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새로운 빌런 (5)
“당장 다 자세하게 보고해봐.”
나는 격양된 목소리로 디오에게 말했다.
솔직히 따지고 보면 녀석이 나에게 피해를 준 것은 없었다.
단지 반인류적인 행동을 했을 뿐이지.
그것 때문에 화가 난 것도 있다.
근데 그것보다는 햇병아리 새끼가 설치고 다닌다는 것이 더 마음에 안 들었다.
[핀란드 팀페레에서 데이터가 에너지가 발견되어서 콘스탄틴과 그 비서가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그들은 핵까지 사용했죠.]
일일이 다 신경 쓰기 귀찮아서 디오에게 시답잖은 일들은 그냥 무시하고 정말 시급한 거만 알려주라고 했었는데…….
아주 난리가 나 있었다.
[핵폭탄까지 이용했기 때문에 그들은 손쉽게 데이터 에너지에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서가 본인이 힘을 얻으려고 콘스탄틴을 제거해버렸죠. 그리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진짜 거지 같은 스토리네…….”
콘스탄틴 그 녀석, 괜찮게 봤는데.
핵까지 사용하다니…….
비서 손에 죽어서 망정이지, 그 녀석이 힘을 얻었으면 더 미쳐 날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데이터 능력은 어느 정도인 거 같아?”
[라일 님과 대적했던 상대 중에 역대 최고인 것 같습니다.]
“……이설아랑 잭슨보다 강하다고? 하룻강아지가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 건데?”
[비서가 가지게 된 데이터 에너지는 데이터 세계에서 직접 유출된 데이터입니다. 게다가 라일 님이 데이터 통로를 태워버림에 따라 균열이 심하게 일어나서 데이터 유입 양이 많았습니다.]
이설아를 조지려고 했던 행동이 더 큰 파장을 몰고 온 것이다.
썩을…….
이번에는 좀 상식선에서 놀아야겠다.
“뭐… 강해 봤자지. 나한테는 안 되잖아.”
[그렇기는 한데 조심해야 합니다. 방심했다가는 자칫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을 수도 있습니다.]
“걱정 마. 나는 잭슨 이후로 절대 방심하지 않아.”
항상 하는 말이지만, 내 앞길을 막으면 그 누구라도 박살 낸다.
어차피 다 나한테는 안 된다.
“그럼 박살 내러 가볼까?”
***
핀란드에서의 폭발은 모두에게 충격을 줬지만, 특히 유럽 사람들에게 더욱 크게 다가왔다.
자신의 영토와 가까웠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에서 그 모든 일을 저질렀다는 것 때문에 그러했다.
유럽 각국은 긴장을 곤두세우고 러시아의 움직임을 체크하고 있었다.
유럽 연합의 대통령들은 소집 요청이 내려온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신속하게 전용기를 타고 브뤼셀로 모였다.
모두 기존에 있던 스케줄까지 취소하면서 모인 것이었다.
그만큼 사안은 시급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의장은 암담해 하며 참석자들에게 물었다.
“…….”
하지만 모두들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있었다.
그들은 좋은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상대가 warrior와 비슷한 존재라고 하던데……. 군대를 연합한다고 해서 딱히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차피 현대의 무기는 소용이 없을 테니까요.”
“맞습니다. 정면으로 맞붙는 것만큼 의미 없는 것은 없다고 봅니다.”
다들 warrior의 사례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짜르와 그냥 맞붙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그렇다면 협상 말고는 답이 없군요.”
“그렇죠…….”
“하아…….”
다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말도 안 되는 것을 요구하면 어쩌려고 합니까? 지금껏 해온 짓만 보면 정신병자가 따로 없는데요. 전 녀석과 협상하는 것은 반대입니다!”
독일 대통령은 강력하게 자신의 의사를 주장했다.
“저도 반대입니다. 그딴 놈에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프랑스 대통령 또한 독일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소?”
“차라리 warrior에게 부탁합시다.”
독일 대통령은 근엄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입니까?”
“진심입니다.”
“…….”
다시 회의장에는 고요함이 흘렀다.
침묵은 다들 거기에 내키지 않아 한다는 것을 방증했다.
“왜 망설이는 거죠? 저는 이것보다 더 좋은 해결책은 없다고 보는데요? 그 미친놈과 협상하는 것보다는 백 배나 더 나을 일이죠. warrior는 정의롭고, 상식 안에서 노니까요.”
“저도 그 의견에는 동의합니다만……. 과연 warrior가 우리를 도와줄지가 의문일 따름입니다.”
그들은 warrior가 중국과 미국을 어떻게 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warrior의 힘을 빌리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왠지 일이 그의 힘을 빌리는 데서 끝나지 않고, 중국과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 구조가 통째로 바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지금 상황은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닙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봐야 하는 때입니다. 저는 warrior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중하게 부탁하면 분명 들어줄 것입니다.”
독일 대통령은 다시 한번 그의 의견을 확고히 했다.
“저는 찬성입니다.”
“저도요.”
먼저 벨기에와 이탈리아에서 동의의사를 밝혔다.
그에 점점 더 많은 나라에서 찬성한다고 외쳐대기 시작했다.
“난 반대인데.”
갑자기 누군가 등장해 회의장에 찬물을 끼얹어 버렸다.
“뭐, 뭐야?!!!”
회의장 안에 있던 사람은 괴한의 등장에 경악했다.
“아! 다들 나를 처음 보는 거겠네. 소개하지. 나는 짜르라고 하오.”
짜르는 정중히 예의를 갖춰 대통령들에게 인사했다.
“설마……. 핀란드에서 폭발을 일으킨 놈이 네놈이냐?”
“저 미친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다들 짜르를 보며 깊은 적대감을 드러냈다.
“이거 교양이 없으시네. 내가 정중하게 나왔으니까 당신들도 정중하게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놈들이 각국의 지도자라니 원. 애석할 따름이군.”
짜르는 한심하다는 듯이 입술을 비죽이며 고개를 흔들어댔다.
“경비!!! 당장 저놈을 잡아!!!!”
의장의 명령에 경비들은 짜르를 잡으러 달려갔다.
짜르는 그러거나 말거나 태평하게 있었다.
“회의는 나와 협상하는 방향으로 괜찮게 시작했는데, 왜 갑자기 이상하게 흘러가는 거야? 차라리 warrior를 포섭한다고? 내 참 어이가 없어서.”
“시끄러워!!! 경비!! 그냥 망설이지 말고 죽여버려!!!”
경비들은 권총을 꺼내 짜르를 겨눴다.
“나한테 이런 공격은 전혀 통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왜 이러는 거야? 굳이 또 피를 봐야겠어?”
“죽어라!!!”
탕-! 탕-! 탕-!!!
짜르는 경비들의 권총에 맞으며 쓰러졌다.
“뭐야? 통하잖아……?”
사실 경비들과 회의장 안에 있는 사람들은 공격이 통할 거란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다.
다들 짜르가 총에 맞고 쓰러진 것에 의아했다.
“하, 하핫!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잖아.”
“이런 놈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급하게 모였다니. 너무 허무한데?”
다들 막상 짜르가 당하니 허무해 했다.
“다시 일어날 줄 모르니 어서 마무리해!!!”
의장은 경비에게 확실한 마무리를 요청했다.
탕-! 탕-! 탕-!
경비들은 쓰러져 있는 짜르의 머리를 쏘기 시작했다.
짜르는 몸이 축 늘어진 채로 힘없이 총을 맞았다.
“처리된 것 같습니다.”
경비들은 임무를 마친 것에 뿌듯해하며 권총을 집어넣었다.
“처리되긴 뭐가 처리돼?”
“!!!!!!”
촤악-!!!!!!
짜르에게 총을 쏜 경비들의 목이 일제히 날아갔다.
회의장 안에는 피비린내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꺄아아아악!!!!”
사람들은 처참한 광경에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좀 당하는 척해주니까 너무 좋아하더라? 연기였다라는 것을 드러내기가 미안하더라고.”
“그, 그런…….”
다들 기대가 컸던 만큼 절망감도 컸다.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나 혼자서 러시아군 50%를 박살 냈고 핀란드에 대폭발을 일으켰어. 그런 내가 그딴 총알에 당하겠어?”
“…….”
짜르가 다시 한번 자신의 업적을 말하자 사람들은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다들 일단 도망쳐!!!!”
“으아아아아아!!!!!”
사람들은 괴성을 지르며 회의장에서 나가려고 했다.
다들 멘붕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에휴. 꼭 이렇게 자세하게 알려줘야 깨닫는다니까?”
슈욱-! 촤악-!
“끄아아아악!!!!”
짜르는 유유히 걸어가며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죽여나갔다.
“어? 너 아까 warrior에게 부탁하자고 했던 놈이지?”
짜르는 독일 대통령을 발견하고 그에게 순간이동 해 다가갔다.
“헉!”
독일 대통령은 짜르가 앞길을 막자 깜짝 놀라며 뒤로 쓰러졌다.
그는 두려움에 온몸을 떨어댔다.
“아까까지 그 위엄있는 얼굴은 어디 갔어? 지금은 너무 모양 빠지잖아.”
“이 미친 새끼…….”
독일 대통령은 무서움에 굴하지 않고 짜르를 노려봤다.
“나름 근성은 있네? 몸은 오들오들 떨리고 있는 와중에 말이야. 하지만 그냥 그뿐이야.”
슉-! 촤악-!!!
짜르는 독일 대통령의 두 발을 잘라버렸다.
“끄아아아아악!!!!”
대통령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이리저리 뒹굴었다.
“흐하하하하하. 넌 지금이 제일 보기 좋은걸? 진짜 한심해 죽겠어.”
짜르는 독일 대통령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박장대소했다.
“네가 그렇게 희망을 걸었던 warrior를 부르짖어봐. 혹시 아냐? warrior가 정말로 나타나서 너를 도와줄지 말이야.”
짜르는 대통령에게 얄밉게 이죽댔다.
“근데 그 새끼는 겁쟁이라 안 나타날 것 같아. 그러니까 그냥 죽을까?”
짜르는 손을 들어 대통령을 완전히 베어버리려고 했다.
“잘 가라.”
슈욱-! 챙-!
그때 데이터 쉴드가 나타나 짜르의 공격을 막았다.
“뭘 잘 가? 새끼야.”
나는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놈에게 말했다.
“…너. warrior냐?”
“응. 알면서 뭘 물어?”
“하하하하하! 진짜로 나타났네?”
녀석은 처음에는 당황한 것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나의 등장을 반가워하는 것 같았다.
역시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응. 너 조지려고 이렇게 친히 등장해주셨다. 영광으로 여겨.”
“예이. 영광입니다요.”
와…….
이 새끼 정말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깐죽댄다.
이쯤 되니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의심스럽기 시작했다.
왜 다들 힘을 얻고 나서 저 지경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 강한 힘을 잘 이용할 생각은 안 하고 자신의 강함에 취해 사람을 괴롭히고나 앉았다.
지잉-!
나는 독일 대통령의 신체 데이터를 조작해 그의 몸을 회복시켜 주었다.
녀석을 그것을 보며 코웃음 쳤다.
“하! 기껏 잘라놨는데 왜 또 그걸 복구시켜 주고 난리야? 그나저나 대단한 능력이긴 하네. 차라리 의사나 하지 그래? 그쪽이 더 적성이 맞아 보이는데 말이야?”
“야!”
나는 근엄하게 녀석을 불렀다.
“뭐? 무슨 할 말 있어?”
“지금부터 내가 너를 체벌하기 시작할 거야. 달게 받길 바란다.”
“하하하하. 건방진 녀석. 언제까지 네가 최고인 줄…….”
퍼억-!!!!!!!
둔탁하고 찰진 소리와 함께 녀석은 바닥에 고꾸라졌다.
“커헉!!!”
녀석은 새빨간 피를 입에서 뿜었다.
“이제 시작이야. 어금니 꽉 깨물고 있어. 그래봤자 이빨 다 털리긴 할 건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