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권 7화
7. 거 참 피곤하게 하네 (4).
섬뜩함을 지우기 위해 프란츠는 애써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한 번 승부를 내러 왔다.”
“말이 짧다? 아까는 살려 달라 애원하더니. 덜 맞았나 보지?”
요한의 조롱에 프란츠의 얼굴이 붉어졌다.
살짝 주먹을 쥔 그가 입을 열려 는 찰나 요한이 먼저 말했다.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은 없는데. 지더라도 가슴 펴고 져라. 자식아.”
경멸과 한심함을 담은 목소리에 프란츠는 더더욱 얼굴을 붉혔다.
“맞을 때는 존대하고,이제 공격 하려니까 하대냐? 사람이 일관성이 있어야지. 못난 놈.”
틀린 말은 아니다.
그의 조롱처럼 기사가 될 자가 할 짓은 아니었다.
“……다시 한 번 승부를 내러 왔 습니다.”
“훌륭하다.”
그제야 요한은 싱긋 웃으며 자리 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하긴 좀 그렇지? 안뜰로 가자.”
저택의 안뜰에 내려가자마자 프 란츠는 검을 뽑았다.
날이 시퍼렇게 번뜩이는 진검을 든 그를 힐끔 본 요한은.
“난 이거면 되겠군.”
바닥에 놓여 있는 대나무 빗자루 를 잡았다.
“장난하십니까!? 검을 드십시 오!!”
아무리 아까 힘도 제대로 못 쓰 고 졌다고 해도 그렇지.
진검과 대나무 빗자루의 대결이 라니.
분노한 프란츠가 외치자 요한은 심드렁히 대꾸했다.
“실력 차이가 월등히 나는데 장 비라도 좀 나빠야 하지 않겠냐.”
- 까득.
아까의 패배는 그저 방심 때문이 다.
정신승리를 하는 프란츠를 향해 요한은 차분히 말했다.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동생이니 내가 이렇게 양보하는 거다. 감사 히 여겨라.”
“후회하게 될 겁니다.”
“내 삶에 한 점의 후회…… 생각 해보니 후회는 많았군.”
당장 회귀 전의 삶도 그랬다.
‘그 망할 놈들 일만 생각하면 아 직도 이가 갈리네.’
“이것 좀 잘라줄래?”
요한이 빗자루를 던지자 프란츠 는 빠르게 빗자루를 베었다.
깔끔한 베기다.
자루 부분이 잘려 단봉이 만들어 지자 프란츠는 그것을 요한에게 휙 던졌다.
그것을 낚아챈 요한은 가벼워진 대나무를 이리저리 휘둘러보고 만 족했다.
“사랑하는 동생아. 너의 근성에 감복하며. 내 좋은 것을 보여주마.”
그의 심장에 자리 잡은 코어가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회전이 멈춘 순간.
요한은 나지막이 선언했다.
“내 영역에 온 것을 환영한다.”
그의 말이 끝난 순간 프란츠는 공포를 느꼈다.
아주 어렸을 때.
사냥을 나갔을 때 처음 만난 늑 대를 마주했을 때의 공포보다 훨씬 강렬한 공포가 그의 몸에 자리 잡 고 있었다.
“뭐야……사자 앞에 자리한 토끼처럼.
호랑이 앞에 굳어버린 사슴처럼.
프란츠는 온몸에서 느껴지는 공 포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니, 프란츠뿐만이 아니었다.
프란츠를 따라온 기사들마저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공포를 느꼈다.
그들을 마주하며 요한은 상냥한 어조로 말했다.
“코어가 하나라 이정도지만 만족 해주렴.”
“뭐야…… 너 뭐야!!”
“자. 동생아.”
“으…… 으아…… 으아아악!”
항거할 수 없는 공포에 질려버린 프란츠가 비명을 내질렀다.
도망칠 수조차 없어 바닥에 주저 앉아버린 프란츠는 오들오들 떨었 다.
검을 들지조차 못한다.
방패는 이미 떨어트려버렸다.
그저 공포를 피하기 위해 양팔로 머리를 감쌀 뿐이었다.
완전히 전의를 잃어버린 그에게 요한은 유유히 다가갔다.
프란츠를 내려다보는 요한의 입 가에 걸려있던 상냥한 미소는.
“시작해볼까? 이 형은……어느새 즐거워 죽겠다는 듯한 미 소로 바뀌어 있었다.
"너무나도 기대가 된단다.”
“오…… 오지 마! 오지 마!!”
결국 몸을 돌리고 엉금엉금 기어 도망치려는 그를 향해 걸으며 요한 은 몽둥이를 들었다.
“네가 얼마나 버텨줄지 말야!!”
그의 외침과 함께 타작이 시작되 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프란츠는 검조차 떨군 채 덜덜 떨며 기었다.
“혀…… 형님…… 제발…… 살 려…… 제발…… 죽을 것 같……아요……. 형님……너무 맞은 탓일까?
고통 때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설수도 없다.
자신의 다리를 잡고 프란츠가 호 소하자 요한은 그를 슬쩍 밀었다.
“난 널 잘 안다니까? 넌 이걸로 만족하지 못할 것 아냐.”
“혀, 형님…… 제발 살려…… 살 려 주…… 으으•"… 흑…… 흑흑 흑......
“놔. 자식아. 바지 벗겨지잖아.”
프란츠를 걷어찬 요한은 대나무 봉을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프란츠는 완전히 두려움에 질려버렸다.
“제발…… 허억,헉. 살려……“걱정 마라. 그래도 내 동생인데 손속에 정을 두겠지.”
“게,겠지?”
“몸이 이따위라 힘 조절을 못할 수도 있거든.”
씩 웃은 요한은 다시 몽둥이를 내리쳤다.
하지만 대나무가 프란츠의 몸을 때리지는 못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이반이 요한의 몽둥이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공자님,너무 과하십니다.”
“어쭈? 안 놔?”
“저는 백작님께 프란츠 도련님의 몸을 돌보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그래서 네가 제지라도 하겠다 고? 내가 아까 물었지? 잘하면 치 겠다?”
“……그건.”
이반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요한은 프란츠를 한 번 더 걷어찼 다.
그것에 맞은 프란츠가 피를 토해 내며 벌러덩 드러눕자 요한은 어깨 를 으쏙였다.
“알았어. 일단 놔봐. 나도 힘들어 서 이제 그만 때릴 거야.”
이반이 몽둥이를 잡은 손을 풀자 요한은 프란츠에게 다가갔다.
쪼그려 앉은 채 프란츠를 내려다 보던 요한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 다.
“사랑하는 동생아.”
‘‘ O O......”
“대답 안 하니?”
“예! 예! 흑…… 흐으……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올려다보며 그가 대답하자 요한은 담담히 말했다.
“근성만으로 덤벼서는 안 된다는 상대가 있다는 것도 알아두렴.”
“예에…… 예…… 흑…… 감사합 니다…… 흐흐흑……더 맞지 않아도 된다는 것 때문 일까?
요한의 손에 몽둥이가 들려져 있 지 않은 것을 확인한 프란츠는 안 도했다.
그리고 긴장이 풀렸는지 바로 기 절해버렸다.
그가 축 늘어지자 이반은 뒤에 있는 기사들을 불렀다.
“야스진 치유사를 불러라! 어 서!!”
그들이 달려가자 요한은 이반에 게 다가가 그의 가슴을 툭 쳤다.
"그리고 너.”
“•…“예?”
“내가 깝치지 말라고 하지 않았 냐?”
“그리 말씀은 하셨지만,그래도 이것은.”
“넌 나중에 두고 보자. 내가 이 일 그냥 넘어갈 거라곤 생각하지 마라.”
마음 같아선 프란츠 옆에 사이좋 게 눕혀 두고 싶었다.
하지만 요한의 몸은 극심한 피로 를 호소하고 있었다.
근육 여기저기가 욱신거리는 것 이 정말 내일의 근육통이 기대될 정도다.
“데리고 가.”
“……예.”
잠시 후 대기하고 있던 야스진이 찾아왔다.
피범벅이 된 채 기절한 프란츠를 본 야스진은 한숨을 쉬었다.
‘할 일이 많을 것이라는 게 이런 의미였나.’
바닥에 떨어져 있는 대나무 몽둥 이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짧게 혀를 찬 야스 진은 프란츠의 손을 잡았다.
곧 은은한 신성력이 프란츠의 몸 을 감싼다.
“좀 살살 때리시지 그러셨습니 까.”
“살살 했거든?”
“……이게요?”
“세게 했으면 재 죽었어.”
말 그대로 프란츠를 가지고 논 요한이 다.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프란츠의 죽이는 정도는 일도 아니었을 것이 다.
야스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진짜 요한이 봐준 것이 맞았다.
“알겠습니다.”
어느 정도 치유가 끝난 프란츠가 이반에게 업혀 가버리자 야스진은 요한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어떻게 했으니까 방법은 신경 쓰지 말고 당분간 재나 전담하면서 치료해.”
“후계자의 자리를 노리시는 겁니 까?”
“뭐?”
“요한 공자님이라면 간단하게 실 력의 차이를 보이실 수 있었던 것 아니십니까? 아니면 설득이라 도……“왜 좋은 주먹 놔두고 힘들게 설 득 하냐? 이게 제일 빠르고 쉬운 데.”
싱글거리는 요한을 향해 야스진 은 질린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었다.
요한이 손짓하자 야스진은 허둥 거리며 프란츠가 간 곳으로 향했다.
정원에 홀로 남게 된 요한은 바 닥에 떨어져 있는 대나무 몽둥이를 뒤로 휙 던졌다.
"몸은 개판이지만 전체적인 난이 도는 낮으니까 참 편하다.”
회귀 전의 삶은 지금까지 요한 이 겪었던 72번의 환생을 통틀어 최악의 난이도였다.
하지만 회귀 후의 난이도는 최하 였다.
힘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이만큼 쉬워진다.
요한은 홀가분한 한숨을 토해내 며 생각했다.
이 세상에 있는 중요한 비밀을 대부분 알고 있다.
어디에 무엇이 있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어떤 것을 주의해야 하고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대부분 알고 있다.
그것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장점 중 하나였다.
그 뿐만이 아니다.
마왕과 관련된 부분 역시 안다는 것 또한 엄청난 장점이었다.
마왕은 인간 중에서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생물이기도 했고,어떤 차 원은 기계로 된 마왕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차원은 한 장의 카드이기도 했었다.
뭐가 마왕인지는 요한도 나오기 전까지는 모른다.
그러다보니 마왕이 나타날 때까 지 마왕 출현의 전조만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전조가 뭔지.
어디서 마왕이 나타날지.
어떻게 마왕이 힘을 얻는지.
그것을 모두 알고 있다.
요한은 팔짱을 낀 채 생각하다가 히죽 웃었다.
“그럼 방침도 정해졌으니…… 그 냥 내 취향대로 살면 되려나?”
그는 흐뭇하게 웃으며 방으로 돌 아갔다.
* * *다음 날이 되자 요한은 옷을 대 충 입고 밖으로 나갔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죽을 것처 럼 빌빌거리던 요한이 돌아다녔지 만.
시녀들과 하인들은 그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조,좋은 아침입니다. 도련님.”
그와 마주친 하인의 얼굴이 시퍼 렇게 질렸다.
원래부터 성격이 까칠하고 더러 워서 유리 외에는 요한을 만나는 이들은 없었다.
그런 그가 이제는 쌩쌩하게 돌아 다니는 것이다.
그것도 프란츠를 두들겨 펠 정도 로 건강해져서.
괜히 엮였다가 자신도 프란츠 꼴 이 될까 두려워진 하인은 딱딱하게 굳은 채 인사했다.
“식사 준비하라고 해라.”
“예? 예!! 알겠습니다!”
그가 허둥지둥 달려가자 요한은 창문 밖을 보았다.
따사로운 아침 햇살이 정원을 비 추고 있었다.
“기분 좋은 아침이야. 그렇지 않 냐?”
“ *,,“나 누구랑 얘기하니?”
“조,좋은 하루가 될 것 같습니 다!”
창문을 닦던 시녀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고작 하루뿐이다.
요한이 각성한지 단 하루가 지났 을 뿐이 었다.
하지만 그 하루 만에 모두의 인 식이 바뀌었다.
바그너 저택의 성격 고약하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공자가.
이제는 직접 움직이는 공포의 존 재가 되어버렸다.
‘대, 대답 늦게 했다고 프란츠 공 자님을 때렸던 것처럼 때리시는 거 아냐?’
어제 프란츠가 요한에게 맞았던 것을 봤던 그녀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요한에게서 막대한 공포 를 느꼈다.
그 공포는 시녀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게 만들었다.
울먹거리기 시작한 시녀를 빤히 바라보던 요한은 어이없어했다.
“어이가 없네? 야. 내가 너 때렸냐? 아니면 괴롭히기를 했냐. 뭘 어쨌다고 울어?”
“흑,흑흑. 사,살려주세요.”
그녀의 반응에 황당해하던 요한 은 어깨를 으쏙였다.
‘생각해보니 이것도 나쁜 일은 아니네.’
회귀 전에는 선인으로 살려 했 다.
그렇기에 요한은 항상 모두에게 친절했다.
그것을 이용해서 그를 무시하고, 또 이용해먹으려는 자들은 많았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무시나 이용은커녕 아예 두려워 하고 있지 않은가.
‘역시 회귀가 환생보다 훨씬 낫 군.’
요한은 또다시 회귀에 대한 깊은 만족을 느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