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마무리 지어야 할 악연 (4)
이설아는 나를 보며 비열하게 웃었다.
저렇게 웃어도 예쁠 수 있다는 게 어이가 없지만, 어쨌거나 비열하긴 했다.
“내가 준비한 선물이다.”
“…….”
뭔가 ‘펑’ 하면서 터지거나 그럴 줄 알았는데 조용했다.
“디오. 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지금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하하하하하. 뭔지 궁금하지? 네 데이터 자아랑 열심히 찾고 있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근데 넌 아마 알아내지 못할걸?”
이설아는 이미 내 속을 꿰뚫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네놈의 동료가 생각보다 강해서 은닉이 풀려버렸지만, 너는 네 동료가 빈사 상태에 빠질 때까지 동료가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그리고 너는 내 정체를 아예 모르고 있었지. 정보 은닉만큼은 내가 달인이야.”
“어. 그래, 달인이라 좋겠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녀석을 바라봤다.
“정보 은닉의 달인이라고? 그러면 나는 정보 수집의 달인이다 이 새끼야. 창과 방패의 대결이네. 어디 한번 해보자.”
적당히 화답해주고 디오와 함께 녀석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아봤다.
[라일 님!]
“어. 나도 방금 알아냈어.”
이설아.
진짜 미친년 맞다.
지금 대한민국은 난리가 나 있었다.
“하하하하하. 알아냈나 보네? 뭐 어차피 그렇게 숨길 생각은 없었어.”
“이랬다가 저랬다가 아주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네. 방금은 내가 못 알아낼 거라면서.”
“널 놀려본 거지.”
“…….”
저 망할 년이랑 대화하다 보면 내가 유치원생이 되는 기분이다.
날 열받게 하려고 일부러 저러는 것 같은데, 적당한 무시가 답이다.
“근데 너, 이렇게 나랑 있어도 되는 거야? 어서 빨리 막으러 가야 하지 않을까?”
이설아는 나를 한껏 농락하고 있었다.
녀석이 지금 저러고 있는 이유는, 대한민국 전역이 싸움터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 국민이 단체로 이설아에게 정신 조작을 당하고 있었다.
전국 곳곳에 정신 조작 데이터를 보내는 스팟이 있어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었다.
그 스팟에는 이설아가 만든 데이터 감옥과 마찬가지로 알아서 활동하는 데이터 자아가 있는 것 같았다.
“지금에 비하면 데이터 감옥은 애교 수준일걸?”
또다시 이설아는 마치 내 속을 꿰뚫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현혹당한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고 했다.
이러다가는 모두가 자멸할 분위기였다.
전국 곳곳에서 교통사고가 났고 살육까지 일어나고 있었다.
“어이. 이설아.”
나는 무게를 잡으며 녀석을 불렀다.
저 미친년은 마치 이것을 즐긴다는 듯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난 말이야.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다 박살 냈어. 잠깐 애를 먹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결국에는 나한테 다 박살이 났단 말이야.”
나는 검지를 들어 녀석을 가리켰다.
“너도 마찬가지야. 곧 나한테 박살 날 거니까 목 딱 씻고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그러시던가.”
이설아는 내 말에 피식 웃었다.
맘 같았으면 당장에 녀석의 얼굴을 갈기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이설아와 싸울 수는 없다.
이설아에게 시간이 빼앗길수록 사람들은 계속해서 죽어나 간다.
지금만 해도 피해자가 엄청나다.
나는 재빨리 스팟으로 이동해 데이터 자아들을 파괴하려고 했다.
지잉-!
그때 갑자기 이설아가 내 앞에 나타났다.
“어딜 가려고?”
이설아는 내게 뒤돌려차기를 세게 날렸다.
퍼억-! 쨍그랑-!
얼마나 무식하게 때렸는지 데이터 쉴드가 바로 박살 나버렸다.
“너는 내가 바보로 보이니? 네가 그냥 막으러 가도록 내가 내버려 두겠어? 왜 이렇게 순진한 거야?”
이설아는 재밌다는 듯이 깔깔댔다.
“이런 게 이라일 너의 방식이지. 상대를 유치하게 농락하고 열받게 하고. 그러면서 상대가 더 처절하게 비참함을 느끼게 만드는 거 말이야.”
이설아는 이제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제 너도 한번 네 방식대로 당해봐.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괴롭혀 왔니? 너는 내가 사랑하는 사예드와 정철이도 죽였지. 그 대가는 네 죽음으로도 못 갚어. 너와 네 주변 사람 그리고 대한민국을 통째로 작살내도 모자란단 말이야.”
“진짜 미친년이네.”
이설아 저년의 개 논리를 듣자니 머리가 아파 온다.
“내가 사예드와 김정철을 죽였든 안 죽였든 어차피 그럴 계획이지 않았나? 뭔 내 핑계를 대고 있어? 그리고 내가 괴롭힌 사람은 너처럼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새끼들이었어.”
“어쩌라고? 응? 어쩌라고?”
녀석은 적반하장의 태도로 나왔다.
“불만 있으면 나를 때려눕혀 보시던가.”
이제 더 이상 말은 필요 없다.
여기서 저년이 죽든가 내가 죽든가다.
“미친년답게 빨리 죽는 게 소원인가 보지? 원한다면 조져줄게.”
나는 가볍게 몸을 풀었다.
“장수진보다도 뛰어난 요원이었던 나와 싸우겠다고? 하하하하하하하.”
이설아는 내가 같잖다는 듯이 말했다.
“나보다 데이터 사용 능력도 달려. 신체 능력도 달려. 대체 뭔 근거로 싸우겠다는 거지?”
“십새끼야. 뭔 말이 이렇게 많아? 그냥 덤벼 새끼야.”
진짜 요즘 좋은 말 좀 사용하고 싶었는데 도저히 도와주지를 않는다.
사람이 성질대로 살아야지 참았다가는 병나겠다.
“그래. 덤벼줄게.”
이설아는 다시 내게 돌진해왔다.
“하압-!”
이설아는 팔을 크게 휘두르며 내게 펀치를 날렸다.
쨍그랑-!
다시 한번 데이터 쉴드가 박살이 났다.
전투에서 만드는 데이터 쉴드는 급박하게 만들 거라 상대적으로 정교하지는 않지만, 핵폭탄에도 끄떡없을 정도의 강도이다.
하지만 이설아는 그 데이터 쉴드를 너무나도 쉽게 부숴버렸다.
“보통 요원끼리의 싸움에서는 말이야. 이렇게 주먹을 크게 휘두르면 자살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동작이 너무 커서 상대에게 빈틈을 너무 많이 보여준단 말이야.”
이설아는 다시 권투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너한테는 이렇게 해도 돼. 어차피 네놈한테는 방금 공격도 빠를 테니까 말이야. 덕분에 난 강한 공격을 할 수 있는 거지.”
그렇게 말하며 이설아는 다시 내게 펀치를 날렸다.
쨍그랑-!
이번에도 내 데이터 쉴드는 깨져버렸다.
슈욱-!
이번 공격은 아까보다 더 강했는지, 심지어는 데이터 쉴드를 부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여파가 나한테까지 들어왔다.
“치잇!”
데이터 쉴드가 충격과 스피드를 완화 시켜준 덕분에 공격을 피할 수는 있었다.
내가 요원은 아니지만 이 정도는 반응해서 피할 수 있다.
“어쭈. 피해? 생각보다 좀 하는데?”
이설아는 희열에 차며 목을 스트레칭했다.
“아주 한심하지는 않아서 고맙다. 그러면 싸움이 너무 싱거울 뻔했잖아.”
“하하…….”
나는 이설아를 보며 방긋 웃었다.
“너 아까 내 방식이 뭐라고 했지? 상대를 유치하게 농락하고 열받게 한다고 했었나? 맞아.”
나도 녀석과 마찬가지로 목을 가볍게 풀었다.
“마치 자신들이 나보다 강하다는 착각 속에 즐기게 만든 다음에 그것을 한꺼번에 무너뜨려서 더 깊은 절망감을 맛보게 해주지. 너도 지금 그것에 당하고 있는 거고 말이야.”
“하! 그렇다는 것은 지금 네가 날 봐주고 있었다는 말이야?”
“당연한 걸 왜 물어? 그러면 네가 진심으로 날 이기고 있었다고 생각했어?”
“진짜 허세 한번 기가 막히네. 너무 한심해서 눈물이 다 날 정도야.”
이설아는 내게 저벅저벅 걸어왔다.
“날 봐주고 있다는 이라일 씨. 어디 한번 이번에는 진심으로 해주실래요? 안 그러면 바로 죽습니다.”
이설아는 순간 빠르게 내게 돌진했다.
“하압!”
이설아는 다시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뭐?!!!”
그때 이설아는 깜짝 놀라면서 자신의 주먹을 쳐다봤다.
이설아의 주먹은 너무나도 천천히 나에게 가고 있었다.
“언제 날아오는 거야? 기다리다 잠들겠는데?”
나는 일부러 하품을 하는 시늉까지 했다.
“이익!”
이설아는 몸을 움직이기 힘들었는지 이를 꽉 물며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주먹은 약간 빨라지는 정도였다.
“애쓴다. 애써. 많이 힘들지?”
이설아의 주먹은 나에게 날아오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기다리기 힘드니까 그냥 내가 먼저 공격할게.”
이번에는 내가 이설아에게 펀치를 날렸다.
퍼억-!
내 주먹은 이설아의 얼굴을 정통으로 때렸다.
“커헉!”
이설아는 내 주먹을 맞고 땅에 곤두박질쳤다.
“너 이 자식!!!!”
이설아는 피 섞인 침을 뱉은 다음에 나를 쏘아봤다.
“아까 뭐 주먹을 크게 휘두르면 자살행위라 했지?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너무 빈틈이 많아서 때리기가 편한데?”
나는 바닥에 쓰러진 녀석을 쳐다보며 깔보듯 노려봤다.
현재 나는 이설아에게 정신 조작 데이터와 신체 조작 데이터를 동시에 보내고 있는 상태였다.
한 개만 막아도 힘들 텐데 두 개가 동시에 들어오니 아주 정신이 없을 거다.
아까의 한 방으로 녀석은 깨달았을 거다.
자신이 지금 X됐다는 것을 말이다.
“나를 우습게 봐도 너무 우습게 봤어.”
나는 이설아에게 다가갔다.
그래도 녀석은 반응하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아 있었다.
녀석은 여전히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크윽.”
이설아는 몸을 못 움직여서 분한지 강아지처럼 나를 노려보며 으르렁대고만 있었다.
“신체 조작 데이터를 막는 대신 정신 조작 데이터를 막는 걸 선택했네? 재밌는데? 신체는 조종당해도 정신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거야?”
“닥쳐!!!!”
이설아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 한번 우렁차네. 근데 말이야.”
짜악-!
나는 이설아의 뺨을 세게 갈겼다.
“크윽!”
“시끄러워. 작게 말해도 충분히 들리니까 조용히 말해.”
“닥쳐!!!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짜악-!!!!
“큭!!”
또 개기길래 뺨을 한 번 더 시원하게 갈겨주었다.
“언제까지 맞을래? 나는 네가 죽을 때까지 계속 때릴 수 있는데 말이야. 한번 해볼까?”
“…….”
녀석은 이제는 말을 하지 않고 씩씩거리면서 나를 매섭게 노려봤다.
짜악-!
또 뺨을 때려주었다.
“눈빛 되게 맘에 안 들어. 표정 관리 좀 해줄래?”
이렇게 말해도 이설아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어쭈. 표정 관리 안 해? 그러면 계속 맞아야겠네?”
짜악-!
“표정 관리 할래? 안 할래?”
이설아의 표정은 더 안 좋아졌다.
짜악-!
“어쩔 수 없지. 그냥 계속 맞고 싶나 보구나.”
짜악-!
원대로 또 때려주었다.
사실 표정이 좋게 나올 리가 없다.
저 상황에서 누가 표정이 좋을 수 있겠는가?
그냥 계속 뺨을 맞는 구렁에 빠지고 마는 거다.
“그만해!!!!”
이설아는 결국 참지 못하고 다시 소리를 질렀다.
“시발. 좋다고 이러고 자빠져있구나. 네가 이러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계속 죽어가고 있다.”
“어. 맞어. 내가 막으러 가는 것보다 너랑 싸워주기를 더 바라지 않았나? 원대로 해주고 있는데 왜 그만하라고 해?”
사실 지금 마음이 급하기는 했다.
하지만 녀석에게 그런 기색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여유로 두른 채 녀석을 농락했다.
“더 즐겨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