. 살살 던졌으니까 치료하기 쉬울거야.”
‘아니 살살 던졌는데 관통상이면 세게 던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속으로 생각하며 야스진은 시키 는 대로 양유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관통된 복부를 확인 하자마자 크게 놀랐다.
놀랍게도 나이프가 복부를 관통 했지만 장기는 건드리지 않았다.
‘살살 던졌다는 게 이런 의미였 나?’
구멍도 깨끗하게 나서 치료하기 가 편했다.
양유위의 상처를 보며 야스진은 확신했다.
역시 할렘가보다 요한이 더 무섭 다고.
“일단 이것부터 좀 드시죠.”
양유위에게 힐링 포션을 먹인 후 남은 포션을 그의 상처에 뿌렸다.
소독을 하고,상처를 봉합한 그 는 마지막으로 치유술까지 사용했 다.
“다 했습니다. 한 일주일 정도는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감사…… 합니다.”
“별말씀을…… 그리고.”
야스진은 힐끔 요한을 본 후 양 유위에게 속삭였다.
“이왕 밑에 들어가기로 했다면 그냥 죽었다 생각하고 시키는 일이 나 제대로 하는 게 좋을 겁니다.”
괜히 불똥이 튀지 않았으면 좋겠 다.
뒷말은 꾹 삼킨 야스진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해야 할 일부터 말해주지.”
“예……“첫째. 길로틴이란 모험가를 찾 아라. 두 번째,세레나라는 수녀를 찾아라.”
“특징 같은 것은 없습니까?”
“적어주지.”
그들의 생김새와 특징을 적어 준 요한은 세 번째 손가락을 들었다.
“세 번째. 로만 후작이 뭐 하고 살고 있는지도 알아와.”
“……로만 후작이요.”
첫째와 두 번째는 시간이 걸리지 만 위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 번째.
로만 후작에 대한 정보를 캐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천왕 카일로 때문에 위험할 수 도 있습니다.”
“그래서? 못하겠다고?”
“그건 아니지만……“그럼 해.”
“……알겠습니다.”
양유위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 다.
그런 그를 지그시 응시하던 요한 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야스진. 넌 여기 있어.”
“예!? 저는 왜요!?”
“난 주변 정리 좀 하고 올 테니 까. 할렘가라 그런지 벌레가 많네. 필요 없는 놈들은 치워야지.”
그 필요 없는 놈이 테인이라는 것을 야스진은 단번에 눈치챘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도 깨달았다.
아무리 양유위가 굽히기로 했다 지만 그는 도둑 길드의 길드장이다.
그 길드장의 배에 요한이 구멍을 뚫었다.
만약 양유위가 이걸로 원한을 가 진다면?
자신을 인질로 삼는다면?
야스진은 치솟는 두려움에 간절 히 외쳤다.
“저,저도 가야 되는 거 아닙니 까!?”
그의 외침을 받으며 요한은 대수 롭지 않게 물었다.
"더 위험한 곳에 가는데 따라갈 래?”
“그건…… 그,그럼 그냥 저는마고 후작님의 저택으로 복귀하면 안 됩니까?”
“내가 널 왜 여기까지 데려왔다 고 생각하니?”
야스진도 모르는 도둑 길드의 위 치를 알고 있는 요한이다.
그런 요한이 할렘가의 길을 몰라 서 야스진을 데려왔겠나.
누군가 다칠 것이고,그 다친 자 를 치료시키기 위해서였다.
실제로도 지금 한 명 치료하지 않았는가.
“네가 할 일이 있을 거다. 그리 고 재가 생각이 있으면 널 지키겠지. 너무 걱정 마.”
“으…… 알겠습니다.”
우두머리가 죽는다고 조직이 와 해되지는 않는다.
특히나 적이 이토록 명확한 상황 이라면 더욱 그렇다.
테인은 무투파이며 자기 부하들 에게 신뢰를 받는 남자.
그의 복수를 위해 그의 일당들은 마지막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이 컸 다.
그리고 그것은 양유위도 익히 아 는 사실이었다.
이제부터는 양유위에게도 선택의 시간이다.
‘치고 나가든,지키고 있든. 그건 알아서 하겠지. 난 모르겠다.’
요한이 문쪽으로 향하자 양유위 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다.
가만히 있을 필요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옆에서 걱정하는 레 드바에게 말했다.
“애들에게 무장해두라고 말해둬.”
“알겠습니다. 마스터.”
레드바가 대답하자 나가려던 요 한은 몸을 돌렸다.
“두 시간 안에 돌아오지. 아. 그 리고.”
문 옆의 서랍장 위에 놓여 있는 튼튼한 쇠사슬과 나이프들을 요한 은 가볍게 챙겨 들었다.
“이것 좀 쓰자.”
* * *도둑 길드에서 나온 요한은 터덜 터덜 할렘가를 걸었다.
야스진과 함께 걸을 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옷을 벗은 상태라면 모를까 옷을 입은 그는 비쩍 마른 소년이다.
그런 소년이 혼자.
그것도 검까지 가지고 있으니 먹 잇감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
“어이. 꼬마. 여기부터는 통행세 가……“테인 만나러 가는 거니까 죽기 싫으면 그냥 비켜라.”
"죄,죄송합니다.”
요한에게서 풍기는 분위기.
그리고 테인의 이름.
두 가지만으로도 양아치는 허둥 거리며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 이후 몇 차례 더 만났지만 대 응은 같았고 반응 역시 같았다.
별다른 문제 없이 테인의 영역까 지 온 요한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오래간만에 보니까 헷갈리네.”
그가 멈춘 곳의 앞에는 데빌스 트랩이라는 주점이 있었다.
창문이 있지만 창문은 대부분 쇠 창살로 막혀 있었다.
그 창문 너머로 힐끔 안을 들여 다본 요한은 씩 웃었다.
‘있구나! 찾으러 안가도 돼서 다 행이네.’
험상궂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술을 퍼마시는 건장한 근육질의 남자.
테인 바로츠를 발견했다.
‘목표는 확인했고…… 그럼 나머 지는 탈출하지 못하게만 막으면 되 겠군.’
요한은 바로 들어는 대신 데빌스 트랩 건물의 뒤편으로 향했다.
건물 뒤쪽에는 테인의 부하들로 보이는 두 명이 시시덕거리고 있었 다.
그들을 바라보던 요한은 웃으며 차분히 걸었다.
“넌 뭐……그들이 대답하기 전.
요한은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