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권 9화
59. 없으니 만든다 (4).
“내가 뭐라고 했었지?”
지난 토벌 동안 요한이 매일 같 이 하던 말이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기에 병사들 은 힘껏 외쳤다.
“지킬 것만 지키면 휴식보장 제 대로 해준다고 하셨습니다!”
우렁찬 외침을 들은 요한은 더욱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그런데 왜 안 지키냐? 내가 만만한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철저히 준비하겠습니다!!”
말투 하나하나가 살벌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병사들은 요한에게 공포 심을 느낄지언정 그를 꺼리는 생각 을 지니지는 않았다.
그가 덕분에 몬스터 토벌이 수월 해진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그리고 거기 부상자. 이름이 뭐 지?”
“체,체이슨입니다!”
“너는 무슨 객기로 이 팔 가지고 토벌에 참여하려는 거냐?”
“그게……“특별수당이 그리 탐이 나?”
“아닙니다!”
“너 하나 좀 벌겠다고 동료들 다 죽이고 싶어? 대열 무너지면 다 죽 는다고 했냐. 안했냐.”
“하셨습니다!”
“지원 업무로 빠져. 상처가 애매 해서 그런거면 말하고. 확실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겨울에 몬스터 토벌에 참여하면 위험수당과 더불어 특별수당이 지 급된다.
이번 겨울에는 마스터인 요한이 토벌에 함께한다.
그 말은 다른 토벌 때보다 훨씬 안정적인 토벌이 가능하다는 이야 기다.
그렇기에 경비대에 들어간 이들 은 어떻게든 토벌에 참여하고자 했 다.
체이슨이 뒤로 물러나자 요한은 병사들을 둘러보며 싸늘히 말했다.
“이번 겨울에 수당 챙기고 싶은 놈들은 알아서 몸 관리해라.”
“알겠습니다!”
“쉬어.”
완전히 군기가 들어간 병사들을 지나쳐 요한이 나가자 하온달은 그 를 쫓았다.
“오늘은 토벌에 가시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래. 너도 따라와.”
“어디 가십니까?”
“프란츠에게. 게론 영지에서 사 자가 온 모양인 것 같은데……아까 병영에서 홀로 훈련을 하던 요한에게 야스진이 찾아왔다.
게론 영지에서 결국 몬스터 토벌 과 산적 토벌에 부담감을 느끼고 지원을 요청한 것이었다.
“게론 영지라……“어차피 이 근처는 거의 다 토벌 했어. 나머지는 프란츠에게 맡겨야 지.”
“알겠습니다. 수행하겠습니다.”
하온달과 함께 저택에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던 프란츠는 요한을 다 급히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형님.”
“게론 영지에서 사자가 왔다고? 누가 왔냐.”
“에이론드 게론 자작의 동생인 파울 게론입니다.”
“가보지.”
프란츠와 함께 접견실 안으로 가 자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건장 한 기사가 앉아 있었다.
그는 시종이 가져다준 차에는 손 도 대지 못한 채 불안해하고 있었 다.
“안녕하신가.”
문을 열고 요한이 들어오며 인사 하자 그는 벌떡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파울 게론입니 다!!”
나이는 요한보다 파울이 더 많았 다.
하지만 요한은 마스터.
오러를 다루는 이들에게 마스터 는 선망의 대상이다.
그런 사람이 앞에 있으니 이제 막 익스퍼트에 진입한 파울로서는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앉지.”
“예.”
요한이 권하자 자리에 앉은 파울 은 품에서 서찰을 꺼냈다.
“저…… 이것을.”
게론 자작가의 인장으로 봉인된 친서 였다.
그것을 뜯어 읽어 본 요한은 가 소롭다는 듯 웃으며 서찰을 프란츠 에게 넘겼다.
“올해 게론 자작령 일부 지역의 몬스터 토벌을 맡긴다라……프란츠는 목적과 보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았다.
그의 눈치를 살피던 파울은 조심 스레 입을 열었다.
“보상으로는 이만골드,그리고 리곤 마을까지 바그너 영지로 통합 시키겠다고 하셨습니다. ““리곤 마을이라…… 에이론드 자 작님께서도 꽤 고민을 하신 모양이 군요.”
“리곤 마을은 밀과 보리가 잘 나 는 농지가 있는 데다가 영지민과 농노를 포함해 인구가 팔백이나 됩 니다.”
“농노와 영지민도 주신다는 겁니 까?”
놀란 프란츠를 향해 파울은 당당 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들 전부를 바그너 영지로 편입시키겠습니다. ”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거래다.
하지만 파견을 가야 하는 것은 요한이니 요한이 허락해야 했다.
프란츠는 힐끔 요한을 보았다.
“어?”
프란츠의 생각과 달리 요한은 그 다지 만족스럽지 않아 보였다.
“형님. 왜 그러십니까?”
“아니. 너무 싼 것 같아서.”
“예?”
“이거 받고 야오로 숲과 그 일대 의 산까지 받지.”
야오로 숲은 약초와 더불어 산짐 승들이 많은 곳이다.
하지만 딱히 농사를 짓기 좋은 곳도 아니고 특별한 생산품이 나는 것도 아니다.
또한 그 일대의 산이라고 해봐야 절벽이 많고 몬스터들만 나오는 정 도다.
광산이라도 있다면 모르겠지만 광산도 없는 곳이다.
즉 쓸모없는 땅인데도 요한이 그 것을 바라자 파울은 고개를 갸웃거 렸다.
“형님께 말씀드려야 하지만 그곳 이라면 허락하실 겁니다.”
“그럼 됐어. 프란츠. 내가 갔다 오도록 하지.”
“형님께 부담이 될까 동생은 걱 정스럽습니다.”
안 그래도 요새 토벌은 요한이 전부 도맡았다.
그런데 지원 토벌까지 맡기려니 프란츠도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 다.
걱정하는 그를 향해 요한은 심드 렁히 말했다.
“그 대신. 이번 처리로 얻을 자 금은 내가 가져간다.”
“뜻대로 하시지요.”
그가 시원스레 승낙하자 파울은 크게 기뻐했다.
“감사합니다!”
“바로 갈 거니까 그쪽도 준비하 고 있도록.”
“예!”
인사를 한 파울이 나가자 요한은 허리에 차고 있던 두 자루의 검 중 하나를 프란츠에게 넘겼다.
“뭡니까?”
“나 없는 동안 네가 영지 지켜야 할 것 아니야. 지금 쓰는 네 검은 약해빠졌으니 그거나 쓰고 있어.”
프란츠도 기사.
좋은 검을 보면 탐이 나는 것은 사실이었다.
물론 윌카스트 백작에게 가야 할 검이기에 그저 맡아놓는 정도지만.
그가 올 때까지는 써도 된다.
프란츠는 꽤나 기뻐하다가 의아 해하며 물었다.
“그럼 형님께서는 어떤 검을 쓰 시려는 겁니까?”
“난 이게 있으니까 됐어.”
얼마 전에 요한이 직접 만들었다 는 검이다.
그 검에 대해서는 그와 함께 토 벌을 함께 한 기사나 병사들에게 들었다.
두꺼운 가죽을 가진 몬스터들도 쉽게 베어넘기는 명검이라고 들었 다.
요한이 보통이 아니라고는 생각 했지만 검제에도 재능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의 검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프 란츠는 몸을 비비 꼬았다.
“형님. 동생이 형님께 일생일대 의 부탁이 있는데……“너 아카데미 입학선물로 이거 줄 테니까 그런 짓 좀 하지 마라.”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뻥 치지 마.”
프란츠도 검사니 좋은 검을 보면 욕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찌 요한의 검을 탐내겠 는가.
그저 어떻게든 청강을 얻어올 테 니 한 자루만 만들어 달라 부탁하 려던 것이었다.
“아…… 진짜 그런 거 아닌 데……어쨌든 좋은 검을 얻게 생긴 프 란츠의 얼굴에 부끄러움과 동시에 기쁨이 깃들었다.
좋아하는 프란츠를 향해 요한은 빙긋 웃었다.
‘나야 미스릴로 만들 거니까 그 냥 줘버리는 게 낫지. 어차피 저 녀석도 해줘야 할 일이 많으니.’
요한은 심드렁히 말한 후 프란츠 의 어깨를 잡았다.
“바그너 영지 주변의 몬스터는 거의다 잡았다.”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너와 다른 기사들이라 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다.”
“예. 형님.”
“그리고 내가 진짜 노파심에 하 는 얘긴데. 나 없는 사이에.”
잠시 입을 멈춘 요한은 살벌한 어조로 말했다.
“문제 생기면 알지?”
“서,설마 생기겠습니까?”
“만약 문제 생기면 네 남은 인생 도 문제투성이로 만들어줄 테니 진 짜 명심해라. 알았냐?”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영지에 문제 생겨서 순례단 안 오면 다 죽 여버린다. 진짜.’
조금 전까지 훈훈했던 방 안에 살기가 가득 찼다.
그 살기를 마주하며 프란츠는 잔 뜩 긴장했다.
“끙. 당연한 말씀을.”
“그리고 유아랑이랑 헤갈,아단 얘들 쓰지 마. 바쁜 녀석들이니까.”
유아랑은 약초를 기르는 데 집중 해야 하고 해갈은 도구와 고로에 익숙해져야 한다.
빌헬미나를 돕는 아단은 말할 것 도 없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간다.”
경고는 했으니 됐다.
만약 어긴다면 돌아와서 제제를 해도 된다.
요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 가버렸고 프란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럼 당분간 문제 생 기면 내가 나서야 하는 거구나.”
* * *저택에서 나오자마자 요한은 과 자 집으로 향했다.
눈이 소복이 쌓인 숲길을 걸던 그가 과자 집 근처에 도착하자 어 떻게 알았는지 문이 열렸다.
“어서 오려무나. 밥은 먹었니?”
“아뇨. 밥 먹으러 왔어요.”
“들어오렴. 춥다.”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빌헬미나 는 상냥히 웃었다.
그녀와 함께 집에 들어간 요한은 빌헬미나가 차려 준 음식을 먹으며 말했다.
“아단.”
“예?”
바삭하게 구워진 토스트에 오렌 지 마멀레이드를 듬뿍 바르던 아단 은 요한의 부름에 손을 멈췄다.
“마법 스크롤 중에 필요한 것이 있는데. 혹시 가지고 있나?”
“뭐가 필요하십니까?”
“언락 마법.”
“예. 마침 몇 장 가지고 있으니 드리지요.”
모험을 하는 마법사들은 필수로 외워야 하고,또 만약을 위해 가지 고 다니는 것이 언락 마법 스크롤 이다.
보물 상자를 발견했는데 열지 못 하거나.
숨겨진 벽을 발견했는데 잠겨 있 어서 들어가지 못하면 얼마나 아쉽 겠는가.
그래서 꽤 가지고 있었던 그는 자신의 가방을 뒤졌다.
“이 정도면 됩니까?”
여섯 장이나 되는 스크롤을 그가 내밀자 요한은 그것들을 챙겼다.
“던전이라도 들어가십니까?”
■方'
“요한. 던전은 아주 위험한 곳이 란다. 미궁이 있는 곳도 있고,무서 운 몬스터가 있는 곳도 있어.”
던전이라는 말에 빌헬미나가 반 응했다.
걱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요한을 응시하던 빌헬미나는 주머니에 손 을 넣었다.
하지만 꺼내지는 않았다.
몇 차례나 망설이고,또 망설인 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다.
“혹시 모르니 이걸 가져가렴.”
까끌까끌해져 있는 고목 같은 손 에는.
“이건……어린아이들이나 쓸 법한 투박한 브로치가 들려 있었다.
그 브로치를 본 요한의 시선에는 씁쓸함이 감돌았다.
‘이걸 이렇게 얻게 될 줄이 야……/회귀 전에도 얻었던 브로치다.
하지만 그때는 이런 식으로 얻지 않았었다.
요한이 브로치를 바라보는 사이 빌헬미나는 따뜻한 어조로 부드럽 게 말했다.
“바람의 브로치란다. 네가 길을 잃었을 때 분명 도움을 줄 거야.”
“괜찮은 겁니까?”
“네가 다치는 것보다야 낫지. 이 할미는 항상 이 집에서 너를 기다 릴 때마다 노심초사하고 있단다.”
과자 집에 오는 기사들이 말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빌헬미나는 항상 걱정이 됐다.
물론 요한은 강자다.
하지만 강자라고 하여 죽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 르는 법이란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거야. 그리되면…… 만날 수 없게 된단다. 다시는……슬픔이 가득한 빌헬미나의 목소 리를 들으며 요한은 손에 쥐어진 브로치를 응시했다.
얼마나 어루만졌는지 브로치의 황동 부분은 번들거리고 있었다.
요한이 회귀 전 이 브로치를 얻 은 것은 죽은 그녀를 장례를 치러 주고 신변 정리를 하던 도중이었다.
그때는 그저 유류품이었는데 직 접 받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 브로치의 사연을 알고 있는요한은 그저 감사합니다. 라는 말 만으로 끝낼 수 없었다.
그렇기에 요한은 회귀 전에는 해 주지 못한 말을 꺼냈다.
“언제 헤어지더라도. 강한 인연 이 있다면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확신이 담긴 요한의 말에 빌헬미 나의 표정은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