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권 19화
69. 다음은 너다 (3).
요한이 세례를 받은 좋은 날이지 만 신전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악마가 나타났 다.
그걸로 모자라 순례단에 있는 수 행 성기사에게 씌기까지 했다.
결코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식사를 마친 요한이 신전에 들어 오자 심각한 표정으로 기다리던 하 이마스는 진지하게 물었다.
“요한 공자님. 전후 사정을 좀 듣고 싶습니다.”
“검은 삭월이 이것 때문에 저를 찾아왔습니다.”
요한은 천 마리 검은 염소를 쌓 는 방법을 꺼냈다.
그것을 본 하이마스,바로미로, 윌카스트 백작은 신음했다.
요한이 이 마법서를 가지고 있다 고 알려진 것은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보물을 가지고 있으면 그 보물을 노리는 이들은 반드시 오기 마련이 다.
물론 요한이 마스터인 만큼 아무 나 덤벼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미 대륙의 많은 국가에 서 범죄자로 지정하고 있는 검은 삭월이 라면.
충분히 앞뒤 안 가리고 덤벼들 만했다.
“확실히 그 마법서는 엄청난 가 치를 지닌 것이니까……하이마스가 중얼거리자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것은 헤 이돈 마루타였습니다.”
“검은 삭월의 수장!?”
그가 암살한 자 중 마스터도 있 다는 것을 아는 윌카스트 백작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행이구나. 용케 살았어……“예. 아무튼 그자의 목을 날려버 리니까 세이키엘이 나오더군요.”
“헤이돈이 세이키엘과 계약을 했 던 것일까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 악독한 자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로미로와 하이마스가 말하는 사이 요한은 이야기를 계속 진행했 다.
“그래서 세이키엘과 싸웠고. 나 머지는 보신 대로입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 다.”
“말씀하시지요.”
요한은 하이마스의 질문을 예상 하고 있었다.
“세이키엘은 왜 그런 것입니까?”
세이키엘은 요한을 무척이나 두 려 워 했다.
신성력의 포화를 맞으면서도 요 한을 피하기 위해 어떻게든 죽으려 한 세이키엘이다.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궁금해하는 하이마스에게 요한은 준비해 둔 대답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하이마스는 기대 감을 품으며 말했다.
“혹시…… 요한 공자. 당신이 묵 시록에 나오는 구원자이신 겁니 까?”
바론 교의 교리서 중에 묵시록이 라는 교리서가 있었다.
그 교리서에는 세상이 위험에 처 했을 때 바론의 뜻을 받은 구세주 가 나타날 것이라는 내용이 있다.
혹시나 요한이 그 구원자일까 싶 었던 하이마스가 묻자 요한은 웃었 다.
“제가 그렇게 보이십니까?”
“묵시록에서 이르기를. 바론님께 서 저희를 외면하셨을 때 위대한 구원자께서 그것을 알게 되시리라 하셨습니다.”
“저도 그 이야기는 들어봤습니 다. 첫 번째 외면을 교단에서는 대 기근이라 생각하신다지요?”
“예. 그때 선을 대변하는 구원자 께서 자신의 임무를 깨닫게 된다고 묵시록에서는 말하고 있지요.”
“절대 선을 이루는 구원자는 태 어났을 때부터 모든 축복을 받는다 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요.”
요한은 그 대답에 만족했다.
그리고 자신의 가는 팔을 보여주 었다.
“아시겠지만 절맥에 걸렸습니다.”
“그 절맥이 치유된 것도 바론님 의 뜻 아닙니까?”
“아. 그건 아닙니다. 그저 우연히 얻은 이 마법서를 읽고,또 세상을 바라보다가 깨달음을 얻었을 뿐입 니다.”
담담히 말한 요한은 빙긋 웃었 다.
“물론 그것이 바론님의 뜻일지도 모르겠지요. 다만 대기근때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계시도 받지 못했지요.”
요한은 당당했다.
거짓말은 아니니 말이다.
그는 구원자도 아니고, 계시 또 한 받지 못했다.
회귀 전도 그렇고,회귀 후도 그 렇고.
구원자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 다.
요한의 속내를 알 리가 없는 하 이마스는 가볍게 성호를 그었다.
그의 부정에도 하이마스는 그가 구원자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이마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요 한의 손을 꼭 잡았다.
“요한 공자. 수도 캐슬 오브 로 디악에 있는 주교전에 함께 가주시 지 않겠습니까?”
“수도요.”
“예. 그곳의 성물들을 이용하면구원자이신지의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영지 내에 일도 있 으니까요.”
“아아,그렇습니까……“조만간 수도에 갈 일이 있으니그때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이래저래 바쁘거든.’
“어쩔 수 없지요……요한은 귀족이고, 마스터이며,마 고 후작의 후원을 받는다.
여러 정치적인 관계가 엮여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하이마스라 하더라도 그 에게 함부로 강요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수확이 없는 것은 아니었 다.
어쨌든 요한이 와주기는 한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지요. 아 하스 성기사님을 어떻게 해야겠습 니까?”
“으음…… 고민입니다.”
하이마스가 신음하고,바로미로 가 안타까워했다.
그들을 보던 요한은 넌지시 말을 건넸다.
“일단 제가 좀 만나보는 것은 어 떻겠습니까? 세이키엘은 저를 두려 워하니……“아. 그런데 세이키엘이 왜 요한 공자님을 두려워하는 겁니까?”
아까의 질문에 답을 듣지 못한 하이마스가 묻자 요한은 마법서를 툭 쳤다.
“여기에 적혀 있는 오래된 자의 비법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오호. 오래된 자의 비법 중에 그런 것이!? 뭡니까?”
바로미로가 신기해하며 묻자 하 이마스는 그의 팔을 잡았다.
“어허. 바로미로 사제님. 오래된 자는 인신공양을 통해 힘을 얻는 자들입니다.”
오래된 자에 대한 연구와 비법의 사용은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원한 다면 누구나 해도 된다.
하지만 평화와 안정을 중시하는 바론 교단의 사제들에게만은 허락 되지 않았다.
오래된 자의 비법 대부분이 제물 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인신공양도 있으니 성 실한 성직자가 건드릴 만한 것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악마를 두렵게 한 다 하여……“기도합시다. 기도하여 회개합시 다.”
그들의 회개 기도가 끝나고 나서 야 요한은 여유롭게 말했다.
“세이키엘이 저를 두려워하니, 제가 잘 이야기하면 아하스 수행 성기사님을 구할 수 있지 않겠습니 까?”
‘물론 구할 생각 따위는 없지만.’
서로를 보던 하이마스와 바로미 로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럼 바로 가보겠습니다.”
“너무 급하시면 안 됩니다.”
“아니요. 급해야지요. 지금도잠시 생각하던 요한은 우울함이 감도는 어조로 말했다.
“아하스 성기사님께서 세이키엘 에게 고통받고 계실 텐데. 최대한 빨리 도와야지요.”
“아…… 진심으로 훌륭하신 분입 니다.”
“전 요한 공자님께서 이런 분이 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요한이 빨리 가고 싶은 것 은 아하스가 고통받는 것을 조금이 라도 더 보고 싶어서다.
하지만 그것을 둘이 알 리 없으 니 하이마스와 바로미로는 그저 요 한을 추켜세웠다.
“그럼 저는 이만!”
그들에게 인사를 한 요한은 곧장 지하 회개실로 향했다.
즐겁게 지하 회개실에 내려간 그 는 안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비명을 듣고 웃었다.
‘잘하고 있군.’
“나와라!! 아하스의 몸에서 나와 라! 이 악마!!”
“크아아아악!! 죽여라!! 차라리 나를 죽여서 바론을 부정해라H 너 희들은 아무도 구할 수 없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바론이나 너희나 다를 것이 없다!!”
“나와라! 우리의 주인이신 바론 님의 이름으로 명하니!”
“닥쳐! 멍청이들!”
요한은 천천히 회개실의 문을 살 짝 열어 보았다.
안쪽에서는 성기사들에 의해서 엑소시즘이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신성력을 퍼붓지는 못하 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아. 오셨습니까.”
요한이 들어오자 성기사는 그에 게 살짝 묵례한 후 설명했다.
“아주 지독합니다. 이 이상 신성 력을 퍼부었다간……아하스까지 죽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더 진행하지 못하는 것 이 아쉽다.
그를 향해 요한은 웃으며 말했 다.
“하이마스 사제님께 허락을 받았 습니다. 잠시 독대해도 되겠습니 까?”
“알겠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 니 주의해주십시오.”
세이키엘이 아까 요한을 두려워 하던 것을 봤다.
그렇기에 성기사들은 주의만 건 네고 밖으로 나갔다.
그제서야 요한은 축 늘어진 세이 키엘의 볼을 툭툭 쳤다.
“기상.”
M ,,“내 영역……“이,일어났어!! 일어났어!! 그, 그거 제,제발하지 마•"… 하지 마……아까까지 저항하며 바론을 비웃 던 세이키엘이다.
하지만 지금의 세이키엘은 겁먹 은 토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몸의 주인과 잠깐 얘기 좀 하게. 교대 좀 해라.”
세이키엘은 요한의 눈치를 살폈 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았고 잠시후 악마에게 씐 증거인 검은 눈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허억…… 허억…… 으윽…… 으......,’
거칠게 숨을 토해내며 아하스가 정신을 차렸다.
세이키엘에게 씐 채 수많은 신성 력의 포화를 받은 것 때문인지.
그의 상태는 말 그대로 죽기 일 보 직전이었다.
‘야오 때보다 상태가 더 안 좋군. 훌륭해. 이건 칭찬해주지.’
“어떻게…… 된 겁…… 니까“네가 더 잘 알 텐데.”
“……저에게 악마가 원 겁니까?”
“그렇다.”
절망적인 답이다.
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요한을 아하스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상황에 절망하던 아 하스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세이키엘은 현계한 채 너에게 들어갔다. 즉 네가 죽으면 세이키 엘은 크게 힘을 잃고 지옥으로 강 제 소환되겠지.”
M ,,“아하스. 선택해라.”
요한은 검을 만지작거리며 말했 다.
“이대로 구차하게 악마를 몸에 담은 채 이단자로 살아갈지. 아니 면 여기서 나에게 죽을지.”
“도대체…… 뭐가…… 윽…… 어 째서…… 이렇게 된 겁니까……힘없이 말하는 그를 향해 요한은 피식 웃었다.
“그건 네 안에 있는 세이키엘에 게 물어보는 게 어때?”
“윽…… 으윽…… 어째서…… 어 째서……?”
혼란스럽고,고통스러우며,괴롭 다.
자신의 안에 악마가 있다는 것을 느끼는 아하스의 표정에는 절망만 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대로 있으면 세이키엘은 너의 혼과 몸을 잠식하고 완전히 타락시 킬 거다. 그 꼴이 되고 싶으면 버 티고.”
만약 아하스가 버티겠다고 말한 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다.
아하스의 운명은 결국 죽음으로 귀결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리되면 널 끝장내는 건 내가 아니겠지……“못하겠다 싶으면 말해.”
‘내가 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바론 교단의 신자로서 악마에게 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굴욕이며 저주다.
그것을 버틸 수 있는 이들은 그 리 많지 않았다.
아하스는 눈물까지 머금으며 신 음하고 절망했다.
“아아…… 아,악마에게 씌다 니…… 어째서…… 제가…… 제가구원받을 방법은……“없을걸.”
물론 아하스를 구하는 것이 불가 능하진 않았다.
회귀 전에도 교단의 의뢰를 받아 악마와 싸우며 이런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악마와 싸우다가 악마가 아하스 의 몸에 들어갔었고.
그때마다 요한은 악마를 협박하 여 아하스를 구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럴 이유는 없 었다.
구원의 손을 내밀지 말지를 결정 하는 것은 요한이었다.
그런 만큼 굳이 손을 내밀 필요 는 없었다.
“그렇다면……“오. 그럼……“조금 더 버텨…… 보겠…… 으 윽……!”
‘거 진짜. 이렇게 삶에 집착할 거 였으면 그때도 좀 집착해주지.’
“세이키엘. 교대.’
“끄아아아아악!!”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세이키엘 은 아하스를 억누르고 표면에 드러 났다.
악마에게 씐 증거인 검은 눈이 드러나자 요한은 차분히 말했다.
“오래 끌지 말고 끝내자.”
“어…… 어, 어떻게…… 하려 고……?”
완전히 겁에 질린 세이키엘이 조 심스레 물었다.
그녀를 마주하며 요한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내 말을 따라라.”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