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새로운 빌런 (1)
“네.”
나는 남아있는 카이막을 마저 먹으며 대답했다.
내 스타일이 아니기는 했지만, 또 흔하게 먹는 게 아니라니까 일단은 다 먹고 싶었다.
“이렇게 같이 맛있는 거 먹으니까 너무 행복하네요.”
왠지 저 말보다 다른 말을 더 하고 싶어하는 분위기였다.
“저도 행복해요.”
나는 굳이 물어보지 않고 기다리기로 했다.
박이나의 표정은 살짝 어두워졌다.
“…라일 씨.”
박이나는 다시 내 이름을 불렀다.
“네.”
“저, 사실은 매우 불안해요.”
“뭐가요?”
“지금 너무 행복한데……. 혹시나 누가 이 행복을 빼앗아 가진 않을지 걱정되네요.”
“누가 감히 그러겠어요? 이 warrior 이라일이 절대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안심시키려고 한 말이었는데 굉장히 중2병 같은 멘트였다는 생각이 든다.
살짝 창피해지기 시작했다.
“하하하.”
박이나는 또 내 말에 웃기 시작했다.
“솔직히 라일 씨의 말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굉장히 오그라들어요.”
굳이 팩폭을 가하는 박이나다.
“하지만 저는 그 말만큼 안심이 되는 말이 없어요. 그 ‘저 warrior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때 말이에요. 라일 씨는 그때가 제일 믿음직스러워요.”
“하하하하하.”
박이나는 나름 내 흉내를 냈지만, 굉장히 어색해서 웃음이 나왔다.
“방금 그거 저 따라 하신 거예요?”
“그러긴 했는데, 잘 안됐네요.”
“다행이네요. 순간 ‘내가 저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하. 아니에요.”
우리는 서로를 보고 웃었다.
“저 warrior입니다.”
들어서 좋다면 또 해줘야지.
“걱정 마세요.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박살 내 버릴 테니까요.”
나는 박이나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이전에 무인도에서 겪었던 일은 제 부주의였지만, 이제 다시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저는 모든 신경을 이제 이나 씨에게 쓸 테니까요. 혹시라도 이나 씨를 위협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 즉시 저에게 저지당할 것입니다.”
나는 박이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박이나 또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네. 믿어요. 고마워요.”
“그러니까 걱정 말고 계세요. 이나 씨는 이나 씨의 행복에만 신경 쓰세요. 나머지는 다 제가 해결해 드릴 테니까요.”
“흐흐. 믿음직스럽네요. 저도 할 말이 있어요.”
“뭔가요?”
박이나는 역으로 내 두 손을 꼭 잡았다.
“어려운 일 있으면 제게 말해요. 어떻게든 도움이 되어 드릴 테니까요.”
“그 말도 믿음직스럽네요. 박이나 씨는 언제나 제 부탁은 다 훌륭하게 들어주셨으니까요.”
“하하하. 그 말 들으니 굉장히 쑥스럽네요.”
“뭐 어떻습니까? 우린 이제 연인 사이인데요. 이런 쑥스러운 말은 하면 할수록 더 좋지 않나요?”
“맞아요. 좋아요.”
박이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오버한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박이나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녀는 분명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만난 나는 행복한 사람이고.
“이동합시다. 경치 아름다운 곳에서 이런 행복한 순간을 더 만끽하고 싶네요.”
“좋죠.”
우리는 디오의 안내에 따라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인생 처음으로 이렇게 매 순간이 행복한 것 같다.
나는 다른 생각은 다 집어치운 채로 박이나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즐겼다.
***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 궁.
그의 집무실에서는 비서가 극비 보고서를 든 채로 옆에 서 있었다.
“그럼 브리핑 시작하겠습니다.”
“시작해.”
콘스탄틴은 시크하게 보드카를 한 모금한 다음 내려놓으며 말했다.
“FSB에서 며칠 전, 핀란드 팀페레에서 이상한 에너지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포착했습니다. 현상이 심상치가 않아서 FSB에서는 그곳으로 요원들을 파견해 조사하도록 지시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희 쪽에서만 요원이 온 게 아니라 미국에서도 요원들을 보낸 상태였습니다. 다행히 유럽 쪽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비서 쪽으로 고개를 전혀 돌리지 않은 채 볼펜만 돌리고 있는 콘스탄틴이었지만, 사실 그는 보고를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비서도 한두 번 콘스탄틴을 상대해본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차가운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보고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우리 쪽 요원이 미국 쪽 요원이 온 것을 미리 눈치채고 그들을 제거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 미국에서는 저희에게 계속 항의하고 있는 중입니다. 물론 비밀리에 말이지요.”
“그딴 개소리는 가볍게 무시해. 그래서, 그 에너지는 대체 뭐였는데?”
“FSB에서는 그것을 데이터 에너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데이터 에너지라…….”
콘스탄틴은 그게 무엇인지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warrior가 사용하는 능력과 연관이 있는 것이었다.
“네. warrior가 사용하는 에너지이죠.”
비서는 콘스탄틴이 알고 있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콘스탄틴은 이제 아예 비서 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가 그의 보고를 매우 흥미롭게 듣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지?”
“미국의 방해는 없앴지만, 핀란드에서 그곳의 경비를 너무나 삼엄하게 해서 접근에 실패해버렸습니다.”
“대체 뭐 하는 거야?!!!”
쾅-!!!
콘스탄틴은 분노하며 자신의 책상을 찍었다.
“만약 핀란드에서 그 에너지를 사용하게 되면 어쩌려고 그래?”
“다행히 요원들에 따르면 아직 핀란드에서는 그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할지 몰라서 그대로 두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대로 내버려 두면 사용하게 되고 말 거야. 그러면 또 warrior와 같은 존재가 나오는 거라고. 어떻게 감당하려고 일 처리를 그렇게 하는 거야?”
콘스탄틴은 많이 흥분했는지 의자에서 일어났다.
“당장 그 에너지를 얻어내.”
“그게……. 정말로 핀란드의 경비가 너무 삼엄해서 요원들이 어쩌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수상한 사람이 근처에 오면 바로 총으로 쏴버릴 정도로 강하게 경계한다고 합니다.”
“하!”
콘스탄틴은 속이 타는지 보드카를 다시 들이켰다.
“당장 핀란드로 군대를 파견해.”
“네?!!!”
콘스탄틴의 극단적인 발언에 비서는 깜짝 놀랐다.
“핀란드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국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뭐 어쩌라고? 그놈들 눈치 보면서 그냥 그 에너지 데이터를 핀란드에게 내주자고? 내가 봤을 때는 그게 제일 최악인데? warrior를 봐봐. 우리가 그 에너지만 얻게 된다면 유럽과 미국 놈들 조지는 거야 일도 아니야.”
콘스탄틴은 강하게 자신의 의사를 드러냈다.
“핀란드에서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분명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괜찮겠습니까?”
비서는 다시 한번 콘스탄틴의 의사를 확인했다.
“전쟁? 필요하다면 해야지. 그 에너지를 우리가 얻을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
“네. 알겠습니다.”
비서는 콘스탄틴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애매하게 하지 않고 앞뒤 볼 것 없이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제야 말이 통하는구먼. 당장 실행해. 그게 핀란드에게 넘어가는 순간 우린 바로 끝이니까 말이야.”
“예.”
그렇게 러시아의 핀란드 침공이 시작되었다.
그 어떤 예고도 없었다.
러시아에서는 순식간에 병력을 집결시켜 곧바로 침공을 강행했다.
일반 사람들은 내막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러시아의 돌발 행동에 어이가 없었다.
핀란드를 포함해 많은 국가들이 러시아의 만행을 비판하며 항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러시아는 핀란드의 침공을 강행했다.
“으아아아악!!!”
“꺄아아아악!!!!”
너무나 급작스럽게 터진 전쟁으로 인해 핀란드 사람들은 멘붕에 빠져버렸다.
그들은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상황이었다.
민간인들이 미쳐 대피를 다 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러시아군은 그러거나 말거나 팀페레로 진격해나갔다.
러시아군은 자신의 앞길을 막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박살 내며 나아갔다.
정부에서 팀페레를 무조건 빨리 점령하려고 요청했기 때문에 러시아군은 지시에 따라 거침없이 진격해나갔다.
핀란드에서는 러시아의 이런 돌발 행동에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질 않았고, 러시아군이 상상 이상으로 병력을 보낸 상태였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길목을 열어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단 하루 만에 러시아군은 팀페레 코앞까지 다가왔다.
핀란드에서도 러시아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눈치채고 팀페레로 군대를 전부다 배치시켰다.
핀란드 또한 사생결단으로 팀페레를 지킬 생각이었다.
“대통령님. 팀페레에 생각보다 군대가 많이 배치되어 있어 점령이 쉽게 되지 않을 거란 전망입니다.”
비서는 사령관으로부터 받은 보고를 콘스탄틴에게 전했다.
러시아군 사령부에서는 팀페레에서 핀란드군과 맞붙게 될 시 피해가 극심할 거고, 자칫 잘못하면 한 달 이상 동안 전투가 지속될 거라고 보고했다.
한 달은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그 정도 시간이면 핀란드에서 데이터 에너지를 사용하게 될 수 있고도 남았다.
콘스탄틴은 결단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당장 팀페레에 핵폭탄 투하해.”
“네?”
비서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혹시나 콘스탄틴이 그 지시를 할 수도 있다고 예상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바로 말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정말이십니까?”
“이미 일은 벌어졌어. 예전에도 말했지만 제일 최악은 핀란드가 그 데이터 에너지를 사용하게 되는 상황이야. 그걸 저지할 수만 있다면 핵폭탄을 사용하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지.”
콘스탄틴의 뜻은 확고했다.
그는 어떻게든 그 데이터 에너지를 확보하고자 했다.
그는 오랫동안 힘을 갈망해왔다.
콘스탄틴은 warrior를 보면서 자기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warrior는 너무나도 멋졌다.
그에게 반하는 세력은 무참하게 짓밟혔고, 그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다녔다.
콘스탄틴 또한 warrior와 같이 힘을 가지고 싶었다.
그런데 드디어 그 기회가 찾아왔다.
콘스탄틴은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지금 그에게 망설임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당장 발사시켜.”
“……네. 알겠습니다.”
비서는 경악했지만 콘스탄틴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콘스탄틴의 말대로 일을 벌어진 상태였고 그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었다.
결국 비서는 러시아군에게 콘스탄틴의 지시를 전달했다.
***
“이, 이상합니다!!!!”
팀페레에 대기하고 있던 핀란드 장교는 황급히 자신의 사령관에게 달려갔다.
“뭐가 말인가?”
“러시아군이 전부 후퇴하고 있습니다.”
“뭐?!!!”
핀란드군 사령관은 직접 가서 러시아군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부하의 말대로 러시아군은 퇴각하고 있었다.
“뭐야? 갑자기……. 우리가 무서워서는 절대 아닐 텐데 말이야.”
“사령관님!!!!”
그때 다른 장교가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
“러시아에서 여기로 핵미사일을 발사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