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권 4화
79. 살려는 줄게 (1).
“형님……“못난 동생이 어디 가서 맞고 다 니지 말라고 주는 거다.”
“예!!”
기뻐하는 프란츠와 심드렁해 하 는 요한.
둘을 바라보며 마고 후작은 훈훈 해 했다.
"형제 사이가 아주 좋군. 그런데 요한. 그 검을 내어주면 넌 뭘 쓰 려고?”
“그냥 가다가 하나 사면 됩니 다.”
‘정 필요하면 나중에 하나 새로 만들어야지.’
어차피 미스릴 검도 있는데 뭐가 문제겠나.
요한의 대꾸에 마고 후작은 잠시 생각했다.
“도착하면 너는 잠시 날 따라와 라.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있으니 까.”
“그러죠.”
마차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여기까지 마차를 몰고 온 야칸은 정중히 마고 후작을 모셨다.
“와아……번화한 거리를 보며 프란츠는 감 탄했다.
수도의 번화함에 반한 그가 나가 려고 하자 요한은 그의 뒷목을 잡 았다.
“나 볼일 보고 올 때까지 마법학 배우고 있어. 헤임달 무시하지 말 고. 알았냐?”
“예.”
싸늘히 말한 요한은 마고 후작의 방으로 향했다.
기다리고 있던 마고 후작은 긴 상자를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꽤 좋은 검이니 당분간 쓰도록 하게나.”
상자를 열어 본 요한은 눈썹을 꿈틀거 렸다.
사자검이다.
로드만 왕국의 상징인 사자를 검 자루에 장식된 검을 보며 요한은 차분히 말했다.
"왕족 수호기사의 검 아닙니까.”
“그렇지. 헤르듀크 왕자님께 받 은 검이다.”
“이걸 제게 주신다는 것은 왕가 의 기사가 되어 헤르듀크 왕자님의 밑에 들어가라는 말씀이신데……“뭐 그렇게 들었다면 부정하지는 않으마.”
“사양하겠습니다.”
요한은 상자를 쏙 밀었다.
마고 후작은 그의 반응에 씁쓸해 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헤르듀크 왕자님은 훌륭한 분이 시다.”
“제가 직접 보고,인정한 것도 아닙니다만.”
“그것도 그렇지만……“마고 후작님의 체면은 살려드릴 테니 걱정 마십시오.”
마스터인 요한이 이렇게 말해주 는 것만으로도 마고 후작에게는 다 행인 일이었다.
어쨌든 적대관계는 되지 않는다 는 것이니 말이다.
“타로트 왕제의 일을 처리해도 계승권 경쟁은 남는다. 그때 네가 도와준다면……“그러니까 그건 그때 가서 보자 니까요.”
“하아. 알겠다.”
이번에는 그의 체면을 살려주는 정도면 충분했다.
필요도 없는 검 하나로 과한 대 가를 지불할 생각따위는 없다.
요한이 딱 잘라 거절하자 마고 후작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가보거라. 저녁에 늦지말고.”
“예.”
빈손으로 나온 요한은 터벅터벅 밖으로 나갔다.
어느새 짐을 다 옮기고 나와 기 다리고 있던 야스진은 조심스레 권 했다.
“공자님. 할렘가로 가실거면 말 은 놓고 가시는 게 나을 겁니다. 거기에 그 옷차림도 바꾸시고.”
“아. 그렇겠군. 거기.”
“예!?”
지나가던 하인이 놀라며 묻자 요 한은 그의 옷을 가리켰다.
“하인들이 입을 만한 옷을 한 벌 가져와라.”
“아,알겠습니다.”
요한이 자신의 말을 순순히 따르 는 것에 야스진은 깜짝 놀랐다.
“뭘 놀라. 괜한 소란 일으키기 싫은 건 나도 마찬가지야.”
물론 괜하지 않은 소란을 일으킬 용의는 충분히 있다.
속내를 감추며 요한이 퉁명스레 말하자 야스진은 안도했다.
“그거 정말 다행이군요.”
“뭐. 쓸데없는 마찰만 안 생긴다 면 싸울 일은 없겠지.”
그의 말을 들은 야스진은 고민했 다.
‘과연 할렘가에서 쓸데없는 마찰 이 생기지 않을까?’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답은 금방 나왔다.
분명히 생긴다.
야스진은 하인이 요한에게 옷을 가져다주자 다급히 외쳤다.
"고,공자님!”
“이제 와서 안 간다고 하지는 않겠지? 그럼 나 실망할 거야.”
실망.
요한이 바그너 기사단이나 병사 들에게 자주 쓰는 말이다.
그 단어가 나왔을 때의 결과 정 도는 야스진도 안다.
결국 야스진은 땅이 꺼져라 한숨 을 내쉬었다.
“물론이죠……“기다리고 있어. 금방 나올 테니 까.”
잠시 후 요한이 나오자 야스진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힘없이 걸 었다.
“길 안내를…… 시작하겠습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야스진이 걷 자 요한은 그를 뒤따르며 주변을 살폈다.
마침 괜찮은 무기상이 있기에 검 한 자루를 구입한 요한은 허리에 착용하며 물었다.
“할렘가에 대해서 잘 아나?”
“알지요. 알 수밖에요.”
능숙하게 길을 찾으며 그는 우울 했던 과거를 짧게 회상했다.
“제가 태어난 곳이 할렘가이기도하니까……번화한 곳에서 멀어질수록 야스 진의 걸음걸이는 빨라졌다.
헤매지 않고,정확하게 길을 찾 아간다.
익숙하게 골목을 타고,계단을 오르내리던 그는 경비병을 만나자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나으리. 혹시 요새도 할렘 가에 전쟁이 치러지고 있습니까?”
그의 질문에 경비병은 어이없다 는 듯 웃었다.
“할렘가에서 전쟁이 없는 날을 찾는 것이 더 빠를걸세.”
“하아…… 그렇습니까.”
전쟁이라도 없다면 좋을 것을.
요한을 힐끔 본 야스진은 그에게 다가갔다.
“공자님. 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오,육 년 전부터 로드만 왕국 의 도둑 길드는 둘로 나뉘어 졌습 니다.”
“테인 바로츠를 위시한 무투파. 양유위를 중심으로 한 본질파.”
“아십니까?”
‘알지 그럼.’
할렘가의 전쟁은 회귀 전에도 꽤 유명했다.
로드만 왕국의 새로운 왕이 된 타로트는 그들을 경쟁시켜 빠르게 정보를 장악했다.
그들이 얻어낸 정보로 왕국 각지 에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반란을 초 기에 진압해냈다.
그리고 그것을 도왔던 것이 바 로.
‘나였지……테인 바로츠와 양유위에게 적절 한 먹이를 제시.
그들이 타로트를 따르게 만든 것 이 요한이었다.
그때 그들의 도움을 받아 여러 가지 일을 편히 했었다.
‘이번에도 열심히 써먹어야겠군. 물론 그때와는 다르겠지만.’
“자. 안내하렴.”
“아까 저 경비병들이 말했다시피 할렘가는 세력다툼 중이라 위험합 니다.”
“나보다?”
그가 웃으며 말하자 야스진은 바 로 동의했다.
‘하긴 요한 공자님보다는 덜 위 험하겠네.’
* * *할렘가로 들어가며 요한은 가끔 고개를 돌렸다.
여섯 번이나 그가 고개를 돌리 자 야스진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 고 물었다.
"뭘 그리 보십니까?”
"고양이.”
“고양이 좋아하십니까?”
“고양이 좋지. 개도 좋고.”
오랫동안 요한을 모신 야스진이 었다.
그렇기에 그 말의 의미가 단순 한 호불호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님을 눈치챌 수 있었다.
“타고다 가문에서 현상금을 걸 었더라고.”
“아. 그 묘인족?”
“너도 알고 있었냐?”
“평민들에게는 꽤 유명합니다.”
“그래?”
“처음 현상수배가 걸렸을 때 타 고다 가문에 수백 마리의 고양이 가 잡혀갔다고 하더군요.”
타고다 가문의 현상수배다.
그들의 보상을 생각하면 평민들 에게는 신분상승의 기회나 다름없 었다.
몰린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 다.
“혹시 공자님께서도 노리시는 겁 니 까?”
“딱히 노린다기보다는 그냥 찾 는 거지.”
“아. 할렘가에 가시는 것도 그 묘인족 찾으러 가시는 겁니까?.”
“아냐. 다른 일 때문에 가는 거 다.”
‘도둑 길드에 가야 하거든.’
정보를 얻으려 할 때 정보 길드 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 다.
하지만 요한이 도둑 길드를 선 택한 이유는 단 하나.
정보 길드는 첩자를 이용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 만큼 귀한 가문이나 왕족 들은 거의 건드리지 않는다.
하지만 도둑 길드는 그런 것 따 위는 가리지 않는다.
돈 되는 일이라면 망설이지 않 고 움직이는 족속들이 바로 도둑 들이다.
그러니 정보 길드보다는 도둑 길드를 얻는 것이 훨씬 편했다.
‘거기에……:요한이 로드만 왕국의 도둑 길 드를 손에 넣으려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흑왕 그 자식도 잡아야 하니 까……필로틴 제국의 도둑 길드는 도 둑들 사이에서 최강의 도둑 길드 라 불린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필로틴 제국의 도둑 길드 길드 장이 바로 천하십강.
흑왕 문댄서였기 때문이었다.
‘그놈도 그냥 둘 수는 없지.
회귀 전 마지막 전투 때 율호가 데려온 천하십강은 천왕과 해왕, 그리고 흑왕이었다.
그들이 왜 율호에게 협력했는지 는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죽음에 일조했던 이상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도둑 길드를 이용해서 흑왕과 접촉을 해야 일이 편해지지.’
요한은 자신의 밑에서 울부짖을 흑왕을 떠올리며 싸늘히 웃었다.
그 웃음 때문일까?
야스진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윽? 갑자기 오한이……“그나저나 아직 멀었나?”
“다 왔습니다. 저기부터가 할렘 가입니다.”
야스진의 안내를 받으며 요한은 할렘가로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할렘가라고 하더니 그렇게 무 질서하지도 않네.”
“외부는 그렇죠. 하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힐끔 골목 안쪽을 본 야스진은 요한을 이끌었다.
골목 안쪽에서 흉악하게 생긴 놈들이 요한을 보며 입맛을 다시 고 있었다.
“위험한 놈들이 많습니다. 이쪽 입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아니면 진짜로 그러는 것인지.
안으로 들어갈수록 요한은 아무 것도 모르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 렸다.
어찌 보면 순박하고,어찌 보면 허술한 모습이다.
그런 모습을 할렘가에서 보이는 것은 잡아먹어 달라는 것과 같았 다.
“저. 공자님. 평소대로 하시는 게……“그럼 평소대로 하지. 야. 배고 픈데 밥이나 먹으러 가자.”
너무 평소대로다.
그 모습에 야스진은 맥이 풀렸 다.
팔자 좋은 요한 덕분인지 긴장 감이 천천히 가시기 시작했다.
“그러시죠. 할렘가 외곽에 괜찮 은 식당이 있습니다. 나가실까 요?”
“여기까지 왔는데 굳이 나갈 필 요 있나.”
요한은 거리 한쪽에 있는 주점 을 가리켰다.
주점의 이름은 게헤른의 잔.
주당이었던 타락기사의 이름을 딴 주점이었다.
"게헤른이라니. 좋잖냐.”
그것을 본 야스진은 쓰게 웃었 다.
“공자님. 할렘가는 엄한 곳에 들어가면 바가지를 제대로 쓰게 됩니다.”
“설마 나한테 바가지를 씌울까? 괜찮을 거야.”
“하긴 그렇죠……할렘가의 시세정도는 야스진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바가지를 씌우면?
요한에게 한마디만 해주면 된 다.
그럼 요한은 오러 블레이드를 뽑을 것이고 정상가 이하의 가격 이 나을 거다.
빠르게 납득한 야스진은 요한과 함께 게헤른의 잔으로 향했다.
-끼익…….
삼나무로 만든 투박한 문을 열 고 안으로 들어간 요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몇몇 주당들은 요한과 야스진을보고 피식 웃었다.
“게헤른의 잔도 다 됐네. 별놈 들이 다 들어오는군.”
취기로 붉게 달아오른 한 취객 이 투덜거린다.
그 사이 카운터에 앉아 있던 경 갑을 입은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 났다.
“에이.”
눈 밑에 깊은 상처가 있고 얼굴 에 새겨진 검상은 그녀의 전투 경 험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빈자리에 앉은 요한에게 약간 어색한 어조로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꼬마야. 여기는 너 같은 녀석 이 올 만한 곳이 아니다.”
왼쪽 귓불에 걸려 있는 파도 모 양의 작은 귀걸이를 흔들며 그녀 는 탁자를 쾅 내리쳤다.
“가서 어머님이 해주신 밥이나 먹으렴.”
그녀의 경고 섞인 위협에 야스 진은 오히려 기대까지 됐다.
피할 수 없으니 즐기게 된 것이 다.
‘오러 블레이드? 아니면 주먹? 그것도 아니면 그냥 검?’
바로 일이 터질 것을 대비하며 야스진은 슬금 뒤로 물러났다.
싸움이 벌어지면 그가 할 수 있 는 것은 없다.
인질이 되지 않게 최대한 피해 있는 것이 다다.
그렇기에 준비를 하고 있었던 야스진은 당황했다.
요한이 그녀를 올려다보며 무뚝 뚝히 말만 했기 때문이었다.
"내 어머니는 내가 다섯 살 때 돌아가셨는데.”
"어!?”
이런 반응이 나올 줄 몰랐던 것 일까?
그녀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