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권 24화
49. 규정대로 해보자 (1).
다행히 자른다는 이야기는 아니 었다.
안도한 야스진은 고개를 갸웃거 렸다.
“로미단 영지라면 여기서 사흘 거리에 있는 거기 말씀하시는 겁니 까?”
“그래.”
야스진은 성실히 고개를 끄덕이 다가 흠칫 놀랬다.
“그런데 공자님. 내일 아침에 간 다고 하셨습니까?”
“그런데?”
“저기……머뭇거리는 야스진을 향해 요한 은 콧방귀를 뀌었다.
“뭐. 데이트 있다고?”
“예. 그,그렇지만 공자님께서 말 씀하신다면 가야겠지요.”
내일 데이트를 위해 식당을 예약 해놨다.
꽤 예약하기 힘든 곳이었지만 요 한의 명령이라면 따를 수밖에 없었 다.
아쉬워하는 야스진을 향해 요한 은 피식 웃었다.
“이번에 네가 해야 할 일 잘하면 네가 예약한 식당보다 더 좋은 곳 에 예약해 주지.”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는데•…“”
위기는 곧 기회가 되는 법이다.
요한이 직접 예약해 준다면 훨씬 좋은 식당을 좋은 시간에 잡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어디에 예약해 주실 생 각이 십니까?”
기대감을 품으며 그가 묻자 요한 은 심드렁히 대꾸했다.
“과자 집.”
야스진은 위기는 그냥 위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 * *아침이 되자 요한과 야스진은 준 비된 말에 올랐다.
챙긴 짐은 갈아입을 옷 몇 벌이 다였다.
“식사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 까? 주방에서 받아올까요?”
“아니. 빌헬미나 할머니가 전달 해 준다고 했는데……어제 저녁 식사를 하면서 다른 영지에 다녀온다고 말하자 그녀가 도시락을 준비해준다고 했었다.
저택 앞에서 얼마간 기다리고 있 는 사이 아침 안개를 뚫으며 숲지 기가 달려왔다.
“헉…… 헉……그는 숨을 몰아쉬며 커다란 가방 을 내밀었다.
“비,빌헬미나…… 허억…… 님 께서……커다란 가방을 열어보니 먹을 것 이 잔뜩 있었다.
말린 육포와 말린 과일들.
유리병에 담긴 잼과 커다란 빵.
불에 구워 먹을 수 있는 치즈와 더불어 말린 생선까지.
장정 다섯이 일주일은 먹을 만한 식량이었다.
가방의 내용물을 보던 야스진은질린 듯 중얼거렸다.
“저…… 공자님. 너무 많지 않습 니까?”
“이것도 모자랄 수도 있어. 식량 은 모자란 것보단 남는 게 나아.”
요한은 내용물을 나눠 야스진과 자신의 말에 걸었다.
꽤나 많은 식량을 보고도 당연해 하는 그의 반응에 야스진은 감탄했 다.
“진짜 잘 드시네요. 그러고 보니 요새 살도 좀 붙지 않으셨습니까?”
야스진은 요한의 팔을 가리켰다.
빌헬미나가 온 지 얼마 되지 않 았지만 요한의 살은 아주 조금이나 마 불어 있었다.
“그래 보이지?”
살이 붙었다는 이야기에 요한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자 숲지기도 동 의했다.
“처음 보셨을 때보다 훨씬 좋아 지셨습니다. 그…… 빌헬미나 님은 여전히 불만이신 듯싶으시지만 ,,“할머니는 내가 파룬만큼 쪄도 말랐다고 하실걸? 그럼 출발한다.”
단숨에 말에 오른 요한은 고삐를 움직였다.
흔들리는 말 위에서도 요한은 최 대한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가는 도중에도 훈련을 하시는 겁니까?”
“기마 자세라는 훈련이 왜 있다 고 생각해?”
야스진과 함께 성에서 빠져나오 자 요한은 본격적으로 달리기 위해 채찍을 잡았다.
“최대한 빨리 갈 거야. 그런고로 쉬는 시간은 밥 먹을 시간뿐이다.”
“알겠습니다.”
“힘들면 말해. 협박 아니라 진짜 다. 퍼지면 골치 아프니까.”
“예. 걱정 마십시오.”
그의 대답을 들은 요한은 바로 채찍을 휘둘렀다.
천천히 걷던 말이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 바람이 느껴진다.
얼굴 가득 느껴지는 바람을 맞이 하며 요한은 한마디도 말하지 않고 달렸다.
그렇게 다섯 시간쯤 달려 해가 중천에 뜨자 요한은 말을 세웠다.
“워워.”
“쉬,쉬었다가 가시는…… 겁니 까……?”
“그래. 여기서 밥 먹자.”
계속 말을 탄 것 때문에 힘들어 하던 야스진이 말에서 굴러떨어지 듯 내렸다.
그 사이 요한은 두 마리의 말을 이끌고 냇가로 향했다.
말들이 물을 마시고 풀을 뜯으며 쉬기 시작하자 요한은 가방에서 빵 을 입에 물었다.
“대단하십니다……벌러덩 누운 채 헐떡거리던 야스 진이 일어나 자신의 몸을 치유하기 시작한다.
그것을 힐끔 본 요한은 빵을 던 져주었다.
“빨리 먹어. 식사 끝나면 바로 출발할 거니까.”
“왜 그렇게 빨리 갑니까? 이 정 도 속도면 이틀 안에 도착할 것 같 은데……“확인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너도 알아야 되니까 잘 들어.
지금쯤 순례자들이 그쪽을 지나갈 거거든.”
“그러고 보니 그 시기였군요.”
바론 교단의 순례 여행을 떠올린 야스진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동기 중에도 치유사가 아 닌 수행 사제가 되는 이들이 있었 다.
그들도 그런 순례 여행에 참석하 는 것을 아는 야스진은 웃으며 말 했다.
“로미단 영지 쪽에 아마 제 동기 가 몇 명 갈 겁니다.”
“그래? 더 잘됐군. 그들과 접촉 할 수 있겠지? 내가 볼일 보는 동 안 넌 몇 가지 좀 알아와야겠다.”
“그거야 어렵지 않습니다만. 수 행 사제들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 으십니까? 혹시 바론교에 귀의하시 려는 것이라면……월카스트 백작과 프란츠는 성실 한 바론교의 신자이지만 요한은 무 교였다.
신전을 가기는커녕 식사 전 기도 도 안 하는 것을 안다.
그런 그가 사제를 찾는 이유를 입교 외에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 거 아냐.”
“그럼 뭡니까?”
“사람 좀 찾았으면 해서.”
회귀 전 동료라는 이름의 원수들 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중 아하스와 세레나가 정식으 로 임명받기 전 순례단에 포함되어 수행을 쌓았다는 이야기를 요한은 상기했다.
“그게 누굽니까?”
“아하스라는 수행 성기사. 세레 나라는 수행 수녀. 그들이 순례단 에 포함되어 있는지 알아봐. 아니 면 어디에 있는지라도.”
그들의 이름과 생김새를 말해주 자 야스진은 떨떠름해 했다.
대륙에 수행 성기사와 수행 수녀 가 얼마나 많은데 과연 찾을 수 있 을지가 의문이었다.
“물어는 보겠지만…… 기대는 말 아 주십시오.”
자신 없다는 듯 그가 대답하자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담 갖지 말고 해봐.”
‘이번에 못 찾으면 바론 교단에 직접 가서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요한은 살짝 주먹을 쥐었다.
‘제발 있어다오. 사람 귀찮게 하 지 말고.’
로미단 영지까지 가는 동안 야스 진은 꽤나 힘들었다.
힘들 때마다 멈춰,치유를 하고 바로 이동했다.
그렇게 쉼 없이 이동하다 보니 이틀 만에 로미단 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해가 저물고 달이 뜬 이후였지만 성에 들어가고자 하는 이들은 많았 다.
밤중에도 검문을 실시하는 성문 앞에 도착하자 야스진은 말 위에서 축 늘어졌다.
“허억……허억……허억……. 주…… 죽겠다……“사람은 그렇게 쉽게 안죽더 라.”
강행군의 여파로 힘들어하는 야 스진에게 요한은 물통을 던져주고 성문으로 향했다.
“바그너 백작가의 요한 바그너 다.”
“바그너 백작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검문을 위해 다가왔던 병사가 안 쪽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나온 것은 경장 차림에 백발을 가진 중년의 기사였다.
“로미단 영지에 오신 것을 진심 으로 환영합니다.”
꽤나 정중한 태도다.
바그너 영지는 로미단 영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웃한 곳이 다.
크게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지만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러니 괜히 악감정을 품지 않기 위해서는 예의를 갖출 수밖에 없었 다.
“로미단 영지의 영주이신 헤오만 로미단 백작님의 가신인 카가 야스 입니다.”
“음…… 꽤 실력이 좋아 보이네. 익 스퍼트?”
힐끔 본 것만으로 자신의 실력을 눈치챌 줄이야.
카가는 감동한 표정으로 요한을 올려다보았다.
“마스터이신 요한 공자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타이론 영지에서 있었던 일은 이 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새로운,그것도 최연소 마스터의 등장이다.
당연히 기사들의 커뮤니티에서는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카가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더욱 예를 갖췄다.
“영광까지야.”
“아닙니다!”
기사들에게 있어서 마스터의 경 지는 꿈의 경지다.
그런 경지에 오른 사람이니 존경 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비록 상대가 자신의 반도 살지 않은 소년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의 반응에 만족한 요한은 야스 진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어째 바그너 기사단보다 날 더 존경하는 것 같다?”
“에이. 바그너 기사단원들도 요 한 공자님을 꽤나 존경하잖습니까.”
“훈련 끝나고 나면 날 죽이고 싶어 하던 것 같던데.”
“그거야…… 요한 공자님께서 인 정사정 안 봐주시니……몬스터 토벌을 하며 깨달은 것이 있었다.
바그너 기사단의 실력은 요한의 기준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을.
그것이 요한은 상당히 거슬렸다.
그렇기에 자신의 훈련 겸,지도 도 할 겸 해서 매일 기사단원들과 대련을 했었다.
마스터와 매일 대련 한다는 것.
실력이 낮은 기사들에게는 꿈과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대련이 끝나고 야스진에 게 치유를 받을 때면 다들 울먹거 리며 요한을 노려보았다.
‘솔직히 그렇게 때리면 있던 존 경심도 다 날아가겠다.’
훈련을 겸한 대련치곤 과하다 싶 었다.
하지만 기사들 중에 대련을 거절 하는 이들은 없었다.
확실히 실력향상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월카스트 백작이 인정한 것을 기사들이 거부할 수는 없었다.
“기사란 항상 수련을 해야 하는 법이지.”
‘내가 몸 만들려고 훈련하는 김 에 대련한 것뿐인데. 거기서 존경 심이 나오긴 하나?’
말을 그렇게 해도 요한은 그들이 존경을 하든 말든 관심은 없었다.
대련을 통해 훈련을 하는 것이 목적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육체 강화일 뿐 바그너 기사단의 성장은 그 외 의 수입에 불과했다.
“그런데…… 요한 공자님?”
“음? ”
“실례지만 무슨 용무로 오신 것 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카가는 허가증과 임시 출입증을 꺼내 내밀었다.
그것을 받은 요한은 대수롭지 않 다는 듯 말했다.
“그냥 좀 볼일이 있어서 온 것뿐 인데.”
“영주님을 만나시고 싶으신 것이 라면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다 만 지금 바로 영주님을 만나실 수 는 없으실 겁니다.”
“왜?”
“순례자들이 내일 오후에 떠나는 지라…… 오늘 그 접대를 하고 계 십니다.”
‘늦을 뻔했군…… 빨리 오길 잘 했네.’
“정 뭐하시면 영애께 접대를 맡 겨도 됩니다만. 연락을 드릴까요?”
“아냐. 개인적인 볼일을 보러 온 거다.”
“그렇습니까? 혹시 괜찮으시다면 호위를 붙여드려도 되겠습니까?”
그가 정중히 말하자 요한은 자신 의검을 툭 쳤다.
“호위? 호위가 왜 필요해?”
“길 안내도 겸하는 것입니다. 저 희 로미단 성은……모험가 길드의 지부와 마법사 길 드의 지부가 있다.
그러다 보니 난폭한 모험가들과 마찰이 자주 생겼다.
“모험가들은 귀족이라고 하더라 도 신경 쓰지 않고 덤벼드는 무식 한 놈들이잖습니까.”
모험가들은 자유를 숭상하며 매 일 목숨 걸고 살아가는 자들이다.
그런 만큼 귀족이고 뭐고 위아래 없이 덤비고,사기를 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저희 영지에 있는 모 험가 길드에서 사기를 당했다고 하 시는 공자님이나 영애분들이 몇 분 계셨었습니다.”
“그래? 그걸 놔뒀어?”
“적당히 합의를 보더군요. 솔직 히 다 처형해버리고 싶었지만.”
감히 모험가가 귀족을 얕보고 사 기를 쳤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다 쓸어버리 고 싶었다.
하지만 알아서 합의를 보고 끝났 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그냥 속만 끓일 뿐이었다.
“아무튼,그런 것 때문에라도 호 위가 있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걱정하며 카가가 권했지 만 요한은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사기 치려는 놈들이 있으면 밟 아주면 되니까.’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