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마무리 지어야 할 악연 (3)
“칫!”
단검을 놓친 장수진은 이설아를 경계하며 노려봤다.
“슬프네. 몇 년 전만 해도 네가 나한테 그런 눈빛을 보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이제는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구나.”
“저 역시도 언니가 이렇게 변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정말 애석하네요. 진짜 지금이라도 멈추면 안 될까요?”
“하!”
이설아는 장수진을 우습다는 듯이 쳐다봤다.
“왜 안 되는 걸 알면서 계속 묻는 거야? 어린애처럼 굴지 마 장수진. 이미 파국은 시작되었어. 현실을 마주하라고.”
“그 현실이 개 같아서 마주하기가 너무 싫네요.”
“어쩌겠니. 그런다고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데 말이야.”
이설아는 단검을 돌려대며 장수진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죽자. 수진아. 그게 바로 네가 마주해야 할 현실이야.”
“엿이나 쳐드세요.”
“귀엽네. 아주 찢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말이야.”
이설아는 살짝 웃어 보인 다음 장수진에게 달려들었다.
“하압!”
이설아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장수진에게 검을 세게 내려쳤다.
챙-!!!!
장수진은 얼른 데이터 쉴드를 구축해 이설아의 공격을 막았다.
“그래. 계속 발악해봐!”
챙-! 챙-!!!
이설아는 검으로 데이터 쉴드를 사정없이 내려치기 시작했다.
쨍그랑-!
결국 데이터 쉴드는 얼마 못 가서 깨져버리고 말았다.
“크윽-! 제길!”
“그것 봐. 결국 넌 거기까지라고.”
푸슉-!!!!
“커헉-!!”
이설아는 장수진의 복부에 검을 꽂아 버렸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설아는 검을 쑤셔서 마구 돌려댔다.
“꺄아아아아악-!!!”
극심한 고통에 장수진은 비명을 질렀다.
“듣기 좋네. 너무 아름다운 소리야.”
이설아는 사이코패스 같은 발언을 하며 희열에 차 웃었다.
푸슉-!!! 촤아아악-!!!
이설아가 검을 빼자 장수진의 복부에서 피가 솟구쳐 나오기 시작했다.
장수진은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이설아는 그 모습을 보며 미친 듯이 웃어댔다.
바닥에 쓰러진 장수진은 아무 말도 못 한 채 몸만 꿈틀대고 있었다.
“결국은 이렇게 될 거였다. 수진아. 내게 붙었으면 네가 이럴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야.”
퍼억-!!!
이설아는 안 그래도 죽어가는 장수진을 세게 발로 찼다.
“이게 다 네가 그 거지 같은 이라일 편에 붙어서 그런 거야. 자고로 사람은 선택을 잘해야 해. 그래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거든.”
“난 잘 붙은 거 같은데?”
갑자기 너무나 멀쩡한 장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
푸슉-!!!
“커헉-!!!”
장수진이 뒤에서 나타나 이설아의 어깨에 칼을 꽂아버렸다.
“뭐야?!!!”
“진짜 괴물 같은 반사신경이네. 그걸 피한다고? 언니가 대단하긴 하네요.”
장수진은 그 와중에 몸을 돌려 치명타를 피한 이설아를 보며 감탄했다.
“너 이 새끼…….”
이설아는 장수진을 노려보며 어깨에 꽂힌 칼을 빼내었다.
“그걸 또 아무렇지 않게 빼다니. 언니 무슨 좀비예요?”
장수진은 이설아를 놀리며 그녀를 자극했다.
“살아있었던 거냐?”
이설아는 장수진 옆에 서 있는 전일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전일수는 장수진의 부축을 받고 있었다.
죽을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피해는 상당했는지 전일수의 온몸은 상처투성이였고 피가 범벅이었다.
“위험했지. 진짜 그 아픈 와중에 다른 생각 하나도 안 하고 어떻게든 데이터 쉴드만 만들자 했던 게 신의 한 수였어. 하마터면 저승 구경할 뻔했다고.”
전일수는 많이 다친 와중에도 농담조로 말하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성공했네. 나한테 한 방 먹인 거.”
“어. 근데 한 방 가지고는 부족해. 내가 이 꼴을 당했는데 널 더 괴롭히지 않고 어떻게 참아?”
전일수는 이설아를 향해 깊은 적의를 드러냈다.
“그리고 아무리 허구라지만 우리 수진이를 그렇게 만들다니. 넌 내가 가만두지 않아.”
“하! 진짜 너무 애틋해서 못 봐주겠다. 남친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니?”
“네 남편 네가 걷어찼잖아 이 미친년아! 걔 죽어가는 동안 너는 뭐 했는데?”
이미 스토리를 전해 들은 전일수는 질린다는 말투로 이설아에게 따졌다.
“입 함부로 놀리는 거 보니,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
방금까지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던 이설아는 상당히 격양되어 있었다.
“아까 그 한 방을 제대로 꽂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생각해라. 그게 너희의 마지막 기회였으니까 말이야.”
지잉-!
이설아는 순간 이동해서 전일수의 뒤로 이동했다.
그녀는 이제 아예 봐주지도 않고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하압!”
이설아는 있는 힘껏 전일수를 검으로 내려쳤다.
쨍그랑-!
전일수는 황급히 데이터 쉴드를 구축했지만, 그 한 방에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충격의 여파로 전일수와 함께 그를 부축하고 있던 장수진도 뒤로 자빠져버렸다.
“이 미친! 뭔 힘이 이렇게 강해?!!!”
“오빠! 또 조작하고 있어 봐요. 제가 처리할 테니까요.”
“오케이!”
전일수는 곧바로 이설아의 감각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난 이제 데이터 조작에 도가 텄다니까? 이설아 넌 나한테 잘못 걸렸어.”
전일수의 조작으로 인해 이설아는 또 움직임을 멈췄다.
이설아는 우스운 꼴로 동작을 멈추고 있었다.
“수진아! 빨리 공격해!”
“네!”
장수진은 곧바로 한쪽에 떨어져 있던 자신의 검을 들어 이설아의 배에 꽂아버렸다.
“언니. 저한테 했던 거 그대로 돌려드리죠.”
전일수가 고통도 못 느끼도록 이설아의 감각을 조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설아는 가만히 있은 채로 입에서 피만 쏟고 있었다.
“수진아! 얼른 마무리해버려.”
“네.”
장수진은 이설아의 복부에서 칼을 빼낸 다음 바로 그녀의 목을 향해 검을 꽂았다.
푸슉-!!!!
이설아는 피를 쏟으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하아……. 하아…….”
장수진은 기분이 매우 이상했다.
그래도 한때 자신이 따르고 좋아했던 사람을 자기 손으로 죽였다는 게 뭔가 굉장히 찝찝했다.
“후련할 줄 알았는데……. 기분이 더 거지 같네.”
장수진은 눈을 질끈 감으며 쓰러져 있는 이설아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잘 가요. 설아 언니. 이렇게 돼서 정말 마음이 아프네요…….”
장수진은 이설아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수진아…….”
전일수는 그러고 있는 장수진을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봤다.
“전일수!”
갑자기 그때 이라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 라일이?”
전일수는 주위를 둘러봤지만 이라일을 찾을 수가 없었다.
“뭐야? 어딨는 거야? 너 또 장난치는 거야?”
“전일수!!! 정신 차려!!!!”
이라일의 목소리에서는 다급함이 느껴졌다.
“대체 어딨는 거야? 이제야 나타난 주제에 지금 장난치는 거야? 우리 죽을뻔해서 지금 장난할 힘도 없거든? 너 나 지금 다친 거 안 보이냐?”
전일수는 갑자기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에게 갑자기 극심한 고통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전일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일수야!!!”
나는 쓰러져 있는 일수를 흔들어댔다.
하지만 일수는 미동도 없었다.
[아직 살아는 있습니다.]
“당장 데이터 조작해서 회복시켜.”
[네.]
나는 일어서서 그 모든 상황을 재밌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는 이설아를 노려봤다.
“너 이 새끼. 곱게 죽을 생각 절대 하지 마라.”
“진짜 눈물겨운 장면이네. 나도 눈물이 날 것 같다.”
이설아는 했던 말과는 달리 코웃음을 치며 나를 완전히 조롱하고 있었다.
“라, 라일 님…….”
바닥에 쓰러져 있는 수진이는 신음하며 힘겹게 내 이름을 불렀다.
모두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이 녀석들 본인들이 이설아를 죽인 줄 알았겠지만, 모두 이설아에게 농락당하고 있었다.
일수의 조작 능력은 확실히 뛰어났다.
그건 내가 인정한다.
이년이 괴물 같은 거지.
일수의 데이터 조작을 푼 이설아는 역으로 수진이와 일수를 속이며 이 둘을 공격했다.
그때 내가 등장해서 막아준 거다.
“수진아. 좀 감동이긴 했어. 내 죽음에 슬퍼해 주다니. 근데 네가 나를 죽여놓고 그렇게 눈물 흘리는 건 좀 아니지 않냐?”
이설아는 이번에 쓰러져 있는 수진이를 보며 말했다.
“젠장……. 완전히 놀아나고 있었던 건가…….”
수진이는 분한지 쓰러져 있는 채로 씩씩대고만 있었다.
슈욱-!
나는 근처에 있는 돌멩이를 이설아에게 힘껏 던졌다.
퍼억-!
이설아는 가볍게 돌멩이를 받았다.
녀석의 시선은 이제 나에게로 돌아왔다.
“어이 이설아! 엄한 애 괴롭히지 말고 나랑 놀자.”
“하하하.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너도 빨리 죽고 싶나 보지?”
“하! 나와 싸우기 싫었으면서 허세는.”
나는 녀석에게 한껏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솔직히 나는 수진이와 일수가 이설아와 싸우고 있는지 몰랐다.
이설아가 계속해서 나에게 조작된 데이터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설아는 나도 속이면서 동시에 수진이와 일수를 상대해야 했기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일수의 조작에 쉽게 당했던 것이었다.
이설아는 아무래도 이대로 가다가는 일수에게 당하겠다고 판단했는지 나를 속이는 것은 그만두고 일수와 수진이 쪽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나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데이터 조작을 동시에 여러 개 시도하려니까 힘들지? 일수와 수진이를 빠르게 제거하고 나를 상대할 생각이었나 본데 이걸 어쩌나? 내가 네 생각보다 훨씬 더 빨라서 말이야.”
“엄청 화났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느라 애쓰네. 애써. 너 사실은 나한테 겁나 열 받았잖아.”
하하…….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얕보였지?
“이설아. 나한테 제대로 한 방 먹었으면서 이렇게 겁 없이 다시 내 앞에 나타난 것에 경의를 표한다.”
“뭐 솔직히 한 방 먹기는 했지. 네가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어서 말이야. 데이터 통로를 죄다 태워버리다니. 대체 어떤 사고방식을 가졌길래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거지?”
“나도 미친 것으로는 어디 가서 지질 않아서.”
“하하하하하. 진짜 미친놈이라니까…….”
서로 계속해서 신경전이 오갔다.
뭔가 굉장히 유치했으나 저 개 같은 년한테는 이런 것도 지기 싫었다.
나는 계속해서 녀석을 자극했다.
“이제 너도 그 개 같은 놈들 따라서 하늘나라에 가야 하지 않겠어? 혼자는 외롭잖아.”
“…….”
도발이 제대로 먹혔나 보다.
이설아의 얼굴은 웃음기 하나 없이 싸늘하게 변해 있었다.
“너……. 사람 새끼냐?”
이설아는 완전 정색하며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 새끼냐고?!!!!! 어떻게 사람을 죽여놓고 그렇게 나오는 거야?!!!!!!”
이설아는 분노하며 나에게 삿대질까지 해댔다.
“대체 뭐 하자는 거야? 너 그놈들이 없기를 바랐던 것 아니었어? 왜 이제 와서 난리인 건데? 막상 없어지니까 그리워? 진짜 이거 미친년 아니야?”
나는 녀석이 저렇게 격분하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
정말…….
뭐 하자는 건지.
“그래. 나 미친년이야. 그래서 나도 상상 이상의 재밌는 것을 준비했지. 어디 한번 맛봐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