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권 3화
28. 스스로 만든 목줄 (1).
“보충해놓으라고 하는 것을 깜빡 했네. 거기 앉아.”
권하는 대로 의자에 앉은 그는 요한이 차를 내주자 웃으며 차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차 한잔 타주는 것이 무슨 대수 라고. 그런데 야오라고 했던가? 나 이도 나와 비슷해 보이는데 3 클래 스라니. 대단하네.”
처음 보는 자신에게 칭찬을 건네 며 대화의 물꼬를 튼다.
친화의 룬 덕분인지,아니면 자 신이 보인 겸손한 태도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요한은 자신에게 친화적 이었다.
야오는 안도하며,좀 더 친해지 기 위해 겸양을 표했다.
“아직 부족합니다.”
“장래에 대마도사가 될지도 모르 겠는데. 앞으로 친하게 지내야 할 것 같네.”
“요한 공자님도 보통은 아니신 것 같으십니다만…… 요한 공자님 께선 절맥으로 꽤나 유명하셨지요.”
“그래.”
“절맥을 어떻게 치유하신 것입니 까? 상아탑의 마법사로서 꼭 듣고 싶습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치유가 되던 데?”
“절맥이 어쩌다 보니 치유가 된 다라……. 제가 알기로 절맥은 황 금시대에도 치유하지 못한 병이라 고 들었습니다.”
“기록에 없다고 없었던 일이라는 보장은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저희는 위대한 선조의 지식을 바탕으로 성장합니다.”
설득하듯.
설명하듯.
하지만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 게.
야오는 맑은 목소리로 상냥한 말 을 이어나갔다.
“만약 절맥을 치료할 수 있는 방 법이 있었다면 상아탑에 전해지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요.”
“하하하…… 그런가? 상아탑을 아주 중요시 생각하는군.”
“저는 마법사입니다.”
“그래서?”
“마법사가 바라는 것은 오직 마 법의 끝을 보는 것.”
이번만큼은 진지했다.
아까처럼 상대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아닌,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리고 마법의 끝을 볼 수 있는 곳은 상아탑밖에 없으리라 생각합 니다.”
전에도 그랬다.
그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마법 의 끝을 보는 것뿐.
그 과정에서 무슨 희생이 생기든 신경 쓰지 않는 자였다.
오로지 마법에만 매진하는 자.
그렇기에 전생에서 그는 극의의 마법사라는 이명까지 받았었다.
‘너에게 있어서 전부는 마법의 끝을 보는 것이고…… 그다음은 상 아탑이겠지.’
그렇기에 야오는 배신했다.
마법의 끝을 보기 위해 요한과 손을 잡았고.
마법의 발전을 위해 요한을 배신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그를 빤 히 응시하다가 씩 웃었다.
“사실 절맥을 치료한 방법이 있 기는 해.”
요한의 답에 야오는 눈을 빛냈 다.
그럴 것 같았다.
상아탑에서도 하지 못한 것을 요 한이 해낸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 을 것이다.
그 이유를 알아내야 했다.
“그게 무엇입니까?”
“몸이 조금 괜찮아졌을 때,산책 하러 나갔었지. 그때 작은 동굴을 발견했었고……”
“……그래서요?”
“그 동굴에서 몇 가지를 발견했 었지.”
“호,혹시 유, 유적이나 던전입니 까?”
“글쎄…… 몬스터 같은 것은 없 었는데.”
요한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야오로서는 쉽게 넘어갈 수 없었다.
지금보다 마법이 훨씬 발전했던 황금시대에도 치료할 수 없었던 병 이 절맥이다.
자신의 생각대로 요한이 유물을 발견하여 그 덕분에 절맥이 치유되 었다면.
그 유물은 야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위대한 물품일지도 몰랐 다.
야오는 긴장감으로 잘 넘어가지 않는 목울대를 넘겨 침을 삼켰다.
“그…… 그게 뭔지 알 수 있겠습 니까?”
“음?”
“요한 공자님께서 발견하신 것 드......«야오의 눈에는 열정과 갈망이 담 겨 있었다.
그리고.
그 갈망 안쪽에 숨겨진 욕망을 요한은 읽어냈다.
마법의 극을 보고자 하는 것.
그것은 야오에게 있어서 어떤 것 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야오는 어린 나이에 빠 르게 상아탑의 로드가 되었다.
그 열정.
그 욕망.
회귀 전에 처음 만났을 때 야오 는 그것을 철저하게 숨겼었다.
하지만 아직 어린 지금의 그는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한 권의 책이었어. 그 책에서 나온 대로 하니까 절맥이 나았지.”
“그렇습니까? 도대체 무슨 책이 길래.”
“이런 책인데. 혹시 아나?”
요한은 탈무의 던전에서 얻은 책 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 순간 야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그건!?”
표지에 적혀 있는 고대어를 읽은 야오는 부들부들 떨었다.
“혹시 읽을 줄 아나? 이건 고대 어인데. 나도 해석하느라 꽤 고생 했다고.”
당연히 야오도 알고 있었다.
황금시대의 마법서를 한 번이라 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저 책의 제목을 모를 리 없었다.
수많은 마법서들에서 주석이나인용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전설의 마법서다.
야오는 경악하며 간신히 대답했 다.
“타우젠 다크영 바이다가스. 천 마리의 검은 염소를 쌓는 방법……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내 해석이 맞았군. 그런데 자네 표정이 왜 그러나?”
“제가…… 찾던 책입니다. 제 가……부들부들 떨던 그가 손을 내밀자 요한은 책을 내렸다.
“하,한 번만 읽어봐도 됩니까? 예?! 지,진품인지 가품 인지라도 확인을!”
콧김까지 내뿜으며 그가 간절히 애원했지만 요한은 냉정했다.
“마법사에게 마법서를 내어주라 고?”
“그,그건……“마법사들은 책을 한번 읽어보면 대부분 기억이 가능하지. 그런데 이걸 그냥 보여주라고?”
조금 전까지 친절했던 요한이다.
하지만 마법서를 꺼낸 순간 요한 은 미소조차 짓지 않았다.
요한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야오 는 눈치채지 못했다.
지금 야오의 모든 신경은 요한의 손에 있는 책에만 집중됐기 때문이 다.
“생일 파티가 끝나면 팔 생각이 야. 그때까지는 함구해줬으면 좋겠 군.”
“상아탑에 파실 생각이십니까?”
“뭐 일단은? 하지만 상아탑 말고 다른 곳도 생각하고는 있어.”
상아탑을 제외하고 이런 귀한 물 건을 살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 뿐 이다.
필로틴 제국에 있는 대륙 경매 장.
대륙의 모든 부호와 호사가가 관 심을 가지는 그곳이라면,이 귀한 마법서를 취급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야오도 알고 있기에 안타까움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네 반응을 보니 꽤 귀해 보이는 데…… 이거 비싸게 팔리지 않을 까?”
야오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요한 의 책을 응시하다가 물었다.
“얼마에…… 파실 생각이십니 까?”
“한…… 이천만 골드 정도?”
“이천만 골드!?”
터무니없는 금액이다.
야오는 황당해했다.
아무리 귀한 마법서이지만 그 정 도 금액은 상아탑도 지불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가격에는…… 아무도 사지 않을 것입니다.”
‘웃기는 소리를 하고 있네. 진짜.’
회귀 전 이 마법서를 얻었을 때.
상아탑에서 이천만 골드 어치 상 당의 금액의 마법 물품들을 제시한 적이 있었다.
그걸 생각한다면 이천만 골드는 오히려 싼 편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재능이 있다 한들 야오는 고작해야 3클래스의 하급 마법사 다.
그런 금액은 그에게는 천문학적 인 금액이었다.
당연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당황한 야오를 속으로 비웃으며 요한은 냉정히 말했다.
“그래? 뭐. 상아탑에서 사지 않 는다고 하면 필로틴 제국의 대륙경 매장에 올리면 그 값은 받겠지.”
그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필로틴 제국의 대륙경매장에는 돈에 미친 호사가들만 모인다.
마법에 대한 열정이나 열의 따위 는 없는.
그저 자신의 취미 생활과 고상함 을 위해서 고서들을 수집하는 자들 뿐이다.
그런 이들에게 저 귀한 마법서가 넘어간다면?
평생 누군가 보는 일 없이 도서 관에서 먼지만 덮은 채 잠들 것이 다.
아니면 저 마법서를 목줄 삼아 상아탑을 통제하려 할 수도 있고.
야오에게 있어서 그것만큼은 받 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알겠…… 습니다.”
하지만 마법서는 요한의 것이다.
그가 그쪽에 팔겠다고 한다면 그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야오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요한은 웃으며 물었다.
“차 더 마시고 가지 않고.”
“괜찮습니다. 그럼……“아.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이 마법서에 대해서는 함구해줬으면 하네.”
U 카어차피 팔 건데 괜히 귀찮은 일 생기지 않았으면 하거든.”
“……알겠습니다.”
그가 나가자 요한은 팔짱을 끼고 씩 웃었다.
애초에 함구하기를 바란다면 아 예 보여주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도 요한이 마법서를 보여 줬다.
단순히 생각해도 그것은 뭔가 꿍 꿍이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다.
하지만 지금의 야오에게 그것을 판단할 여유가 있을까?
요한은 싱글벙글 웃으며 작게 중 얼 거렸다.
“마법에 대한 맹목적인 열의가 너의 목을 죌 것이다.”
* * *요한과 만남을 마치고 돌아온 야 오는 곧장 로만 후작의 방으로 향 했다.
기다리고 있던 로만 후작은 그가 들어오자 차분히 물었다.
“그래. 어떤가?”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야오의 스승인 상아탑의 흑마법 사 야곱은 인상을 찌푸렸다.
“특별한 것이 없었다고? 그가 탈 무의 던전에 들어갔던 것이 아닌 가? 확실하게 이야기해라.”
야오는 대답하려다 입을 다물었 다.
‘분명히……탈무는 황금의 시대에 활동했던 마법사 중 하나로 뛰어난 마법사로 이름을 날렸던 자였다.
그의 마법서나 연구기록 중 일부 는 상아탑에 아직도 전해지고 있고 마법사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었 다.
대륙 몇몇 곳에 자신의 연구실을 만들어 놓은,다른 마법사들과 달 리 꽤나 활동적인 마법사다.
그의 던전과 연구실을 찾는 일은 마법사들에게 꽤나 기쁜 일이었다.
발견하면 뭐든 좋은 것이 나오니 말이다.
‘요한이 들어간 곳. 그곳은 분명 탈무와 관계된 곳일거야.’
분명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 마법서 를 얻었겠는가.
그것도 마법 하나 쓸 수 없는 자 가 써먹을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마법서를.
‘분명…… 그도 마법서를 얻은 것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어.’
즉,자신만 입을 다물면 아무도 모른다.
고용주인 로만 후작도.
스승인 야곱조차도.
자신이 함구한다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
허점투성이인 생각이다.
머리가 좋아야 될 수 있는 마법 사의 판단이라고 보기 어려운 어리 석은 생각이다.
하지만 욕망에 사로잡힌 야오는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 마법서는…… 내가 가져야 해. 이상한 곳에 들어가는 것보다 느......5천 마리 검은 염소를 쌓는 방법.
그 마법서만 해독하고 연구한다 면 마법의 끝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오로지 자신만이 가능하다 생각했다.
마법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당연 히 해야 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런데 만약 그 마법서에 대해서 지금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야곱은 상아탑에 연락을 해서 요 한과 거래를 하려 할 것이다.
어떻게든 그 마법서를 얻어낼 것 이고,그리된다면.
‘나는…… 한 번도 읽지 못하게 될 거다.’
신비는 공유되지 않기에 신비인 것이다.
천 마리 검은 염소를 쌓는 방법 은 상아탑에서 엄중히 보관될 것이 다.
그리고 몇몇 로드들.
아니,어쩌면 로드들조차도 쉽게 접근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건…… 안돼.’
“야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 나!!”
야곱의 외침에 야오는 잠시 머뭇 거렸다.
그리고 자신을 보는 사람들을 둘 러 보았다.
후원을 해주는 로만 후작.
스승인 야곱.
그들의 시선을 마주하던 야오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요한은 던전에 들어가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고용주와 스승을 속이는 것이었 지만.
신의를 배반하는 것이었지만.
마법에 대한 열망은 그의 눈을 가볍게 가려버렸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