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권 7화
32. 체험판이 훌륭한 고객을 만 .
든다 (1)
야오가 끌려나갔음에도 파티장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연주를 위한 악사들은 물론,사 용인들도 숨죽이고 있었다.
아니,귀족들조차도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적막한 파티장을 천천히 둘러 본 마고 후작은 한숨을 쉬었다.
“소란을 일으켜 미안하구려.”
이 장소의 주인이며,가장 높은 사람인 마고 후작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아,아닙니다.”
“이번 일은 로만 후작이 모두 잘 못한 일이니……“괜찮습니다. 저희는 마고 후작 님의 편입니다.”
귀족들이 마고 후작을 달래는 사 이 요한은 윌카스트 백작에게 다가 갔다.
“아버지.”
“그래……. 이것 때문에 로만 후작이 도르마나 영지를 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니?”
“예.”
귀족원에 이번 일이 제소된다면 로만 후작도 영지전을 치를 여유가 없어진다.
그는 바로 수도의 귀족원에 가서 이번 일을 해명해야 할 거다.
만약 상대가 윌카스트 백작이거 나,요한이었다면 무시할 수 있었 다.
하지만 마고 후작이라면?
로만 후작도 쉽게 무시할 수는없었다.
“귀족원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게 된다면 그도 바쁠 테지.”
“예. 그사이 도르마나 영지를 다 른 분이 얻어야겠지요.”
“정말 아쉽군. 우리가 칠 수 있 다면 좋을 텐데.”
“그런 것보다…… 이제는 파티에 집중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마침 마고 후작도 사과를 끝냈 다.
어색하고 무거워진 분위기를 살 리려는 듯 악사들이 경쾌한 곡을 연주하자 요한은 입구 쪽을 가리켰 다.
“그리고 다 끝났으니 이 파티의 진짜 주인공이 나오겠군요.”
영웅의 무훈을 칭송하던 음유시 인의 노래가 끝났다.
잠시간의 고요가 파티장에 자리 잡았을 때 마고 후작은 단상 위에 올라갔다.
“오늘 이 자리에 와주신 분들께 감사드리오. 자. 그럼 오늘의 주인 공을 모시려 하니. 환대를 부탁하 겠소.”
마고 후작의 신호와 함께 연주가 시작되었다.
여인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연 주였다.
악사들의 연주와 함께 파티장의 입구가 열렸다.
그곳에서 시녀들의 시중을 받으 며 백색의 화사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걸어왔다.
“ —O ■으斤 .”
누군가의 작은 침음성이 아름다 운 연주에 잡음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나무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진짜였구나……실제로 본 것이 처음인 몇몇 공 자들과 영애들이 작은 목소리로 수 군거 렸다.
“저 소녀가 바로 마고 후작님의 외동딸. 차기 타이론 가문의 가주 인 하이데 타이론이다.”
“예. 알고 있습니다.”
윌카스트 백작의 설명이 없어도 알 수 있었다.
백색의 드레스와 그사이 드러난 새하얀 피부.
청색의 짙은 머리칼.
드레스에 가려져 있지만 알아볼 수 있는 늘씬한 몸매.
하지만 얼굴은 알 수 없었다.
얼굴의 절반을 넘게 가리는 검은 색 바이저 때문이었다.
“주의하도록 해라. 하이데 영애 에 대한 소문은 그리 좋은 편이 아 니니까.”
절맥에 걸린 탓에 매일 성질만 내고,바그너 영지의 망나니로 불 린 요한처럼.
하이데의 소문 역시 좋지 않았 다.
‘좋게 말해 성격이 세고,나쁘게 말하면 여자 망나니지.’
마고 후작의 사랑을 듬뿍 받았기 때문인지 가지고 싶은 것은 전부 가졌지만 그녀의 성격은 빈말로도 좋다고 볼 수 없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항상 빈정 거리고.
항상 의미 불명의 자신감에 차 있고.
그리고 수틀리면 아예 상대도 안 해버린다.
그런 그녀를 돌보기 위해 많은 사용인들이 고생을 하고 있다고 요 한도 들었었다.
‘노예일 때는 안 그랬는데…… 뭐.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으 니까.’
“생일 축하드립니다. 하이데 후 작 영애.”
“축하드립니다.”
요한이 생각하는 사이 몇몇 귀족 들이 먼저 나섰다.
그들이 하이데에게 관심을 가지 는 사이 다른 귀족들은 그녀가 아 닌 요한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속이 좋 지는 않겠네.”
예의상 하이데 영애에게 인사를 건넨 이들도 요한 쪽을 향해 힐끔 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확인한 윌카스트 백작은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너나 나나 앞으로 바빠지겠구 나. 파티의 주인공이 나왔는데도 너에게 관심을 두고 있으니……“이미 감안 했던 일입니다.”
“그러니? 자. 그럼 우리도 인사를 하러 가볼까?”
요한은 윌카스트 백작이 잔을 내 려놓자 그와 함께 마고 후작에게 다가갔다.
그들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길을 열어주었다.
“윌카스트 바그너가 영애의 탄생 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리오.”
“감사합니다.”
예쁜 목소리이지만 어조는 무척 이나 무뚝뚝했다.
대놓고 불쾌함을 표시하는 대응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윌카스트 백 작은 지적하지 않았다.
그 대신 준비한 선물을 내밀 뿐.
월카스트 백작이 물러나자 다음 은 요한의 차례였다.
요한도 준비한 선물을 내밀고 씩 웃었다.
“요한 바그•너입니다. 영애,탄생 일을 축하드립니다.”
“그거 고맙군요.”
약간의 빈정거림이 담긴 어조다.
하지만 요한은 그녀의 반응을 이 해했다.
아니, 오히려 감사했다.
성격 나쁜 영애가 파티의 주역 자리를 빼앗겼다.
그런데 이 정도 빈정거림만으로 끝낸다?
감사할 따름이었다.
“언제라도 좋으니 영애와 함께 선율을 이끌어보고 싶습니다.”
귀족의 예법에 따라 예의상 나중 에 춤이나 한번 추자라고 요한은 가볍게 제안했다.
그의 제안에 바이저로 가려지지 않은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지금 당장에라도 상관없습니다 만. 요한 공자께서는 저를 감당하 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어떻게든 되겠지요.”
“참고로 저는 댄스에는 자신이 있답니다.”
“그렇습니까? 이거 우연이군요. 저도 자신이 있는데.”
‘네가 자신이 있어 봐야 나만 하 겠냐……춤과 노래로 마왕과 싸워 차원을 구한 적도 있는 요한이다.
아니,그것뿐만이 아니다.
회귀 전에도 내숭을 떨고,또 소 드 댄싱의 훈련 때문에 요한은 춤 과 음악,노래,악기연주를 필사적 으로 공부했다.
당연히 요한에게는 자신감이 넘 쳐날 수밖에 없었다.
둘의 대화를 듣던 마고 후작과 월카스트 백작은 당황했다.
‘내가 알기로 하이데가 댄스를 배운 적은 없는데……?’
'요한은 음악만 들으면 짜증 내 던 녀석인데……?’
댄스는 쉬운 것이 아니다.
음률과 박자에 맞춘 움직임을 가 져야 할뿐더러 체력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요한이나 하이데 의 지난 삶과 큰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둘이 같이 춤을 추겠다고 하니 둘은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 다.
“말 나온 김에 지금 하시겠습니 까?”
“그거 좋지요.”
하지만 요한과 하이데는 마고 후 작과 윌카스트 백작의 걱정을 깡그 리 무시했다.
그리고 여유로운 걸음으로 파티 장의 중앙으로 향했다.
“아.”
“요한 공자님이……“아쉬워라…… 제가 먼저 청했어 야 했는데.”
절맥 때문에 오랫동안 침대에만 누워 있었다던 요한.
마안의 저주로 사람을 만나지 못 하던 하이데.
어떻게 보면 꽤나 어울리는 둘이 다.
그런 둘이 함께 춤을 춘다고 하 니 사람들은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 았다.
그들 대다수의 속마음은 비슷했 다.
‘얼마나 개판으로 추려나?’
바이저 때문에 볼 수 없는 하이 데와 다르게,요한은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몇몇 영애들은 부채로 입가를 가 리고 있었다.
‘하이데를 질투하는구만.’
요한의 첫 댄스다.
그 댄스의 상대를 하이데가 차지 한 것에 대해 불쾌해 하고 있었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몇몇 공자들은 영애들이 요한에 게 관심을 보이는 것을 불편해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요한이 제대로 춤을 추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모두의 기대감은.
요한과 하이데가 이번에 제대로 망신을 당하길 바라고 있었다.
잠시 생각하던 요한은 지휘자에 게 요청했다.
“타이론의 세 번째 노래로 부탁 하지.”
지휘자가 지휘봉을 흔들었을 때 연주가 바뀌었고.
요한과 하이데는 서로를 향해 가 법게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맞잡았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요한은 작은 어조로 속삭였다.
“진짜 춤 잘 추십니까? 보이지도 않으실 텐데.”
“얕보지 마십시오. 혼자 거울 보 며 연습은 많이 했습니다.”
“독학하셨다는 말씀이시군요.”
“예. 후후.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 다.”
-과직.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이데는 요한의 발등을 밟았다.
천천히 고개를 숙여 자신의 발을 본 요한은 딴청을 피우는 하이데에 게 무덤덤하게 말했다.
“정말 제대로 연습하셨나 봅니 다. 이렇게 정확히 밟으실 줄은 몰 탔군요.”
“후후. 이제 시작인데요.”
“아. 예.”
이어지는 스텝에서 또 요한의 발 을 밟았다.
하지만 하이데는 모르는 척 어설 픈 스텝을 계속 밟아나갈 뿐이었다.
‘세상에. 진짜 못 춘다.’
거의 독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흥에 겨워 추는 독무.
‘물론 이런 춤이 나쁜 것은 아니 지만,공식적인 석상에서는 망신만 당할 뿐이지.’
이미 몇몇 영애들은 하이데의 실 수를 보고 소리 없이 웃기까지 하 고 있었다.
“어이쿠.”
또다시 발등이 밟힐 뻔하자 요한 은 스텝을 좀 더 크고,빠르게 밟 았다.
그것만으로도 동작이 화려해졌 다.
그리고 그것 때문인지 하이데의 허접한 춤 실력이 조금씩 감춰졌다.
“어머. 조금 빠르지 않나요? 자 신 있으십니까?”
“이 정도는 해야 영애께 맞지 않 을까 싶습니다. 워낙 잘 추셔서 말입니다.”
요한의 손이 내려갔다.
하이데의 허리를 단단히 감싼 그 는 그녀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좀 더 빠르게 가겠습니다.”
“자신 있으세요?”
“지금 저희를 보며 사람들이 웃 고 있군요.”
남들에게는 들리지 않게 말한 요 한은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몇몇 공자들은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몇몇 영애들은 부채를 꽉 쥐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웃으며 요한은 하이 데의 몸을 잡고 크게 돌았다.
“그렇다면 더 웃게 만들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연주가 빨라지며 요한은 하이데 를 안고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크고,빠르며 화려한 움직임이다.
그가 제대로 리드하며 춤을 추자 귀족들은 감탄 했다.
“제대로 배웠군.”
“사교계에서 요한을 좋아하겠는데?”
“그러겠지. 마침 요한은 후계자 도 아니니…… 강사로 초청하는 겸 가문으로 끌어들이기도 좋겠어.”
대부분의 귀족은 눈치챘다.
요한이 일부러 동작을 크게 하며 하이데의 엉망인 실력을 감추고 있 다는 것을.
저 정도로 못 추는 사람조차 잘 추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면.
춤 실력이 압도적으로 높아야 했 다.
“굉장하네. 마스터인 데다가 저 렇게 춤도 잘 춘다고? 요한 공자가 몇 살이었지?”
“그간 병석에 누워 있었다면서? 댄스 연습은 못 했을 텐데 저 정도 면 천재 아냐?”
“잘 추시네……. 나도 이따가 요 청해봐야 하나? 얘. 얘. 요한 공자 의 하인은 누구지? 이따가 요청을 해보렴.”
댄스에 자신이 없는 몇몇 영애들 은 기뻐하며 요한의 하인을 찾았다.
그렇게 모두가 놀라는 사이,연주는 클라이맥스로 진행되고 있었다.
빠른 연주 속에서도 요한은 정확 히 리듬을 맞춰가며 움직였다.
그리고 그에게 이끌리던 하이데 도 필사적으로 발을 옮겼다.
“마지막으로 크게 턴.”
요한의 속삭임에 따라 하이데의 몸이 돌았다.
그때 스텝이 꼬인 하이데는 하마 터면 넘어질 뻔했다.
하지만 요한은 기묘한 손놀림으 로 그녀의 허리를 가볍게 안아들었 다.
그것만으로도 화려한 동작이 완 성되 었다.
요한의 손에 잡혀 있던 하이데가 천천히 그의 품 안으로 들어왔을 때.
연주는 끝을 맺었다.
“좋은 춤이었습니다. 실력이 아 주 대단하시군요.”
안고 있던 하이데를 놓아주며 요 한은 씩 웃었다.
친절한 어조이지만 과연 그럴까?
빙 돌려 자신을 갈구는 것과 같 은 말이다.
하지만 하이데는 그것을 탓하지 않았다.
그저 아까와 다르게 빙긋 웃을 뿐이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