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권 8화
58. 없으니 만든다 (3).
주변에 있는 열려 있는 상자들.
그리고 금괴만 남은 상자.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아버 렸다.
“설마……이곳에서 살던 이들이 갑자기 떠 나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그 와중에도 뭔가 챙겨야 했다면 귀중품은 반드시 가져갔을 것이다.
하지만 가져갈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금괴가 남아 있고 다른 상자들은 텅 비어 있다?
“저 상자들에는 더 귀한 것이 있 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군요.”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이것만큼은 요한도 모른다.
그 역시 회귀 전에 이곳에 들어 왔을 때 발견한 것은 금괴가 있는 상자뿐이 었으니 까.
'지난번보다 훨씬 일찍 왔는데도 없는 거면…… 어쩔 수 없지.’
“아…… 진짜 아쉽다……“이미 지난 일 아쉬워해 봤자 의 미는 없다. 헤갈.”
“예?”
“가서 불 피워. 이거 녹여야 하 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준비 하고 있겠습니다.”
“■O »石'
헤갈이 나가자 요한은 근처에 있 는 수레에 금괴를 옮겼다.
금괴를 대장간이 있는 집에 가져 가자 헤갈은 이미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여기서 녹인 다음 하나로 굳히 면 되겠군요.”
“그래야겠지.”
커다란 통에 금괴를 하나씩 넣었 다.
작업의 준비를 끝내자 헤갈은 고 로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이걸로 뭘 하시려는 겁 니까?”
“만들 게 있어서.”
“금으로 뭐 만들 것이 있다 고……. 그런데 형태는 따로 잡을필요 없습니까?”
“필요 없어. 한 번 더 녹여야 하 니까.”
“예?”
“말하지 않았나? 바그너 영지에 마련한 대장간에서 다룰 것은 금과 미스릴이라고.”
“아……. 그러셨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헤갈은 흠칫 놀랐다.
“잠깐만. 설마 금을 더 모으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저 정도로는 모자라.’
현자의 돌이 필요한 곳은 많다.
하지만 애초에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회귀 전에도 요한이 얻은 것은 고작해야 세 개가 다였다.
그렇기에 그는 현자의 돌을 만들 기 위한 방법을 찾아다녔고 현자의 돌을 가장 쉽게 만들 수 있는 레시 피를 발견했었다.
그 레시피대로 현자의 돌을 만들 기 위해 필요한 금은 상당했다.
회귀 전에도 필요한 금을 모으기 위해 별 짓을 다했었다.
그가 쓰게 웃는 모습을 본 헤갈 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뭘 하시려는 건지……“저거 되는 동안 할 일 없으면 도구들이나 챙기자고.”
“알겠습니다.”
고로에서 금을 녹이고,또 식히 는 작업도 해야 한다.
그 시간을 그냥 날려먹을 필요는 없었다.
그 사이 요한과 헤갈은 유적을 뒤져 쓸만한 것들을 찾았다.
그들이 대장장이 장비들을 전부 찾았을 때쯤.
하나로 뭉쳐 놓은 금은 딱딱하게 식어 있었다.
“보기만 해도 아름답군요.”
“그렇지?”
통 안에서 차게 식어 있는 반짝 이는 금괴를 보니 마음이 푸근해졌 다.
헤갈은 반짝이는 금의 표면을 보 며 뿌듯해했다.
“보기만 해도 좋네.”
“슬슬 가자.”
“요한 공자님. 짐들은 어떻게 합 니까?”
“그냥 들어야지 어쩌겠냐. 거기 수레 있을 거야. 가져와.”
“끄O......w•손수레에 담긴 도구들과 아직 들 어가지 않은 도구들을 보며 헤갈은 신음했다.
금괴야 요한이 아공간 주머니로 챙길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도구들의 무게도 보 통이 아니다.
저걸 가지고 산을 내려갈 일을 생각하니 헤갈은 앞날이 막막했다.
“아무리 저라도 혼자서는 못 나 를 것 같습니다만……혼자 여러 번 반복해야 하나 싶 었다.
헤갈이 불안해하며 묻자 요한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 정도로 악당은 아니야. 같이 들자고. 같이.”
요한도 수레를 잡자 그제야 헤갈 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빠르게 유적탐사를 끝내고 요한 과 헤갈이 바그너 영지로 돌아왔을 때는 해가 중천에 떴을 때쯤이었다.
대장간에 도착해서 짐을 안으로 넣은 후에야 요한은 힘들어하는 헤 갈에게 말했다.
“고생했다.”
“아닙니다. 그럼 저 도구들을 한 번 시험을 해봐야겠는데……대장간의 화로에 불을 붙인 헤갈 은 요한이 팔짱을 끼고 서 있자 고 개를 갸웃거렸다.
“왜 거기 서 계십니까?”
“검 하나 만들려고. 이건 아버지 거라 막 쓰기 좀 그러니까.”
지금까지 막 써온 청강검을 들어 올리며 요한이 말하자 헤갈은 고개 를 갸웃거렸다.
“검이요?”
헤갈은 한 가지 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만든다고?”
“그래. 검제(劍製)는 몇 번 봤으니까.”
“그냥 제가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비록 모험가 생활을 오래 하기는 했지만 헤갈은 드워프다.
금속을 다루는데 있어서는 어지 간한 경력의 인간보다 훨씬 낫다.
그러니 요한이 쓸 만한 검이라면 자신이 만드는 게 낫다고 그는 생 각했다.
“물론 명품은 힘들겠지만……“그렇게 좋은 거 만들 생각 없 어. 그냥 넌 가서 쉬어. 고생했으니 까.”
요한은 혼자 더 일한다는데 쉰다 는 것이 헤갈은 마음에 걸렸다.
그가 머뭇거리자 요한은 무덤덤 하게 말했다.
“난 지킬 것만 잘 지키면 쉬는 것은 보장해주는 사람이다. 네가 할 일은 다 했어. 그러니 쉬는 것 은 보장해주지.”
헤갈에게 맡겼다간 쓸데없이 최 선을 다한다고 한세월 걸릴 것이 뻔했다.
그런 노력은 나중에 미스릴을 얻 고 나서 해도 충분했다.
지금 만드는 것은 당분간 쓸만한 검 정도니 말이다.
그 정도라면 혼자 만드는 것이 낫다.
“으음…… 그러시다면야.”
제대로 만들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요한은 비밀 투성이 인 사람이다.
절맥을 치료하고.
마스터의 자리에 오르고.
거기에 그가 유적에서 썼던 검 술아마 투왕 광약의 소드 댄싱일지 도 몰랐다.
거기에 기사단이나 경비대에게 듣기로는 추적술도 보통이 아닌 듯 싶었다.
다재다능이며 숙련도가 보통이 아니다.
절맥 때문에 오랫동안 누워 있어 기껏해야 책만 봤을 정도인 그가.
저 정도의 실력을 가졌다는 것은 충분히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헤갈은 호기심을 드러내 지 않았다.
‘가끔 가다가 있지.’
저런 천재들이 있다.
한번 보는 것만으로 어지간한 사 람보다 훨씬 더 잘하는 사람이 있 다.
요한도 그런 부류라고 생각하면 모든 것은 쉽게 풀린다.
그냥 속 편하게 생각하는 게 사 는데 더 이롭다는 것을 헤갈은 알 고 있었다.
‘야스진 치유사나 보로미로 사제 도 요한 공자님이 악마가 아니라고 했으니……그렇다면 굳이 파고들 이유는 없 었다.
천재들에게 어떻게 했냐고 물어 봐봤자 나오는 대답은 ‘그냥 됐다.’ 에 불과할 테니까.
“그럼 저는 오늘 맥주 한잔하고 자도 됩니까?”
“마셔. 너 내일부터 할 일 많을 테니까 아예 푹 쉬어. 돈 없냐? 돈 도 주랴?”
요한은 돈주머니를 던져주었다.
주머니 안에는 금화가 잔뜩 들어 있었다.
이 정도면 주점에서 코가 비뜰어 지도록 마실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헤갈이 나가자 요한은 대장간을 둘러보았다.
잘 정리된 대장간을 이리저리 살 피던 요한은 청강괴를 꺼냈다.
“미스릴 구해서 그걸로 검 만들 때까지는 이걸로 때워야지.”
회귀 전에도 야금술(治金術)을 배웠었다.
아니,회귀 전뿐만이 아니다.
마흔아홉 번째 환생 때는 야금술 이 힘의 기준이었다.
그때 온갖 것을 만들어 마왕과 대적했었다.
물론 이 세계는 그때처럼 철에 혼을 담는 기술은 쓸 수 없다.
하지만 기본적인 것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니 잠깐 쓸만한 검 하나 만 드는 정도는 요한에게 있어선 일도 아니었다.
-푸르륵!!
기름을 뿌리고 코크스를 넣어 고 로에 불을 붙인다.
풀무를 밟아가며 바람을 넣자 불 길이 치솟기 시작했다,그것을 응시하던 요한은 자리에 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대장간에 있는 두 개의 고로 중 하나는 얌전히 잠들어 있었다.
저 고로에 불길이 치솟는 날.
미스릴 검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 전까지는.
“있는 거 써야지. 괜히 찾아다니 느라 힘 빼지 말고.”
틀에 넣은 청강괴를 고로에 넣은 후 요한은 말없이 기다렸다.
후끈거리는 열기가 강해지고, 청 강괴가 청백색으로 타오르기 시작 했다.
그 안에 몇 가지 약과 재료를 넣 은 그는 망치를 들고 괴를 두들기 기 시작했다.
-땡강! 땡강!
맑은 음색이 대장간의 창문을 타 고 퍼지기 시작했다.
규칙적이며,큰 변화가 없는 두 들김이 다.
일정하게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져 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청강괴 는 수십 번이나 접히고 가열되고 식어가며.
그 안에 담겨 있는 검의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 * *유적에서 황금을 얻고 새롭게 검 을 만들었지만 특별히 바뀐 것은 없었다.
계속해서 몬스터 토벌만을 진행 할 뿐이었다.
그렇게 한 달여가 지나고 겨울의추위가 더 강해졌다.
원래라면 몬스터와 산적들이 기 승을 부려야 할 시기가 되었지만.
영지 내 촌락이 공격받는다는 이 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요한이 토벌대를 끌고 다니며 대 부분의 몬스터들과 산적들을 토벌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지 내에 있는 영지민들 은 마냥 좋아하지 못했다.
마을 근처에 있는 몬스터가 토벌 되면 그 즉시 요한은 세율을 올린 다.
물론 과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프란츠가 나섰다면 세율 의 증가 없이 몬스터 토벌이 이루 어졌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몇몇 마을을 제외하 곤 요한에 대한 평가는 기존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기사단과 병사들의 요한 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달라져 있 었다.
“어이구 힘들어……“야야. 그래도 훈련은 계속해야 지.”
몬스터 토벌이 고블린 퇴치 같은 쉬운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씩 위험한 몬스터가 나오기 도 하고,그럴 경우 피해가 생기기 도 한다.
매년 평균을 따지면 토벌을 하다 가 연간 열 명 정도는 죽거나 크게 다친다.
하지만 올해의 몬스터 토벌에서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물론 다친 사람이 없는 것은 아 니었다.
그래도 작년 겨울에 비하면 상황 은 엄청나게 안정되어 있었다.
“체이슨!! 팔은 괜찮나!?”
“예! 괜찮습니다!”
하온달의 외침에 경비대원 체이 슨은 붕대로 감겨 있는 팔을 들어 보였다.
어제 있었던 오크 군락 토벌 때 도끼를 막다가 다쳤다.
원래라면 팔이 잘릴 만한 공격이 었다.
하지만 헤갈이 만든 시험용 방어 구는 부상의 수위를 크게 낮춰주고 있었다.
이 또한 요한 덕분이라는 것을 기사들과 병사들은 다들 잘 알고 있었다.
헤갈을 영지로 데리고 온 것이 바로 요한이었기 때문이다.
붕대에 감겨 있던 팔을 들어 올 리며 체이슨은 작게 말했다.
“불구는 면했습니다요.”
“그래도 상처는 상처다. 너는 오 늘부터 완전 회복될 때까지 지원 업무로 빠지도록.”
“하,하지만.”
“공자님의 명령이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요한의 명령 이다.
그러다 보니 체이슨은 불만보다 는 아쉬움만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괜찮습니다만……“괜찮긴 뭐가 괜찮냐.”
귀에 익은 퉁명스러운 어조가 들 렸다.
그 목소리를 들은 병사들은 황급 히 몸을 바로 했다.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망토를 두른 요한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를 본 병사들이 긴장하는 사이 요한은 바닥에 놓여 있던 창대를 확인했다.
“창날 제대로 갈아놔라. 여기 이빨 빠졌잖냐.”
“예!!”
“나중에 싸울 때 이게 너를 죽일 수도 있다.”
“알겠습니다!”
“적을 앞에 두고 그냥 죽어 줄 생각은 아니겠지? 그런 거라면 내 가 지금 끝내주고.”
“주,주의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요한은 정비불량에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리자 경 비대원들은 불안감을 품었다.
그리고,그 불안감은 현실이 되 었다.
“나 요한은 너희들에게 실망했 다.”
실망.
그 단어가 나온 순간 병사들의 얼굴은 파랗게 물들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