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권 15화
65. 어서 와 (2).
게론 영지에서 바그너 영지까지.
요한은 일부러 순례단이 올 만한 관도를 타고 복귀했다.
그 탓에 요한이 바그너 영지에 도착하는 것은 예정보다 더 늦어졌 다.
하지만 연락은 된 지라 프란츠는 요한을 마중 나갈 수 있었다.
“형니이이임〜”
누가 보면 한 몇 년 못 본 우애 좋은 형제가 재회하는 것으로 알 정도다.
달려오는 프란츠를 잡은 요한은 그를 똑바로 노려보며 으르렁거렸 다.
“너 이 자식. 관도에 눈 엄청 쌓 였더라?”
“어…… 그게. 오,오늘 치울 예 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여기 있냐?”
“예? 혀,형님 마중 나왔는데요.”
“오늘 저녁에 순례단 도착한다는 소식 못 들었어? 나도 아는 것을 네가 모를 리 없겠고.”
마중이 뭐가 중요한가.
관도가 막혔다면 당장 치워야 할 것 아닌가.
요한은 프란츠를 잡아 그대로 던 져버렸다.
“우와아아악!!”
눈밭을 구른 프란츠가 일어나자 요한은 검을 잡았다.
“내가 말했지? 문제 생기면 네 인생에도 문제 생기게 해주겠다고. 요새 안 맞았더니 감을 잃었냐?”
순례단 오게 하려고 토벌은 혼자 다 하고,다른 영지 지원까지 갔다 왔다.
그런데 눈 때문에 길이 위험해 못 오게 되면 그게 무슨 뻘짓인가.
지금까지 한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살벌하게 말하는 요한을 본 프란 츠는 다급히 외쳤다.
“지,지금 가겠습니다!”
프란츠가 병사들과 함께 성을 나 가자 요한은 인사를 위해 나온 사 용인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희도 할 일 없으면 당장 가서 길 치워. 관도는 힘들더라도 영지 의 길이라도 치워야 할 것 아니냐.”
“……그렇죠?”
“순례단이 오다가 얼어붙은 길에 미끄러져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으음…… 설마요.”
“설마가 사람잡는다. 만약 그런 일 생기면 그럼 너희가 책임질래?”
책임 질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들이 당황하자 요한은 살벌히 으르렁거렸다.
“아니면,바그너 가문이 바론 교 단에 욕먹기를 바라는 거냐?”
“그,그럴 리 없잖습니까!”
“그럼 뭐하냐?”
그의 싸늘한 어조에 사용인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근래 사람들이 요한을 칭송하기 는 했지만 역시 요한은 요한이었다.
“아,알겠습니다!”
모인 사람들이 우르르 흩어지자 요한은 주머 니 에 손을 꽂았다.
“하온달. 너도 경비병들이랑 기 사들 데리고 눈 치워.”
꽤나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하온달은 고개를 숙 였다.
“알겠습니다.”
게론 영지까지 갔다가 복귀하고 바로 일부터 해야 하게 생겼다.
지킬 것만 잘 지키면 휴식은 보 장해주는 요한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지킬 것을 지키지 않은 상황.
그러니 그들은 군소리 없이 터벅 터벅 기사단과 경비대로 향했다.
모두에게 일을 시킨 요한은 자신 의 옆에 뻘쯤히 서 있는 야스진에 게 말했다.
“넌 뭐하냐?”
“어? 저도 갑니까?”
“넌 빨리 신전에 가서 신전 정비 제대로 됐나 확인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순례단이 오는 것을 그렇게 신경을 쓰실 필 요가 있는 겁니까?”
“귀하신 분들이 오시는데 최대한 공경을 해야지.”
‘그래야 나한테 생기는 기회가 더 많아질 테니까.’
사람은 자신을 대우해주는 자에 게는 경계심을 풀게 되어 있다.
요한이 원하는 것은 아하스의 목.
하지만 그 목을 따려면 순례단과 마찰이 생기면 안 된다.
최대한 그들을 공경하고,접대하 며 빈틈을 만들고.
그들이 자신을 신뢰하게 해야 아 하스를 치기 쉽다.
아무리 그가 수행 성기사라고 하 더라도 그는 교단의 일원이니 말이 다.
“알겠습니다.”
야스진이 신전으로 떠나자 요한 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순례단의 환영행사와 연회를 준 비하기 위해 남은 하인들은 불똥이 튈까 딱딱히 굳었다.
“프란츠 돌아오면 나한테 보고하 라고 해.”
“어디로…… 보고를 드려야 합니 까?”
“숲에 들렀다가 대장간에 갈 거 다. 그리고 너희들은.”
짐 때문에 남아 있던 병사들은 요한의 지적에 움찔 몸을 떨었다.
“그 돈 전부 대장간에 옮겨놔.”
“아,알겠습니다.”
그들에게 명령을 내린 요한은 바 로 숲으로 향했다.
그래도 관도 쪽은 아직 눈을 치 우지 못했지만 영지 쪽의 눈은 거 의 치운 듯 보였다.
길가에 쌓여 있는 눈을 확인하며 괜히 문제 될 거리를 줄인 요한은 삼삼오오 모여 이동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아,안녕하십니까! 요한 공자 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혼자서 걷고 있는 요한을 본 영 지민들은 황급히 그에게 고개를 숙 였다.
그들의 면면을 살핀 요한은 피식 웃었다.
“신전에 가나?”
“예에. 오늘 예배가 있는 날이라 서……“그래. 바론님을 믿고 따르면 언 젠가는 그 은총을 너희들도 받을 수 있겠지. 바론님의 은총이 너희 들과 함께 하길 빌겠다.”
“가,감사합니다……신도들의 간단한 인사말을 건넨 요한이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걸 아갔다.
그가 멀어질 때까지 고개를 숙이 고 있던 영지민 중 하나는 의아해 하며 중얼거렸다.
“요한 공자님께서 바론 교단의 신자셨던가……?”
* * *신전에 가는 영지민들을 몇 차례 더 마주치고 숲에 도착한 요한은 곧장 과자 집으로 향했다.
맛있는 향기가 물씬 풍겨오는 과 자 집 근처에 도착하자 빗자루로 눈을 치우고 있던 빌헬미나는 환하 게 웃었다.
“요한! 무사했구나!”
“큰일도 아니었는데요.”
“이야기는 들었단다. 혼자서 일 주일간 산에서 토벌을 했다면서?”
“그건 또 누구에게 들으셨습니 까?”
“프란츠가 말했다고 했는데…… 아니니?”
요한이 없어도 과자 집은 사람들을 위해 항상 열려 있었다.
그때 왔던 기사나 병사에게 들었 을지도 모른다.
딱히 숨길 생각은 없었지만 괜히 빌헬미나를 걱정하게 한 것 같아 요한은 인상을 찌푸렸다.
‘프란츠 이 자식. 일단 아하스만 잡고 보자.’
“어쨌든 다행이다. 어서 들어가 자. 배고프지?”
“예. 바로 먹을 수 있나요?”
“물론이지!”
요한이 안으로 들어가자 빌헬미나는 오븐에서 크고 폭신폭신 해보 이는 빵을 꺼냈다.
“일단 빵부터 먹으렴. 금방 차려 줄게.”
커다란 베이컨을 두툼하게 잘라 굽고,계란을 풀어 오믈렛을 만든 다.
능숙하게 요리를 준비한 그녀는 금세 테이블 가득 요리를 준비했다.
베이컨과 오믈렛,거기에 호박찜 과 밀크 스튜까지.
풍족하게 차려진 식사를 요한이 말없이 먹자 빌헬미나는 빵에 크림 을 발라 요한의 앞에 놓아주었다.
“요새 너무 바쁜 거 아니니? 좀 쉬는게 어때?”
“나중에요.”
아하스를 잡고 다섯 번째 코어를 만들어야 한다.
그럼 엘릭서가 만들어질 때까지 는 조금 여유가 생긴다.
쉬려면 그때나 쉬어야지 지금은 무리였다.
“밥이나 제대로 먹고 해야 할 텐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먹는 거 야. 잠은 제대로 자고?”
“푹 잡니다.”
잘 먹고,잘 자는 것.
훈련 이상으로 몸을 만드는 데 중요한 일이었다.
어떻게든 하루에 여섯 시간 이상 은 자는 요한은 웃으며 대답한 후 빈 접시를 내밀었다.
“더 먹을래?”
“그 전에.”
요한은 주머니에서 준비했던 물 건을 꺼냈다.
엘븐 실크에 감싸져 있는 작은 선물을 본 빌헬미나는 고개를 갸웃 거렸다.
“이게 뭐니?”
고급스러운 끈을 풀고,포장을 펼쳐 본 빌헬미나는 말을 잇지 못 했다.
그 안에 있는 브로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빌헬미나는 떨리는 어조 로 물었다.
“나에게…… 주는 거야?”
“예.”
물을 한 모금 마신 요한은 바람 의 브로치를 꺼냈다.
“이 브로치. 할머니에게는 귀한 것이잖아요.”
이 브로치는 원래 그녀의 손녀인 그레텔의 것이었다.
빌헬미나가 가족을 잃은 이후 그 들의 유품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는 것은 요한도 알고 있었다.
그중 하나를 넘겨준 것이다.
그런 만큼 요한은 최대한 좋은 브로치로 보답을 하고자 했다.
“물론 바람의 브로치에 비하면 가치가 형편없기는 하지만……. 나 중에 더 좋은 것으로 보답하겠습니 다.”
“아,아니란다. 아니야……살짝 눈물을 훔친 빌헬미나는 애 써 웃었다.
“고맙다…… 고마워……살짝 브로치를 쥔 빌헬미나는 애 써 밝은 목소리로 말하다가 자리에 서 일어났다.
“내 정신 좀 보게. 밖에 빗자루 를 그냥 두고 와버렸어.”
그녀가 나가자 요한은 남은 수프 를 들이마셨다.
잠시 후 들어 온 빌헬미나의 눈 가는 촉촉해져 있었다.
아마 손주들을 생각하며 눈물지 었을 것이리라.
하지만 요한은 그것은 언급하는 대신 빈 그릇을 내밀 뿐이었다.
“수프 좀 더 주세요.”
“그래……젖은 목소리로 대답한 빌헬미나 가 수프를 퍼주었고.
요한은 말없이 식사를 이어나갔 다.
그의 식사가 끝났을 때쯤 빌헬미 나도 진정이 되어 만들던 케이크를 전부 만들었다.
하얀색 크림이 듬뿍 발라진 동그란 케이크였다.
“이게 하플링의 달케이크란다. 아단이 며칠 전에 가르쳐줬는데. 오늘에서야 하게 되었구나.”
“그나저나 아단은 어디 갔어요?”
“신전에. 아단이 성실한 바론 교 단의 신자더구나.”
“하플링에 마법사인데 신자라……“하플링이라고 해서,마법사라고 해서 신께 기대고 싶은 마음이 없 는 건 아니니까.”
부드럽게 웃은 빌헬미나는 커다 란 달케이크를 쏙쏙 잘랐다.
“자. 먹으렴. 몇 번 만들어봤지만 맛이 있을지는 모르겠구나.”
“잘 먹겠습니다.”
* * *커다란 달케이크 하나를 다 먹 고,또 만들어진 달케이크를 받은 요한은 대장간으로 향했다.
대장간 앞에는 헤갈과 유아랑이 서로 무기를 겨누고 서 있었다.
“하압!!”
“합!!”
실력이 녹슬지 않게 대무를 하는 듯 보였다.
몇 차례 부딪히며 싸우던 그들은 눈 밟는 소리를 듣자 휙 고개를 돌 렸다.
“아. 오셨습니까.”
“고생하셨습니다.”
“하라는 일은 안 하고 대무 라…… 그렇게 할 일이 없냐?”
그들의 인사를 대충 받은 요한이 묻자 둘은 서로를 보고 히죽 웃었 다.
“시키신 일은 잘 진행되고 있습 니다.”
“약초도 잘 자라고 있고. 문제는 없습니다.”
“오. 그래? 확인해볼 테니까 준 비해놔.”
그가 확인한다는 것이 약초들의 상태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꾸벅 인사를 하고 유아랑이 약초 밭으로 향하자 요한은 헤갈을 데리 고 대장간으로 들어갔다.
“이게 미스릴이다.”
곧장 미스릴 괴를 꺼냈다.
은은한 마력을 내뿜는 미스릴 괴 를 본 헤갈의 눈에는 탐욕이 깃들 었다.
“오…… 오오 이것이……!!!”
요한만 없다면 할기라도 할 것처 럼 헤갈은 미스릴 괴를 이리저리 살폈다.
그런 그를 응시하던 요한은 담담 히 말했다.
“순례단이 떠나면 작업할 거야. 필요한 물건 있으면 바로 주문해 놔.”
“지금 안 합니까?”
“순례단 접대 때문에 바빠. 왜? 너한테만 맡겨두라고?”
“그래주시면 매우 감사하겠습니 다만……헤갈은 천천히 말꼬리를 줄였다.
그도 요한이 만든 검을 봤다.
요한은 대충 쓸만한 검이라고 말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헤갈도 몇달은 공을 들여야 간신 히 만들만한 명검이었다.
그런 검을 하루 만에 뚝딱 만들 어낸 실력이 있다면.
미스릴로 검을 만들 때 요한의 검제가 중히 쓰일 것이 분명했다.
“어차피 지금 연료 부족해서 못 해. 그리고 아단도 불러야 하고.”
코크스로도 모자란 화력은 아단 의 화염 마법의 도움을 받아야 한 다.
그의 말에 동의하며 헤갈은 한숨 을 푹 내쉬었다.
“그런데 이 미스릴. 어디서 나신 겁니까?”
이정도면 검은 무쇠산에서도 쉽 게 볼 수 없는 최상급 미스릴이다.
헤갈이 궁금해하며 조심스레 묻 자 요한은 싱긋 웃었다.
“어디서 구한 건지 알면 어쩌 게?”
“그야…… 더 있나 찾아보려 고•"…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