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권 20화
20. 맞으면 정신을 차린다 (2).
그가 입을 다물자,옷을 다 입은 요한은 파티장으로 향했다.
벌써 파티가 진행 중인지 복도 너머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파티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윌 카스트 백작은 그에게 다가갔다.
“내가 뭔가 해줘야 할 것이 있 니? 네가 마스터라는 것을 아예 알 려 버릴까?”
그렇게 된다면 칼슨이 덤비지 않 을 것이다.
그가 어떻게든 도우려 했지만 요 한은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고,그냥 지켜만 봐주십시오.”
“그래……힐끔거리는 윌카스트 백작의 시 선을 무시한 채 요한은 당당히 걸 었다.
“윌카스트 백작님과 요한 공자님 께서 파티에 참석하셨습니다!”
시종의 낭랑한 외침이 파티장에 울려 퍼졌다.
삼삼오오 모여 있던 귀족들은 윌 카스트 백작과 요한에게 슬쩍 시선 을 보냈다.
“오오! 윌카스트 백작님. 이거 참 오래간만이군요!”
“오래간만입니다. 헤위안 자작.”
아까 낮의 파티 때와는 달랐다.
윌카스트 백작 때문인지 귀족들 은 웃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이 아이가 요한인가? 기적의 아 이?”
“절맥이 치료되고 있다면서? 정 말 대단한 일이군. 하하. 이거 기적 을 조금이라도 나눠 받고 싶구만. 반갑네. 헤위안이라고 한다네.”
“반갑습니다. 요한입니다.”
요한이 예법대로 공손히 인사하 자 윌카스트 백작은 속으로 안도했 다.
혹시 여기서도 사고를 치지 않을 까 걱정했다.
하지만 요한은 생각 이상으로 꽤 나 잘하고 있었다.
꽤나 뿌듯해 한 윌카스트 백작은 요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 다.
“저곳에 가 있으렴. 소개해 줄 분들이 오신다면 그때 부르마.”
“예.”
‘칼슨…… 은 없나?’
아까 칼슨과 함께 있었던 두 명 은 파티장에 있었지만 칼슨은 보이 지 않았다.
어쩌면 낮의 일 때문에 나오지 않는 것일지도 몰랐다.
«흐보 ......,.’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살기를 무 시하며 자리에 앉은 요한은 아무렇 지 않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척 살기가 느껴진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곳에는 반짝이는 대머리에 얼 굴에 큰 상처가 있는 덩치 큰 중년 인이 있었다.
매서운 눈으로 요한을 노려보던 그는 요한과 눈이 마주치자 싸늘히 이를 드러냈다.
‘아는 얼굴이다. 저자가……유노 백작.
성철쇄 기사단의 부단장이며 이 왕자 나마스 로드만의 최측근.
거기에 숨기고 있지만 실제로는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뛰어난 기사.
예복 밖으로도 드러난 터질 듯한 근육을 자랑하며 유노 백작은 요한 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요한은 그에게 씩 웃어 준 후 고 개를 돌렸다.
아직은 그와 싸울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일부러 모른 척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옆 테이블을 보고 감탄했다.
“저 정도면 의지 문제가 아니라 병적인 것 같은데……그곳에는 양손에 잔뜩 음식을 쥔 채 꾸역꾸역 먹고 있는 파룬이 있 었다.
“맛있냐?”
“마,맛있…… 헉 H 요, 요한.”
꾸역꾸역 케이크를 먹던 파룬은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얼른 두 손에 들린 것을 뒤로 숨겼다.
“그거 컵케이크 아냐? 요샌 컵케 이크도 다이어트식이 나오나?”
“아,아닌데…… 이, 이것도 다, 다이어트식……애써 변명하려던 파룬은 천천히 양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에는 먹다 남은 컵케이크 가 있었다.
크림이 잔뜩 올라가 있던 케이크 를 응시하던 요한은 피식 웃었다.
파룬의 새하얀 얼굴이 컵케이크 의 시럽만큼 붉게 물들었다.
“네 일이니까 내가 뭐라고 할 만 한 것은 아니지. 맛있게 먹어.”
“잠깐만. 요, 요한.”
요한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몸을 돌리려 하자 파룬은 그를 잡 았다.
어쩔 줄 몰라 하던 파룬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나한테 왜 미안해? 먹고 말고는 네 의지의 문제인데.”
어찌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쉽게 꺾겠나.
욕구를 조절하는 것은 힘든 일이 다.
특히나 식욕 같은 본능적인 욕구 는 더 그렇다.
그런 것을 마음 좀 먹었다고 고 칠 수 있다면 세상에 고생하는 사 람은 한명도 없을 것이다.
“먹고 싶으면 먹어야지.”
그렇기에 요한은 웃으며 상냥히 말할 수 있었다.
“미안해……하지만 파룬에게 있어서는 수치 스러운 일이었다.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다는 것.
아까 전에 그렇게 말해놓고 식욕 을 참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나…… 난.”
그가 두툼한 입술을 달싹이며 뭔 가 말하려고 할 때.
요한의 뒤로 월카스트 백작이 다 가왔다.
“요한. 이 아이는……? 아. 그래. 자네는 분명 파르고닌 타고다였지? 타고다 자작가의 후계자.”
“예에…… 아,안녕…… 하십니 까……쓱쓱 눈가를 닦은 파룬이 예를 갖춰 인사하자 윌카스트 백작은 요 한의 어깨를 살짝 잡았다.
"요한과 친구니?”
“그게……“친구 아닙니다.”
파룬은 살짝 충격을 받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있 었다.
그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요한을 바라보자 윌카스트 백작은 둘을 번 갈아 응시했다.
“음……. 그래. 요한. 이야기가 끝나면 내게 오거라. 소개할 사람 이 있다.”
"지금 가도 괜찮습니다만.”
“타고다 자작가와 친분을 유지하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야.”
타고다 자작가는 상가로서 꽤 많 은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런 가문과 요한이 연을 맺을 수 있다면 바그너 영지에도 나쁠 것은 없다.
귀족사회는 인맥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병에 걸려 사교계는커 녕 귀족들과 인사조차 제대로 나누 지 못한 요한이다.
파룬은 살이 많이 찌고 심약해서 좋은 평판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타고다 가문의 후계 자다.
그런 이라도 친해진다면 요한에 대한 걱정은 조금은 줄일 수 있었 다.
‘저 녀석이 아무리 마스터라고 하더라도…… 나중을 생각하면 인 맥관리는 하는 것이 낫겠지.’
“그럼.”
가볍게 묵례한 윌카스트 백작이 멀어지자 파룬은 뭔가 말하려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나오기도 전 입구 쪽에 서 있던 시종이 크게 외 쳤다.
“성철쇄 기사단의 칼슨 도르마나 공자께서 파티에 참석하셨습니다!”
당당한 걸음걸이로 칼슨이 파티 장에 들어왔다.
그를 본 귀족들은 저마다 감탄을 터트렸다.
“오…… 저게 칼슨인가.”
“유노 백작님은 든든하겠군.”
낮의 파티에서는 비웃음과 경계 의 대상이었던 칼슨이다.
하지만 밤의 파티에서는 꽤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성철쇄 기사단은 모두가 익스퍼 트인 강한 기사단이다.
그곳의 기사가 되었다는 것은 출 세의 지름길을 탄 것이나 마찬가지 다.
친해져서 나쁠 것은 없는 사람이 기에 귀족들은 칼슨을 꽤나 반가워 했다.
“오! 어서 오게. 성철쇄 기사단의 신예. 듣던 것처럼 굉장히 강해 보 이는군!”
“감사합니다.”
"이리 와서 한잔 받지 그런가?”
“죄송합니다. 선약이 있어서. 술 은 그 약속을 끝낸 후 받겠습니다.”
칼슨의 표정은 꽤나 험악했다.
그 험악함을 유지하며 귀족들에 게 간단이 인사한 칼슨은 요한을 향해 정면으로 걸었다.
“요…… 요한.”
그가 살기를 띠며 다가오자 파룬 은 공포에 질려 부들부들 떨었다.
“다,다른 곳으로 가자. 응? 위, 윌카스트…… 백작님께……하지만 파룬의 말이 끝나기도 전 칼슨은 요한 앞에 도착했다.
“잘도 내게 모욕을 줬구나. 빌어 먹을 자식아.”
“여기서도 소리 한 번 더 질러줄 까?”
아까처럼 약하고 비굴한 모습 따 위는 없었다.
요한의 얼굴에는 비웃음만이 가 득 담겨 있었다.
그를 마주하던 칼슨은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힘껏 던졌다.
-짜아악!!
장갑이 살에 닿는 찰진 소리가 파티장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파티장의 연주마저도 끊어져 버렸다.
모두가 놀라며 바라보는 중심에 서,요한은 까딱였던 고개를 다시 돌렸다.
“잘 좀 던져봐라. 컨트롤이 그게 뭐냐?”
요한이 피한 대신 장갑에 맞은 파룬이 얼굴을 쥐며 아파하고 있었 다.
그것을 본 칼슨은 이를 갈고 다 시 장갑을 벗었다.
“이번에는 어디에다가 던지려 고?”
“받아라.”
얼굴을 향해 던지는 것이 아닌 장갑을 내민다.
그것을 내려다보던 요한은 입꼬 리를 끌어을렸다.
“지금 결투 신청하는 거네?”
“요한. 너도 검을 잡은 자라면 걸어오는 승부를 거절하지는 않겠 지?”
“거절할 건데?”
요한은 히죽 입꼬리를 끌어올리 며 웃었다.
그리고 여유롭게 칼슨의 가슴을 톡톡 쳤다.
“내가 병석에서 일어난 것은 얼 마 되지 않았다고. 그런 내가 익스 퍼트와 결투를 한다?”
“흠.”
“넌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 하 냐?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프란츠를 이겼다면서? 그렇다면 충분히 결투를 할 수 있을 정도 아 닌가?”
“그건 또 어디서 들었대.”
칼슨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귀족들을향해 그는 크게 선언했다.
“성철쇄 기사단 소속 칼슨 도르 마나가 바그너 백작가의 요한 바그 너에게 결투를 신청합니다!”
그의 외침에 파티장에 있던 이들 이 웅성거렸다.
파티가 시작한지 얼마나 되었다 고 결투인가.
그것도 좋은 자리에서 결투 신청 이 일어나다니.
다른 귀족들이 말리려고 하는 찰 나 칼슨은 더욱 크게 외쳤다.
“여러 어른들께서는 무례하다 생 각지 말아 주십시오!”
“이미 충분히 무례하다.”
파티장의 중심에 있던 노인이 나 섰다.
호호백발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 진 그는 칼슨을 노려보았다.
“지금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 줄 아느냐.”
“예. 그렇기에 말씀드리는 것입 니다. 마고 후작님.”
타이론 영지의 주인이며 로드만 왕국에 단 두 명밖에 없는 후작.
마고 후작은 자신에게 사죄하는 칼슨에게 천천히 손을 들었다.
“지금 당장 네놈의 목을 날려버 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으시겠지요. 마고 후작님께서는 기사의 결투를 방해하지 않으실 것이라 믿습니다.”
“건방진 애송이 같으니라고.”
마고 후작은 싸늘히 말했지만 더 이상 나무라지 않았다.
그가 별말을 하지 않으니 다른 이들도 타박할 수 없었다.
그 분위기를 이어가며 칼슨은 더 욱 강하게 떠들었다.
“여러분. 저는 오늘 요한에게 모 욕을 받았습니다. 귀족으로서 명예 를 손상 받고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모욕을 한 것은 칼슨이 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쏙 감추고 요한이 자신을 놀린 것만 부각시켰 다.
“도르마나 백작가의 후계자로서. 그리고 성철쇄 기사단의 기사로서.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실력의 차이가 확연한 데 그것은 어찌할 생각인가? 자네 와 요한이 싸운다면 단순한 폭행밖에 되지 않아.”
아까 요한과 인사를 나눴던 헤위 안 자작이 말하자 칼슨은 기다렸다 는 듯 대꾸했다.
“그렇기에 저는 이번에 오러를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 정도라 면 그에게도 승산이 있지 않겠습니 까?”
요한과 칼슨의 덩치를 보면 칼슨 의 몸 자체가 흉기였다.
그런 주제에 칼슨은 선심 쓰듯 말했다.
어이없어하던 헤위안 자작이 한 마디 하려는 순社도르마나 백작가와 친한 귀족들 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됐지.”
“왜? 아예 양팔 양다리 묶고 싸 우라고 하지?”
“그래. 그래. 뭘 얼마나 양보해야 하는 거야?”
하지만 반대파의 의견도 꽤나 거 셌다.
“기사와 이제 막 병석에서 일어 난 아이가 싸우는 것 자체가 말이 되나?”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잘도 지 껄이네. 이야! 저게 기사다!”
금방이라도 싸움이 날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 와중에도 의기양양한 칼슨을 향해 요한은 웃으며 물었다.
“좋냐?”
“좋지. 네놈을 공식적으로 때려 죽일 수 있으니까.”
“목숨 거는 결투는 안 할 건데?”
칼슨은 요한을 힐끔 내려다보며 작은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실수는 있을 수 있잖 아?”
“그러게. 실수는 있을 수 있겠 지.”
‘난 그런 ’실수‘ 따위 저지를 생 각이 없다만.’
칼슨을 바라보며 요한은 빙긋 웃 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