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권 16화
16. 도발의 방법 (2).
남은 여행길 역시 큰 문제는 없 었다.
타이론 후작령에 들어서자 요한 은 마차의 창문을 통해 밖을 보며 말했다.
“확실히 후작령이라 그런지 부유 해 보이는군요.”
멀리 보이는 첨탑만 바그너 영지 보다 두 배는 더 많아 보였다.
도로의 정비가 잘 되었는지 바닥길이 돌길이다.
그가 바깥을 보고 있을 때 윌카 스트 백작은 걱정을 담아 말했다.
“타이론 영지의 영주이신 마고 후작님께서는 헤르듀크 1왕자님을 지지한다. 그건 알고 있지?”
“예.”
“너도 알겠지만 우리 바그너 백 작가는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
혹자는 비겁하다고 할지도 모른 다.
하지만 확실한 자리를 굳이 결정 할 이유는 없었다.
‘아버지의 판단이 현명하기는 한 데……문제는 중립을 유지한다간 문제 가 발생하면 도움을 받기 어렵다.
바그너 영지가 몰락한 이유 중 하나도 그것 때문이라고 할 수 있 었다.
‘일 왕자와 이 왕자라……일 왕자 헤르듀크 로드만.
이 왕자 나마스 로드만.
지금 둘은 후계자 자리를 두고 한참 경쟁하고 있었다.
하지만 웃기게도 회귀 전에 왕좌 에 오르는 것은 둘 다 아니었다.
둘의 후계자 경쟁이 한참 심화되 었을 때.
북방군을 담당하고 있던 왕제 타 로트 로드만이 왕위 쟁탈전에 끼어 들기 때문이었다.
그때,로만 후작의 후원을 받은 그가 왕위에 오르고 두 왕자는 교 수형에 처해진다.
‘그리고……그 일 이후 로드만 왕국의 귀족 들은 크게 힘을 잃어버린다.
‘로만 후작의 공격을 막아낸 후 에는 왕위 계승권 전쟁에도 손을대야겠군. 할 일 많네.’
타로트 로드만의 정책이 뭐고 그 가 원하는 것이 뭔지 요한은 잘 알 고 있었다.
그런 만큼 그가 왕이 되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았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는 것이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슬슬 도착 한 것 같군요.”
마차가 멈춰서고 하인스가 문을 열었다.
“도착했습니다.”
마차에서 내리는 윌카스트 백작 을 따라 내린 요한은 깜짝 놀랐다.
“어라?”
“어서 오십시오. 타이론 후작령 제 삼 집사 야칸이 윌카스트 백작 님께 인사드립니다.”
그들을 맞이한 것은 검은색 슈트 를 입은 잘생긴 청년이었다.
흑갈색 피부를 지니고 체형은 어 지간한 기사 수준으로 꽤나 좋았다.
그가 허리를 숙여 인사하자 요한 은 의아해했다.
“수인족인가? 신기한 일이네. 수 인족을 집사로 받아들이다니.”
감탄하는 요한을 향해 야칸은 빙 긋 웃었다.
그 순간 그의 머리 위에 있는 두 개의 뾰족한 귀가 까딱거리고 허리 끝에 있는 검은색 꼬리가 살랑거렸 다.
“후작님께서는 종족차별을 하지 않으시는 분이니까요.”
대륙에서 수인족의 취급은 꽤나 좋지 않아 대부분 노예 생활을 했 었다.
그런 수인족이 후작가의 집사라 니.
“능력이 좋나 보군.”
“후작님께서 배려해주신 덕분입 니다.”
요한에게 상냥한 미소를 지은 그 는 월카스트 백작에게 시선을 돌렸 다.
“백작님. 후작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분께서는……야칸은 호박색 눈을 깜빡거리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소문의 그 요한 공자님이시겠지 요?”
“소문? 나에 대해서 무슨 소문이 난거지?”
윌카스트 백작도,요한도,하인스 와 야스진도.
다들 모르는 눈치이기에 야칸은 부드럽게 웃으며 알려주었다.
“세간에서는 요한 공자님을 기적 의 아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기적? 기적이라고 할 것까지 야……“충분히 기적이라고 할 만하지 요. 그 누구도 치료할 수 없었던 절맥이 치료되고 있는데.”
"그런가?”
“예. 이번에 공자님께서 참석해 주신 덕분에 많은 분들이 아가씨의 생일 파티에 참석해주신다고 하셨 습니다.”
야칸은 성실히 허리를 숙였다.
“후작가의 집사로서 진심으로 감 사드립니다.”
“많은 분이라. 그중 가장 대표적 인 분이 누구신가?”
윌카스트 백작이 웃으며 묻자 야 칸 역시 웃으며 대꾸했다.
“로만 후작님이십니다.”
“이런. 로만 후작님께서 오실 줄 이야. 이럴 줄 알았다면 선물이라 도 가지고 오는 것인데.”
월카스트 백작이 아쉬워하자 야 칸은 웃는 얼굴 그대로 말했다.
“영지 내에 타고다 상회가 있습 니다.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그곳 에서 구매하시면 됩니다.”
“그래야겠구만. 일단 후작님께 인사부터 드리고 가봐야겠어. 야칸. 어서 가세.”
월카스트 백작이 서둘러 걷기 시 작하자 야스진은 궁금해 하며 물었 다.
“저. 공자님. 백작님께서 왜 저러 시는 겁니까?”
"그럴 수밖에.”
얌전히 서 있던 요한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로만 후작은 중립파 귀족의 수 장과 같은 사람이니까.”
나직하게 말한 요한은 차분히 마 차에 올라탔다.
마차에 오른 것은 윌카스트 백작 과 요한,야스진 뿐이다.
나머지는 만약을 위해 외성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그 보고를 받은 윌카스트 백작이 허가하자 야칸은 직접 마차를 몰았 다.
그가 요한 일행을 데리고 간 곳 은 타이론 후작령의 영주 관저가 아니었다.
"후작님께서 여기 계시나?”
"예.”
마차에서 내리며 월카스트 백작 이 묻자 야칸은 정중히 대답했다.
그리고 기대감을 담으며 요한 일 행을 바라보았다.
“어떻습니까?”
월카스트 백작은 이미 본 것인지 딱히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야스진은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백연석으로 만들어진 순백의 벽 돌들 때문인지 저택의 벽면은 마치 눈처럼 새하얗다.
그 새하얀 벽면을 싱그러운 덩굴 이 녹빛으로 장식했고.
그 녹빛에는 피처럼 붉은 장미꽃 이 잔뜩 피어 있었다.
“와……결국 야스진이 감탄성을 터트리 자 야칸은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 다.
“이곳이 바로 타이론 후작령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장미관입니다.”
야칸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넘 쳐흘렀다.
야스진이 놀라는 것을 힐끔 본 요한은 무덤덤히 말했다.
“뭐야. 너 이런 거 처음 보나?”
그의 맥 빠진 반응에 야스진은 무척이나 떨떠름해 했다.
누구라도 장미관을 처음 본다면 이 아름다움에 놀랄 것이다.
그런데 요한은 어찌 된 것인지 표정 변화도 없다.
“공자님께서는 왜 놀라지 않으시 는 겁니까?”
“놀랄 게 뭐 있나.”
회귀 전을 떠나서 요한은 기번의 환생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성은 물론이고 현대 식의 거대한 빌딩.
심지어는 우주함선까지 가진 적 이 있었다.
그런 요한이 고작 이런 성 하나 에 감탄하겠는가.
그의 반응에 야칸은 작게 헛기침 을 토해낸 후 조심스레 말했다.
“요한 공자님께서 장미관에 오신 것은 처음이라고 압니다만……지금까지 장미관을 처음 보고 놀 라지 않은 사람들은 없었다.
무려 전대이기는 하지만 필로틴 제국 황제마저도 크게 감탄했었다.
그런데 이런 반응이라니.
야칸은 신선한 반응에 꽤나 신기 했다.
“장미관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지 않으신 분은 처음입니다.”
“아름답지 않다고 하지는 않았 어. 그저 놀랍지 않을 뿐이지.”
“그렇습니까?”
“그래. 뭐 그건 됐고. 야칸,딱히 내가 해야 할 일은 없지?”
그의 질문에 잠시 생각한 야칸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렇긴 합니다만.”
“합니다면 합니다지 다만은 또 뭐야?”
“마침 영애와 공자분들께서 파티 를 즐기고 계십니다. 괜찮으시다면 거기 참석하시는 것이 어떠시겠습니까?”
참가하지 않아도 되는 파티다.
그럼 그냥 훈련이나 하는게 낫 다.
요한이 거절하려고 하는 순간 윌 카스트 백작은 잽싸게 말했다.
“그래. 잘 됐구나. 가서 인사들도 좀 하렴.”
“인사만 하면 되는 겁니까?”
“그리고 나와 약속한 것을 잊지 말아다오. 귀족이라면 귀족답게 예 의와 품격을 갖추어야 한단다.”
“그러지요.”
‘그냥 얼굴만 비치고 적당히 빠 지는 게 낫겠군.’
"그리고 야스진. 네가 요한을 보 필하도록.”
"헉! 제가 어찌 공자님을 보필합 니까?”
야스진은 당황했지만 윌카스트 백작은 야칸과 함께 휙 가버렸다.
그나마 요한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윌카스트 백작이다.
그가 가버리니 야스진으로서는 걱정일 수 밖에 없었다.
“아아……“내가 너 잡아먹냐? 뭘 그렇게 두려워하는데?”
“잡아먹히는 것보다 더 무섭습니 다……“걱정 마라. 어린애들이랑 드잡 이질 할 생각 없으니까.”
“어린애라고 보기에는 나이가 꽤 있어 보입니다만.”
야스진은 한쪽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작은 정원 안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는 이들이 보였다.
대부분 요한과 비슷하거나 좀 더 많아 보인다.
그 정도 나이라면 빠르면 기사 작위를 받은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제가 듣기로는 귀족들은 요한 공자님 나이 때 파벌을 만들기도 한답니다.”
“파벌을 통해서 가문의 힘을 높 이기도 하니까.”
“아마 저쪽에 계신 분들도 파벌 이 만들어졌을 겁니다.”
“그러겠지.”
요한이 정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 기자 야스진은 불안해졌다.
그의 뒤를 쫓으며 그는 조심스레 말했다.
“정말 가실 겁니까? 그냥 훈련이 나 하시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훈련이야 언제든지 할 수 있으 니까. 먹을 것도 많아 보이네.”
야스진은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 쉬었다.
성큼성큼 걷는 요한의 뒤를 쭈뻣 거리며 따르던 야스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죽을상을 하고 야스진이 따르는 사이 요한은 정원에 도착했다.
정원 바깥에는 귀족들의 호위를 위한 기사들이 서 있었다.
"증명패가 있으십니까.”
“자.”
바그너 가문의 증표인 달빛 목걸 이를 보이자 기사는 요한의 허리에 있는 검을 가리켰다.
“무기는 소지하실 수 없으십니 다.”
“기사에게 검이란 목숨과도 같은 것인데 목숨을 놓고 가라는 것인 가?”
요한의 질문에 기사로 보이는 남 자는 반갑다는 듯 미소 지었다.
“혹시 기사십니까? 실례지만 어 느 기사단에 속하신 분이신지……"기사는 무슨. 그냥 해본 소리 야.”
요한은 깔끔하게 허리에서 검을 풀어 넘겼다.
그는 어이없어하다가 한숨을 내 쉬고 옆의 시종에게 알렸다.
“바그너 백작가의 요한 바그너 공자께서 입장하십니다!!”
시끌벅적하던 파티장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그 고요를 즐기며 요한은 망설임 없이 걸었다.
그리고 파티장의 구석에 가 앉았 다.
“뭐야?”
“기적을 일으켰다고 해서 팔 네 개에 눈은 세 개 정도 되는 줄 알 았더니 만.”
“비쩍 말라가지고 검도 제대로 못 잡게 생겼는데?
멸시 섞인 흥미가 요한에게 몰려 들었다.
끼리끼리 모여 있던 소년 소녀들 은 요한을 힐끔거리기만 할 뿐 접 근하는 이는 없었다.
‘이건 모욕이나 다름없는데……야스진도 귀족의 파티 정도는 경 험해 본 적이 있었다.
간단한 예절 정도는 알고 있는 그이기에 이게 요한에 대한 상당한 실례라는 것을 알았다.
‘이런 모욕을 받고도 요한 공자 님께서 가만히 계실까? 으으…… 두렵다.’
새로운 손님이 오게 되면 파티의 주최자가 아는 척 한 번 정도는 하 는 것이 예의다.
주인이 바쁘다면 다른 이들이라 도 다가가 인사말을 건네야 한다.
하지만 없다.
그저 요한을 신기하다는 듯 쳐다 보기만 할 뿐.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요한이 얻은 별명.
바로 기적의 아이라는 소문에 질 투를 하는 것이다.
“야스진.”
요한이 말을 걸자 야스진은 심장 이 멈추는 줄 알았다.
그만큼 긴장하고 있는 그를 향해 요한은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뭘 그리 놀래?”
“아,아닙니다. 뭐 시키실 일이라 도 있으십니까?”
저들의 무례에 행여나 요한이 열 받아서 날될까 두렵다.
야스진은 최대한 그의 심기를 거 스르지 않기 위해 공손히 말했다.
“예?”
“저기 가서 미트 파이 좀 가지고 와라. 저기 닭다리도 가져오고.”
하지만 그의 걱정과 다르게 요한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그것아‘어째 폭풍 전야 같다.’
야스진은 등골에 차가운 식은땀 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