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권 18화
43. 명성 따위 필요 없다 (4).
요한이 흔적을 발견했을 때쯤.
산에 오르고 여섯 번째 전투를 치른 후 유아랑은 화살을 살폈다.
바론 교단의 사제에게 축복받은 화살은 이제 삼백여 발 정도만 남 았을 뿐이다.
“화살 소모가 생각보다 큰데 ,,“회수하면서 싸우면 안 되는 거 냐?”
“이미 하고 있어. 도대체 뭐 이 렇게 좀비들이 많아? 이 정도로 사 자소생을 하면 거의 미쳤다고 봐야 하는 거 아냐?”
화살의 손질을 끝낸 유아랑이 투 덜거리자 아단은 지팡이를 만지작 거리며 대답했다.
“에드몬드는 이미 미쳤어.”
“응?”
“그는 금기를 연구하는 자야. 그 금기가 뭐라고 생각하는데?”
“사자소생?”
“아니. 정확히는 시간에 관한 연구지.”
아단의 대답을 들은 유아랑은 등 줄기가 서늘해졌다.
금기 중의 금기인 시간에 대한 연구를 했을 줄이야.
놀란 그를 향해 아단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사자부활을 통해 시간의 흔적을 찾고 있어.”
“시간 따위 연구해서 뭘 얻겠다 는 건지.”
가볍게 대꾸한 유아랑은 화살을 정리해 화살통에 넣었다.
상대가 예상보다 더 미X놈이라 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마음에 거리낌이 생겨나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아까 요한과의 만남 을 떠올렸다.
“혹시 요한 공자님도 이걸 알고 있었던 걸까?”
“글쎄……“이걸 알고서 조언한 거라면?”
물론 조언이라기보다는 명령 같 았지만.
내용 자체는 조언에 가까웠다.
올라가면 죽을 테니까 가지 말라 고.
헤갈 역시 그의 조언이 마음에 걸리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에드몬드를 찾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가.
이제 코 앞이다.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을 설득하듯 나직이 말했다.
“그자는 마스터야. 그가 화이논 마을의 경비대와 자경대를 이끌고 올라온다면 에드몬드를 빼앗길 가 능성이 크다.”
“그리고 놓칠 가능성도 크지.”
“으......w“안전한 일만 찾으면 곤란해. 다 들 알잖아. 미미르의 날개 이야기.”
아단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모험가들 사이에 서 유명한 파티를 언급했다.
모험가 생활을 할 때는 위험과 위협이 늘 함께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주변의 조언과 충고 가 많았다.
미미르의 날개는 모험가답지 않 게 그것들을 항상 깊게 새겨두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다른 모험가들 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쉽고 안전한 일 만 골랐고 결국 등급이 떨어져 파 티가 해산되어버리고 말았다.
“충고는 그저 충고로만 받아들이 면 될 뿐이지.”
“그래야 하나……유아랑이 작게 중얼거리자 아단 은 손질이 끝난 지팡이를 옆에 놓 고 다른 장비들을 챙겼다.
“하지만 아쉽네. 마스터가 함께 해준다면 더 쉽게 잡을 수 있었을 텐데 말야.”
“껍. 그건 어쩔 수 없지.”
“지금이라도 되돌아갈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셋은 서로를 보며 눈치만 살폈 다.
누군가가 말을 꺼내줬으면 좋겠 지만 꺼내는 이는 없었다.
결국,셋은 준비를 마치고 자리 에서 일어났다.
“이놈만 잡으면 우리도 은 등급 이다.”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아단이 단 호히 말했다.
은 등급이 되면 그때부터는 들어 오는 의뢰들도 달라진다.
보상금은 자릿수가 달라지고 모 험가 길드에서 주어지는 혜택도 훨 씬 많아진다.
그러니.
“반드시 잡는다.”
헤갈이 도끼를 꽉 잡으며 으르렁 거리자 유아랑 역시 준비를 마쳤다.
“가자.”
멀리 보이는 산 중턱의 동굴을 향해 그들은 천천히 걸었다.
한차례 전투를 더 하고 나서야 겨우 동굴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 던 그들은 섬뜩함을 느꼈다.
동굴 앞에 펼쳐진 것은 하나의 실험장이었다.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종족과 몬 스터의 시체들.
거기에 여러 가지 동물들의 사체 들까지.
그리고 그 수십 구가 넘는 시체 들의 중심에는 인상을 쓰고 있는 검은 로브의 중년인이 서 있었다.
“실험 지원대상이라면 저기서 기 다리고 있어라.”
“에드몬드 몽스웰.”
앞으로 한걸음 나선 아단은 지팡 이를 들었다.
그것을 본 에드몬드는 기분 나쁘 다는 듯 중얼거렸다.
“상아탑의 하찮은 버러지였군.”
“금기를 범하고 수많은 사람을 살해한 죄를 물어.”
아단은 에드몬드에게 천천히 지 팡이를 겨눴다.
그의 지팡이에 마력이 모이고 있 었다.
“너를 처단하겠다.”
아단의 뒤에 있던 유아랑과 헤갈 도 무기를 들었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려는 그들 을 향해 에드몬드는 웃음조차 짓지 않았다.
무심하게.
마치 길가의 돌멩이라도 보듯.
무덤덤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었 다.
“와라. 실험체들아.”
그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일렁임 과 동시에 수십 발의 검은 화살이 쏘아졌다.
모두를 노리는 공격에 이단은 지 팡이를 내밀었다.
“멀티캐스팅이다! 조심해!!”
그와 동시에 푸른 방벽이 일행의 주변을 감쌌다.
쏟아지는 빗방울처럼 무수히 많 은 검은 화살이 방벽을 강하게 두 들겼다.
아단이 간신히 공격을 막아내자헤갈과 유아랑이 나섰다.
“쏴!!”
유아랑의 은색 화살에 달빛이 맺 혔다.
축복받은 화살은 밤하늘을 가르 는 유성처럼 강한 힘을 담은 채 에 드몬드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 ”
그 충격에 에드몬드가 비틀거린 틈을 노려 헤갈이 뛰어올랐다.
“하아아아아!!”
“건방진!!”
에드몬드의 몸 주변에 있던 기운 들이 뭉쳐져 헤갈을 공격했지만.
“파이어볼!!”
아단의 지팡이에서 쏘아진 불꽃 의 공은 그의 검은 기운이 헤갈을 공격하지 못하게 막아버렸다.
-쿠우우웅!!
막대한 불길이 눈 앞을 가렸다.
에드몬드가 이를 갈며 뒤로 물러 났을 때.
불길을 뚫으며 붉은 오러가 담긴 도끼가 에드몬드의 머리를 향해 내 리꽂혔다.
하지만 그 도끼가 에드몬드의 머 리를 가르지는 못했다.
“블링크!”
에드몬드가 블링크 마법을 이용 해 뒤로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공격이 빗나가며 생긴 빈틈이 생 겼다.
그 틈을 이용해 에드몬드는 지팡 이를 들었다.
“일어나라.”
주변에 있던 시체들이 몸을 일으 키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기운 도 느껴지지 않던 시체들에게서 사 악한 기운이 마구 피어오르고 있었 다.
“맙소사. 사자소생을 이렇게 빠 르게!? 도대체 얼마나 한 거야!?”
사자소생은 쉬운 마법이 아니다.
시체 한 구를 살리는 것도 시간 이 걸리는데 수십 구를 단번에 살 려내다니.
아단은 잔뜩 질린 얼굴로 시체들 을 보았다.
‘수가 너무 많아.’
단번에 에드몬드를 잡았어야 했 는데 아까의 공격이 빗나간 것이 타격이 컸다.
“헤갈! 유아랑! 일단 뭉친다!!”
하지만 여기서 후퇴할 수는 없었 다.
물러나 재정비하고 다시 돌아온 다면 에드몬드는 사라져 있을 것이 다.
그럼 또 몇 년 동안 그를 찾아야 했다.
“쳐!!”
유아랑의 외침과 함께 헤갈이 날 뛰기 시작했다.
그의 도끼에 맺힌 오러가 시체들 을 가르는 사이 유아랑의 화살들이 좀비들의 얼굴에 박히기 시작했다.
“으아아!!”
“파이어 블레이즈!!”
붉은색 오러가 번뜩이고.
화염의 벽이 주변으로 퍼져나간 다.
셋이 필사적으로 시체들과 싸워 간다.
“잘 싸우는구나.”
그들의 전투를 흥미롭게 바라보 던 에드몬드는 지팡이를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지팡이를 들었다.
그 순간 그의 지팡이에서 검은 기운이 흩뿌려지며 좀비들이 강화 되었다.
“하지만 나도 참전한다면 어떨 까?”
에드몬드의 참전에 셋의 표정은 딱딱히 굳었다.
에드몬드의 방해가 있었음에도 수십 구가 넘던 시체들을 쓰러트렸 다.
“훌륭하구나. 아주 훌륭해. 아주잘 싸웠어.”
하지만 에드몬드를 쓰러트릴 수 는 없었다.
“허억……허억……셋 모두에게는 여기저기 시체들 에 긁히거나 물린 상처도 많았다.
거기에 틈틈이 날아오는 에드몬 드의 마법에 당한 피해도 컸다.
그는 무척이나 기뻐하며 지팡이 를들었다.
물론 셋을 상대한 에드몬드 역시 멀쩡하지는 못했다.
몸 여기저기에는 화살이 박혀있었고 한쪽 팔은 잘려나갔다.
하지만 서 있는 것은 에드몬드이 고 쓰러진 것은 모험가들이었다.
누가 봐도 이미 승패는 명확하게 갈려 있었다.
“기뻐하고,경배하여라.”
“빌어먹을……“너희는 이제 경계에 계신 위대 한 자를 모시게 될 테니.”
즐겁게 웃은 에드몬드는 지팡이 를 들었다.
“이 어찌 기쁘지 않을 손가. 이 번에는 반드시 성공할 수 있으리라.”
그의 지팡이에 검은색 마력이 뭉 쳐지고 있었다.
아까 썼던 수십 발의 검은 화살 이 시전 될 것이다.
셋의 표정에 절망감이 감돌았을 때.
-따악!
하나의 돌멩이가 에드몬드의 머 리에 맞았다
“웬 놈이냐!!”
마법이 취소되었다.
에드몬드는 지팡이를 들어 돌멩 이가 날아온 쪽으로 겨눴다.
그곳에는 비쩍 마른 남자가 뚱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요…… 요한 공자님……돌을 던진 사람은 바로 요한이었 다.
그의 등장에 셋의 얼굴에 희망이 생겼다.
마스터인 그가 합류한다면 승산 이 있을 것이다.
“요한 공자님! 저자가 에드3........
“알아.”
“"•…예?”
당황한 유아랑이 뭐라 말하기 전 요한은 에드몬드를 향해 퉁명스레 말했다.
“넌 잠깐 기다려라.”
당황한 에드몬드가 황당해하는 사이 요한은 인상을 쓰며 셋에게 다가가 힐링 포션 꺼내 휙 던졌다.
“감사합……“마을로 복귀해.”
함께 싸우자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는 싸늘함만 담겨 있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냐? 나대지 말 라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의 경고를 무시하고 나섰다가 죽을 뻔하지 않았는가.
머뭇거리던 유아랑이 입을 열려 는 찰나 요한은 빙글 몸을 돌렸다.
“내가 갈 때까지 주점에서 셋 다 무릎 꿇고 손들고 있어.”
“저, 저희도 도음이 될 수 31—..
“또 내 말 안 듣고 나대라? 응? 아까 너무 대차게 나가길래 난 또 좀 하는 줄 알았지.”
“으......W요한의 싸늘한 비웃음에 셋은 얼 굴이 붉어졌다.
그들이 비틀거리며 도망가려 하 자 에드몬드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일갈했다.
“도망칠 수 있을 성싶으냐!!”
붉은 화염구를 만들어낸 에드몬 드는 셋을 향해 화염구를 날렸다.
하지만 그 화염구는.
“넌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냐? 왜 이렇게 다들 말을 안 듣지? 내가 만만하게 생겼나?”
오러가 담긴 요한의 검에 의해서 퉁겨질 뿐이었다.
자신에게 되돌아온 화염구를 맞 을 뻔한 그가 황급히 회피를 한 사 이 모험가 셋은 간신히 이탈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을 놓쳐버린 에드몬드는 분 노했다.
“네놈…… 혼자서 나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냐?”““응.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
“감히…… 네놈이……!”
그가 분노하든 말든 딱히 바뀐 것은 없었다.
아니,차라리 분노하는 게 나았 다.
그래야 필요한 것을 얻을 수고가 줄어든다.
“선수 교체도 끝났으니 바로 시 작하자. 통성명 같은 건 생략하고.”
“자신감이 아주 대단하구나. 네 놈…… 뭐하는 놈이냐.”
“나?”
빙긋 웃은 요한은 빠르게 뛰었 다.
어느새 앞까지 와버린 그에게 에 드몬드가 마법을 쓰기도 전.
요한은 그의 목을 향해 오러가 담긴 검을 휘둘렀다.
-서걱!
붉은 오러가 실린 검격에 에드몬 드의 머리가 잘려 바닥에 툭 떨어 졌다.
목이 잘린 에드몬드의 몸이 가루 가 되어 부서짐과 동시에 동굴 안 쪽에서 검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그 검은 기운과 함께 나온 것은 비싸 보이는 칠흑의 로브를 두른 해골 마법사.
죽음을 거절하고 불사에 대한 욕 망을 가진 마법사가 타락했을 때 도달한 마물.
리치 였다.
“이…… 이…… 이 건방진 놈!!! 개 같은 놈!! 갈가리 찢어 죽여주 마!!”
포효하는 그를 향해 요한은 무심 하게 겨눴다.
‘저번에도 너는 같은 질문을 했었지.’
그때의 답은 ‘환생자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소체가 파괴되어 본모습을 드러 낸 에드몬드를 향해 요한은 아까의 질문에 답했다.
“회귀자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