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권 25화
75. 겨울의 끝 (1).
대장간에서 돌아온 요한이 방에 들어갔을 때.
그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 렸다.
“저기 요한. 들어가도 괜찮을 까?”
파룬이 었다.
요한이 허락하자 파룬은 문을 열 고 안으로 들어왔다.
“뭐야?”
“헬리안이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해서……파룬은 힐끔 자신의 옆에 있는 헬리안의 등을 밀었다.
망설이던 헬리안은 조심스레 고 개를 숙였다.
“요한 공자님께 여쭤 볼 것이 있 습니다.”
“뭔데? 실례되는 질문이 아니라 면 대답해주지.”
코어도 만들었고 검도 완성했다.
원래라면 내년 봄쯤이나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타고다 상회에서 준 금화 덕분에 생각보다 빠르게 시간을 단 축할 수 있었다.
그런 만큼 어지간한 질문 정도는 웃으며 답해줄 수 있었다.
“혹시…… 비토와 만나신 적이 있으십니까?”
“최면술 때문에?”
“아닙니다.”
“뭐야. 그 인간한테 복수하려고 그러는 것 아니었어?”
요한이 의아해하자 그녀는 옷자 락을 꽉 잡았다.
“혹시 비토의 비밀 노예에 대해 서 알고 계십니까?”
“알지. 비토의 노예 중에 특별한 최면술을 써서 특정 목적의 노예를 만드는 거.”
“그렇습니다. 혹시…… 그 비밀 노예 중에 칼리안이라는 이름을 들 어 본 적 있으십니까? 저와 비슷한 나잇대의 묘인족인데……“음. 모르겠는데?”
생각을 해봤지만 모르겠다.
회귀 전의 기억까지 통틀어봐도 그런 이름은 들은 적이 없었다.
요한이 고개를 젓자 헬리안은 실 망했다.
축 늘어진 어깨에 꼬리까지 밑을 향하고 있었다.
“그게 누구길래 그래?”
“제 남동생입니다.”
간절함이 담긴 그녀의 어조에도 요한은 할 말이 없었다.
‘한 번도 못 들어 본 이름인 데……“가명을 썼다거나 그런 건 아닌 가?”
“글쎄요……“다른 특징은?”
“눈 밑에 점이 있습니다. 거기에 꼬리에 눈처럼 하얀 반점이 있답니 다.”
“그 조건에 부합하는 묘인족은 수천 명은 훨씬 넘을 거다.”
“그리고 목에 문신이 있습니다.”
“무슨 문신?”
“물고기의 문신이…… 어렸을 때 제가 해준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묘인족은 만나 본 적이 없었다.
요한은 현실을 전했고 헬리안은고개를 떨궜다.
그녀의 등을 토닥여 준 파룬은 조심스레 말했다.
“타고다 상회에서도 전력을 다해 찾고 있거든……“그 말은 현상금이 있다는 건 가?”
“응. 현상금이 싫으면 원하는 물 건이나…… 지부장 자리를 제공하 기도 하고.”
헬리안이 시무룩해진 것이 꽤나 안타까웠는지 파룬도 꽤나 필사적 이었다.
“혹시 단서라도 발견하게 된다면말해 줄 수 있을까……?”
“그거야 어렵지 않지.”
찾아달라는 것도 아니고 발견하 게 되면 말해달라는 정도다.
거기에 현상금까지 걸려 있다면 해주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고마워!”
“감사합니다. 요한 공자님.”
“너무 기대는 말고. 그럼 할 이 야기는 끝? 그럼 나가 봐. 난 씻고 자야 하니까.”
조금이라도 자고 일어나서 다시 수련을 시작해야 했다.
코어를 늘였다고 해도.
검을 완성했다고 해도.
그것을 쓰는 것은 육체다.
육체의 단련은 할 수 있는 한 최 대한 하는 것이 나았다.
“요한 공자님. 칼리안의 특징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말해보려무나.”
“칼리안은 고양이로 변신이 가능 합니다.”
“변신 정도야 변신마법을 쓸 수 있다면 개나 소나 다 하는 거 아닌 가?”
“아,아뇨. 그런 것이 아니라. 육 체 자체가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 니……“마법의 탐지에 걸리지 않는다는 거지?”
“예.”
“신기하네. 그런 수인족은 황금 시대 이후로 대가 끊긴 것 아닌 가?”
“제가 아는 분은 격세유전이라고 하셨습니다.”
‘확실히 그런 능력이 있는데도 내가 모른다는 이야기는 내가 활동 하기 전에 죽었거나 실험체로 써먹 혔다는 건데…… 한번 찾아봐야겠 다.’
“알았어. 그런 녀석을 발견하면 말해주지. 그런데 나한테 그런 걸 묻는 걸 보니 동생도 비토에게 잡 혀 있었나 보지?”
“예……비토에게 잡혀 있다가 그에게서 도망칠 때 헤어졌었다.
그때 칼리안을 놓친 것만 생각하 면 헬리안은 자신을 죽이고 싶었다.
“몇 년 전인데.”
“사 년 전이었습니다.”
“사 년 전에 난 이 방에서 거의 나가지도 못했는데…… 내가 걔를 어떻게 알겠다고 나한테 물어본 거 냐?”
“워낙 단서가 없어서……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 어 본 것이다.
그녀의 뒷말을 눈치젠 요한은 빙 긋 웃었다.
“아무튼 좋아. 발견하면 현상금 은 내 거야.”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헬리안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 다.
그가 절맥에 걸려 있었고,그동 안 사람과의 만남을 최소화했다는 것도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비토의 최면술을 쓸 수 있었기에 혹시나 싶었지만 기대감 은 크게 무너져내렸다.
“그럼 난 목욕하러 간다.”
방에 남아 있는 이들을 내보내고 요한은 바로 욕탕으로 향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눕히니 밤새 미스릴을 두드린 피로가 조금씩 풀 려가고 있었다.
기분 좋은 안락함을 느끼며 요한 은 생각했다.
‘이제 엘릭서가 올 때까지는 코 어를 늘릴 수 없어. 강해질 수 있 는 방법은 훈련뿐이다.’
어쩌면 엘릭서가 완성되기 전에 로만 후작과 결전을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
‘그 인간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까……지금 상태라면 천하십강과 붙어 도 무조건 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로만에게도 천하십강이 붙어 있 으니…… 아직 갈 길은 멀었군.”
뜨거운 물로 얼굴을 비벼 씻어낸 요한은 히죽 웃었다.
“그래도 재밌네. 이 정도 난이도 라면 백번도 더 할 수 있겠다.”
천천히 욕조에 완전히 몸을 뉘인 요한은 눈을 감고 콧노래를 훙얼거 렸다.
겨울은 휴식과 안식의 계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식을 취하 며 봄이 찾아와 활동을 하기를 기 다린다.
하지만 귀족들에게 있어서.
특히 평소에 업무를 제대로 하는 귀족들에게 있어서 겨울은 사교의 계절이기도 했다.
“요한. 너란 녀석은 정말……다섯 번째 코어를 만들고 검을 완성한 지 이 주일이 지났다.
겨울의 추위는 더욱 강해져 갔지 만 요한의 훈련이 멈추는 일은 없 었다.
당분간은 코어를 늘릴 수 없는 만큼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
춥다 해서 쉬고,눈 많이 온다고 늘어지면 언제 강해지겠나.
그렇기에 요한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훈련을 했다.
그것이 월카스트 백작에게는 처 음으로 불만이 되었다.
“네가 수련을 하는 것을 나무라 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오늘 정도 느......w좀 일찍 들어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같은 날도 훈련을 한 요한 을 향해 윌카스트 백작은 작게 투 덜 거렸다.
요한의 어깨와 머리는 쌓였던 눈 때문에 흠뻑 젖어 있었다.
“어휴. 이걸 쥐어박을 수도 없 고.”
아무리 마스터이고, 아무리 신성 이라 불리며 추앙받는다지만.
월카스트 백작에게 요한은 그저 말 안 듣는 예쁜 아들에 불과했다.
그가 가슴을 두드리며 투덜거리 자 요한은 다시 한 번 히죽 웃었 다.
“빨리 가서 옷 갈아입고 오려무 나. 벌써 파티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단다.”
얼마 전에 말했던 대로 윌카스트 백작은 파티를 열었다.
파티의 목적은 이번에 세례를 받 은 요한을 축하하기 위함.
물론 그건 구실에 불과했다.
실상은 로만 후작을 상대하기 위 해 그에게 불만을 가진 귀족들을 부르는 것.
그리고 그들과 연계하여 로만 후 작에게 대항하려는 것이다.
아무리 요한이 있고,또 마고 후 작이 지원한다지만 로만 후작은 강 했다.
비록 저번 일로 힘을 조금 잃기 는 했지만 그는 여전히 로드만 왕 국의 후작이었다.
거기에 대영지를 보유하고 있고 휘하의 영지 귀족들도 꽤 많았다.
지금이야 조용하지만 내년부터는 어찌 나올지 모른다.
그러니 최대한 준비를 해야 했 다.
그것을 아는 만큼 요한도 훈련을 하겠다며 파티에 빠질 수는 없었다.
요한은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 입고 파티장으로 향했다.
파티장 안을 힐끔 본 요한은 귀 족들의 면면을 보고 씩 웃었다.
‘내가 들어가면 누가 먼저 말을걸지 준비하고 있구만. 눈치는 엄 청 보네.’
눈알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 리는 것 같다.
요한은 그들을 슬쩍 살피고 입구 에 있는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 춰보았다.
파룬이 보내 준 예복은 그가 보 기에도 괜찮은 물건이었다.
‘실수 한 번의 보상치고는 괜찮 은 걸 줬군. 그래도 사람이 됐다.’
칼리안의 실수에 대한 보상으로 보내진 예복에는 마법이 걸려 있었 다.
청결 유지 마법과 간단한 방어마 법 정도지만.
이 정도 마법이 걸린 예복은 일 만 골드는 훌쩍 넘었다.
‘이런 걸 받았으니 더 화를 내기 도 뭐하고…… 나중에 칼리안을 찾 으면 꼭 말해줘야겠군.’
입구 앞의 거울에서 한 번 더 상 태를 점검한 요한은 파티장 안으로 성큼 걸었다.
“요한 바그너 공자님께서 입장하 셨습니다!!”
낭랑한 외침이 터져나왔다.
파티장의 귀족들의 눈이 빛나는 것을 보고 요한은 외친 이에게 다 가갔다.
“넌 여기서 뭐 하냐?”
“하하…… 아르바이트입니다.”
시종의 복장을 하고,긴 머리를 곱게 닿은 잘생긴 청년.
유아랑은 요한을 향해 빙긋 웃었 다.
“엘프들은 타고난 미모가 덕분에 이런 자리를 빛내기 쉬우니까요. 윌카스트 백작님의 의뢰였습니다.”
“참…… 별일을 다 한다.”
“하하하.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 요. 봄부터는 농업 관리관으로 일 할 생각입니다.”
더 이상 요한의 밑에 있는 것도 아니니 그에게 숙식을 해결해달라 할 수 없었다.
물론 윌카스트 백작은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공짜 밥을 먹을 수는 없 는 노릇이었다.
결국 뭔가 일을 해야 하는데 윌 카스트 백작의 의뢰는 그에게 꽤나 달가운 의뢰였다.
작물을 기르고 영지 내의 숲과약초밭을 관리하는 것.
좀 더 식물을 기르고 싶었던 그 에게 안성맞춤인 일이었다.
“다른 녀석들은 지금 벌고 있으 니까요.”
“헤갈이 기사단과 용병단,경비 대의 장비를 새로 확인하고 있다 지?”
“예. 영지 내의 대장장이들도 불 러 모아서 함께 작업한답니다. 아 단은 뭐…… 여전히 빌헬미나 님 밑에 있겠다고 했고.”
“그래. 고생해라.”
유아랑의 어깨를 툭 친 요한은 당당히 걸었다.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며 몇몇 영애들이 눈을 빛냈다.
‘토르난 영애,카야 영애…… 위 체아이트 부인……바그너 영지로 몇 번이나 친서를 보냈던 이들이었다.
가문에서 파티를 여니 댄스 선생 이 되어달라든가,아니면 단순한 친목 도모 겸의 파티에 참석해달라 든가.
별 시답잖은 이유로 친서를 보냈 던 이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들의 면면을 살피던 요한은 바 로 윌카스트 백작에게 다가갔다.
“아버지.”
“오. 그래. 어서 오려무나.”
윌카스트 백작은 요한의 팔을 잡 고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올 사람들은 다 온 것 같 은데……“그런데 저건 뭡니까?”
한쪽 구석에 곱게 쌓여 있는 꾸 러미들을 보며 요한이 묻자 윌카스 트 백작은 미소 지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참가하지 못하는 이들이 보낸 선물이다. 여러 가지 있으니 파티가 끝나면 확 인을 해보자꾸나. 그럼……그때 였다.
회실의 복도로 하인들이 달려오 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꽤나 귀해 보이는 엘븐 실크로 꾸며진 꾸러미가 있었 다.
그것을 받고 친서를 읽은 유아랑 은 당황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윌카스트 백 작의 눈치를 살피던 그는 결국 머 뭇거리며 외쳤다.
“저기…… 게이돈 후작가에 서…… 요한 공자님께 선물을 보내 셨습니다.”
“……게이돈 후작가?”
“로만 후작이!?”
파티장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윌카스트 백작은 유아랑에게 가 서 선물꾸러미를 받았다.
로만 후작의 선물이라면 보통의 물건이 아닐 것이다.
긴장한 월카스트 백작이 꾸러미 를 어찌 처리할까 고민하는 사이.
요한은 담담히 그 꾸러미를 받아 고급스러운 끈을 풀었다.
“요한……! 위험……“위험할 것도 없군요.”
꾸러미 안에 있는 것은 한 벌의 옷이었다.
“이건……?”
고급스러운 엘븐 실크로 만들어 진 하얀 옷이 었다.
그 옷을 본 윌카스트 백작은 분 노로 부들부들 떨었다.
그 하얀 옷은.
바로 바론 교에 세례를 받은 귀 족이 죽었을 때 입히는 수의(壽衣) 였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