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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화. 마무리 지어야 할 악연 (1) (184/201)

183화. 마무리 지어야 할 악연 (1)

이대로 가다가는 데이터 장벽에 의해 연천 연구소가 찌부러질 기세였다.

“막아야 해…!”

장수진은 수축하고 있는 데이터 장벽 위로 순간이동 해 올라갔다.

그녀는 바로 해체작업에 들어갔다.

“이 언니는 대체 뭘 만든 거야?!!!”

장수진은 어이없을 정도로 견고하고 두꺼운 데이터 장벽에 혀를 내둘렀다.

그냥 무턱대고 해체하다가는 답이 없었다.

이 속도로는 평생 해도 해제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게다가 이 망할 장벽은 부숴도 부숴도 알아서 복구되었다.

“망할!!!!”

쾅-!!!

장수진은 답답한 마음에 장벽을 때려보았다.

장벽은 살짝 패일 뿐이었다.

그마저도 금방 복구되었다.

“어떻게 한다…….”

딱히 좋은 수가 안 보여서 깝깝할 따름이었다.

“뭐 하냐 아가야?”

그때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라일 님!”

수진이는 나를 보며 화들짝 놀랐다.

“지금 장벽이 수축하고 있어요. 이 안에 일수 오빠가 갇혀 있는 것 같은데…….”

“다 알아. 그래서 지금 이렇게 히어로가 등장했잖니.”

나는 얼른 데이터 장벽에 손을 댔다.

“디오. 당장 핵이 어딨는지 찾아.”

[네. 맡겨주십시오.]

이미 해제 작업을 두 번이나 해봤기 때문에 척하면 척이었다.

나는 장벽을 살짝 부쉈고 디오는 복구 데이터가 오는 경로를 추적했다.

[핵 위치 발견했습니다.]

“오케이 그러면 바이러스 데이터 보낸다.”

곧바로 핵 잠식 작업에 들어갔다.

모든 것이 순탄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라일 님! 거대한 데이터가 개입하고 있습니다.]

디오는 급하게 이설아의 개입을 알렸다.

사예드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적극적인 거 같았다.

“그 미친년은 자기 동료가 죽을 때는 내내 가만히 있더만 왜 이제 와서 지랄인 건데?”

디오의 말대로 급격하게 데이터가 유입되고 있었다.

[얼른 통로를 막아야 합니다. 이러다가는 제가 잠식됩니다.]

이설아 그 미친년은 역으로 디오를 잠식하려 했다.

“내가 만만한가 보네.”

솔직히 이설아에 대한 적의가 그렇게 깊지는 않았다.

그런데 점점 화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일수를 건들고 이제는 나를 건들어? 정면으로 공격해 온다 이거지?”

나는 이설아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으려고 했다.

[라일 님……? 통로를 막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어. 그런 건 내 성격에 맞지 않아서 말이야. 우리가 언제부터 정면 승부를 피했어? 개기는 놈들 죄다 가차 없이 없애버리지 않았었나?”

나는 이를 빠드득 갈며 말했다.

“이설아 이 건방진 년. 어디 한번 와봐라!!!”

나는 데이터 통로에 전기 데이터를 흘려보냈다.

전기 데이터는 이설아가 보내는 바이러스 데이터는 물론 통로까지 죄다 태워버렸다.

이전에 잭슨에게 이 방법으로 엿을 먹인 적이 있지.

지지지지직-!!!!

전기 데이터는 통로들을 죄다 박살 내고 다녔다.

물론 지금 내가 하는 짓은 굉장히 무모하다.

데이터 길을 죄다 파괴해 데이터 흐름을 끊기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난 이제 복구 능력도 얻었다.

이설아를 조진 뒤에 복구하면 된다.

슈슈슈슉-! 콰앙-!

전기 데이터는 통로를 따라 쭉 이설아에게 가 그대로 폭발해버렸다.

[라일 님. 이설아에게 한 방 먹였습니다.]

“하하하하! 역시 이게 내 스타일이라니까.”

디오 말대로 이설아는 한 방 제대로 먹었는지 더 이상 데이터를 보내지 않고 있었다.

사실 통로가 다 망가져서 어차피 데이터를 보낼 수 없기는 했다.

연천 데이터를 둘러싸고 있는 데이터 장벽은 더 이상 수축하지 않았다.

“라일 님. 장벽이 움직이지 않고 있어요!!!!!”

수진이는 환희에 차며 외쳤다.

나는 녀석을 보며 씨익 웃었다.

“나 warrior야. 어디 내 앞길을 막고 있어.”

이제 나머지 작업은 이 장벽을 산산조각 내는 것이다.

[잠식 끝냈습니다.]

이설아의 방해가 없는 이상 핵을 차지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좋아. 이제 이 거지 같은 것 좀 박살 내볼까?”

나는 오른팔을 돌려대며 몸을 풀었다.

그런 다음 오늘 주먹의 질량 데이터를 변환했다.

“하압!!!”

나는 격파 시범을 보이듯 높이 뛰어오른 다음에 장벽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콰아아앙-!!!!!

묵직한 소리와 함께 데이터 장벽은 산산조각이 나며 무너졌다.

쿠쿠쿠쿠쿵-!!!!

깨진 데이터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아까운 데이터들이네. 디오야. 흡수해라.”

[네.]

갈길 잃은 데이터들은 디오가 업그레이드하는 데 좋은 양분이 되었다.

“진짜……. 라일 님이 대박이긴 하네요.”

장수진은 내 강함에 감탄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제가 백날 노력해도 라일 님한테는 안 될 거 같아요. 정말 어디까지 강한지 측정이 안 되네요.”

“당연한 소리 좀 하지 말아줄래?”

나는 수진이의 머리를 툭 건들었다.

“빨리 일수나 찾으러 가자.”

“네.”

우리는 순간이동해서 일수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

나와 수진이는 일수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이가 없었다.

녀석은 아무것도 모른 채 계속 연구에 집중하고 있었다.

“일수야…….”

내가 불러도 일수는 반응이 없었다.

진짜…….

놀라운 집중력이다.

근데 이건 좀 심한데…….

“일수 오빠.”

“……어? 수진아!”

저 새끼가…….

내 목소리에는 미동조차 없었으면서 수진이가 부르자 바로 반응한다.

“엥? 라일이 너는 또 언제 왔냐?”

천진난만한 얼굴로 저렇게 물어보니 화를 낼 수도 없다.

“방금 왔다…….”

“어쩐 일이야? 또 확인하러 왔어? 좀 기다려봐. 거의 다 만들었으니까.”

일수는 질린다는 식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표정을 보니 속에서 뭔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저런 녀석을 구하려고 내가 이렇게 생지랄을 하다니…….”

진짜 욕이 절로 나왔다.

“구한다니. 무슨 말이야?”

일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게 더 열받았다.

“오빠. 아까까지 굉장히 두꺼운 데이터 장벽에 갇혀 있었어요. 그리고 그 데이터 감옥이 수축해서 이곳을 부수려고 했고요. 전혀 몰랐어요?”

“뭐? 진짜?!!!”

그제야 놀라는 일수였다.

“나 진짜 전혀 몰랐어. 세상에……. 하마터면 아무것도 모른 채로 여기에서 개죽음당할 뻔했잖아? 아……. 소름 돋아.”

“어떤 의미로는 정말 대단하네요.”

수진이는 어이없어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댔다.

“나 이러다가 그냥 연구만 하다 죽을 거 같아. 에휴. 내 신세야. 진짜 여기서 연구하는 중에 죽었으면 나는 한 맺혀서 저승으로 떠나지 못했을 거야.”

일수가 푸념을 늘어놓는데 약간 양심이 찔렸다.

어쨌거나 녀석은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다.

난 일수에게 다가가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이 친구만 믿어. 절대 그런 일은 없게 만들어줄 테니까.”

“내가 이렇게 된 원흉이 그런 말을 하면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데 말이야.”

일수는 장난스러운 얼굴로 받아쳤다.

“아무튼 별일 없으니까 다행이네요.”

일수의 안전을 확인한 수진이는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살며시 일수에게 귓속말을 했다.

“쟤 그래도 너를 구하려고 제일 먼저 왔어.”

“아, 그래?”

일수는 너무나 투명하게 반응했다.

아주 입이 귀에 걸리겠다…….

“근데 우리 뭔가 잊고 있지 않아요?”

“뭘 잊어? 아…….”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백기완 대통령.

수진이 아니었으면 큰일 났을 것이다.

아주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빨리 구하러 가야겠다. 이러다 한 소리 듣겠어.”

“그래요. 어서 가요…….”

대통령님.

죄송합니다.

금방 구하러 가겠습니다.

황당해하는 일수와 수진이에게 멋쩍은 웃음을 보낸 다음 나는 곧바로 백기완 대통령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

“하아……. 하아…….”

바닥에 쓰러진 이설아는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그녀는 온몸에서 식은땀이 났고 코에서는 피가 줄줄 흘렀다.

아직도 충격이 가시질 않아서 그녀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이설아는 그렇게 한동안 더 누워있었다.

“…크윽.”

정신이 좀 드는 그녀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공포와 후유증으로 인해 온몸이 떨려왔다.

“시발…….”

그녀는 의자에 털썩 앉은 다음 고개를 뒤로 젖혔다.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었다니.”

그녀는 이라일이 데이터 통로를 통째로 태워 먹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하아……. 크크크큭.”

이설아는 황당해하며 실소했다.

“죽음이 별로 두렵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막상 가려고 하니까 두렵네.”

그녀는 부들부들 떨리는 자신의 손을 보며 말했다.

이설아는 정말로 디오를 점령할 계획으로 데이터를 보냈었다.

그녀는 자신이 충분히 이라일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데이터 통로를 막으면 그것을 뚫어버릴 준비도 다 해놨었다.

하지만 그녀는 역으로 그에게 당해버렸다.

조금만 늦었어도 그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라일이 보낸 전기 데이터는 데이터가 많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격렬하게 터졌다.

때문에 그녀가 보낸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오히려 더 독으로 작용했었다.

“으아아아아아!!!!!!!”

콰앙-!!!

이설아는 분노하며 책상을 내려찍었다.

“시발!!! 시발!!!! 시발!!!!!!!!”

이라일은 그녀의 동료도 다 죽여버렸다.

그녀가 아끼던 후배인 장수진도 가져가 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극심한 고통까지 주었다.

이설아는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크흑.”

그녀는 필사적으로 화를 억눌렀다.

오랜 요원 생활을 하면서 그녀가 깨달은 것은, 흥분하면 될 일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설아는 이 상태로 이라일에게 덤볐다가는 그냥 개죽음을 당할 게 뻔했기 때문에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했다.

“이라일……. 좀만 기다려라. 내 기필코 너를 짓밟아줄 테니.”

이설아는 그렇게 다음 기회를 노리며 다시 만반의 준비를 하기로 했다.

***

“흐음…….”

장수진은 거울을 보며 한참 옷을 맞춰보고 있었다.

“별로인데…….”

그녀는 들고 있는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다시 원래대로 돌려놨다.

장수진은 다시 자신의 옷장을 뒤져보았다.

죄다 운동복들이었다.

“하하…….”

이렇게 그녀가 분주한 이유는 일수와 데이트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진아.”

한창 같이 연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일수가 장수진을 불렀다.

“네.”

“주말에 바쁘냐?”

“…네?”

갑작스러운 발언에 장수진은 깜짝 놀랐다.

“아뇨……. 뭐 딱히 없는데요?”

“그러면 같이 어디 놀러 갈래?”

“단둘이요?”

“응. 단둘이.”

데이트 신청이 분명했기에 장수진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좋기도 했다.

“좋아요.”

그녀도 전일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와 같이 데이트하는 게 좋았다.

“그러면 네 집 앞에서 봐. 내가 데리러 갈게.”

“네.”

그렇게 약간 멀게만 느껴졌던 주말은 순식간에 다가왔고 지금 이 지경에 이르렀다.

그녀는 미리 옷을 준비하지 못한 자신이 미웠다.

“아!”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그녀는 예전에 이라일이 사준 명품 옷을 가지고 있었다.

장수진은 얼른 그 옷을 찾았다.

“여기 있다.”

장수진은 그 옷을 가져와 거울 앞에 선 다음 한번 맞춰보았다.

그때 잘 사긴 했는지 예쁘긴 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그녀는 만족스러운 듯이 씨익 웃었다.

띵동-!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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