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권 22화
22. 맞으면 정신을 차린다 (4).
“어,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건 몰라도 되고. 야. 그런데 너 혹시 바그너 가문의 정보 말했 나?”
“마,말하지 않았습니다만.”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며 부정했 지만 뻔히 보였다.
정보를 얻으려면 정보를 내줘야 한다.
아마 칼슨이 얻은 정보도 야스진 이 준 정보일지도 몰랐다.
“어쩐지 그놈이 내가 프란츠를 잡은 걸 알고 있더라니.”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요한의 시선은 그에게 엄청난 공 포를 불러오고 있었다.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걱정 마. 죽을 죄 아니니까.”
“예?”
“숨겨야 할 것이었다면 이미 주 의 시켰을 거다.”
예상 밖이다.
요한에게 최소한 욕은 먹을 줄 알았다.
하지만 요한은 별다른 타박을 하 지 않았다.
그가 훈련에만 집중하자 야스진 은 황급히 변명을 시작했다.
“저,전부 말한 것은 아닙니다. 그게……“어차피 그쪽에서도 어느 정도 경계는 하고 있을 거야.”
검을 내려치는 속도가 점점 빨라 진다.
그리고 검에 붉은 오러가 담기기 시작했다.
그 오러를 본 야스진은 자신도 모르게 목을 쓸어 만졌다.
“내 절맥은 누구도 치유하지 못 했지.”
“예. 그렇죠.”
“그런데 갑자기 내가 멀쩡히 돌 아다녀. 그럼 숨겨둔 한 수 정도는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어?”
“그,그렇겠지요?”
요한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야 스진은 안도했다.
목에 칼이 들어왔다가 사라진 기 분이다.
그가 축 늘어지자 요한은 웃으며 말했다.
“이번 결투에서는 ‘실수’만 주의 하면 되니까 넌 이제 신경 쓰지 마 라.”
“실수라 하시면……”
“결투 도중에 ‘실수’로 상대방을 죽이는 경우도 있다고 하잖아?”
고개를 끄덕이려던 야스진은 딱 딱하게 굳었다.
“……설마 공자님. 실수를 가장 해서 그를 제거하실 생각은……?”
“나 정도 되는 사람이 그런 실수 를 저지르겠어? 아무튼 저 녀석이 나 옮기라고 해.”
“알겠습니다.”
야스진은 밖으로 나가 하인들을 불렀다.
들어온 하인들에 의해 파룬이 실 려 간다.
잠시 후 방에 혼자 남게 된 요한 은 호라이즌 큐브를 꺼내 보며 입 을 열었다.
“그런 ‘실수’ 따위는 저지르지 않 지. 저질러서도 안 되고.”
* *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요한은 평 소대로 일어나 식사를 끝마치고 결 투장으로 향했다.
그를 바라보는 이들의 눈에는 불 안감만이 있었다.
그 걱정하는 이들 사이에 있는 윌카스트 백작에게 다가간 요한은 무덤덤하게 물었다.
“결투장 준비는 다 됐답니까?”
“그렇긴 한데…… 정말 내가 나 서지 않아도 되는 거냐?”
“나서시면 화낼 겁니다.”
“공……. 그래. 알겠다.”
윌카스트 백작은 불안해하면서도 결국 고개만 끄덕였다.
그를 지나치려던 요한은 발걸음 을 멈췄다.
“아버지.”
“왜.”
“고맙습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
“절 믿어주셔서. 의심하지 않고 신뢰해 주셔서.”
회귀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회귀만 빼고 윌카스트 백작은 요 한을 계속 믿어주었다.
그것이 요한에게 있어서는 꽤나 기쁜 일이었다.
진심을 담아 요한이 감사를 표하 자 윌카스트 백작은 고개를 저었다.
“아비가 아들을 믿지 못하면 누 굴 믿겠냐. 다만 네가 상처 입지 않을까 걱정될 뿐이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 믿겠다.”
윌카스트 백작은 가볍게 요한의 등을 두드렸다.
그의 반응에 요한은 작게 미소 지었다.
‘이런 기분은 오래간만이네.’
무조건적인 신뢰가 기쁘다.
지난번 삶에서 요한의 몸이 낫기 전 윌카스트 백작은 죽었다.
그 후 노예가 되었고 이후에 힘 을 얻으며 동료라는 이름의 원수들 을 가졌다.
그때도 이런 무조건적인 신뢰를 얻지는 못했었다.
“가족이 좋긴 좋네.”
남들에게 들리지 않게 짧게 중얼 거린 요한이 결투장에 올라갔다.
그가 올라가자 벌써 나와 기다리 던 칼슨은 히죽 웃었다.
“유서는 썼냐?”
“아차. 유서 안 썼다.”
능글맞게 웃은 요한은 뒤로 한발 자국 물러났다.
“결투 오후에 할래? 지금이라도 쓰게.”
“늦었어. 자식아.”
싱글벙글 웃으며 목검을 들어 올 린 칼슨.
무덤덤하게 장검을 잡은 요한.
그 둘을 응시하던 마고 후작은 천천히 선언했다.
“이번 결투는 서로의 실력을 확 인하는 명예를 위한 결투이니. 상 대를 해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 다.”
“알겠습니다.”
“따르겠습니다.”
“이번 결투에 외부의 개입은 있 어서는 안 되며 만약 개입할 시. 이 마고 타이론과 적이 됨을 염두 에 두어야 할 것이다.”
"예.”
“승패는 상대의 입에서 항복 선 언이 나왔을 때 결정 나는 것으로 하겠다.”
“마고 후작님. 그것은……칼슨은 불만스러웠는지 거절하려 했다.
만약 요한이 시작하자마자 바로 항복해버리면 실수를 가장할 수도 없다.
“건방진 놈. 내가 좋게 넘어가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마고 후작의 얼음장 같은 어조에 칼슨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요한은 마 고 후작을 지그시 응시했다.
‘저 노인네가 나를 왜 이렇게 배 려 하지?’
윌카스트 백작이나 야스진은 요 한의 실력을 알고 있다.
하지만 마고 후작을 비롯한 이곳 의 모두는 요한의 실력을 모른다.
당연히 요한이 크게 다칠 것이라 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마고 후작의 조건 으요한이 목숨이라도 건질 기회를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불리하다 싶을 때 항복하면 부상 을 면할 수 있으니 말이다.
‘왜 날 돕는 건지는 모르겠지 만…… 나쁘지는 않군.’
“양측. 준비가 되었는가.”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결투장에서 내려간 마고 후작은 자리에 앉은 후 옆에 둔 유리잔을 들었다.
“시작하라.”
-쨍그랑!!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칼 슨이 달려들었다.
자세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결투 전의 예를 갖추지도 않았 다.
그저 짓밟기 위한.
상대를 짓누르기 위한 돌진이 시 작되 었다.
"으하하하하!!”
마치 멧돼지가 달려드는 것처럼 함성을 터트리며 칼슨은 목검이 아 닌 주먹을 휘둘렀다.
전신의 힘이 잔뜩 담긴 돌과 같 은 주먹은 단번에 요한의 머리를 깨트릴 힘을 지니고 있었다.
‘죽어라……r이 일격만으로 끝장을 낸다.
항복을 말해야 끝난다고?
그 말을 하기도 전에 죽여 버리 겠다.
의기양양하게 주먹을 내지른 칼 슨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을 때.
그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어!?”
허공에 떠오른 칼슨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주먹은 요한의 얼굴을 부수 기 직전이었다.
- 쿠당탕!
“크아악!!”
그런데 어째서 등이 아픈 거지?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당황할 새 도 없이 칼슨은 황급히 몸을 굴렸 다.
요한의 발이 자신의 머리를 짓밟 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간신히 그의 공격을 피한 칼슨은 침을 뱉었다.
나뒹굴었을 때 입안이라도 깨물 었던 모양이다.
바닥에 뱉어진 침에는 짙은 피가 섞여 있었다.
"제,제법 하는구나.”
“넌 예상보다 더 약하구나?”
심드렁한 표정으로 요한은 검집 에 검을 넣었다.
그리고 차분히 주먹을 내밀었다.
검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요한의 행 동에 칼슨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 다.
“빌어먹을 놈!!”
이때 깨달았어야 했다.
-빠아악!!
“칵……!!”
지금이라도 깨달았어야 했다.
무언가 잘못되어간다는 것을 깨 달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 느껴진 통 증은 그 깨달음이 아닌 분노를 불 러 일으켰다.
“너 코피 난다. 이제 네가 울면 내가 이기는 건가?”
이어지는 조롱이 분노의 불꽃에 기름을 뿌렸다.
결국 칼슨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 어나는 상황에서 본능이 호소하는 위화감을 외면하고.
“으아아아아!!”
맞서는 것을 선택했다.
성난 멧돼지처럼 달려드는 칼슨 을 요한은 피하지 않았다.
그저 빠르게 주먹을 뻗을 뿐 이 었다.
-퍼억!
요한의 주먹이 칼슨의 얼굴을 후 려 쳤다.
아까 전까지 하나만 흘러내리던 코피가 이번에는 두줄이 되어 있었 다.
“크악!! 빌어먹을 자식이!!”
“내 생각에는 지금이라도 항복하 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닥쳐! 죽었으면 죽었지 내가 너 따위에게 항복할 것 같냐!!”
“오…… 역시 기사의 귀감. 적을앞에 두고 물러나지 않는구만.”
모두가 예상했던 것과 완벽하게 반대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칼슨이 순식간에 압도할 것이라 고만 다들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익스퍼트다.
그런 칼슨이 저 호리호리한 소년 하나를.
그것도 제 몸집의 반도 되지 않 는 소년에게 농락당할 것이라 누가 생각했겠는가.
"하아아!!”
이미 결투 전에 했던 이야기는 완전히 잊혀 있었다.
-우우우웅!!
낮은 진동음과 함께 청색의 오러 가 그의 목검에 맺혔다.
오러가 있다면 목검이든 진검이 든 의미가 없다.
철검이라 하더라도 오러의 질에 따라 종잇장처럼 베어 넘길 수 있 다.
“그,그만둬!! 마고 후작님!! 이 결투는……!!”
헤위안 자작이 필사적으로 말리 려고 하는 순간.
반짝이는 대머리 거한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들고 있던 창을 크게 내리 찍고 서슬 퍼런 목소리로 외쳤다.
“끼어드는 놈들은 도르마나 백작 가와 척을 진다고 생각하겠다!!”
유노 도르마나.
도르마나 가문의 가주인 그가 일 갈하자 헤위안 자작은 이를 꽉 깨 물었다.
“윌카스트 백작님! 이대로 두고 보실 생각이십니까?”
“한번 두고 봅시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여유로우실 수 있으심……!”
헤위안 자작은 윌카스트 백작의 팔을 잡았다가 흠칫 놀랐다.
윌카스트 백작의 주먹은 꽉 쥐어 져 있었다.
너무나도 강하게 쥐어 피까지 흘 러내릴 정도로.
그 역시 걱정은 하고 있었던 것 이다.
“결투가 끝나는 것은 항복의 말 이 나왔을 때 뿐!! 그 누구도 이 결투를 막을 수 없쇠!”
선언하듯 유노 백작이 외치자 헤 위안 자작은 마고 후작을 간절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마고 후작은 결투를 멈추 게 하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눈으로 결투를 응시 할 뿐이었다.
“죽어!! 죽어!!”
“이번 결투는 죽이면 안 되는 것 아니 었나?”
오러라고 하더라도 맞지 않으면 베어버릴 수 없다.
요한은 간단하게 칼슨의 공격을피해내면서 즐거워했다.
그의 입살스러운 얼굴을 두 조각 으로 만들기 위해 칼슨은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지만.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요한을 잡을 수 없었다.
마치 허공에서 나풀거리는 나비 처럼.
마치 우아하게 춤이라도 추는 것 처럼.
요한은 칼슨의 검을 너무나도 간 단히 피해가고 있었다.
“하아아아압!!”
계속되는 공격의 실패는 상대방 과의 격차만을 확실히 남길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물러나는 것조차 도 할 수 없다.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결투다.
성사된 것 자체도 웃기는 일인데 그 결투에서 이렇게 밀리고 있었다.
자신의 명예뿐만 아니라 성철쇄 기사단과 도르마나 가문의 명예까 지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멈추겠는가.
칼슨으로서는 어떻게든 요한을 잡아야 했다.
‘한 번만 맞으면 된다. 한 번만!!’
“정말 계속해야겠냐?”
“닥쳐어어어!!”
몸을 두 조각 내버리기 위한 검 격이 내리쳐진 순간.
계속 피하기만 하던 요한이 처음 으로 공세에 나섰다.
-채애앵!!
오러가 담긴 목검이 허공에서 막 혔다.
마치 고정이라도 된 것처럼.
요한이 뽑아낸 검에 의해 막혀버 렸다.
“……맙소사.”
그것을 본 관전하던 이들 중 하 나가 맥없이 중얼거렸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 꺼낼 수 있는 말은 단 하나 뿐이었다.
“……오러라니.”
요한의 검에 짙은 붉은빛의 오러 가 피어올라 있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