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오늘부터 우리는 (2)
“뭐야?”
일수는 나랑 박이나가 같이 연구소에 들어오자 어리둥절하다는 듯이 반응했다.
내가 박이나의 손을 잡자 일수의 눈썹이 올라갔다 내려왔다.
“뭐지? 설마 둘이 사귀는 거예요?”
“응. 그렇게 됐어.”
“에?!!!!”
일수는 갑자기 경악했다.
대체 그 반응은 뭔데…….
“어떻게 갑자기 그렇게 됐대요?”
어이구.
아주 놀고 있다…….
연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저러고 있다는 게 진짜 어이가 없다.
“네가 판 만들어주지 않았냐? 대체 그렇게 나오는 이유는 뭔데?”
“너같이 매정한 녀석이 그렇게 한 방에 성공할 줄은 몰랐거든.”
“…….”
대체 일수 저 녀석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나 씨. 우리 라일이 잘 부탁드립니다. 무뚝뚝하고 매정한 것 같아도 그래도 정 있고 좋은 놈이에요.”
“네. 저도 잘 알고 있어요.”
박이나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콩깍지가 씌었다는 게 이런 건가 싶은데, 저렇게 웃는 박이나는 너무나 예쁘다.
원래도 예뻤지만, 유난히 더 예뻐 보인다.
“와. 라일아. 아주 눈에서 꿀이 떨어진다. 너도 그런 얼굴을 할 줄 아냐?”
일수는 뭔가 굉장히 음흉한 얼굴을 하며 나를 쳐다봤다.
“시끄러.”
“헐. 이제 여자친구 생겼다고 나한테 차갑게 대하는 거야? 너무하네.”
“그런 거 아니야. 네가 놀리니까 그러지.”
박이나도 좋지만 일수 또한 내게 소중하다.
나는 녀석을 달래주었다.
“근데 둘이 데이트 장소로 여길 택한 거야? 다른 좋은 데도 많은 데 왜 하필 여기로 온 거야?”
“내가 설령 아무리 매정하다고 해도 설마 데이트 장소로 여기를 왔겠냐?”
“풋!”
박이나는 그만 웃음을 참지 못하고 뿜고 말았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죄, 죄송해요!”
박이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황급히 사과했다.
“라일 씨 말이 되게 웃겨서요.”
“이나 씨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네요. 저게 웃겨요?”
“……저게?”
나는 일수를 보며 인상을 썼다.
일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피식했다.
“네. 라일 씨랑 같이 있으면 행복해서 계속 웃음이 나와요.”
“와아. 하하하하하하하!”
일수는 아예 대놓고 박장대소했다.
“이제 보니 염장 지르려고 왔네요. 저 일 해야 하니까 방해하시려면 이만 가주실래요?”
“아니야. 우리도 지금 일하러 온 거야. 얼마나 진행됐는지 확인하려고 말이야. 이를테면 지금 상황은 CEO랑 회자 소유주가 직접 확인하러 온 거라 할 수 있지.”
“그것을 빙자한 염장 지르기 같은데 기분 탓인가?”
일수는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너……. 설마 나를 뺏긴 것 같아서 그런 거야? 걱정 마. 나는 너 안 버려.”
“착각도 자유시네요!”
일수는 기겁하며 말했다.
“솔직히 부러워서 그렇지. 나도 수진이랑 잘 되고 싶으니까.”
“아……. 그래?”
“뭐야? 왜 그래? 너 내가 수진이 좋아하는 거 알고 있잖아.”
“그니까……. 그게 말이야.”
나는 조심스럽게 일수 뒤를 가리켰다.
일수는 순간 얼굴이 굳어버렸다.
“…….”
수진이 또한 굳은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일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수진이를 바라봤다.
“수, 수진아…….”
누가 봐도 엄청나게 당황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목소리였다.
“오빠……. 그게 무슨 소리죠?”
“그게…….”
일수는 우물쭈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박이나를 쳐다봤다.
박이나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를 어서 벗어나는 게 답이었다.
“아무래도 확인하는 것은 다음에 해야겠다. 많이 바쁜 것 같으니까 우리는 이만 가볼게.”
나는 황급히 인사를 한 후 박이나와 함께 사라졌다.
떠나는 나를 바라본 일수의 마지막 표정은 정말 가관이었다.
마치 세상이 끝난 것과 같은 표정.
미안.
일수야.
그건 네가 혼자 해결해야 하는 거란다.
“…….”
전일수와 장수진 사이에 계속해서 정적이 흘렀다.
“무슨 소리냐니까요?”
먼저 침묵을 깬 건 장수진이었다.
“그게…….”
전일수는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화제를 다른 곳으로 넘기기로 했다.
“라일이랑 이나 씨랑 사귀기로 했다!!!! 대박 아니냐?”
전일수는 오버까지 하며 매우 큰 일이 난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장수진은 그건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그건 바보라도 알 수 있는 거였어요. 그래서 우리가 자리를 피했던 거 아니었나요? 지금 그 이야기 하고 있는 게 아닐 텐데요.”
장수진은 그야말로 단호박이었다.
전일수는 말을 다른 데로 돌릴 수가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이실직고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수진아……. 나 사실 너 좋아해. 첫눈에 반했었고 지금은 더 좋아해.”
“…….”
장수진은 차가운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전일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숨이 막힐 듯한 정적이 흘렀다.
전일수는 그 시간이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그는 장수진이 제발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바랐다.
“수진아…….”
결국 침묵을 버티지 못하고 입을 땐 전일수였다.
“오빠.”
하지만 장수진은 전일수의 말을 끊었다.
“어.”
“좋아하니까 뭐 어떻게 하자고요?”
장수진의 말이 너무나 차갑게 느껴져 전일수는 자신감을 잃었다.
그는 자기가 완전히 차였다고 생각했다.
“오빠. 진짜 왜 이렇게 답답해요?”
“어?”
전일수는 의아하다는 듯이 장수진을 바라봤다.
어느새 장수진의 얼굴은 많이 풀려 있었다.
오히려 장수진의 표정은 기뻐하는 듯했다.
“아니. 왜 사귀자고 말을 못 하냐고요?”
“어……. 그게…….”
“저랑 사귀어요. 저도 오빠 좋아해요.”
그대로 돌직구를 날리는 장수진이었다.
“솔직히 언제 말하는지 기다리고 있었어요. 오빠도 저를 좋아하는 게 너무 뻔한데 사귀자고 말을 안 하더라고요. 저는 확실한 게 좋거든요. 또 그렇다고 먼저 말하기는 싫고. 근데 진짜 답답해서 그냥 제가 말해버렸네요.”
장수진은 많이 부끄러운지 설명을 길게 했다.
하지만 어차피 전일수는 장수진의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그전에 장수진이 자신에게 했던 말만 계속해서 남아있었다.
“저랑 사귀어요……. 저도 오빠 좋아해요…….”
굳이 그걸 입 밖으로 다시 말하는 전일수였다.
“……대답은 안 하고 제가 했던 말만 반복할 거예요?”
장수진은 전일수가 많이 답답한지 인상을 썼다.
“좋아. 너무 좋아!!!!”
갑자기 전일수는 탄성을 질렀다.
“좋다고!!!!!”
전일수는 너무 기뻐하며 장수진에게 다가가 그녀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사귀자!!! 내가 최고의 남자친구가 되어줄게!!!”
솔직히 전일수의 멘트는 너무나도 구렸고 깼다.
하지만 장수진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그녀는 로맨스적인 스타일도 아니었다.
차라리 장수진에게는 멋진 달콤한 말보다는 방금 전일수가 했던 말처럼 직설적이고 강한 만들이 더 효과적이었다.
게다가 전일수의 말에서는 진심이 묻어나왔다.
장수진은 전일수를 보며 활짝 웃었다.
“저도 최고의 여자친구가 되어줄게요.”
장수진은 전일수의 손을 들어 가까이 갔다.
“하하하하하…!”
전일수는 복에 겨운지 계속해서 웃어댔다.
그는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수진아.”
“이제 시작이고 앞으로 같이 즐길 날들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데 죽길 뭘 죽어요?”
장수진은 어이없어하며 전일수의 어깨를 살짝 때렸다.
“밥이나 먹으러 가요. 배고파요.”
“좋지.”
둘은 손을 잡고 같이 순간이동해서 어디론가 향했다.
그렇게 두 번째 커플도 탄생했다.
***
“둘은 괜찮을까요?”
나는 살짝 걱정이 되어서 박이나에게 물었다.
“괜찮을 거예요.”
박이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왜요?”
“수진 씨도 일수 씨를 좋아하니까요.”
“에? 그래요?”
박이나의 말은 상당히 의외였다.
나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저는 수진이가 전혀 관심 없는 것 같았거든요. 그냥 걔는 격투 외에 다른 것은 흥미가 없는 것 같아요.”
“하하하하하.”
박이나는 내 말이 재밌는지 깔깔댔다.
왠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저렇게 웃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수진 씨가 로봇인 것처럼 말하네요. 수진 씨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에요.”
“뭐……. 그렇긴 하죠. 싸울 때 보면은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요.”
“저는 라일 씨랑 수진 씨랑 성격이 좀 비슷한 거 같아요. 나쁜 사람들 앞에서는 진짜 차갑고 무섭지만, 자기 사람들 앞에서는 한없이 다정하죠. 수진 씨도 적들에게는 강하지만 일수 씨에게는 매우 다정하잖아요.”
그러고 보니 둘이 장난도 치면서 잘 놀았던 것 같다.
“아마 저희에 이어서 둘도 이어졌을 거예요. 갑자기 커플 두 팀이 탄생 됐네요.”
“하하하. 참 일이 이렇게 되네요.”
나는 살짝 일수랑 수진이가 어떻게 있는지 확인했다.
박이나의 말 대로 진짜 둘은 이어졌다.
장수진은 역시 상여자다.
완전히 일수를 리드하고 있다.
“둘이 같이 지금 좋은 식당에 갔는데요? 일수 녀석. 완전 행복해서 미치려고 하네요.”
“어? 확인했어요? 거봐요. 제가 이어질 거라고 했잖아요.”
“근데 어느새 밥 먹을 시간이 됐어요. 저희도 밥 먹으러 갈까요?”
“좋죠.”
나는 얼른 디오에게 조언을 받아 박이나를 데리고 식당으로 이동했다.
오늘 디오의 추천은 터키 요리였다.
우리는 디오가 알려준 좌표로 이동해 이스탄불에 있는 한 식당으로 갔다.
“혹시 이런 거 싫으시면 말하세요. 다른 곳으로 가게요.”
“아뇨. 좋아요. 저 케밥 좋아해요. 대학교 다닐 때 즐겨 먹었어요.”
“오. 그래요? 케밥 좋죠. 저 그리고 사실 먹어 보고 싶은 게 있긴 한데.”
“뭔데요?”
“카이막이요.”
“카이막?!!!”
박이나는 갑자기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왜요?”
“저 진짜 완전 먹고 싶었어요. TV에서 봤는데 진짜 맛있어 보이는 거예요. 우와!”
박이나는 눈에 띄게 좋아하고 있었다.
“먹읍시다. 맛있으면 더 먹고요. 디오가 그러는데 여기가 카이막으로 완전 유명하대요. 터키 유명인들이 여기만 이용한다던데요?”
“오! 완전 기대돼요.”
우리를 한껏 부픈 마음으로 식당에 들어갔다.
디오가 미리 예약을 다 해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편하게 식당을 이용할 수 있었다.
디오는 정말 최고의 데이트 플래너다.
[…….]
왠지 자기를 그런 식으로 서술하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냥 가볍게 무시하기로 했다.
지금은 박이나에게 집중하고 싶다.
우선 케밥을 먹었다.
역시 현지식은 다르다.
내가 케밥을 그렇게 많이 먹은 것은 아니지만 진짜 이것은 어나더 레벨이다.
“와! 대박. 진짜 맛있어요.”
박이나도 좋아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다음으로 우리는 그렇게 기대하던 카이막을 먹었다.
“…….”
솔직히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차라리 요거트가 더 나았다.
“우와!!! 이런 맛이었구나. 진짜 대박.”
박이나가 매우 좋아하는 것 같으니 됐다.
어쨌거나 나도 케밥은 만족스럽게 먹었다.
“디오야. 고맙다.”
나는 속으로 디오를 칭찬해주었다.
그렇게 해주자 디오는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정말 얘는 이렇게 좀만 잘해줘도 좋다고 난리다.
“라일 씨.”
그때 박이나가 나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