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권 11화
36. 안락하고 확대되는 삶을 위 .
해서 (1)
아침이 되자 요한에게 배정된 시 종은 그의 방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야스진은 구석의 간이 침상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주인인 요한은 벌써 일어나 있었다.
그의 손에 검이 들려 있는 것을 보니 아침 훈련이라도 하고 온 듯 싶었다.
‘엄청 말랐다……:씻으려고 한 것일까?
요한은 상의를 벗고 있었다.
드러난 그의 몸은 보는 이로 하 여금 안쓰럽다고 생각될 정도로 비 쩍 말라 있었다.
저 가는 몸으로 어떻게 유노와 칼슨을 이겼는지 시종은 무척이나 궁금했다.
“벌써 일어나셨습니까?”
“그래.”
수건으로 대충 땀을 닦아낸 요한 은 시종에게 물었다.
“마고 후작님께서 찾으시나?”
“예. 그리고 기사단에서 시키신 일을 전부 처리했다고 했습니다.”
“그래? 수고했다고 전해주도록.”
“알겠습니다.”
그가 공손히 인사를 하고 나가자 소리 때문인지 구석에서 자던 야스 진이 깨버렸다.
멍하니 요한을 보던 그는 낮게 하품을 하며 물었다.
“으하아암〜 벌써 일어나셨습니까?”
“그래. 넌 어제 많이 마셨나 보 지?”
“으으……. 예.”
요한을 포섭하려고 여기저기서 야스진을 계속 불렀다.
귀족들과 영애들,부인들이 와인 을 계속 권했다.
그것을 어떻게 거절하겠나.
꾸역꾸역 마시다 보니 이렇게 되 어 버렸다.
숙취 때문에 골치 아파하는 그를 향해 요한은 피식 웃었다.
“난 씻고 올 테니까 짐 정리 좀 해놔.”
“알겠습니다……“아. 그런데 오늘이 며칠이지?”
“9월 27일입니다.”
“그래? 바그너 영지의 추수가 얼 마 남지 않았겠네.”
“그렇지요? 영지에 돌아갔을 때 면 한참 추수가 진행되는 중일 겁 니다.”
야스진은 떠나기 전에 들었던 이 야기를 떠올렸다.
차분히 설명하던 야스진은 작게한숨을 쉬었다.
친한 병사나 기사들의 걱정까지 떠올린 탓이다.
“이맘때쯤 몬스터들이 수확물을 노리고 공격해 들어오는데…… 큰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큰일은 없어야지.”
‘분명 이때쯤이었지. 바그너 영지 까지 돌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까지 계산해보면…… 얼추 맞겠군.’
무뚝뚝하게 말한 요한은 곧장 욕 실로 들어갔다.
그가 씻고 나왔을 때는 야스진도 떠날 준비를 마쳐놓은 상태였다.
“짐은 더 없나?”
“예. 그런데 이건 어떻게 합니 까?”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마법서.
천 마리 검은 염소를 쌓는 방법 을 가리키며 그가 묻자 요한은 책 을 잡았다.
“내가 가지고 가지.”
마법서를 챙겨 든 요한은 바로 밖으로 나갔다.
그가 마고 후작의 방에 들어가자 방에 있던 사람들은 웃으며 그를 반겼다.
“어서 오렴. 요한.”
“마침 잘 왔구나. 안 그래도 윌 카스트 백작과 네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참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방에 있던 마고 후작은 요한의 인사를 받아주고 자리를 권했다.
그가 앉자 마고 후작은 아까 하 던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그 부분은 그렇게 하기로 하겠네.”
“알겠습니다. 후작님.”
“무슨 이야기를 하셨습니까?”
“앞으로의 일에 대한 것이란다. 어쨌든 로만 후작이라는 공동의 적 이 생겼으니……”
“영지 간 어느 정도의 교류는 있 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빙긋 웃은 월카스트 백작은 요한 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단은 간단한 교역부터 시작하 려고 한다.”
“교역 좋지요.”
마고 후작은 차를 마신 후 윌카스트 백작과 나눈 계약서를 들었다.
요한이 그것을 받아 읽자 마고 후작은 인장을 상자에 챙겨 넣었다.
“바그너 영지의 밀은 품질이 좋 기로 유명하니 그 밀을 우리 쪽에 서 사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올해는 풍년이라 밀 처분하기 힘들 테니…… 잘됐네.’
“그런데 요한. 너는 마고 후작님 께서 소개해주신다던 분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거냐?”
“예.”
“누구에게 들었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소문 아닙 니까?”
“그렇군……. 뭐 네가 판단한 일 이니 알아서 잘하리라 믿는다.”
“항상 신뢰해 주셔서 감사합니 다. 아버지.”
윌카스트 백작과 요한이 이야기 를 끝내자 마고 후작은 찻잔을 내 려놓았다.
“자네는 어쩔 텐가? 식전이면 함 께 가지?”
“죄송합니다만 할 일이 있습니 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요한만 보내도 되겠습니까?”
“그래? 아쉽구만. 사람이 많은 게 좋은데. 어쩔 수 없군. 메이!!”
마고 후작이 외치자 문이 열리며 정복을 입은 메이가 들어왔다.
그가 모두에게 예를 갖춰 인사하 자 마고 후작은 적어 둔 명령서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헤임달에게 준비해놓으라고 해 라. 아침 먹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 고.”
“예. 로드.”
마고 후작은 요한이 바라보자 어 색하게 웃었다.
“빌헬미나에 대해서 들었다면 너 도 알겠지?”
“그녀는 자기 집에 찾아온 사람 은 무조건 먹인다는 것이라면 알고 있습니다.”
“그 양이 보통이 아니다. 그러니 잘 먹는 사람들을 데리고 가는 것 이 좋지. 요한. 넌 잘 먹나?”
“잘 먹습니다.”
하루 다섯 끼를 먹는다.
그의 한 끼는 성인 남성 셋이 배부르게 먹을 정도의 양이다.
당연히 잘 먹는 편에 속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마고 후작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하지.”
잠시 후 붉은 로브를 입은 대머 리 중년 마법사 헤임달이 들어왔다.
그는 마고 후작의 이야기를 듣고 당황했다.
“저 아침 먹었습니다만.”
“자네 많이 먹잖는가.”
“아니 그래도……“자네 나이 때는 많이 먹어도 돼.”
“저도 이제 오십 줄입니다만.”
하지만,마고 후작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한숨을 푹 내쉰 헤임달은 요한을 향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헤임달 위키입니다. 평민이니 편히 말씀하시지요.”
“그래. 반가워.”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받은 요한 에게 미소 지은 헤임달은 그의 손 으로 시선을 돌렸다.
검은색 마법서를 보던 헤임달은 살짝 침을 삼켰다.
“그런데…… 그게 그겁니까?”
탐을 내는 듯한 그를 향해 요한 은 웃으며 마법서를 내밀었다.
“보고 싶나?”
마법사에게 마법서란.
특히나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마법서는 달콤한 독과 같았다.
헤임달은 요한의 손에 들린 마법 서를 뚫어지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분명 그걸 보면 저는 마고 후작님의 마법사가 아닌 연구자가 되려 고 하겠지요.”
마법사가 연구를 시작하면 모든 것을 잊는다.
그만큼 마법의 극의를 깨달아가 는 길은 즐겁고 기대되는 일이다.
어떤 마법사는 연구를 하다가 굶 어 죽은 사람도 있다고 할 정도였 다.
또 어떤 마법사는 연구를 하다가 가족을 잃은 사람도 있었다.
강한 의지가 없다면.
그리고 모든 것을 버릴 각오가 서 있지 않다면.
새로운 마법서는 보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저는 심지가 얇은 사람이라 서……“마법사가 심지가 얇다는 이야기 는 처음 들어보는군.”
요한이 옆구리에 책을 끼자 헤임 달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런데 그 책. 마고 후작님께 진상하려던 것 아닙니까?”
“그러려고 했는데 후작님께서 거 절하셨다.”
물론 그런 말 따위는 하지 않았 다.
하지만,마고 후작은 별다른 말 을 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저주를 푸는 것이지 마법서 따위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요한과 헤임달이 이야기를 끝내 자 마고 후작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가볼까?”
바깥에 나가보니 떠날 준비가 이 미 되어 있었다.
마차에서 기다리던 야칸은 웃으며 문을 열어주었다.
“타이론 숲에 가신다 들었습니 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야칸이 모는 마차는 장미관의 북 동쪽으로 향했다.
십여 분을 달려 타이론 숲 앞에 도착하자 야칸은 마차의 문을 열어 주었다.
“정오까지는 나오실 수 있으시겠 습니까?”
“글쎄…… 야칸. 자네도 가지 그 래?”
“저는 입이 짧아서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메이는 호리호리한 야칸의 몸매 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자네는 살 좀 찌는 게 좋을 걸 세. 그렇게 비쩍 말라서야 원……“하하하. 저희 a 인족에게 단장 님 같은 근육은 오히려 방해일 뿐 입니다. 그럼 부디 무사히 다녀오 시길 빌겠습니다.”
그의 배웅을 받으며 요한 일행은 바로 숲으로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숲길을 조금씩 걸어 갔을 때 요한은 코를 자극하는 좋 은 냄새를 맡았다.
“와…… 이거 버터에 굽는 빵 냄 샌데. 으으…… 기가 막히는구만.”
“슬슬 도착했군.”
식욕을 자극하는 그 향기에 모두 가 군침을 삼켰을 때쯤 오솔길의 끝이 보였다.
마고 후작은 길 끝에 있는 이 층 짜리 작은 집을 가리켰다.
숲의 집이라고 치기엔 굉장히 이 질적인 모습이었다.
마치 동화속에서나 나을 법한 작 고 예쁜 집이다.
작은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모 락모락 피어나고 있고,열린 창문 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버터와 치즈의 향기.
그와 더불어 잘 구워진 칠면조의 향기까지.
아침을 먹었다던 헤임달마저 군 침을 삼키게 만들 정도였다.
“여기가 과자 집이다.”
마고 후작은 작은 집을 가리키고 말했다.
과자 집을 바라보는 마고 후작의 표정에는 씁쓸함만이 담겨 있었다.
그를 힐끔 본 요한은 살짝 고개 를 끄덕였다.
그 반응에 메이는 크게 놀랐다.
“놀라지 않는군요. 요한 공자님. 저는 처음에 과자 집이라길래 진짜 과자로 만들어진 집인 줄 알았습니 다. 하하하하.”
너털웃음을 터트린 메이를 향해 마고 후작과 헤임달은 한심하다는 듯 응시했다.
“책도 좀 보고,주변 소식도 들 으면서 살게.”
“기사라고 너무 훈련만 하는 것 도 좋은 것은 아니야.”
둘의 타박에 메이는 얼굴을 붉혔 다.
그사이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과 같은 작은 집의 문이 열렸다.
“어이구. 어서들 와.”
열린 문에서 나온 것은 새하얀 백발을 가진 인상 좋은 노파였다.
여기저기 밀가루나 계란,소스가 물은 앞치마를 두른 검은 옷의 노 파는 천천히 걸어가 마고 후작의 손을 잡았다.
“오래간만에 왔네? 먼 길 오느라 고생했으니까 밥부터 먹자.”
“마차 타면 금방인데 무슨……“아침때잖아? 그리고 다른 사람 들도 배고프지? 잘 됐어. 어서 드......W싱글거리며 헤임달과 메이를 훑 어보던 노파는 뒤에 서 있는 요한 을 발견했다.
“……헨델?”
“예?”
“아…… 아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지.”
그녀는 부들부들 떨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어찜…… 어찜……가까이 다가온 노파의 몸에서 군 침이 돌게 하는 요리의 향이 느껴 졌다.
만들고 있던 요리의 향을 그대로 가지고 있던 노파는 요한의 양팔을 잡았다.
“이 팔…… 이 팔……. 이게 무 슨…… 이런 나뭇가지 같은 팔이라 니……!”
그녀는 더욱 떨며 바짓자락을 들 었다.
“이런 앙상한 다리……. 고작해 야 서 있는 게 다잖아……. 툭 치 면 쓰러질 것 같구나……“하하……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요한이 마스터인 유노를 쓰러트렸다.
사정을 아는 셋은 그저 어색하게 웃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노파는 요한을 무척이나 안쓰러워하다가 결국 그 의 손을 상냥히 잡아버렸다.
“아가. 빨리 들어오렴. 너는 정말많이 먹어야겠구나.”
노파는 잔뜩 걱정을 담은 어조로 말하며 요한의 이끌었다.
그녀의 이끎을 요한은 순순히 받 아들였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자 마고 후 작은 배를 쓱 만져보았다.
“자…… 우리도 들어가지.”
안에 들어가면 얼마나 먹어야 할 지 모른다.
마고 후작은 헤임달과 메이에게 웃어 보였다.
“잘 먹을 수 있지?”
“너무 기대는 마십시오.”
“먹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먹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결의를 다진 그들이 들어가자 열 려 있던 문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 럼 스스로 천천히 닫혔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