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새로운 세상 (2)
“아……. 아…….”
굳이 할 필요는 없었지만 나는 뭔가 어색해서 마이크를 조정했다.
앞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다들 궁금해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코웃음을 쳤다.
“이번에 제1대 세계 대통령이 된 이라일입니다.”
짝짝짝짝짝짝-!!!!!
곧바로 우렁찬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아부인지 진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열렬한 환영 인사였다.
“감사합니다. 시작부터 엄청나게 환호해주시는군요.”
어느새 긴장감은 싹 사라졌다.
나는 위풍당당하게 내 할 말을 했다.
“많은 고민 끝에 이렇게 세계 정부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다들 제 정책에 협조해주시고 또 지지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또다시 우렁찬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좋기는 한데 이러다가는 계속 말이 끊길 거 같았다.
“박수는 너무나 감사한데요 나중에 한 번에 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난 굉장히 정중하고 친근하게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내 눈치를 겁나 보기 시작했다.
내 말 한마디 한마디를 신경 쓴다는 게 뭔가 웃기면서도 부담이었다.
이러다가 농담도 못 하겠다.
뭐 어쩌겠어.
명색이 세계 대통령인데 이 정도의 위엄은 있어야겠지.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세계 정부를 출범시킨 이유는 별거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차별, 범죄, 비리 등을 아예 멸종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옳소!!!!!”
말 끊지 말라고 박수도 못 치게 했는데…….
꼭 저렇게 나대는 사람들이 있다.
뭐 가볍게 무시했다.
“전 거기에만 적극적으로 임할 것입니다. 나머지 지역들의 정책은 여러분 각자의 비전으로 잘 이끌어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나쁜 짓만 하지 않는다면 제가 관여할 일은 없을 겁니다.”
나는 다시 한번 앞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씨익 웃었다.
“여러분이 바로 새 시대의 주역들입니다. 부디 저와 함께 희망찬 내일을 일구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짝짝-!!!!!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서 열정적으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몇몇은 진짜로 감동을 받았는지 눈물도 훔치고 있었다.
별말 안 했는데 왜 저러는지…….
어쨌든 나는 많은 지지와 환호를 받으며 연설을 마쳤다.
그 뒤에 간단한 예식과 함께 축하 무대도 이어졌다.
축하 공연은 세계적 스타인 올리버 트위스트가 준비해줬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콘서트란 걸 가본 적이 없다.
근데 처음으로 본 공연이 올리버 트위스트의 무대이자 그것도 제일 좋은 자리에서 보는 것이다.
내가 이제껏 이런 감동을 몰랐었다는 게 애석했다.
진짜 지린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다.
엄청난 전율에 온몸이 떨려왔다.
최고의 공연이 끝나고 곧바로 오찬이 시작되었다.
다들 나와 같은 자리에 앉으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서운해할 사람이 많을 거 같아서 ,그냥 같은 테이블에 이라일 패밀리만 앉게 했다.
대신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인사를 해주었다.
세계 대통령이라는 것은 좀 피곤한 직책인 거 같다…….
“후우……. 겁나 많네.”
“고생했다.”
일수는 나를 격려해주며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격려해주는 것은 좋은데 그렇게 접시가 깨끗하게 비어있으면 배신감만 드는데…….”
어느새 일수는 식사가 끝난 상태였다.
“내가 참으려고 했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도저히 못 참겠더라고. 하하하하.”
참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에 디오를 건다.
“고생했어요. 라일 씨 것 제가 따로 놔뒀어요. 제가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저랑 같이 먹으면 돼요.”
박이나.
역시 당신뿐이야.
“진짜 라일 님은 좋겠어요. 저렇게 예쁘고 착한 여자친구가 있어서요.”
장수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자기. 자기가 더 예쁘고 착해. 하하하하하.”
전일수는 진짜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게 저 멘트를 했다.
“…….”
분위기는 진짜 갑분싸였다.
“후우……. 밥 먹기 참 힘드네. 그냥 좀 먹을게요.”
나는 앞에 있는 스테이크를 격하게 썬 다음 입에 넣었다.
와…….
진짜 겁나 맛있네.
짜증이 확 사라졌다.
“어때? 대박이지 않냐? 어떻게 이렇게 맛있는 거야? 세계 대통령이 취임식은 뭔가 다르네.”
일수는 뭔가 얄밉게 와인을 한잔 들이키며 말했다.
“일수야. 오늘 깐죽이 컨셉이냐?”
“그럴 리가.”
일수는 온갖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좋은 날이니까 봐준다.”
난 가볍게 녀석의 어깨를 툭 쳤다.
“그나저나 여러분. 아프리카 쪽은 누가 담당하게 하죠?”
“뭘 당연한 걸 묻냐? 이라일 패밀리 중에 딱 한 명 남았잖아.”
“누구?”
“가정부 아주머니.”
“…….”
나는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는 거냐?”
“응. 뭐 어때? 내가 그럴 줄 알고 미리 아주머니에게 물어봤다고. 아주머니!”
일수는 순간이동으로 아주머니를 여기로 불렀다.
“라일 씨!”
아주머니는 나타나자마자 내 이름을 불렀다.
“저를 잊은 것은 아니겠지요? 너무 섭섭하다고요.”
“당연히 안 잊었죠.”
솔직히…….
잊고 지냈다.
죄송합니다, 아주머니.
“저도 그 패밀리에 끼워주시면 안 돼요? 보니까 능력을 얻으면 저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하…….
아주머니 보기보다 야망이 있다.
“뭐 그렇게 하도록 하죠.”
어차피 다른 마땅한 사람도 생각나지 않은데 그냥 아주머니한테 능력을 주고 관리하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정의감도 투철한 사람이니까.
“호호호호.”
아주머니는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밝게 웃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아프리카 쪽은 문제없이 잘 관리할게요.”
“네. 이제 저 밥 좀…….”
“그래요 맛있게 드세요. 호호호호호.”
오늘따라 밥 먹기가 너무 힘들다.
“이제 아무도 방해하지 마요. 이러다가 라일 씨 밥 못 먹겠어요.”
적당한 타이밍에 박이나가 사람들을 막아주었다.
난 박이나에게 엄지척을 날려주었다.
박이나의 도움으로 나는 차분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음식 맛이 너무 좋아 짜증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원 없이 음식을 즐겼다.
“하아……. 배 터지겠다.”
내가 이렇게 식욕이 많았던가 싶을 정도로 배부르게 먹었다.
더 이상 들어갈 공간이 없을 정도로 많이 먹었다.
토까지 나올 정도여서 내 안에 있는 음식 데이터를 변환시켜서 밖으로 내보냈다.
그제야 속이 편안해졌다.
데이터 능력이란 이런 것도 가능하게 한다.
실로 엄청난 능력이다.
“밥도 다 먹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볼까요?”
“무슨 이야기?”
다들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뭐긴 뭐야? VRMMORPG에 관해서지.”
***
오찬 후.
백기완 대통령과 아주머니를 제외하고 우리는 연천 연구소로 이동했다.
세계 정부도 중요하지만, 일단 시작한 일은 끝을 봐야 했다.
그건 바로 나랑 일수의 염원이었던, 세계 최고의 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VRMMORPG.
만화나 소설에서만 나오는 게 지금 실현되기 일보 직전이다.
“기계적인 문제는 다 끝냈어. 스토리 부분만 좀 더 보완하면 이제 끝이야.”
일수는 소형 기계를 보여주며 말했다.
“최대한 간편하게 만들려고 했어. 데이터 쉴드처럼 간편하게 가지고 다니면 좋잖아. 사실 이미 구현은 끝났지만, 소형화시키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어.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더라고. 하지만…….”
일수는 갑자기 엄청나게 거들먹거리기 시작했다.
“이 몸이 다 해결했지. 하하하하하하하!”
“…….”
모두 일수를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오늘 어째 우리 일수 오빠가 좀 이상하네요.”
“그러게요.”
박이나까지 고개를 끄덕였으니 말 다 했다.
일수 녀석 오늘 뭔가 이상하다.
“내 친구가 글쎄 세계 대통령이라잖아. 너무 좋아서 그러지.”
일수는 나에게 어깨동무까지 했다.
“그래. 신나든가 말든가 너 알아서 해라. 일단 그러면 출시 날짜랑 발표회 구상 좀 해볼까?”
“좋지.”
우리는 회의를 시작했다.
출시는 한 달 뒤로 정했다.
일수가 게임 기계를 너무나 간단하게 설계했기 때문에 찍어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발표회는 1주일 뒤에 박이나가 하기로 했다.
이미 발표회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박이나는 자신감 넘치게 본인이 나서서 하고 싶다고 했다.
거기서 굳이 토를 달 이유는 없었다.
모든 것은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발표회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VRMMORPG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는 않았지만, 또 그렇다고 드러내놓고 개발했던 것은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디씨소프트가 신작을 준비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기사 이게 웃긴 게, 개발진 중 일수만 회사 사람이지 나머지는 국가 인력이다.
이들은 이번 게임 개발이 비밀 프로젝트인 줄 알고 입을 꼭 닫았다던가 뭐라던가.
이런 웃픈 상황이라, 신작 발표회는 그야말로 생뚱맞은 것이었다.
급하게 날짜를 잡고 홍보도 별로 안 해서 사람들이 많이 안 올 줄 알았는데 웬걸.
발표회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상상만 했던 VRMMORPG.
그걸 warrior의 회사인 디씨소프트에서 만들었다.
이것만으로 사람들은 기대감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발표회가 시작되었다.
프렌드쉽 리얼 버전이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자, 다들 의자에 놓여 있는 기계를 팔목에 끼우시길 바랍니다.”
발표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박이나의 설명에 따라 기계를 만지기 시작했다.
“다 차셨으면 빨간 버튼을 누르세요. 그러면 곧바로 접속이 될 겁니다.”
사람들은 곧바로 게임에 접속하기 시작했다.
“뭐야? 접속한 거 맞아?”
“뭐 변한 게 없는데? 이게 뭐야?”
쿠콰콰콰콰콰쾅!!!!!
그때 발표회장 지붕에 큰 폭발이 일어났다.
“뭐야?!!!!!”
사람들은 갑자기 지붕이 날아가자 당황해했다.
“저, 저것 봐!!!!”
사람들은 하늘을 가리키며 경악했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에!!!!!”
드래곤이 발표회장으로 착륙해 엄청난 괴성을 질러댔다.
사람들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쿠오오오오오-!!!!
드래곤은 브레스를 내뿜었고 그에 발표회장 오른쪽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쓸려 나가버렸다.
“으아아아아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발표회장은 완전히 아비규환의 상황이 연출되었다.
드래곤은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공격했고, 결국 발표회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죽었다.
“허억!!!!”
발표회장에 있던 사람들은 기겁하며 숨을 토해냈다.
“…….”
그들은 멀쩡했다.
발표회장 지붕도 그대로 있었다.
“모두들 어땠나요? 이게 바로 디씨소프트 신작, 프렌드쉽 리얼 버전의 몰입도입니다.”
참석자들이 직접 게임을 해보게 만드는 이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발표회장은 아예 열광의 도가니로 변해 있었다.
사람들은 처음 느껴보는 스릴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박이나는 사람들의 응원에 힘입어 더욱 자신감 있게 발표해 나갔다.
“후우…….”
발표를 마친 박이나는 한숨을 깊게 내 쉬며 대기실로 돌아왔다.
“잘 마쳤어요.”
나는 수고한 박이나를 끌어 앉아주었다.
“고마워요. 그대로 재밌었어요.”
“그래 보였어요.”
나와 박이나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게임 잘 팔리겠죠?”
“아까 반응 못 봤어요? 재고는 당연히 없을 거고, 만드는 즉시 다 팔릴걸요?”
“하하하하하. 그렇군요.”
나는 박이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프렌드쉽 발표회를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
“그러니까요.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어요.”
“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기억에 남는 순간은 이나 씨에게 고백했던 순간입니다.”
“제가 먼저 했거든요?”
박이나의 얼굴은 붉어졌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나는 다시 한번 그녀를 끌어안았다.
“이젠 밝은 내일만 기다리고 있어요. 같이 행복하게 잘 지내봅시다.”
“흐흐.”
박이나는 말없이 그냥 웃기만 했다.
“그럼 우리의 유능한 디씨소프트의 CEO 씨. 저랑 데이트하러 가실까요?”
“좋죠.”
앞으로 있을 행복한 일들에 기대하며 나와 박이나는 두 손을 맞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현대사회의 먼치킨>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