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권 25화
50. 규정대로 해보자 (2).
“알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춘 그 는 지도를 내밀었다.
“가자.”
“공자님. 숙소는 어디로 잡으실 생각이십니까?”
“글쎄. 대충 아무 여관에 머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여기 모험가 길드에서 북쪽으로조금만 있으면 풍월의 향기라는 여 관이 있습니다.”
“그래?”
“예. 그곳이 꽤 고급스러우니 거 기서 묵으시는 것이 좋으실 겁니 다.”
“생각해보지.”
요한이 말에 올라타자 야스진은 힘겹게 고삐를 잡았다.
거리로 들어서자 확실히 바그너 영지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무장한 이들이 대놓고 걸어 다니 는 것을 보니 아까 카가의 걱정도 이해가 되었다.
“공자님. 여관부터 잡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카가가 말한 것처럼 모험가 중에 는 질 나쁜 자들도 있다.
물론 요한이 마스터이기는 하지 만 괜한 시비는 피하는 게 상책이 다.
야스진이 걱정하며 묻자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넌 내일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여야 되니까 쉬어라.”
“어? 그럼 공자님께서는 나가실생각이십니까?”
“모험가 길드 지부와 상아탑 지 부는 24시간 영업하니까 난 오늘 일 끝내두려고.”
무리해 가며 이동시간을 단축한 이유는 최대한 빨리 움직이고,또 사제들이 떠나기 전에 정보를 파악 하기 위해서다.
내일 오후면 순례단도 로미단 영 지를 떠난다.
그 전에 정보를 알아내야 했다.
“난 볼일 보고 올 테니까. 넌 쉬 고 있어.”
“알겠습니다.”
야스진은 요한이 혼자 간다고 해 서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요한은 마스터다.
그리고 심계 또한 보통이 아니 다.
그런 사람이 혼자 간다고 걱정을 해야 하면 세상 사람을 전부 걱정 해야 한다.
‘공자님이 어디 가서 맞고 올 사 람은 아니지.’
오히려 맞는 것보다 과하게 때리 지나 않을까를 더 걱정해야 한다.
지금은 그것보다 여관을 찾는 것 이 우선이다.
갈림길에 멈춰 서자 야스진은 바 로 방향을 제시했다.
“왼쪽으로 가야 합니다.”
“뭐야. 너 길 알아?”
“예전에 몇 번 와봤습니다.”
“그럼 안내해.”
“예. 그럼 길 안내를 시작하겠습 니다.”
던져 준 지도를 받은 그가 앞서 자 요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요한이 입고 있는 복장.
그리고 좋아 보이는 말.
그것 때문인지 몇몇 모험가들의 눈에 욕망이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보는 눈이 많아서일까?
함부로 덤벼드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위협적인 거리를 지나 고 급스러운 골목에 도착하자 야스진 은 말을 세웠다.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길 안내를 종료합니다.”
멈춰진 곳 바로 앞에는 카가의 말대로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여 관이 있었다.
“들어가자고. 넌 쉬든 말든 알아 서 해라. 필요한 거 있으면 마음대 로 주문하고.”
“알겠습니다.”
여관에 말을 맡기고,방을 배정 받자마자 요한은 바로 나왔다.
‘일단은 모험가 길드부터 가야겠 군.’
곧장 모험가 길드로 향한 요한은 여관보다 좀 더 큰 건물 앞에 도착 했다.
커다란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 니 빈 테이블들이 눈에 띄었다.
모험가로 보이는 남자 하나만이 혼자 테이블을 차지하고 카드를 만 지작거리고 있었다.
“의뢰라도 맡기러 오셨수?”
카드를 내려놓은 그가 다가오자 요한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길드 사무원?”
“그건 아닌데…… 의뢰라면 내가 맡아 주겠수다. 이래 봬도 동 등급 이라고. 혹시 쌍수검의 요미안이라 고 들어보셨나?”
“못 들어봤는데.”
“에 잉.”
목에 걸려있는 동 등급의 인식표 를 보이며 그가 말하자 요한은 웃 었다.
“그런데 사람도 찾아주나? 모험 간데.”
“어…… 그건 길드에 문의를 하 시는 것이 어떻겠수?”
“못한다는 건가?”
“내 전문은 전투라서.”
“그런 거면 그냥 혼자 하지.”
“쯧. 좀 싸게 해주려고 했더니만. 길드 의뢰보다 싸니 생각 있으면말하슈.”
그가 말한 사이 접수처에 붉은 머리칼이 인상적인 여인이 돌아왔 다.
그녀는 요한을 발견하고 활짝 웃 으며 접수대로 걸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모험가이십니 까?”
“모험가는 아니고.”
요한은 품에서 에드몬드의 인식 표와 리치의 뼈를 꺼냈다.
검게 물든 뼈를 물끄러미 응시하 던 그녀는 흠칫 놀랬다.
“에드몬드 몽스웰 처치 현상금 받으러 왔다.”
“자,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당황하던 그녀는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나온 것은 짙은 밤색 머 리에 투박한 인상을 한 남자였다.
“안녕하십니까. 모험가 길드 로 미단 지부 지부장 호세 마이노입니 다.”
“요한 바그너다.”
“요한 바그너…… 신성!?”
“신성은 또 뭐야?”
“아…… 그게 요한 공자님께 생 긴 별명입니다. 새로운 별이라는 뜻으로……“나도 모르는 별명을 너희가 왜 알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그건 일 단 둘째치고.”
요한은 들고 있던 뼈를 위아래로 던졌다.
“에드몬드 몽스웰 내가 처치했 다. 현상금 내놔.”
“현상금이요……호세는 말꼬리를 흐렸다.
그가 머뭇거리는 것을 본 요한은피식 웃었다.
“머리 굴리지 마라. 모험가가 아 니면 현상금을 지급하기 어렵다는 소리하려고?”
“그,그건 아닙니다만.”
“사기 칠 생각 말고 현상금이나 내와.”
“하지만 공자님. 저희 규정 이…… 모험가가 아니신 분에게는 현상금을 지급해드려도 전부 지급 은 어렵습니다.”
‘확실히 그런 규정이 있기는 했 지.’
아니꼬우면 모험가 길드에 가입 하라는 것이다.
팔짱을 끼고 요한이 빤히 응시하 자 호세는 싱글거렸다.
“사실 원래는 규정상 안 되는 거 지만,요한 공자님.”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마치 비밀이라도 이야기 하려는 듯 작은 어조로 말했다.
“모험가 길드에 가입하시는 것은 어떠시겠습니까?”
“뭐?”
“추천인으로 저를 써주시고 가입 만 하시면 현상금을 모두 지급해드 릴 수 있습니다. 무려 삼만 골드를 전부.”
“나를 가입시켜놓고 일 시켜먹으 려고?”
“하지만 요한 공자님이시라면 어 지간한 놈들은 쉽게 잡으실 수 있 으시잖습니까. 겸사겸사 현상금이나 받으시라는 것이지요.”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요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기 삐하며 가입 용지를 가져왔다.
거기에 빠르게 서명하여 가입신 청서를 내자 호세는 웃으며 목걸이 를 들었다.
“공자님시라면 바로 은 등급으 로……“아니. 흑석 등급이면 된다.”
지금쯤이면 백석,잘해야 청석 등급일 길로틴을 떠올렸다.
모험가들의 등급은 크게 상급과 하급으로 나뉜다.
금,은,동급이 상급.
흑석, 적석,청석,백석이 하급.
모험가들은 대부분 상급과 하급 으로 나누어져 연계하곤 했다.
즉 지금 쯤 하급에 불과할 길로 틴을 만나려면 하급 모험가면 충분 했다.
그런 요한의 속셈을 알 리 없는 호세는 무척이나 당혹스러워했다.
“예? 하지만 흑석 등급이면 하급 모험가잖습니까. 다시 한 번 생각 을 해보시는 게 어떠십니까?”
“흑석으로 가져와.”
결국,호세는 흑석 등급의 목걸 이와 모험가 길드 보증 전표를 가 져 왔다.
그것을 받은 요한을 향해 호세는 싱글벙글 웃었다.
마스터를 모험가로 만들었다는 것이.
그것도 자신의 추천으로 모험가 가 되게 했다는 것이 꽤나 기분이 좋아보였다.
“모험가가 되신 것에 감사드립니 다. 앞으로 많은 활약 부탁드립니 다.”
“그래 뭐. 그건 그렇고. 모험가 길드에 가입된 사람 하나 찾고 싶 은데.”
“규정상 그것은 조금 힘들 것 같 습니다만…… 뭐 길드의 의뢰를 몇 가지 해주신다면 제가 도와드리겠 습니다.”
‘이놈 봐라? 어디서 사기를…… 그래,마침 잘 됐다. 널 이용해주 지.’
선심 쓰듯 말하는 그를 응시하던 요한은 콧방귀를 뀌었다.
“뭔 규정이 그리 많은지. 정작 모험가들 규정 잘 안 지키잖아? 그 리고 그런 규정이 있었나?”
“있습니다.”
“웃기고 있네.”
요한이 알기로 그딴 규정은 없었 다.
그는 회귀 전에도 모험가 생활을 했다.
그때 규정 가지고 시비 거는 놈 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아예 모험가 길드의 규정 을 전부 외워버렸다.
그렇기에 그는 호세가 거짓을 말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모험가가 다른 모험가를 찾는 게 왜 안 되냐? 그럼 파티는 어떻 게 짜는데?’
하지만 호세는 요한이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행동이었다.
지금 요한은 강하기는 하지만, 경험 없는 귀족가 공자님으로 알려 져 있었다.
잘만 구슬리고.
또 규정을 가지고 사정하면 자신 의 말을 들어 줄 것이라 여기고 있 다.
다른 공자나 영애들에게 사기를 쳤던 것처럼 말이다.
“규정이 없으면 자유가 아니라방종일 뿐이니까요.”
“그래?”
“예. 규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 니까요.”
요한이 빤히 응시하는데도 호세 는 뻔뻔함을 유지했다.
그를 마주하며 요한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잘 지키지도 않는 규정을 내가 가입하니까 잘 지키겠다고?”
그가 내민 목걸이를 받은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규정대로 얻은 물품은 알아서 처리해도 되는 거지?”
“예?”
“에드몬드 처치 증거인 에드몬드 의 연구일지. 내가 알아서 처리한 다.”
금기를 범한 마법사의 연구일지.
그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는 호 세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호세는 다급히 외쳤다.
“워,원래 현상수배범이 보유하 던 물품은 길드에 귀속돼야 합니 다! 그게 아니면 현상금을 왜 주 겠……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
요한은 이를 드러내며 싸늘히 으 르렁거 렸다.
“모험가 길드 내규 3조 7항. 길 드를 통하지 않은 의뢰로 얻은 물 품은 기본적으로 획득한 모험가의 것이 된다.”
“어......?”
“3조 8항. 하나 그 물건이 위험 물품일 경우 길드회의를 거쳐 합의 하에 적당한 보상을 지급하여 매입 한다.”
“그,그건.”
“너 지금 매입하려고 했냐? 아니 면 그냥 강탈하려고 했냐?”
“그게,저.”
“에드몬드 처치는 의뢰가 아닌 현상수배다. 이 연구일지의 회수 의뢰가 있었나?”
뜻밖의 말이 나왔다.
요한의 입에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모험가 규정이 나왔다.
호세는 요한의 눈치를 살피며 조 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없었습니다.”
상아탑의 요청은 에드몬드의 처 치일 뿐이다.
그가 대답하자 요한은 고개를 끄 덕이고 연구일지를 품에 넣었다.
그것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호세 는 다급히 외쳤다.
“저,저기 공자님? 그런데 그건 도대체 어떻게 얻으신 겁니까?”
“모험가 길드 내규 1조 4항. 모 험가의 모험 내용에 대해서 직접 발설하지 않는 한 길드는 묻지 않 는다.”
“아니……또다시 정확한 규정이 나왔다.
호세는 순간 위화감을 느꼈다.
‘왜 이렇게 규정을 잘 알고 있 지?’
의아해하는 그를 마주하며 요한 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모험가 길드의 지부장이라는 게 규정도 제대로 모르나? 어이. 거기. 요미 안.”
“으,으응? 부르셨습니까?”
아까 요한에게 말을 걸었던 요미 안은 움찔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평범하고,경험 없는 귀족 도련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설마 신성이라 불리 는 요한일 줄이야.
마스터에게 전투 전문이라고 나 댔던 것이 쪽팔려 조용히 있던 그 는 후다닥 요한에게 다가갔다.
“저기 있는 규정집 가져와 봐.”
길드에 놓인 책장 구석을 요한은 척 가리켰다.
꽤나 오랫동안 사람들이 찾아보 지 않은 듯 두툼한 책에는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요미안이 책을 가져오자 요한은 규정집의 먼지를 쓱 닦아냈다.
“너 아까부터 자꾸 규정 갖고 장 난치던데. 어디 그 잘난 규정에 대 해서 한번 제대로 얘기해보자고.”
위화감이 강해졌다.
저 두터운 규정집을 툭툭 치는 요한의 모습에는 자신감이 넘쳐 흐 르고 있었다.
“그…… 요한 공자님•…"? 제가 저,실수를 한……하지만 요한은 그의 말을 가볍게 잘랐다.
“실수? 장난 하냐? 아. 됐고.”
그제야 호세는 깨닫게 되었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너 나보다 규정 모르면.”
요한은 이를 드러내며 살벌하게 으르렁 거 렸다.
“석급 모험가보다 규정을 제대로 모르는 놈이 지부장 맡고 있다고!”
“•"…그,그게.”
“모험가 길드 본부에 열과 성을 다해서 내가 민원 넣는다.”
호세는 요한이 지금까지 상대했 던 귀족 공자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귀족가에서 곱게 자라 실력은 있지만,세상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그런 어설픈 자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늘 하던 대로 그를 속 여서 이득을 보려던 호세는.
“여기서 할까? 아니면 들어가서 할까?”
요한의 싸늘한 미소에 등줄기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