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권 15화
40. 명성 따위 필요 없다 (1).
자신의 주군을 팬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편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상대가 마스터라면 더욱 그렇다.
거기에 지은 죄도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이반은 최대한 공손히 요한을 모셨다.
“여,여기입니다.”
바그너 영지 중앙에 있는 번화가 의 술집에서 이반은 멈춰 섰다.
떠들썩한 가게 내부를 창 너머로 훑어 본 요한은 문에 손을 가져갔 다.
문을 열려던 그는 힐끔 이반을 보았다.
날카로운 시선 때문일까?
이반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 삼켰다.
“지금은 내가 써먹을 데가 있어 서 넘어간다는 것을 기억해라.”
“여,여부가 있겠습니까.”
이반은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숙였다.
그를 잠시 바라보던 요한은 주점 안으로 들어갔다.
주점 안에는 몇 개의 테이블에 선객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술집 의 분위기를 만끽하던 요한은 구석 을 힐끔 보았다.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한 노인만 이 무척이나 불안해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한 분이신가요!?”
그때 쾌활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밤색 머리칼의 여종업원이 나섰다.
“아니, 두 명. 이반,어딨냐?”
“저기 있습니다.”
아까 요한이 보았던 노인을 가리 킨 이반은 여종업원을 돌려보냈다.
“가시지요.”
“그래.”
이반과 함께 요한은 노인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인기척을 느낀 노인은 숙이고 있 던 고개를 벌떡 들어 올리고 주변 을 둘러보았다.
“기사님! 와,와주셔서 감사합니 다!”
“영주님께 보고를 했고 해결을 위해서 귀한 분을 모셨다.”
힐끔 요한의 눈치를 살핀 이반은 서슬 퍼런 어조로 말했다.
“인사드려라. 요한 바그너 공자 님이십니다.”
그가 말을 한 순간 노인은 바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 다.
“화,화이논 마을의 촌장인 셸만 이 이,인사 을리옵니다.”
그가 공손히 인사를 하고 나서야 요한은 탁자를 툭 쳤다.
“전후 사정 설명부터 하도록.”
“그게…… 이,이틀 전이었습니 다.”
노인은 무릎을 꿇은 채 설명했 다.
그때를 생각하니 아직도 오금이 저리나 보다.
주름진 손까지 부들부들 떨며 그 는 천천히 말했다.
“이틀 전에 수확을 하러 밭에 갔 는데…… 그 밭에 이상한 놈들이 서성이지 뭡니까.”
“그래서?”
“혹시 밀 도둑질을 하는 놈들인 가 싶어서 가봤는데…… 이게 무슨. 분명 넉 달 전에 죽었던 유간이었 습니다.”
“유간?”
“아. 여름 보리 추수 당시 몬스 터들의 습격 때 죽은 농부입니다.”
“그렇군. 계속하도록.”
“그뿐만 아니라 작년에 죽었던 헤기나. 올 초에 고뿔에 심하게 걸 려 죽었던 윌슨까지……“죽은 자가 일어나서 움직인다? 좀비인가 보군.”
“예. 그래서……“보자마자 바로 보고를 하러 왔 다?”
“그렇습니다.”
“다른 조사는 마을에서도 이미 하고 있겠고.”
“예……“화이논 마을은 누가 지키고 있 지?”
요한은 이반을 보며 물었다.
그의 뒤에 서 있던 이반은 잠시 생각한 후 천천히 대꾸했다.
“하온달 경과 이십 명의 경비대. 자경대 오십 명이 있습니다.”
이반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설 명을 이어갔다.
“좀비가 나타났다는 것은 두 가 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 번 째는……특별한 성물이나 마물이 생겨나 며 그 여파로 죽은 자들이 부활하 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사자소생의 마 법.
이반은 자신이 아는 언데드 출현 의 규칙을 설명하고 요한을 힐끔 보았다.
그는 딱히 놀라지도,흥미도 느 끼지 못한 듯 보였다.
“화이논 마을에 특별한 성물이나 마물이 생긴 것은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흑마법사가 자리를 잡 았고 사자소생을 썼다고 봐야 하는 데……요한은 말꼬리를 흐린 후 자리에 서 일어났다.
“역시 직접 가서 봐야겠군.”
“예? 고,공자님께서 직접 가시는 겁니까?”
셀만은 당황하며 이반을 보았다.
그가 직접 간다고 하니 걱정이 되었다.
“마,만약에 진짜 문제가 생긴 거라면……자주 몬스터 토벌을 하고,치안 관리를 하는 프란츠가 요한보다 더 어리다.
하지만 덩치는 더 크고 실력도 좋았다.
그러니 안심할 수 있었지만,요 한은 이야기가 달랐다.
요한을 보라.
누가 툭 치면 바로 쓰러질 것처 럼 호리호리하지 않은가.
괜히 그가 나섰다가 죽기라도 한 다면?
아니,다치기라도 한다면?
그럼 이 일을 끌고 온 화이논 마 을은 몰살이다.
셸만은 무척이나 걱정스러워하며 만류하려 하였다.
그런 셀만을 내려보던 요한은 자 리에서 일어났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너는 안내나 해라. 야. 이반.”
“예. 공자님.”
“경비대에 말해 놔. 화이논 마을 까지 타고 갈만한 것이 있어야 하 니까.”
“제가 소를 끌고 왔습니다만 ,,9.
언제 달구지를 타고 가겠는가.
요한은 셀만의 말을 깔끔히 무시 했다.
“그건 됐고. 경비 얘기를 해볼 까? 원래라면 얼마 정도 들지?”
“평균적인 비용을 따진다면……기사 세 명에 경비대 백 명 정도가 나섭니다. 그 비용은 대략 천오백 골드 정도 듭니다만……“전투까지 포함하면?”
“전투 위험수당까지 포함한다면 이천 골드가 훨씬 넘겠지요.”
“이전까지는 프란츠가 공짜로 해 결했을 것이고……프란츠는 이런 일이 발생하면 직 접 나섰고 비용을 받지 않았다.
그리된다면 도움을 받은 마을은 프란츠를 칭송하게 된다.
그 마을을 오가는 유랑시인이라 든가 모험가들에 의해 이름이 알려 지게 된다.
귀족이나 기사들 같은 경우 이런 식으로 명성을 높여나갔다.
이름값이 높아지면 주군을 찾거 나,기사를 받아들이기 편하니 말 이다.
‘하지만 난 그런 거에 관심 없으 니 받을 거나 받는 게 낫겠군.’
“화이논 마을의 세율을 올리는 게 낫겠군. 그 정도면 얼마냐?”
“헉!’’
프란츠가 해줬던 것처럼 무료로 해줄 줄 알았던 셀만은 숨을 들이 켰다.
그가 놀라자 요한은 인상을 찌푸 렸다.
“영주가 영지에 속한 마을의 위 험을 구하는 것은 의무이지만,그 에 따른 세율의 변경도 당연히 해 야지.”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하,하지만…… 프란츠 공자님 께서는……“프란츠는 프란츠고 나는 나다.”
“고,공자님을 칭송하고 공자님 을 위한 노래를 만들겠습니다!”
“그딴 거 하지 마. 죽는다,진 짜.”
회귀 전에 이런 일이 생겼다면 요한은 그냥 공짜로 해줬을 것이다.
이 런 일을 공짜로 해주면 자연스 레 명성이 올라간다.
명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동 료가 되고자 하는 이들은 늘어난다.
회귀 전 요한은 본의 아니게 선 인 코스프레를 해야 했다.
어떻게든 마왕을 잡을 동료를 모 아야 했으니 말이다.
솔직히 매우 배알이 뒤틀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런 방식으로 동료나 협력자를 모을 생각은 없었 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되는 법이니까.”
“ o O......”
“그래도 모험가들 고용하는 것보 다는 싸게 먹히는 것 아닌가?”
“예. 고위 흑마법사가 이 일을 꾸미는 것이라면 수천 골드는 기본 일 겁니다.”
빠르게 계산을 마친 이반이 대꾸 하자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내가 나서주는 게 모험가 고용 보다는 싸다는 거네.”
“그렇습니다.”
거기에 요한은 마스터다.
마스터가 나서주는데 고작 세율 일할 상승?
요한 수준의 모험가를 고용하려 면 마을 전체를 팔아도 모자랄 것 이다.
“전투까지 있을 걸 예상하면 가 격이 꽤 되겠네.”
셀만은 긴장했다.
잘못하면 몇 년 동안 큰 손해를 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가 침을 꿀꺽 삼키는 사이 생 각을 마친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났 다.
“기분이다. 오년간 세금을 이할 인상 하는 정도로 해주지.”
“가,감사합니다.”
“이반. 정리하고 나와. 밖에서 기 다리고 있겠다.”
홀로 밖으로 나와 주점의 벽에 기대고 선 요한은 싱글거렸다.
‘이렇게 해놓으면 프란츠가 영주 가 되고 문제가 생겼을 때 모험가 들을 부르겠지.’
지금까지는 프란츠가 이미지 관 리를 해야 하니 공짜로 해줬다.
하지만 그가 후계자가 된 이상 이런 일에 나설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한가한 요 한이 이런 일에 나서게 된다.
그럼 영지민들은 조금이라도 더 아끼려고 모험가들을 부르게 될 것 이다.
동급 이상의 모험가들은 부르는 데 비싸지만 그 아래 등급의 모험 가들이라면 고용비용이 크게 떨어 지니 말이다.
“그때 그놈들 잡아서 일 시켜먹 어야겠다.”
쓸 만한 노동력을 확보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모든 잡일까지 요한이 해결할 수 는 없는 것 아닌가.
잡다한 일들을 처리할 때는 그냥 모험가를 부리는 게 낫다.
‘그러고 보니 분명 이번에도 모 험가가 끼었었지?’
요한은 회귀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각성을 하고 나서도 절맥과 개판 인 몸 때문에 뭘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체력을 올리려고 발악 했지만,그의 몸은 제대로 움직이 지 않았다.
결국,그 당시 있었던 일은 거의 대부분 유리에게 들을 수밖에 없었 다.
,그때……회귀 전,이번 일을 처리하기 위 해 프란츠와 기사들이 움직였다.
그리고 참가자의 절반 이상이 죽 고 나머지도 크게 다쳤었다.
상대를 했던 흑마법사를 쫓아내 기는 했지만 죽이지는 못했다.
‘그리고 뒤처리 및 비용처리로 꽤 많이 나갔다지.’
그것뿐인가.
그때 만난 모험가들을 고용하고 같이 싸우다 모험가들이 죽었다.
그것 때문에 모험가 길드에 지불 한 배상금도 상당했다.
‘그 이후 새롭게 병사들과 기사 들을 모집했지만……영지의 자금은 상당히 부족해졌 다.
그렇기에 새로 모집한 기사와 병 사들의 숙련도와 충성심은 낮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윌카스트 백작은 힘든 상 황에서 로만 후작과 싸울 수밖에 없었고 처절한 패배로 이어지게 되 었다.
‘지금이야 내가 있으니 패배할 일은 없겠지.’
지금은 충성심 강한 기사들과 병 사들이 멀쩡히 있다.
굳이 그들까지 데리고 가서 죽일 필요는 없었다.
‘이번 일은 역시 나 혼자 하는 게 낫겠군.’
혼자 하고,처리 결과물은 혼자 먹는 게 낫다.
요한은 빠르게 계산을 마치고 흐 뭇하게 웃었다.
“공자님.”
뒤쪽에서 그의 상념을 깨트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요한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나온 이반을 향해 말했다.
“아. 끝났나? 그럼 바로 가지.”
“예. 경비대까지 모셔드리겠습니 다.”
이반의 안내를 받으며 경비대에 도착하자 경비대에서는 군말 없이 마차와 마부 한 명을 내어주었다.
“저……. 공자님.”
“뭐냐.”
요한이 마차에 올라타자 이반은 어쩔 줄 몰라하며 다가왔다.
그가 말을 걸자 요한은 무뚝뚝하 게 답했다.
“봐달라는 소리는 하지 말고.”
“아,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이번 일에 기사들과 병사들을 동원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뭐?”
“원하신다면 비번인 녀석들을 데 리고 가겠습니다.”
어떻게든 요한에게 굽실거려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상대는 마스터다.
그것도 자신을 노리고 있는.
이반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 로 요한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그를 바라보던 요한은 피식 웃었 다.
“됐으니까 훈련이나 제대로 하고 있어.”
“그럼……. 몸조심하시기 바랍니 다. 그리고 이것 하나만 기억해주 십 시오.”
“뭘 또 기억하래?”
“저는 진심으로 공자님을 존경하 고 있습니다.”
이반은 진지하게 말했다.
한점의 흔들림 없는 그 시선을 마주하던 요한은 콧방귀를 뀌었다.
“오,삶에 대한 그 집착. 아주 마음에 들어.”
“가,감사합니다.”
“아무튼,갔다 와서 우리 관계에 대해서 다시 정립해보자.”
요한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자 이 반은 시무룩해졌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