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권 19화
19. 맞으면 정신을 차린다 (1).
방 안에 있는 사물 하나하나가 비싸 보이는 방.
그 방의 주인인 예쁜 소녀는 검 은색 고양이 귀를 까딱거렸다.
사랑스러운 소녀의 얼굴에는 싸 늘함만이 담겨 있었다.
“요청하신 지원의 삼 할만 지원 이 가능합니다.”
“고작 그것으로는 힘듭니다. 마 물의 진격을 막기 위해서는 전 병 력에 성갑을 입혀야 합니다.”
바론 교단의 성기사 아하스는 간 절히 말했지만 소녀는 냉정했다.
“비록 여러분께서 세상을 구하기 위한 싸움을 하신다고 하더라도.”
U ,,“그 지원을 우리 가문에서 감당 할 이유는 없지요.”
소녀의 냉정함은 잘 벼려진 칼과 같았다.
아하스의 요청을 깔끔히 거절한 그녀는 다른 이들을 둘러보았다.
“우리 가문의 힘은 돈입니다. 제국도,왕국들과 교단들도. 제대로 된 지원을 하지 않잖습니까.”
“그건 상황이……”
“모든 지원을 우리 가문에게만 요청하는 것은 너무하다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소녀는 적의를 드러내며 사실을 말했다.
그녀의 반응에 아하스와 다른 이 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의 침묵이 이어진다.
그 침묵을 깬 것은 천천히 손을 든 요한이었다.
“그것이 타고다 가문의 방침입니 까?”
“그렇습니다.”
“비록 제가 선대를 뵌 적은 없지 만…… 선대께서도 이런 일이 발생 하셨을 때 그러셨을까요?”
벽면에 걸려있는 선대 가주의 그 림을 보며 요한이 묻자 소녀.
대륙의 제일의 상가인 타고다 가 의 가주,예온은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으로 요한을 노려보았다.
“선대께선 어린 시절이 꽤나 불 우하셨다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선대께 접근하는 이들은 선대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뿐이었다고 하시 더군요.”
“흐음……“만약 선대께서 살아계셨다
면……”
잠시 입을 다물고 계산을 끝낸 예온은 무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삼 할은커녕 일 할,아니 일 푼 의 지원조차 하지 않으셨을 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요한이 응시하고 있는 그림에 힐끔 눈을 돌렸다.
“선대께서는 인간을 싫어하셨으 니까요.”
“그렇습니까?”
요한은 그림을 응시했다.
그림에는 소녀보다 더 성숙해 보 이는 묘인족 여인과 비쩍 마른 남 자가 있었다.
그 남자의 표정은 꽤나 어두워 보였다.
그림을 응시하던 요한은 소녀에 게 물었다.
“선대께서 많이 마르신 분 같군요.”
“친구라고 믿었던 분에게 배신당 하셨습니다.”
“그렇습니까?”
“그 이후 인간을 불신하게 되고 거식증에 걸리셨다고 합니다.”
“이런.”
“그때부터 제대로 드시지도 못하 고 마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선대의 이야기를 꺼내니 소녀는 처음으로 감정을 보였다.
아주 옅은 슬픔.
그리고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그 리음.
그것을 알아차린 것은 기번의 환 생을 거치며 많은 사람을 봤던 요 한뿐이었다.
“선대를 위해서 교단에서 제사를 지내드릴 수도 있습니다. 후원이 제대로 된다면……“그런 제사 따위 관심 없습니다. 어차피 죽으면 끝 아닙니까?”
동정하는 사제를 향해 예온은 눈 을 치켜떴다.
선대 가주를 생각했기 때문일까?
변화가 없던 얼굴에 표정이 생겼 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이라면 그 표 정에 담긴 것은 증오라는 것이었다.
“저는,그리고 선대께서는 바론 교의 신자가 아니었으니까요.
“아무리 가주께서 묘인족이라지 만,선대께서는 인간이십니다. 인간 이라면 무릇 바론님의 자식인데. 어찌……”
사제가 거칠게 외치자 소녀는 가 소롭다는 듯 웃었다.
“선대께선 매일 바론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진정한 친구가 생기기를,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이가 생기기를. 그런데……”
그녀의 시선에 닿은 사제들은 슬 쩍 시선을 피했다.
헛기침을 하거나.
어색해 하거나.
그들을 향해 예온은 옅은 비웃음 을 던졌다.
“바론님께서는 선대를 구원하셨 습니까?”
“그…… 그건.”
“선대께서 살아계셨다면. 어쩌면 오히려 마왕에게 후원을 하셨을 지 도 모르겠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마왕 이 세상을 차지하게 되면 무슨 일 이 벌어지는지 몰라서 하시는 말씀 이십니까!?”
벌떡 일어난 세레나가 거칠게 외 치자 소녀는 시니컬한 미소를 지었 다.
“글쎄요. 적어도 선대를 괴롭혔 던 세상이……“ ,,“깔끔하게 무너져 내리지 않겠습 니까?”
다시 예온의 표정이 사라졌다.
무기질적인 인형처럼 변한 예온 은 증오조차 보이지 않았다.
지극히 사무적인 어조로 말한 그 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가리켰 다.
“하실 말씀이 끝나셨으면 나가 주십시오. 여러분께 할당된 시간은 끝났습니다.”
사제들과 성기사들은 모두 거칠 게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홀로 남은 요한은 예온을 차분히 응시했다.
파르고닌 타고다의 유일한 딸.
그리고 대륙 최고의 부자인 타고 다 가문의 가주.
예온 타고다는 박해받는 수인족 의 상징인 꼬리와 귀를 숨길 생각 도 없이 그저 홀로 일만 할 뿐이었 다.
소녀 혼자 쓰기에 넓은 방에 그 녀를 홀로 둔 요한은 자리에서 일 어 났다.
문을 향해 걷던 그는 문의 손잡 이를 잡았다.
그리고 슬쩍 고개를 돌려 웃으며 말했다.
“가주께서는 좀 웃으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힘들어 보이는데.”
펜을 움직이던 손이 멈췄다.
천천히 치켜든 고개에는 푸른 눈 이 싸늘히 번쩍이고 있었다.
“요한님께서는 그만 웃으시는 것 이 어떻겠습니까? 딱히 원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자신의 속내를 정확히 파악한 눈 이다.
사파이어처럼 아름다운 그 눈.
그것은 요한에게 깊은 인상을 남 겨주었다.
‘그 눈은 파룬에게 이어받은 것 이었나.’
“무,무슨 생각…… 해?”
“아니……. 너 본명이 파룬이 냐?”
“보, 본명은 파르고닌이고…… 파룬은 애칭……“그랬나. 그래. 알았다. 나가봐 라.”
“으응……머뭇거리던 파룬이 나가자 요한 은 쓴웃음을 지었다.
“도대체 어떤 충격을 받아야 저거구가 그렇게 마르는 건지.”
회귀 전에 파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파룬의 삶이 그리 좋지 않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파룬이 나가자 요한은 아까 전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조만간 돈 많은 고객님 하나 생 기겠군.”
하지만 고객이 생기는 것은 생기 는 것이고 훈련은 훈련이다.
방에 홀로 남은 요한은 다시 훈 련에 매진했다.
꽤 긴 훈련을 마친 그가 씻고 나 왔을 때.
그의 방에는 어느새 월카스트 백 작이 들어와 있었다.
“이야기는 들었다.”
“들으셨습니까?”
“칼슨이 너를 노린다고 하더구 나.”
“음. 예. 그 자식이 그런 취향을 가졌다고는 생각 못 했습니다만.”
젖은 수건을 옆에 던져 놓은 요 한이 말하자 윌카스트 백작은 인상 을 찌푸렸다.
“진짜였냐?”
“아뇨. 거짓말입니다만.”
“그럼 왜 그런 짓을 한 것이냐?”
“도발하려고 한 겁니다만. 문제 있습니까?”
“이 녀석아. 말했잖으냐. 칼슨은 이번에……“익스퍼트에 올랐고 성철쇄 기사 단의 기사가 됐다는 것은 알고 있 습니다.”
요한이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자 윌카스트 백작은 열려던 입을 다물 었다.
칼슨 나이대에 익스퍼트라면 엄 청난 재능을 가진 것이다.
그런 칼슨을 요한이 도발한 것이 윌카스트 백작은 무척이나 불안했 다.
“걱정 마시고 이번 일은 그냥 저 에게 맡겨주십시오.”
결국 윌카스트 백작은 한숨만 폭 폭 내쉬다가 침대 위에 올려놓은 상자를 툭 쳤다.
“저녁에 환영파티가 있을 예정이 다. 그때 사람들에게 너를 소개할 생각이니 잘 차려입고 오도록 하거 라.”
“그러지요.”
순순히 자신의 말을 따르는 요한 의 모습에 윌카스트 백작은 피식 웃었다.
“대답은 잘하는구나?”
“대답이라도 잘해야 하지 않겠습 니까. 아. 그리고 아버지. 이번 일 로 도르마나 백작가에서 시비를 걸 지도 모릅니다만.”
“흥. 그깟 놈들이 시비를 걸어봤 자지. 오히려 환영이다.”
“그자들에 대한 것은 저에게 맡 겨주실 수 있으십니까?”
“응? 하지만……칼슨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아버 지인 유노 도르마나는 상당한 실력 자다.
거기에 성철쇄 기사단의 부단장 이기도 했다.
또 신고 된 바로는 익스퍼트 수 준이지만,일설에는 마스터에 오른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 유노 백작까지 맡겠다?
윌카스트 백작은 어이가 없을 밖 에 없었다.
“아니,그래도 그는……그의 걱정하며 말리려는 순간, 요한은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헉!”
그의 손에 붉은 불길과 같은 오 러 블레이드가 맺혔다.
마스터의 상징인 오러 블레이드.
윌카스트 백작조차 오르지 못한 경지다.
멍하니 오러의 검을 본 윌카스트 백작은 부들부들 떨었다.
“오,오,오……“오러 블레이드.”
“그,그…… 그래. 오,오러 브......w입만 벙긋거리며 말을 더듬던 윌 카스트 백작은 획 야스진을 보았다.
“악마에 씐 것은 아닙니다.”
“네가 어떻게?”
“말씀드렸잖습니까. 세상을 보고 나니 깨달음을 얻고 강해졌다고.”
“아니,그래도 그렇지……말이 되는가.
요한의 나이 때에 마스터의 경지 에 오른 자는 역사상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도 지 금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다니.
윌카스트 백작은 어딘지 토라진 얼굴로 요한을 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지금까지 왜 힘을 숨긴 것이었 더냐?”
“예? 숨겨요? 누가 숨겼습니까?”
요한은 어이없어했다.
바그너 영지에 있을 때나,타이 론 영지에 올 때나.
쓸 일이 없어서 안 썼을 뿐이다.
하지만 힘을 써야 할 때가 됐는 데 안 쓸 이유가 없지 않은가.
“힘을 숨기는 건 머저리들이나 하는 짓이지요. 그저 필요에 따라 움직일 뿐입니다.”
오러 블레이드를 해제한 요한은 윌카스트 백작이 가져온 상자를 열 었다.
흰색 바탕에 검은색 실과 장식으 로 꾸며진 좋은 옷이었다.
예복을 이리저리 살펴본 요한이 옷을 입기 시작하자 윌카스트 백작 은 머뭇거렸다.
“그런 실력을 가지고도 왜 후계 자 자리를 거절했니. 네가 마스터 라는 것을 알면 프란츠도……“그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 까.”
“하아. 아들아. 난 아직도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 단다.”
윌카스트 백작의 힘없는 말에 요 한은 그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 저를 그냥 믿어주시면 안 됩니까?”
“응?”
“제가 뭐든 저는 아버지의 아들 요한입니다. 그 외에 뭐가 중요합 니까?”
요한의 진지한 표정을 마주하던 윌카스트 백작은 결국 한숨을 내쉬 었다.
그의 말대로였다.
요한이 마스터든 뭐든 그는 윌카 스트 백작의 아들이었다.
오랫동안 절맥 때문에 고통스러 워 했고.
이제는 그 병을 떨고 일어난 사 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아들이다.
“그래. 알겠다.”
그런 아들의 이런 진지한 말하는 데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윌카스트 백작은 그의 손을 맞잡 아 준 후 쓰게 웃으며 나갔다.
그가 나가자 야스진은 흥분한 어 조로 말했다.
“공자님께서 마스터라니……“내가 마스터라고 해서 너한테 떨어질 콩고물 없으니까 기대하지 마라.”
“그렇지만 마스럽니다! 마스터! 이게 왕국에 알려지면 바로 자작위 까지 받을 수 있는……“작위 따위는 언제든지 받을 수 있어.”
“아니 그래도!”
“마스터에 올라도 작위를 받지 않은 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어? 그렇습니까?”
“몰랐냐? 천하십강 중 절반이 작 위가 없어.”
야스진은 처음 듣는 소리였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천하십강은 천하십강이고 요한은 요한이 다.
마스터씩이나 되면서.
거기에 후계자 자리도 걷어찼으 면서.
작위까지 받지 않겠다는 것을 이 해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쓸데없이 흥분하지 마라. 아니 면 내가 입 다물게 해줄까?”
아까 요한이 했던 말이 떠올랐 다.
그가 뭐든 요한이라고.
요한의 살벌한 반응에 야스진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