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새로운 빌런 (8)
박이나였다.
“하! 이건 또 무슨 잔챙이래?”
짜르는 가소롭다는 듯이 박이나를 보며 웃었다.
“예의가 없군요.”
박이나는 손바닥을 하늘로 펼쳤다.
“당신의 궁금증은 해결되지 못할 겁니다.”
갑자기 하늘에 데이터 쉴드가 구축되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하. 요건 또 뭐래?”
“또 이런 습격이 있을 거 같아서 미리 정교한 데이터 쉴드를 만들어놨었죠.”
쿠콰콰콰콰콰콰쾅!!!!!!!!!!!!!
수소폭탄들은 데이터 쉴드에 막혀 공중에서 터지기 시작했다.
인류사상 최강의 폭발이 하늘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오오오오! 아름답군. 크흐흐흐흐.”
짜르는 붉어진 하늘을 보며 만족하는 듯 웃었다.
“크윽!”
아무리 미리 만들었어도 폭발의 충격이 상당한지 박이나는 힘겨워했다.
데이터 쉴드 여기저기에 금이 갔기 때문에 박이나는 계속해서 보수를 해 나갔다.
“주제에 좀 하는데? 하지만 힘겨워 보이는걸? 내가 조금만 방해해도 저 데이터 쉴드는 산산조각 날 것 같은데 말이야.”
짜르가 저렇게 말해도 박이나는 데이터 쉴드를 고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 대답도 못 할 정도로 힘겨워하다니. 말만 번지르르하지 역시 애송이였네.”
짜르는 박이나를 공격하기 위해 다가갔다.
“멈춰!!!”
퍼억-!!!
짜르는 갑자기 날아온 주먹에 얻어터졌다.
“크윽!”
그는 뒤로 자빠지며 땅에 곤두박질쳤다.
쾅-!!!
충격이 강했는지 땅이 울릴 정도였다.
“어디 매너 없게 사람이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그걸 방해하려는 거야?”
백기완 대통령은 가볍게 주먹을 풀며 말했다.
“이건 또 뭐야…….”
짜르는 여유롭게 다시 일어났다.
일그러져서 완전히 엉망이었던 짜르의 얼굴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저년이 내 일을 방해하고 있는 게 아니었나?”
“너같이 불순한 놈이 저지르는 일은 방해해도 돼.”
“하하하하. 진짜 죽고 싶어서 차례로 용을 쓰는군.”
짜르는 백기완 대통령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몸을 풀었다.
“그동안 내 활약이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는 좀 많이 나서려고.”
“그딴 개소리는 혼자 하셔, 노친네.”
짜르는 악을 쓰며 백기완 대통령에게 달려들었다.
“대통령 비서가 대통령을 죽이다니. 천인공노할 짓이다! 넌 글러 먹은 놈이야.”
백기완 대통령은 짜르의 돌진을 피한 다음 그에게 다시 펀치를 날렸다.
퍼억-!!!
백기완 대통령의 주먹을 맞은 짜르는 옆으로 시원하게 날아갔다.
쾅-!!!
짜르는 건물에 부딪혔고, 충격으로 인해 벽이 무너져내리며 잔해가 짜르를 뒤덮였다.
“이 시발!!!!”
짜르는 곧바로 그 잔해에서 뛰쳐나와 다시 백기완 대통령에게 달려들었다.
“아주 화끈한 친구군. 그 열정 하나만큼은 인정해주지.”
“닥쳐. 별것도 아닌 새끼가 뭐나 된 것처럼 말하지 마!!!”
짜르는 높이 뛴 다음 백기완 대통령을 향해 두 주먹을 내려쳤다.
쨍그랑-!!!!
황급히 만든 데이터 쉴드는 너무나 쉽게 부서져 버렸다.
“주먹은 좀 쓸만하다만 데이터 쉴드는 보잘것없군!”
짜르는 백기완 대통령을 거세게 몰아세웠다.
쨍그랑-!!! 쾅-!!! 째앵-!!!
짜르가 공격할 때마다 대통령은 데이터 쉴드를 구축했지만, 그때마다 짜르에게 박살 날 뿐이었다.
“영감. 그렇게 막고만 있을 건가? 그러다가는 그냥 뒤질 텐데?”
“원한다면 한 방 먹여주지.”
대통령도 이렇게 계속 막다가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방어를 포기하고 공격을 가했다.
“하압!!!!”
그는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질량 데이터를 변환한 다음 짜르를 향해 펀치를 날렸다.
“흥!”
짜르는 콧소리를 대차게 낸 다음 똑같이 주먹을 날렸다.
콰앙-!!!!
두 사람의 주먹이 맞붙으면서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주위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백기완 대통령의 오른팔은 갈기갈기 찢겨나가기 시작했다.
큰 돌풍과 함께 대통령은 뒤로 날아가 버렸다.
“커헉!!!”
대통령의 오른팔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피가 쏟아져 나오며 대통령 주위에 고이기 시작했다.
“하! 진짜 한심하다니까.”
짜르는 대통령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냥 싸웠다가는 너무 시시할까 봐 봐주면서 싸웠는데도 이 꼴이네. 너희는 왜 이렇게 약한 거야?”
“닥쳐라. 이 천하의 나쁜 놈 같으니라고…!”
부상이 심한 와중에도 백기완 대통령은 이를 악물고 일어서려고 했다.
퍼억-!!!
“그냥 쳐 쓰러져 있어!!!”
짜르는 백기완 대통령을 인정사정없이 차버리며 다시 쓰러뜨렸다.
“크윽…….”
백기완 대통령은 이제 몸을 가누지조차 못했다.
“하! 그대로 두면 알아서 황천길로 가겠네.”
짜르는 대통령을 한껏 비웃은 다음 뒤돌아서서 박이나에게로 갔다.
박이나는 폭발을 막느라 여전히 정신이 없었다.
“뭐 하려고 그렇게 발악하는 거야? 어차피 나한테 죽을 텐데 말이야.”
짜르는 칼을 쥐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 정도면 본인이 죽었다는 사실도 모르겠네. 어쩔 수 없지.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어.”
짜르는 박이나를 향해 칼을 꽂으려고 했다.
챙-!!!!
갑자기 장수진이 등장하며 짜르의 공격을 막았다.
“……지겹지도 않니? 그냥 쓰러져 있지 왜 또 처 나타나서 지랄인데?”
“차라리 죽고 말지. 성격상 그러지는 못해.”
“그래? 그러면 원대로 그냥 죽어라.”
짜르는 장수진을 향해 칼을 거칠게 휘둘렀다.
이전 공격과는 다르게 상당히 매서운 공격이 이어졌다.
장수진은 아까처럼 여유롭게 짜르의 공격을 피할 수가 없었다.
“내가 전문 전투 요원이 아니라고 무시했었지? 하지만 그런 거는 데이터를 이용하면 이렇게 금방 따라잡을 수 있어.”
챙-!!!
짜르의 공격에 장수진의 단검이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더 뛰어날 수도 있는 거지.”
“…….”
검을 놓친 장수진은 긴장한 채로 짜르를 노려봤다.
두려움과 경멸이 동시에 깃든 눈빛이었다.
“내가 두려워?”
“퉤!”
장수진은 짜르에게 침을 뱉었다.
하지만 데이터 쉴드가 막고 있었다.
“엿이나 처먹어.”
“진짜 역겨워 죽겠네.”
퍼억-!!!
“꺄아아아아악!!!!”
짜르의 주먹을 맞은 장수진은 바닥에 널브러졌다.
“이 건방진 년이 보자 보자 하니까 나를 우습게 알고!!!”
짜르는 쓰러져있는 장수진에게 달려들어 칼을 꽂으려고 했다.
퍼억-!!!!
“크핫!!!!”
갑자기 날아온 주먹에 짜르는 코피를 흘렸다.
“야!”
“너…….”
아까까지 자신만만했던 짜르의 표정은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나랑 놀아야지. 그래야 더 재밌지 않겠어?”
나는 녀석을 보며 씨익 웃었다.
***
“여기를 또 오다니…….”
영겁의 세계에 또 와버렸다.
나는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으나 내 기억의 자아가 모든 기억을 넘겨주었기 때문에 나는 이곳이 어딘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쿠오오오오오-!!!
짜르의 말대로 데이터 세계는 갑자기 생겨난 공백으로 인해 요동치고 있었다.
“뭐 내가 뿌린 씨앗이기는 한데……. 좀 그렇네.”
[다음에는 그런 것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은 항상 균형을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죠.]
“알았어. 이번에 제대로 체감했으니까 너무 그렇게 뭐라고 하지 마.”
[예. 알겠습니다.]
쿠오오오오오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요동치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 같았다.
“괜히 불안해지는데…….”
쿠쿠쿠쿠쿵-!!!
갑자기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맞네……. 이 세계가 나를 흡수하려고 하고 있네.”
[라일 님. 어서 여기서 나가야 합니다. 이러다가는 우리의 존재가 아예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말은 쉽네! 누가 여기서 나가야 하는 거 모르냐? 근데 어떻게 하냐고?!!”
당연한 말을 하는 디오 때문에 성질이 나기 시작했다.
근데 이 녀석…….
약간 삐친 것 같기도 하다.
“하아……. 어떻게 한다.”
아직은 버틸 만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디오야. 어떻게 해야 하냐?”
[흥! 알아서 하십시오. 저는 이제 필요 없으신 거 같군요.]
이 자식…….
삐친 게 맞다.
“디오야. 그냥 한번 심술부려봤어. 미안해. 다시는 안 할게. 한 번만 봐주라. 응?”
지금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자존심 부릴 때가 아니다.
그리고 상대가 디오인데 얼마든지 굽혀줄 수 있다.
[그렇게 나오시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죠. 대신 다음부터는 그러면 안 됩니다.]
“알았어.”
디오는 정말 쉬운 놈이다.
어차피 모든 것은 내 뜻대로 간다.
[세계 데이터가 보내는 메시지를 한번 읽어보세요. 해답이 있을 것입니다.]
“메시지라…….”
나는 차분하게 정신을 집중한 다음 데이터의 흐름을 느끼기로 했다.
흐름을 느끼는 것은 이미 달인이라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균형을 맞춰야 해!]
[어서 너의 데이터를 내놔!]
디오 말대로 세계 데이터가 보내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얼른 답장을 보냈다.
[나랑 거래를 하자.]
[무슨 거래? 그냥 네 데이터를 내놔.]
세계 데이터 녀석.
생각보다 더 막무가내인 녀석 같다.
[나를 흡수하는 것보다 더 나을 거야. 솔직히 지금의 나는 데이터양이 너무 방대해서 흡수하기에는 부담스럽잖아. 대신 원래 너희의 데이터를 가로챈 녀석을 다시 흡수하는 게 어때? 그 이레귤러인가 뭔가 하는 녀석 말이야.]
[…….]
나는 세계 데이터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가능하겠어? 녀석은 강해.]
[너도 알겠지만 나보다는 약해. 내 맹세코 이레귤러를 다시 흡수하게 만들어줄게.]
[만약 실패한다면?]
세계 데이터 녀석.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려는 걸 보니 호구는 아니다.
뭐 어차피 난 자신 있으니까 원하는 대로 확실하게 해 주면 된다.
[그땐 군말 없이 흡수당할게. 너 알아서 하고 싶은 대로 해.]
[그 말 지키는 게 좋은 거야. 아니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끔찍한 일이 생길 테니까.]
녀석은 허세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살벌하네…….
[알았어. 그러니까 나를 원래 내 세계로 보내줘. 그러면 내가 다시 원상태로 만들어줄 테니까.]
[알았다. 시간 없으니까 최대한 빨리 녀석을 이쪽으로 보내는 게 좋을 거다.]
[오케이. 걱정 마라고.]
쿠오오오오오오-!!!
다시 세상이 요동치고 있었다.
[생각보다 말이 통하는 녀석이네요.]
디오는 이렇게 될 걸 예상하지 못했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게. 거래가 생각보다 쉽잖아.”
[아무래도 라일 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세계 데이터는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라일 님의 행적도 지켜보고 있었겠지요. 항상 말하는 대로 다 이루어내셨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럴 거라 믿는 거죠.]
“그래. 그렇다면 이제 그 믿음에 화답해 줘야지.”
지잉-!!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문이 열렸다.
“딱 기다려라 새끼야. 내가 너를 세계 데이터의 밥으로 줄 테니까 말이야.”
나는 원래 세계로 넘어갔다.
***
다시 돌아와 지금.
“어, 어떻게 넘어왔지……?”
녀석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벌벌 떨며 물었다.
“어떻게 넘어왔냐고? 크흐흐흐흐흐….”
나는 녀석을 향해 실실 웃었다.
“너를 족치는 대가로 넘어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